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2026.3.29) 말씀/빌립보서 1장 6 처음이요 끝이신 하나님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여러분, 이 세상을 처음 누가 만들었습니까?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in the beginng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창세기보다 더 먼저 기록한 것은 없습니다. 2장을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시작도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끝 마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계시록 1:8을 읽어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Α α)와 오메가(Ω,ω)가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과 마지막 글자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시라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영원하신 분이시오. 능력 면에서는 못하실 분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은 태초의 일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지구 종말 인류의 끝을 다 알고 기록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처음이요 끝’이신 하나님을 안다면 어떻겠습니까?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욕심과 탐욕을 부리며 살아가는 이유, 오늘 잘 살면서도 불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재물을 쌓고 투자를 합니다. 든든한 집을 짓고. 땅을 매입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니다. 나의 미래와 끝은 하나님이 다 아시기에 맡기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무책임, 대책 없이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염려한 적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예정하신 속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정하심 속에서 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정하심 속에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믿을 뿐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형의 장자 명분과 축복권을 빼앗고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 삼촌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길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다가 꿈에 하나님을 뵈옵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서원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한치 앞도 못 보는 내일 일이 불안하여 힘든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이 미래 일까지 다 아시고 그와 함께하시고,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언제나 함께 하시고 떠나지도 않으시고 약속한 것을 다 이루시겠다는 말씀이 야곱에게뿐 이겠습니까? 아울러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건을 달고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야곱도 불안하고 염려가 되었던지 아주 구체적으로 조건들, 길에서 지켜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주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고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로 창세기를 계속 읽다 보면 하나님은 하나도 빠뜨림 없이 모든 약속을 이루시고 야곱이 거부가 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자신의 인생 나그네 길이 험악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와중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씨앗이 되는 12자식을 낳게 하셨고, 속이기 잘하고 단수 높은 라반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거부가 되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중에 형 에서를 만나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고통을 겪었지만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도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은 특별한 사람을 받으며 자랐지만 형들의 시기심으로 애굽상인에게 팔려가고,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슬퍼합니다. 그리고 애굽의 흉년이 들어 곡식을 사러 애굽에 들어간 형들로 인해서 동생 베냐민까지 잃게 될 것을 염려하며 다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며 힘들어합니다. 여러분, 야곱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으로 이어진 약속의 자녀 아닙니까? 12 아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 아닙니까?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잃을 수 있겠습니까? 아묻 안죽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염려하고 근심하며 심히 고통스러워 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스케줄대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애굽의 총리고 세우시고, 온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 야곱은 베냐민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다가 함께 보냅니다. 그런데 형들이 바로가 보낸 수례와 실린 풍성한 양식과 함께 돌아오는 모든 것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요셉이 살아 있으며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때, 그 감격이 어떠하였겠습니까? 45장에 보면 죽어가다가 기운이 소생하며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처음도 확실하지만 끝도 확실하신 분이십니다. 처음이요 긑이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처음이 화려하게 출발해도 끝은 다 쇠하여지고, 병들과 죽고 늙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처음 시작은 미약하고 볼품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겨자씨처럼 작고, 눈에 띄지도 않기도 합니다. 중간 과정은 넘어지고 쓰러지고 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끝은 장대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처음은 웃을지라도 나중에는 울게 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는 처음은 울지라도 끝은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지하고 믿고 사는 우리 인생은 점점 빛으로 변하게 하시고 족하게 하신느 분이십니다. 할헬루야! 제가 처음 목자로 부름을 받아 사역을 시작한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28살에 사모와 믿음으로 결혼하고 83년 3월에 제주도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가장 기독교 보급률이 낮고 힘든 제주도 땅에 저는 멋도 모르고 마도르스 옷을 입고 바울의 시정으로 제주 배에 올라탔습니다. 처음에는 제주시에서 홀을 얻어 시작했지만 다음 해는 산 중턱 대학 근처로 센타를 옮겼습니다. 당시 학교 주변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서 아무런 건물이 없었습니다. 딱 하나 옛날 화장터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한 사람이 방을 만들어 토끼를 기르고 고사리를 말려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인에게 부탁해서 한 10평 정도 떼서 빌려주라고 부탁해서 그렇게 화장터에서 아주 작은 교회를 세우고,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건물에는 화장터 잔해의 검은 끌 음이 남아 있었고, 화단에 꽃을 심으려고 호미로 파니 하얀 뼈가루가 나왔습니다. 바로 덮어버렸습니다. 신혼 살림도 문 열면 비 들이치는 방 한 칸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날마다 전도 1:1 성경공부를 하며 화장터는 양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높은 천정dsm 반으로 잘라 위 층을 학생들 공동생활 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29살이었으니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함께 사모님 해주는 밥을 먹고, 아침에는 사도 양성 세계선교를 외치며 구보를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엉터리 같은 자였지만 제주 역사 최초로 마가팀 제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안드레가 첫 조상이 되었고, 이어서 마가, 요한, 야고보가 합류하여 제자 1기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키운 것이 40명가까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화장터에서 어떻게 이런 역사를 이룰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지만, 저는 뭔가 양이 안 차는 생각에 힘들게 생활을 하였습니다. 개척하며 나은 갓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1:1 책상에서 뉘었다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큰 일날 뻔했고, 루디아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보행기에서 놀게 해서 안짱다리가 될뻔 했고, 나중에는 아이들이 역사에 방해된다고 해서 아랫동네에 집을 얻었지만 밤 늦게까지 또 아이들을 방치해야 했습니다. 밤 열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밖에 나와 어두운 가게 앞에 앉아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사모가 임신 중에 모르고 먹은 독한 방광 약으로 지체 장애로 태어났고, 서울에서 오신 한 학사 가정과는 늘 갈등이 있었고, 다른 지역 목사님들의 사역과 비교화면서 힘들어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힘든 문제를 안고 산골자기 계곡에 가서 자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중 서울에 올라가다가 버스 옆자리에서 앉은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듣고 나서 그분이 신령한 분이라 생각하고 영성 기도를 배우고 문제들도 해결 받고자 찾아갔습니다. 나중에 사이비 목사라는 것이 들어났고, 이 사실이 본부에 알려지고 저는 갑작스럽게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제주도를 등지고 이제 겨우 젖먹이 같은 양들을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신기하신 분이셨습니다. 오히려 그 계기로 제주 역사는 물고가 트이고, 신선하게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졸업반인 조마가 목자가 생각지 못하게 제주 출신으로 스텝 훈련을 받고 목자가 되었고, 안드레 목자는 서울 종로 출신 자매와 결혼해서 헝가리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성장하며 선교사 파송역사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 다 지금 너무나 잘하고 있습니다. 제주 센타는 조마가 목자의 영향력있는 사역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큰 센로 성장하게 되었고, 안드레 목자는 헝가리 서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가 목자의 아들 사무엘이 5년 전 헝가리 선교사로 가서 동역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기막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얼마 전 사라 사모가 사진을 보내주어서 보았는데 그곳에서 사무엘 선교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양들과 놀아주며 아주 잘 돌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한번씩 생각해봅니다. 내가 당시 계속 제주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훌륭한 마가 목자님은 꽉 막힌 제주도에서 졸업 후 방향을 위해 갈등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떠나온 것이 정말 잘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제주 역사가 답답하게 막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적절히 숨통이 트이는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사라 사모도 내조를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또 하나 감사제목은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들도 만나게 되었고, 지금 저는 여러분들과 또한 행복한 사역을 하고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끝판왕,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30년이 흘러가는 어느 날 안드레 선교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계자 번호를 알려달라고 100만원을 입금해주었습니다. 무안에 와서 개혁 와중에 저와 가족들 상황 이야기를 듣고 어렵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물질보다도 30년 목자를 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나 감사가 되었습니다. 고맙다고 하며 그동안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목사님 은혜 잊은 적이 없고 다른 원망하는 생각도 갖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내가 동구권 여행을 하며 만나던지 한국에 와서 만나던지 언제 만나서 서로 안아주며 회포를 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9년 유럽수양회 때 헝가리를 들리게되었고, 직접 안드레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 때도 역시 목자가 왔다고 바쁜 일정 중에 약속을 잡아주었고, 여행비 보태 쓰라고 봉투도 준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또 세월이 10년가까이 흘렀습니다. 어제는 안드레 선교사의 딸이 서울에서 결혼하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차 시간이 안 맞아서 저는 못가고 루디아 사모와 누가가 다녀왔습니다. 지난 날들을 다시 돌아보니 모든 것이 감사이고 감동입니다. 야곱의 고백이 떠올랐습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내 인생을 족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0년 전 당시로는 고난의 점철 된 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모든 것이 힘든 일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모든 일을 멋지게 뒤집기를 하셨습니다. 저도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뿐 아니라 끝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지만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습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그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또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는 분이십니다. 지난 번에 읽어드렸지만 ‘하나님의 모래시계’ 시는 이런 삶의 배경애서 나온 고백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모래시계 /김해영
가만히 모래시계를 보노라면 하나님은 뒤집기 명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떨어져 끝날 때 하나님은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으십니다.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아가고 그 모래가 다 떨어져 끝날 때쯤 되면 다시 그 시계를 '탁!'뒤지어놓으시지요. 하나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모래의 질량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내 인생은 모래 한 알갱이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의 그 알갱이는 영광스러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 뒤집기 명수입니다. 내 인생의 잘룩한 모래시계 허리를 잡으시고 내 힘이 쇠잔하고, 슬퍼 절망할 때 세월의 무상함을 뒤집기하십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새롭게 되어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되고, 슬픈은 기쁨이, 절망은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 뒤집기 명수입니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새 사람의 희망을 보며 내 인생의 잘룩한 허리를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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