예전에 혼자 살았을때 월욜날 회사 가면 무쟈게 듣기 싫은 말이
있었더랬습니다. "주말에 머했어?"
그러면 내가 주말에 머했을까 머리를 쥐어짜면서 생각을 해봐도
술먹고 뻗어서 잠잔 기억밖에 없어서 "그냥 있었지 머"라고 처음에는
대답하다가, 그게 몇번 반복되면 나중에는 약간 짜증을 섞어서
"배때지만 벅벅 긁고 있었다.. 됐나?" 머 이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철 들어서 영화라도 한 편씩 보자라고 해서 요새도 휴일이면
한 편씩 보곤 하는데 어제 제헌절을 맞아서는 두 편을 보게 됐네요.
[지구를 지켜라]
이 영화는 워낙 말이 많고 우리 게시판에도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이
많은 걸로 기억하고 있어서 뒤늦게 봉창두드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첫 느낌은 플롯이 참 복잡하다라는 거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수신된 듯한..
예전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영화가 있었는데
마치 그 영화가 당시에 받은 중평이 "너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한..."이었는데 이 영화가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보자면 엄청나게 많은 말들이 소모될 듯 합니다.
왜 평론가들이 그렇게 호의적으로 반응을 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죠.
별로 할 말 없게 만드는 국내 영화가 대부분이었는데 모처럼만에
직업의식을 발동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으니 의당 한번쯤 이야기 해보고
싶은 심정 이해할만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감독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의 롱테이크에 비견될만큼 비타협적인 작가의 고집이 엿보이는,
어쨌든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싶은 부분이 많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다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플롯의 복잡다기함과 쟝르의 파괴(혼재?)로부터 오는
어지러움증은 어쩔수가 없더군요. 평론가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할수 밖에 없었는지 알만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관객들은 언제나 스트레이트한 이야기를 좋아했었고
앞으로도 그럴수밖에 없을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대로 그려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연구자요 학자요 전문가이지
영화관에 출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작가가 내가 생각하는 세계의 축약판은 이런 것이다라는 은유를 제시해도
A=A이고 B=B이기 때문에 A는 B가 될 수 없다라고 보는 직선적인
세계관에서는 애써서 그것을 해석하고픈 마음 속 여지의 평수는 어김없이
위축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이해될 수 없죠.
그래서 영상작가에게는 오래전부터 딜레마라고 불리울만한 택일적 선택이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곧 대중과 작가의 만족 중 일차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고, 요행히 둘을 결합시킬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작품(예컨대 살인의 추억)들만이 축복받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만 쉽게 풀어냈더라도...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Space Oddyssey"
같은 몇몇 영화들의 패러디를 찾는 재미도 조금 있더군요.
(장준환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의 팬이 아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제가 개인적으로 영화 중에서 참 보기가 꺼려지는 쟝르가 있다면
얼마전에 얘기했다시피 공포영화가 있구요..
또 하나는 느끼 이빠이인 로맨틱 코메디가 있습니다.
근데 이 쟝르는 보기가 싫어서 그렇지 일단 보면 참 재밌더군요.
이 영화의 줄거리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성공적인(?) 여성의 양면인 지성과 관능의 각각의 인격체인 두 여성과
한 남성 사진작가와의 관계를 설정해 놓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에피소드를 통해서 결국 해피엔딩...
머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분명히 이 영화 보신 분들, 특히
여성 분들이 계실텐데 또 그 중에서는 분명히 박수치고 나오신 분들도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영화 재밌지만, 재밌는만큼 유해합니다.
박수치신 분들 다시 한 번 보시고 로맨틱 코메디가 어떻게 성적 보수성을
강화시키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궁시렁 궁시렁은 여기서 끝입니다.
참 얼마 전에 코엔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보았는데
이 사람들 영활 보면 바톤 핑크 하고 파고를 제외하면 여지없이
살아있는 유머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좋은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라도 하듯이...)
첫댓글 음...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음... 그렇죠.. 이야깃거리가 다소 있는... 추공님이 말씀하신 바에 대한 느낌이 와닿는거같아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아주 좋았죠... 그들 영화가 항상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