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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차 김유정 소설 [봄과 따라지] ·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문학여행기
글 : 권창순 (cafe daum : 춘천, 김유정소설문학여행) -2013. 11. 8
왜? 11월에 [봄과 따라지], [오월의 산골짜기] 등 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문학소풍인가?
이렇게 따져 묻는다면 그건 뭘 모르는 소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밖으로 나가 어디든 돌아보라. 오월의 신록이 빨강 노랑 고운 옷을 차려입고 소풍 나오지 않았는가.
서른아홉 번째 떠나는 김유정 문학소풍에는 이 세상 소풍을 잘 하고 떠나신 천상병 시인의 혼이 깃든 시집도 동행한다.
서울 상봉역. 열 살짜리 깍쟁이와 전동차에 올랐다. 평일이라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 많고, 산행을 떠나는 어르신들로 북적하다.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데 ‘봄따’는 여기저기 비집고 앉으려다 혼쭐이 난다.
“아휴, 썩은 냄새!”
“저리가 이 자식아!”
지루한 한 겨울동안 꼭 옴츠려졌던 몸뚱이가 이제야 좀 녹고 여기가 근질근질, 저기가 근질근질. 등어리는 대구 근실거린다. 행길에 삐죽 섰는 전봇대에다 비스듬히 등을 비겨대고 쓰적쓰적 부벼도 좋고 왼팔에 걸친 밥통을 땅에 내려 논 다음 그 팔을 뒤로 제쳐 올리고 또 바른 팔로 발꿈치를 들어 올리고 그리고 긁죽긁죽 긁어도 좋다.
번히는 이래야 원 격식은 격식이로되 그러나 하고 보자면 손톱하나 놀리기가 성가신 노릇. 누가 일일이 그리고만 있는가. 장삼인지 저고린지 알 수 없는 앞자락이 척 나간 학생복 저고리. 허나 삼년간을 내려입는 덕택에 속껍데기가 꺼칠하도록 때에 절었다.
그대로 선 채 어깨만 한번 으쓱 올렸다. 툭 내려치면 그뿐. 옷에 몽콜린 때꼽은 등어리를 스을쩍 긁어주고 내려가지 않는가. 한번 해보니 재미가 있고 두 번을 하여도 또한 재미가 있다.
조그만 어깻죽지를 그는 기계같이 놀리며 올렸다 내렸다, 내렸다 올렸다 그럴 적마다 쿨렁쿨렁한 저고리는 공중에서 나비춤, 지나가던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둥굴린다.
-소설 [봄과 따라지]에서 -김유정 전집 상권 238쪽
“그러니까 좀 빨아 입거라.”
“잔소리 그만 하시고 그 배낭 속에 먹을 것 좀 주세요.”
“책 뿐인데.”
“그러지 말고, 먹다 남은 사과라도 좋으니 좀 주세요.”
하는 수 없어 배낭을 열고 하나뿐인 사과를 꺼내어 한입 물고 주니,
“그 양복쟁이와 다를 게 뭐야!” 투덜거리며 받더니 우선 한입 덥석 물어 띠인다. 창자가 녹아내리는 듯 향깃하고도 보드라운 맛이리라.
몇 번 물어뜯고 나니 딱딱한 씨앗만 남는다. 그러자 깍쟁이 봄따는 싱겁다는 듯 사방을 살피다가 얼굴을 파묻고 있는 어느 뽀죽구두의 스마트폰을 나꿔채어 이리저리 도망다닌다.
“야, 임마! 빨리 안 줘! 너 죽고 싶어!”
결국은 옆에 앉았던 뽀죽구두의 남자친구에게 잡혀 머리통에 맛도 없는 군밤을 몇 개 맞고 서 풀죽은 목소리로,
“아저씨, 재수 없어요. 앞 칸으로 가요.” 한다.
앞 칸으로 건너가자, 다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무 배낭이나 잡아당기고 야단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욕을 퍼붓는다.
“빌어먹을 놈의 자식! 조용히 못해!”
“애비는 멀쩡한 데, 애는 미쳤나 봐!”
“애비는 멀쩡하게 등산복 잘 차려입고 애는 완전 거지인 걸 보면, 애비도 제 정신이 아닌가 봐!”
더는 소란을 피우기 싫어 얼른 [봄과 따라지]의 소설을 닫아버렸다. 봄따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버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전동차 안은 다시 평온하다. 그러나 배낭 속에서 아이의 등을 다독이는 소리와 함께 조용조용 그러나 또렷또렷, 들려오는 소리가 있으니,
“요놈들아, 요놈들아, 너희들이 언제 그렇게 배불리 먹고, 여행하며 살았드냐!”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 박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쫄쫄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김유정 전집 하권 192쪽
강촌역을 지나 한들을 보니 텅 비었다. 추수가 끝난 모양이다. 한들을 달려 김유정역에 내리니 김유정 문학여행을 온 사람들로 북적한 게 괜히 내가 더 행복하다.
김유정 문학촌 돌담가에 동백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알싸하다. 생가 뒷산으로 길을 내고 포크레인이 올라가 있다. 지난여름 무너져 내린 생가 뒤란을 보수하기 위해서이리라.
장독대 앞에서 아직도 키를 재는 [봄·봄]의 데릴사위와 점순이와 봉필영감을 만나고, 정문 쪽에서 닭싸움을 시키는 [동백꽃]의 점순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김유정 작가님과 실레이야기길로 들어섰다.
“유정, 날씨가 제법 쌀쌀하네요.”
이때다. 배낭 속이 요동치기에 얼른 배낭을 여니,
“바보! 가을이니까 그렇지!”
깍쟁이 봄따가 저만치 달아나 무어라 중얼거리며 신나는 듯 걸어간다.
“고향 마을도 많이 변해 속상하겠어요?”
“귀여운 전원이 도시화 되고 말았지요.”
“시대의 흐름인 걸 어쩌겠어요.”
“그래도 이 금병산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저기 동백나무도 있으니 향기롭습니다.”
“내가 있으니 든든하고 향기롭진 않고?” 대여섯 명의 주부들을 데리고 김유정 문학을 이야기하는 해설사를 빙글빙글 돌며 봄따가 소리친다.
“오늘도 문학여행을 온 분들이 많군요.”
“춘천으로 여행을 오면 모두 들렸다 가니 명소가 된 것이지요. 레일바이크도, 이 금병산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구요.”
“그중 제일인 게 유정의 문학이 아닐까요?”
“이 길도 한 몫 하겠지요.”
“저 봄따처럼 소설의 캐릭터들이 함께 걷는 이 실레이야기길이 참 좋습니다.”
“사실 제 작품을 읽고, 마음을 열고, 이 길을 걸으면 늘 동행하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지요.”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마을이 도시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온다면 작품에 나오는 옛사람들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요. 그런 만남을 간절하게 바라는 게 제 희망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만남이 제 문학을 더 싱싱하게 하리라 믿습니다.”
“늘 응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참, 오는 24일엔 그분의 문학소풍을 간다면서요. 문학여행도 아니고 문학소풍이라 하니 군침이 도네요. 난 이만 저 주부들과 문학이야기 좀 나눠야 하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봄따도 데리고 갈 테니 편히 그분과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세요. 우린 하늘의 ‘귀천’ 카페에서 자주 만난답니다. 막걸리도 마시구요.”
유정 작가님를 보내고 실레이야기길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데리고 잣나무 숲으로 들어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한 삶을 살다간 천상병 시인의 시집을 펼친다. 저만치서 다람쥐가 고개를 쑥 빼들고 파란 빛은 눈에 좋다는 듯 꼬리로 잣나무가지를 친다.
그렇다! 파란 빛은 눈에 참 좋다. 참 좋다. 파란 가을하늘빛도 눈에 참 좋다. 참 좋다. 금병산 기슭에도 오월의 신록은 빨강, 노랑, 곱고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가을 소풍을 나왔으니 오월의 파란 빛은 참 좋다. 11월의 파란 빛은 참 좋다.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파란 빛이
온 세상을 덮는 오월은
문자 그대로 신록의 달이다.
파란 빛은 눈에 참 좋다.
눈에 좋을 뿐만 아니라
희망을 속삭여 준다.
오월 달은 그래서
너무 짧은 것 같다.
푸른 오월이여
세계의 오월이여
-천상병 시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천상병 시인이 마지막 남긴 詩다. 한 잡지의 청탁원고로 써 둔 것인데, 운명할 때 윗옷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한다.
시를 몇 번 읽다보니, 천상병 시인은 우리들의 파란 신록이었다. 우리 눈과 마음을 좋게 하는 오월의 파란 신록이었다. 우리들에게 희망을 속삭여준 오월의 파란 신록이었다.
시인은 짧지 않은 삶을 사셨지만, 그래도 시인의 삶이 오월처럼 짧게만 느껴져 서러웠다. 그래서 시인의 몸과 마음을 망가트린 권력을 미워하자, 오월의 바람이가 누가 뒤통수를 탁! 친다.
“요놈아! 요놈아! 난 그래도 세상 소풍 잘하고 갔는데, 무슨 헛소리야! 망할 놈!”
다시, 실레이야기길을 걷다 뒤돌아 보니,
나무의 얼굴이며, 마음인 떨잎들이 서로 손을 잡고 두런두런 실레이야기길을 걷는다.
첫댓글 사진만 보아도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작년에 갔을때는 본 전시관 하나만 있었는데, 어제 다시 찾아간 김유정 문학관이
달라졌더군요. 본 전시관 안마당에 봄.봄 작품을 연상케 하는 머슴과 주인, 머슴과 혼인을
약속한 딸의 동상도 세워져 있고, 맞은편 밑으로 새로지은 흙집 전시관과, 바로 옆에 공사중인 터전,
들어오는 입구에 도로공사중으로 아주 교통이 복잡하더이다.
어제는 전시관의 글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흝어 본 뒤에 오는 도중 작가의 연민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죽기 11일전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때문이었지요. 얼마나 몸이 아프고 힘이들었으면 몸보신을 위하여
글을 써야한다는 작가의 애달픈 사연을 친구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편지가 현재 상황 같아 울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