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 열여 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큰 키의 홀든 콜필드가 네번째로 학교를 퇴학당하고 사흘 동안 뉴욕의 거리를 헤맨다. 그가 요양소에서 들려주는 3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때론 역겨워도 삶은 아름답다
인간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소년은 아무도 '무사히' 자라지 않는다 . 무난하게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누구에게도 말못했던 은밀한 두려움과 불안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외로움과 좌절이, 눈을 감 아도 떠오르는 그리움과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들 세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 역시 심한 성장열병을 앓고 있다. 이미 세 번 퇴학 을 경험했고, 성적 불량이란 이유로 네 번째 퇴학을 앞두고 있는 홀 든에게는 학교와 선생님들, 친구들, 아니 온 세상이 다 역겹고 한심 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네 번째 퇴학을 당한 소년은 홀가분한 맘으로 뉴욕 한복판으로 떠난다.
클럽과 바를 전전하며 술을 퍼마시고, 캑캑거리면서도 연신 담배를 피워댄다.
성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섹스(sex)를 통과 하기 위해 늙은 매춘부와 고통스런 경험도 맛본다. 어른이 되기란 정말 이토록 힘든걸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linger)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1년 발표됐다. 사립고교에서 퇴학당한 주인공 콜필드가 학교를 떠나 2박3일 동안 겪은 일들을 독백 형식으로 풀어간 이 소설을 통해 작가 샐린저는 소년기의 꿈과 어른이 되어 만나는 현실 사이에 는 큰 괴리와 갈등이 있지만 그 갈등과 고민, 방황 속에서 인간은 매력적인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1500만권 이상 팔렸으며 지금도 해마다 30만권 이상 팔리고 있다.
10년 이상 미국 내 도서관 대출건수 1위. 노벨문 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포크너가 '20세기 최고 소설'이라고 극찬했던 이 책은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이 범행 당시 손에 쥐고 있어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권터 그라스의 '양철 북',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등과 함께 대표적인 현대 성장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선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영화 '컨스피러시'에서 약물중독에 걸린 주인공 멜 깁슨이 서 점에 갈 때마다 구입해 집에다 쌓아두는 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말하는 "너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이야기하는구나"는 대목으로 그 존재를 알렸을 정도. 하지만 지난해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민음사에서 재출간된 이후로 비 로소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때로는 담담한 어조로, 가끔은 삐딱한 시선으로 비꼬아대며 순간 강 렬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홀든 콜필드의 목소리는 이 소설이 갖고 있는 강렬한 호소력과 매력의 근간이 된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문제가 생기면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고, 성숙하다고 평가받는 인간들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비굴한 삶을 선택하려 한다는 점이지." "그 놈은 남들이 모두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받고 싶어 안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역겨 운 놈. 그런데 더 한심한 건 그 놈의 부탁을 받을 때 난 결코 거절하 지 못한다는 데 있어." 하지만 주인공 홀든은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의욕을 결국 놓지 못 한다.
세상이 역겹기만 하지만 결국 살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가끔 씩은 자신도 모르게 '잘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는 점, 결국 나도 어른이 되고, 또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소 년은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하는데 그 대목이 바로 책의 제목이자, 세 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던 다음 구절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 하곤 해. 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은 나밖에 없는 거야 . 그리고 난 까마득한 절벽에 서 있지.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잘못 해서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원래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잖아…. 난 온종일 그 일만 해.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나 할까.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엔 없는 걸." 결국 부모님들에게 이끌려 요양소에 보내진 홀든 콜필드. 하지만 소 년은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그는 '그리움'이 뭔지를 정확히 아는 성인이 돼 있었다.
"지겨웠던 그 놈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더라 고. 참나. 휴~ 누구에게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가오는 9월에는 소년의 다섯번째 학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미수기의 감상평
우리 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주위에서 늘 반항아로 보이고 문제아로 보이고, 마땅히 기댈곳 없는 주인공, 유일한 안식처인 호밀밭, 그곳에서 주인공은 무얼 느꼇을까? 그건 평온이 아니었을까?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평온함
주인공은 또다른 세상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비록 그 세상에서 주인공을 반겨주지 않는다 할 지라도 말이다.
2000/03/08 13:43
{호밀밭의 파수꾼}. 낭만적인 제목의 이 작품을 나는 여덟 살 무렵에 읽었습니다. 당연히 그 내용이 온전히 이해될 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글로 쓰여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읽어대던 어린 책벌레였습니다. 네모꼴 안에 새겨진 기호들이 나름의 의미와 느낌으로 울려 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하던 때였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끝까지 읽었던 것도 바로 그런 무렵이라 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책의 숲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이 나를 반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숲의 입구에서 만난 호밀밭의 파수꾼은 시간이 갈수록 아득한 그리움으로 느껴지는 존재였습니다. 내용은 점점 더 잊혀져 갔으나 제목은 점점 더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무슨 의미일까. 호밀밭에 왜 파수꾼이 있어야 하나. 호밀도 참외나 수박처럼 서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호밀밭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제법 그럴 듯한 의문에서부터 시시껄렁한 궁금함에 이르기까지 별별 생각을 다하곤 했습니다. 여덟 살에 만난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렇게 내 곁을 맴돌아 온 친구였습니다. 그 책을 본격적으로 읽고 추천하다니! 책의 숲, 그 입구에서 만난 책을 비로소 온전히 만나 여러분께 권할 수 있다니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입니다. 노벨상 수상작가 윌리암 포크너는 이 작품을 가리켜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대목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포크너의 작품은 문장이 길고 또 길거든요. 반면에 샐린저의 문장은 짧고 경쾌합니다. 가장 긴 문장을 쓰는 작가가 가장 짧은 문장을 쓰는 작가를 부러워한 것일까요….)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문제아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 당한 후 집에 돌아가기까지 2박 3일 동안의 방황의 기록입니다. 네 번째 고등학교에서도 쫓겨난 홀든의 퇴학 사유는 성적 불량. 물론 성적 불량이란 표면상의 이유일 뿐, 그 심층에는 성년의 삶으로 성장하는 젊음의 위태로운 방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홀든의 방황을 그려내는 샐린저의 솜씨는 정말 마음에 쏙 듭니다. 특히 이러저러 설명하는 대신 방황하는 젊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합니다. 무한 질주와 순간 소멸. 최선을 다하면서도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 하는 젊음의 이중적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혹시 이런 순간을 경험해 보았습니까?
"하여튼 나는 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204번 국도를 달려 횡단했다. 지독하게 추웠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달리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국도를 횡단하자 내가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미치광이 같은 오후였다. 무섭게 추운 데다 햇볕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건널 때마다 흡사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 "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 고 2때였던 17살 때 나는 제주도에서 억새풀이 우거진 한라산의 도로와 작은 오름들을 아무 사전 계획 없이 오토바이로 몇 시간씩 질주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이모댁에서 오토바이를 타며 지냈던 1달 후 나는 개학식에 맞춰 서울로 왔었던 것이죠. 알지 못하는 무언가들로 스스로 너무나 답답했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속도를 높이는 데 목숨을 거는 속도광들을 이해합니다. 그것이 오토바이 폭주족이라도 말이죠~. 영화 {비트}의 한 장면도 생각나네요.)
'훌륭한'이란 말이야말로 얼마나 허위에 찬 단어냐며 지독히 싫어하는 홀든. 홀든에게 세상은 한마디로 거짓투성이의 더러운 시궁창입니다. 그는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 '허식, 무신경, 약육 강식, 비속함' 등을 증오합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뉴욕 시에서 방황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의 돈을 노리는 매춘부와 사기꾼, 유명인이라면 넋을 잃고 마는 사무직 여성들,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여자 친구들, 신뢰할 수 없는 교사들을 만납니다. 성인이 아니라서 논리를 명료하게 전개하지는 못하지만 성인의 때가 묻지 않은 그는 나름대로의 이유로 끊임없이 반항하며 위선적인 논리를 거부합니다. (제임스 딘의 영화, 이유없는 반항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앞서 뉴욕시를 배회하는 장면은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떠오르고요.)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방종과 훼탕으로 젋음을 소진하는 쓰레기 인생이 아님을 방황의 틈틈이에서 보여 줍니다. 이를테면 수녀들의 봉사에 감동하고, 연못이 얼어붙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는 등 따스한 인간적 면모를 보여 주지요. 또한 그는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진정으로 좋아합니다.
"나는 예수께서 진정으로 좋아할 사람은 그 오케스트라에서 작은북을 치는 단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죽 보아 왔는데, 부모와 함께 보러 갔을 때 나와 동생 앨리는 이 사람을 더 잘 보려고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렇게 훌륭하게 북 치는 사람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한 곡에서 북치는 기회란 단 두 번밖에 없는데, 손을 쉬고 있을 때에도 그는 절대로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다가 북 치는 차례가 되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매우 멋지고 아름답게 북을 울려댔다."
연약하며 선량한 것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그의 방황은 그래서 때로 아름답게까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홀든의 방황은 열 살짜리 여동생 피비만이 진정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영영 세상을 벗어날 생각을 하다가 여동생 피비의 사랑으로 결심을 번복합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여동생 피비는 모든 젊음을 구원하는 성모 마리아와도 같이 느껴집니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 뾰족히 해결할 능력도 아직 없는 그는 여동생 피비에게 말합니다. 법률가가 되는 대신, 호밀밭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려 벼랑에서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아이들을 붙잡아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디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일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마지막으로, 그가 가출을 결심하고 어느 먼 곳에 가서 주유소 직원이나 하면서 삶을 평범하게 꾸려 나가겠다는 대목. 이 대목은 요즘의 가출 청소년들이 집을 뛰쳐나왔을 때의 심리와 아주 유사합니다.
"나는 그곳에 한 시간 가량 앉아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결심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딘가 멀리 가버리자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다른 학교에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피비만 만나서 잘 있으라고 말하고 크리스마스 용돈을 돌려 주고 차를 얻어타고 서부로 떠나자고 결심했다. 우선 홀랜드 터널까지 가서 그곳에서 무임승차한 다음 다음 역에서 다른 차로 갈아타고 가면 며칠 안으로 서부의 어느 곳엔가 도착할 것이다. 그곳은 매우 아름답고 햇볕이 따사할 것이고, 나를 알아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어느 주유소에서 차에 휘발유를 넣어 주고 오일을 칠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건 개의치 않기로 했다. 다만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이면 되는 것이었다."
끝으로 빼먹고 싶지 않은 말. 홀든 콜필드, 나는 그가 훌륭한 교사나 상담자, 종교인이 될 수 있다고 확언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홀든 콜필드와 같이 말하다 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답답함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국 홀든 콜필드는 우리 교사들에게는 청소년을 이해하도록 가르쳐 주는 교사인 셈입니다. 교사의 교사들은 참 많기도 합니다.
* 함께 생각하면 좋을 점들 :
1) 주인공 홀든은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 이를테면 '허식, 무신경, 약육강식, 비속함' 등을 증오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가지 부정적 속성들을 생각해 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한국 사회에서 홀든과 같은 학생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1999년 오늘 한국의 홀든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요? 네 번째 퇴학 당한 고등학생을 소재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흉내내어 쓰면(모작:模作) 어떨까요?
3) 홀든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홀든은 열여섯 살이면서 머리가 하얗게 샌 소년, 그 자체로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이중성을 상징합니다. 즉 유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자연으로 치자면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중간 길목인 하구(河口)에 속합니다. 하구의 물이 때로 바닷물처럼 짜고 때로 강물처럼 밋밋하듯이, 홀든의 행동 역시 대단히 어른스러운가 하면, 대단히 유치한 모습을 같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모습이 마구 섞여 있는 주인공이 점차 성숙해지면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주인공 홀든이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가 살펴 보면서, 마지막까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주의 깊게 따져 보면 좋을 것입니다. 소설론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인물 분석이 되겠죠.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이문열님의 {젊은 날의 초상}, 최시한님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등의 작품들을 읽어 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문열님의 작품은 고등학생 이상, 최시한님의 작품은 중학교 고학년 이상 읽으면 적절한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