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셀 수도 없이 많이 지난 때이다.
하늘에는 푸른색을 띠는 수채화 빛 창공과 하얗게 흘러지나가는 구름따위는 이
제 전설이나 된 듯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검푸르게 죽어 색 바랜 하늘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회색빛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멸망이 예견된 인류는 더 넓은 세
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하고 발전하는 인간에게 끝이란 존재치 않았다. 무한한 길만이 있을 뿐이
었다. 갈색의 따뜻한 품을 자랑하던 대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에 휩쓸
려 깔아진 보도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언뜻 보기에 인
간처럼 보이는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삐이이─.
무언가가 서서히 힘을 잃는 듯한 소리가 길거리를 울린다. 마치 죽어버린 곳처
럼 변해버린 도시에 소음이란 그것 뿐이다.
'망가졌구나…….'
그들은 로봇이었다. 인간의 위대한 진보는 로봇에게 하나의 생명을 부여하듯 마
음이란 금기시되어야 할 곳까지 들어섰고, 로봇들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되었다. 그것이 한정되었다고 해도…….
YiB-4버전의 가정용 로봇은 다른 로봇과 마찬가지로 질서 정연하게 걷고 있었
다. 이미 인간의 신체구조로는 살기 힘들어진 지금의 상황에서 믿고 의지해야할
것은 인간이 이루어낸 위대한 진보 뿐인 것이다. 위대한 진보의 결과물, 로봇.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로봇이 대신하는 것이다. 마음을 가졌으면서, 만들어진
존재들.
마음을 가진 로봇.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엄연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 뿐.
로봇에게 생각이란 것은 무가치한 것이었다. 폐기처분이 되는 그 순간까지 만들
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장된 메모리 저편에 기억되어있는 로봇
의 원동력이었다.
로봇이 로봇으로써 동력원과 메모리를 기억하는 것은 길어야 6년. YiB-4의 버
전 중 하나일 뿐인 그는 만들어진 목적을 순수하게 6년간 시행해온 로봇이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남지 않았다.
6년간 마음이라는 이름의 권리는 성장하지 못했다. 삐끄덕 거리는 전신을 느끼
면서도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삐삑! 삐삐삐!
클리너 에어 룸(cleaner air room)의 입구가 서서히 열린다. 완전히 차단된 밀
폐공간. 로봇들은 각자의 주인을 만나기 전 이렇게 소독을 하게 되어있다. 인간
은 바깥에서 들어온 공기에 노출되면 온갖 질병에 걸리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취이이이이이이─!
무언가가 강렬한 소음을 내고, 그의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외부 충
격에 자동보호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시스템, 작동 시작. 모든 전격시스템 플레트 클리너 시작합니다…….」
다시금 시야의 컨트롤이 정상적으로 기동되자, 그는 앞으로 걸어나섰다. 클리
너 에어 룸을 거쳐 지나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 클린 에어 룸이 나오기
때문이다.
"왔구나, 로웬."
"몸은 어떠십니까, 로즈마리 님."
중년의 여인의 말에 YiB-4…, 아니 로웬이라 불린 로봇은 기계적인 음성으로 그
녀를 대했다. 항상, 이렇듯 로봇인 그를 대하는 로즈마리였다.
"그래……, 로웬. 오늘은 네게 할 말이 있단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감정하나 묻어있지 않은 목소리에 로즈마리는 씁쓸함이 잔뜩 배어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몸을 천천히 돌렸다. 발걸음에서 우러나는 평안은 그녀가
얼마나 세상을 밝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가를 알려준다.
클린 에어 룸이 거의 그렇지만, 그 옛날 사라졌을 자연의 풍경이 그대로 존재
한다. 인공적이지만 그 옛날 맑았던 공기를 토해내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에는 좁지만, 최상의 공간이 틀림없다.
로웬은 로즈마리의 뒤를 걸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다른 로봇들을 볼 수 있
었다. 마치 외형만 다르게 해놓은 똑같은 것들이 각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는 모
습이다. 그 또한 다른 건 없었다.
편안해 보이는 자리에 앉은 로즈마리는 로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때 하나 묻
지 않은 18세의 소년 모습이다. 씁쓸함이 가슴속을 자극했다. 고작 6년의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이라는 고귀한 것을 타고나다니…….
"……로웬…, 아마 알 거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네가 로봇으로써 기능을 멈추는 날은……."
"정확히 3일 후, 16시간 3분 12초입니다."
로웬은 로즈마리가 자신의 판단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마음
이 있기에,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던 것이다. 주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답하는 기능. 그 능력에 대해 로웬은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 로웬. 이제 쉬는 거구나……."
"네. 그렇습니다."
로즈마리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로봇이 싫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에서 살아가고픈 마음도 없었다. 인간보다 로봇이 많은 지금. 많은 진보끝에 탄
생된 로봇의 마음은 결국 그들에게 불쌍함을 안겨주는 꼴이 되었다. 많은 탄생
과 그에 마땅한 업을 인간은 짊어져야 한다. 무겁고 잔인한 업을.
"로…웬, 그 남은 시간동안 네게 자유를 줄테니……."
"자유……."
갑작스레 기계적인 목소리의 떨림이 있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그것을 판단할만
큼 냉정하지 못했다. 아들처럼 생각하던 로웬이다. 비록 다른 로봇과 다를 것 없
이 대했지만, 다른 로봇과는 다르게 로웬에게만은 애착을 가졌었다.
'로봇에게 자유란 행복이…될 수 있을까?'
솟아나는 의문을 뿌리치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자유를 찾거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네가 그 시간동안 적어
도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로즈마리의 말을 로웬은 명령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메모리를 총 동원해
도 그것은 명령이나 다름 없는 말투였으니까. 자유? 그게 무엇인가? 남에게 얽매
이거나 구속받거나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로봇이 로
웬에게 그게 허락되는 것인가?
검푸르기만 했던 하늘이 시간이 흐르자, 시꺼멓게 물들었다. 드디어 밤이 찾아
온 것이다. 활기는 없지만 적어도 움직임은 있었던 세계는 일순 정적에 잠식되
듯 녹아들었다. 시간이 흐른다. 계속해서 흐르고, 여명이 밝아올 시간이다.
붉은색의 물든 하늘은 적어도 검푸르게 죽어있던 것보다는 나아보인다.
"……왜 자유를 버렸니?"
"저는 로즈마리 님의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거니……. 그게…네가 할 수 있는 유이할 것이겠지……."
로웬은 그 말에 답을 내지 않았고,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마치 무대의 조연같
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서 잊혀지는 그런 조연같
다.
'로웬……, 결국은 로봇이구나…….'
로즈마리는 눈물을 흘렸다.
시간은 주저없이 흘렀다. 로즈마리와 로웬, 그리고 다른 로봇들 또한 변화를 가
지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저 어제와 같은 것의 반복, 내일에 대한 열망은 존재치
않는다. 인간과는 다르다. 여명이 밝아오고, 다시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다시 밝아오고…….
로웬은 옛 자연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중추
적인 명령체계가 서서히 기능을 상실해가는 것이다.
철컹!
무릎을 꿇은 로웬은 클린 에어 룸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의 신경 프로
그램이 종료 되어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기동되지 않는다. 메모리와 파워. 그리고
시야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청각 프로그램 마저 종료된 모양이었다.
"로웬─!"
이미 청각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멀찍이서 황급히 뛰어
오는 로즈마리의 모습에 로웬은 당장에라도 그녀를 부축해주고 싶었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뛰게 된다면 심장이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쓰러진 로웬을 품에 안은 로즈마리는 눈물을 애써참는 것인지, 전신을 떨고 있
었다. 이미 모든 것이 종료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지금, 로웬은 처음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 때문에 슬픈 감정을 눈물로써 표현하는 것
이리라.
'그녀는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생각. 그것은 생각이었다.
"너에게…자유를 줬는데……. 다른 애들에게도 자유를 줬었는데……!"
울부짖듯 외친 로즈마리는 참았던 한 개의 끈을 놓았다. 눈물과 함께, 들썩들썩
몸이 흔들린다. 덩달아 로웬의 시야도 흔들린다. 왜 지금이 되어서야, 그녀를 이
해하는 것 같은 이질적인 것을 느끼는 걸까?
그녀는 같은 것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선택을 하는 로봇이 미웠다. 자유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는 멍청한 이들이었다. 그리고……결국은 로웬처
럼 자신의 앞에 쓰러져 정지하는 것이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뺨을타고 흘렀다.
「…일시적인 시스템 복구. 오른쪽 팔의 기능의 프로그램을 부스트합니다.」
끼이익!
"……?"
로즈마리의 왼쪽 뺨에 무언가가 닿았다. 곧 그녀의 얼굴이 놀라움에 가득차고,
떨리는 두 손으로 왼쪽 뺨에 올려진 그것을 움켜잡았다. 놀랍게도 로웬의 오른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일순간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
지가 남지 않은 순간, 로웬은……진실된 마음……, 감정을 소유했기에…….
"이……."
"로, 로웬……."
"거…것이……. 제가……선택한…자유……."
듣기 싫을 정도로 기괴한 음성이었지만, 로웬은 끝까지 제 말을 마쳤다. 오른손
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키던 프로그램이 일순 꺼져버렸고, 시야 시스템도 천천히
정지되어가고 있었다. 메모리가 정지되는 그 순간이, 시야 시스템이 완전히 정지
되는 순간이다.
기─이잉──.
로웬은 정지했다. 많고 많은 YiB-4중에서 로웬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이 정지
된 것이다. 로즈마리는 이제 고철덩어리가 된 로웬을 끌어 안았다. 노래가 시간
에 맞춰 흘러나온다. 언젠가……, 로즈마리가 예약시킨 음악이었다…….
슬프고……, 격렬하다.
노래 제목은……프리덤 오브 초이스(freedom of choice)…….
'그의 선택, 그것은 이 시대의 또 다른 자유의 선택이다. 그는 로봇의 삼원칙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을 잘 수행했고, 그 결과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다. 그는 부여된 권리 중, 마음을 마지막에 느낄 수 있었다. 로웬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이 살아가는 게 과연 의미없는 일이었을까?'
로봇을 처음 구매할 때, 캡슐의 정 가운데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여있다…….
(1)로봇은 인간을 위협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방치할 수 없다.
(2)로봇은 인간의 모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3)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
안녕하세요 ^^ 히카리입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들리네요. 제가 처음으로 판타지를
쓰게 된 그리운 곳. 뭐..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으니,
인소닷을 잊은 건 아니예요. ^^;;;
인소닷보다는.. 에프월드에 있을 때가 많긴 하지만..a
잊을 수 없는 곳이기에 올립니다. ^^;;
음.. 단편소설은 처음입니다;; 갑자기 삘이 꽂혀서..[....]
리플은 거의 바라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곳에 제 글은 딱딱하고 보기 안 좋은 글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다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겠죠. ^^
리플까지 있다면.. 경사랄까요? 하하..a
일단 이것으로 '로봇은…….' The end 입니다.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하루 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
버디버디: 히카리…
MSN: start51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