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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국 EVO
1. On road
오렌지색 718 카이맨 S의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 마른기침 같은 배기음을 내뿜으며 바로 내 뒤에 따라 붙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댄 프로서가 운전하는 TT RS의 꽁무니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M2를 타고 중간에서 따라가던 나는 미처 놀랄 틈도 없이 시간이 멈추는 걸 느꼈다. 눈동자는 커지고 주변에 모든 움직임이 느려졌다. 순간 TT RS와 M2, 718 카이맨 S가 뒤엉켜서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출발 전 “TT 뒤에 5cm 간격을 두고 달리면 돼, 한 번에 끝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던 포토그래퍼 딘 스미스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또 한 번 시승차를 폐차장으로 보낸다는 생각에 하늘이 노래졌다.
그러나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evo 전용 서킷의 헤어핀 구간에서 TT RS는 거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댄이 스로틀을 닫는 게 느껴지며 차가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만큼 가까워졌다. 순간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려는 찰나 TT RS가 도는 방향대로 나도 스티어링휠을 꺾었다. 동시에 꽁무니가 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뒤가 바깥으로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한 25도 정도 꺾였을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차 옆구리를 살짝 밀어주듯이 차체가 탄탄하게 버텼다. 드리프트다. 심지어 속도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빨라졌다. 앞바퀴가 똑바로 정렬하는 게 느껴지며 꽁무니가 슬그머니 빠졌다. 엔진은 폭발할 듯한 괴성을 질러대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순간 단번에 알아차렸다. 신형 TT RS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구나!
이 짧은 경험 한 번만으로도 세상이 왜 그토록 포르쉐 미드십 쿠페를 떠받드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카이맨에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LSD) 옵션을 추가한 시승차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운동성을 보여줬다. 서킷의 미끄러운 노면도 걱정할 필요 없었다. 만약 당신의 5만파운드(7000만원)대로 일상용으로도 탈 수 있는 스포츠 쿠페를 원한다면 카이맨 S는 여전히 최고의 선택이다.
최고가 존재하더라도 도전은 언제나 계속되는 법. 카이맨 S를 포함해 현재 시장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운 스포츠 쿠페 3대를 3일에 걸쳐 철저히 분석했다. 첫째 날은 영국 북부의 넓은 들판을 달리며 일반도로 테스트를 했고 둘째 날에는 서킷을 달렸다. 마지막 날에는 직선도로에서 가속성을 측정했다. 이 모든 테스트를 마치면 4·5·6기통 엔진 중에 어떤 유닛이 매직 넘버인지 알 수 있다.
TT RS는 TT 라인업에서 가장 강력하고 비싼 모델이다. 가격은 무려 6만8830파운드(9850만원). 여기 모인 3대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 TT가 7만파운드(1억원)에 육박하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일반 TT보다 훨씬 아름답고 정교하게 가다듬은 티가 난다. 여기저기 보디키트를 덧댔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까? 글쎄….
TT RS의 핵심은 직렬 5기통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394마력, 최대토크는 48.9kg·m이다. 무게는 1440kg으로 이전보다 26kg 가벼워졌다(듀얼클러치 변속기인 S-트로닉만 선택하도록 해서 2kg을 감량했다. 편법 아닌 편법이다). 브레이크도 엄청나다. 370mm 디스크에 앞쪽은 8피스톤 캘리퍼를 배치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핀으로 디스크와 허브를 연결해 생김새도 끝내준다. 게다가 내구성도 탁월하다.
아우디의 스티어링휠은 노멀 모드에서 이상할 정도로 스스로 돌아가는 힘이 약했다. 셀프 센터링도 미약했는데 이 특성이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훨씬 정교한 결과를 낳았다. 인디비주얼 모드로 좀 더 조작해보니 이런 스티어링 특성은 더욱 명확해졌다. 시승차에는 옵션으로 20인치 휠이 끼워져 있었다. 그 덕에 ‘핫 휠’ 장난감에서나 봄직한 만화 같은 자세가 나온다.
마그네틱 라이드 서스펜션이 없다면 아마 이 차는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컴포트나 오토 모드에서조차 가변형 댐퍼가 엉덩이에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을 겨우 막아줄 정도다. TT RS의 반응은 마치 아침에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 줄 선 커피 중독자들처럼 신경질적이다. 그에 반해 포르쉐는 날카로움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아우디보다 훨씬 편안하다.
718 카이맨 S의 기본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4만8834파운드(6990만원)지만 실제로는 결코 싸지 않다. 이것저것 옵션을 넣으면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는다. 시승차의 가격은 자그마치 6만7656파운드(9680만원)였다. 그래도 TT RS보다는 낫다. 아우디는 성능과 전혀 상관 없는 카본 엔진 커버 옵션을 무려 650파운드(90만원)에 팔고 있으니 말이다.
라바 오렌지색 포르쉐의 많은 옵션 중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를 소개한다. 노멀 모델보다 20mm 더 낮고 PASM 기능을 더한 스포츠 서스펜션(1600만원), 토크벡터링과 기계식 LSD(130만원), PCCB 세라믹 브레이크(700만원), 스포츠 배기(190만원, 이 돈 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효과가 약하다) 등. 포르쉐가 기본형 모델에 얼마나 인색한지 알게 해주는 동시에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옵션이다. 포르쉐는 지갑을 열게 하는 머리가 비상하다.
자그마한 수평대향 4기통 2.5L 엔진은 911 터보에 쓰였던 가변식 터보차저를 받아들여 최고출력 345마력과 최대토크 42.9kg·m를 낸다. 무게는 1355kg으로 오늘 모인 3대 중에 가장 가볍다. 더 이상 구닥다리 플랫폼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앞서 2대에 비하면 M2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4만4080파운드(6300만원)에서 시작해 M DCT 변속기(380만원)를 옵션으로 추가해도 TT RS보다 싸다. 최고출력 365마력인 M2의 엔진은 오버부스트 시 셋 중 가장 높은 51.0kg·m의 토크를 내지만 무게는 1520kg으로 가장 무겁다. 크기가 가장 작은데도 그렇다.
이튿날 아침 빗방울이 세차게 숙소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길은 이미 흥건히 젖었고 안개마저 자욱했다. 험난한 하루를 예상하며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에서도 각 차의 성격이 드러났다. TT RS는 마치 겨울바람이 귓등을 때리듯 거글거글대는 소리를 냈다. M2는 나지막이 그르렁대며 움찔거렸다. 포르쉐는 예상과 달리 마치 소음기를 떼낸 공랭식 폭스바겐 비틀이 통통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얌전히 숨죽이고 있었다.
구동 방식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이런 악천후 속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차는 TT RS다. 단지 네 바퀴를 모두 굴려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코너를 감아나갈 때마다 타이어 접지력을 조금씩 잃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스포츠 드라이빙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수준까지만 타이어가 미끄러지다가 ESP가 정확하게 개입한다. 덕분에 어떤 날씨와 도로 상황에서도 트랙션을 과하게 잃지 않고, 전자장치가 심하게 개입해서 이질적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가속도 폭발적이다. 우르릉거리는 5기통 엔진은 박력이 넘치는데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앙칼지다. 추월은 어느 속도에서든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매번 잠깐의 터보 래그, 발진, 그르렁거리는 엔진, 추월이 반복된다. 단지 조금 덜 다듬은 배기음이 아쉬울 뿐이다.
M2는 전에도 시승해본 적이 있어서 어떤 차인지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그래도 이번 테스트 기간 동안 M2를 볼 때마다 타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김새는 앞뒤를 툭 자른듯 뭉툭하지만, 가속페달만 밟았다 하면 파워보트처럼 턱을 치켜들고 달려나가는데 그 맛이 끝내주고 중독성이 강하다.
M2는 이런 성능에 걸맞게 외모도 아주 공격적이다. 사이드미러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눈에 들어오는 툭 불거진 뒤쪽 휠 아치가 아주 우람하다. 차체에 전체적으로 이어진 이런 풍만한 요소는 실내에도 고스란하다. 무엇보다 몸통을 아주 잘 받쳐주는 시트는 코너에서 몸을 제대로 지지하며 운전자를 감싼다. 이런 M2의 생김새와 성격은 최근 BMW M에서 내놓은 차들의 흐트러진 방향성이 다시 한데로 모아지리라는 기대감을 일으킨다.
성능은 어떨까? 만약 레이싱 서킷을 혼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타이어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면 M2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제어는 잘되지 않지만 타이어의 접지력만 제대로 살아 있다면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한 스릴을 안겨준다.
주행감을 얘기하기 전에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만약 따뜻한 날씨에 노면 상태가 좋은 도로를 달렸다면 M2는 더욱 제대로 된 성능을 보여줬을 거다. 차를 아주 열정적으로 모는 사람이라면 이 차가 보여주는 화끈한 성능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두 차도 마찬가지지만 구조적으로 M2가 가장 불리했다. 길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고, 영상 3도 안팎의 겨울 날씨 속 도로는 충분한 접지력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M2는 실력을 절반 정도밖에는 보여주지 못했다. 손끝에 두툼하게 잡히는 전형적인 M 스티어링휠은 앞바퀴에서 전해지는 피드백을 적절히 거르면서 정확하게 운전자에게 전했다. 안쪽으로 휘감을 때 무게 배분도 일정하게 변해 운전자에게 갑작스러운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또 누가 ‘M카’아니랄까 봐 M2는 형님이자 고성능의 표본인 M3처럼 불편할 만큼 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뒷바퀴는 고출력을 미끄러운 지면에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한다. 시승이 이뤄진 장소는 고저차가 심하고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 계속 이어졌다. 이곳에서 M2를 운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뒷바퀴가 한쪽 아니면 둘 다 공중에 뜨기 일쑤였다. 앞뒤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파워트레인 성격이 코너링 머신이라기보다는 고속 직선 주행에 잘 어울린다. 직렬 6기통 엔진은 초기 가속 반응이 폭발 그 자체다. M DCT는 고회전에서 최대한 가속하면 변속할 때마다 쾅쾅거리며 엔진 회전수를 맞춘다.
BMW는 M2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묘수를 짜냈다. 뒤로 흐르는 차의 하중이 스로틀의 여닫는 정도에 따라 가능한 빠르게 전환된다. 이렇게 하면 코너에서 안쪽으로 휘감는 동작을 더 짧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정점을 찍고 탈출하며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차는 다시 안정을 되찾으며 유유히 코너를 빠져나간다. 그럼에도 댐퍼는 너무 단단했다. 웬만해서는 스포츠 모드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곧 스포츠에서 노멀로 바꿨다. 시승 코스에서 이 두 모드는 모두 너무 단단했다. 심지어 컴포트 모드로 둬도 M2는 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중독성 강한 차를 얌전하게 몰 수는 없었다.
M2와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난 뒤 아우디 차례가 왔다. 엔진 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TT RS는 즉각적인 조향 외에는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TT RS는 세게 몰아붙일수록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일반도로에서 보여준 아우디의 움직임은 전용 서킷에서 댄이 바로 코앞에서 몰며 보여줬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TT RS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코너에 진입해서 트레일 브레이킹(코너에서 하중 이동을 유도하는 제동기술)을 이용해 뒤를 날리고 앞머리가 정점을 정확히 향하도록 파고드는 일은 서킷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막상 일반도로를 달리니 차가 알아서 하는 게 너무 많다. 운전자가 할 일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놓는 것뿐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TT RS는 언더스티어 정도를 조절하며 정확히 운전의 스릴을 느낄 때까지만 뒤가 흐르는 걸 허용했다. 브레이크의 놀라운 회복력을 포함해 TT RS의 기세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여태까지 몰아본 TT 중에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최고의 차야.” 잠깐 쉬는 동안 댄이 이렇게 호들갑 떨었다. “RS3보다 훨씬 뛰어난걸. 더 가볍고 민첩하고 단단해”라고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테스트한 차는 완전히 말쑥하게 세대교체한 718 카이맨 S였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패널을 구부려서 찍어낸 차체는 어디를 봐도 흥미로웠다. 시승 내내 우리는 카이맨이 도로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어떻게 무게가 이동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결론은? 포르쉐는 운전자와 제대로 소통하며 달리는 차다. 같은 구간을 카이맨을 타고 달린 후 바로 M2로 달려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뭔가 쉴 새 없이 떠들기는 하는데 히스테리컬한 M2는 운전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고 유도하거나 저런 건 어떠냐고 다양한 느낌과 반응으로 전달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카이맨이 쉴 새 없이 피드백을 주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디지도 않다. 운전자에게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 전달하고 대부분 알아서 헤쳐나가도록 한다. 차가 다 완성해놓은 놀이터 안에서만 놀라고 운전자를 종용하지 않고, 코너를 파고들면서 밟게 되는 하나하나의 라인을 즐기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물론 그러다가도 노면 상황이 불안정하거나 운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단호하게 개입한다. 20인치 휠의 굴러가는 속도와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아찔함을 자신감으로 바꿔준다. 전자장치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단단한 섀시가 든든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이맨은 인위적인 이질감을 느낄 겨를을 주지 않는다. 조향감은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포르쉐보다 정확도가 탁월하다. 스티어링휠을 통해 전해지는 피드백도 훌륭하다. 이런 결과는 땅바닥에 앉다시피하게 되는 시트 포지션 덕이 크다. 공격적인 자세는 운전자로 하여금 운전하는 내내 만족과 흥분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엔진을 넣은 718 카이맨 S는 정말 빠른 차다. 가변식 터보차저에 부스트가 차면 토크가 쏟아져 나오며 튀어나가는데 그렇잖아도 가벼운 포르쉐가 더욱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비록 앞에는 TT RS가, 뒤에는 M2가 있어서 마구 내달릴 수는 없었지만, 함께 달린 차들도 한가락 하는 스포츠카인만큼 카이맨의 4기통 엔진 성능을 모두 뽑아내며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한바탕 달린 뒤 받은 인상은 포르쉐의 달리기 성능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는 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카이맨의 기어비는 길다. 2단에서 시속 130km까지 속도를 올릴 때 이런 기어비 세팅 탓에 저회전에서 무기력함이 크게 느껴진다. 2500rpm 아래에서는 출력과 토크가 미미하게 나오도록 만든 탓이다. 그 말은 상대적이지만 고회전으로 도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우 난폭하고 불편할 정도로 시끄럽지만 매력은 반감된다. 이런 모습도 익숙해지면 다 괜찮을 거라고? 글쎄…. 이전에 경험한 포르쉐의 수평대향 엔진과 완전히 다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성격이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차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댄이 카이맨에서 얼빠진 표정으로 내리며 외쳤다. “퍼포먼스도 훌륭하고 중간 회전대에서 내뿜는 힘은 철철 넘쳐흘러. 그런데 엔진 소리는 정말 별로네. 출력이 나오는 느낌도 이질적이야. 그동안 경험한 포르쉐만의 흥분이 느껴지지 않아.” 그의 말이 맞다. 아름답고 독특한 성격을 지닌 나무랄 데 없던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단 말인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개도 서서히 걷혔다. 에디터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눴다. 만약 차를 선택할 때 뒷자리와 쓸만한 트렁크가 필수조건이라면 뒤돌아볼 필요 없이 M2가 답이다. 멋지고 매력적인 생김새뿐만 아니라 수월하게 고속 주행을 즐길 수 있다. 장거리 주행도 3대 중에 가장 편하다. 이 정도면 일상용 자동차로도 쓸 수 있는 만능 스포츠카다. 그렇지만 적어도 M카라고 떳떳하게 불리려면 이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 M2가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을 지니게 된 이유는 이렇게 유추할 수 있다. 2시리즈를 베이스로 해서 하드코어 스포츠카보다는 역동적인 스포츠 감성을 강조한 차로 만들었다.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기보다는, M4 GTS와 BMW M 퍼포먼스카를 잇는 중간 단계 차를 만들고 싶었던 게 BMW의 계산이다. 그런 속셈이 뻔히 보여 우리는 이 차를 재미있는 차라고는 인정했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돈 주고 당장 사야 할 차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TT RS는 어떨까? 당신의 재정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5만~7만파운드(7000만~1억원) 돈을 해치백 베이스 쿠페에 쓰기는 아깝지 않을까? 게다가 기본형 모델과 생김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TT RS도 M2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감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요소를 여럿 추가한 스포츠카다. 그럼에도 TT RS는 두 가지 면에서 점수를 땄다. 이 부분은 아마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먼저 엔진이 내는 독특하고 중독적인 사운드다. 그 소리는 마약 같아서 터무니없는 가격도 잠시 잊게 만든다. 둘째, 운전의 재미가 넘친다. TT RS는 돌연변이 핫해치라고 해도 좋고 마니아들이 동경하는 핫해치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결국 이번에도 승자는 포르쉐일까? 맞다. 아주 근소한 차이다. 솔직히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내가 우승자라고 떠들지도 못할 만큼이다. 더 이상 내 돈 주고 카이맨을 사서 마른기침 같은 엔진음을 들으며 열광할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카이맨의 운동성은 보석처럼 빛난다. 하지만 포르쉐 엔지니어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하는 엔진은 옥에 티처럼 실망스럽다. 부디 우리가 6기통 엔진의 사운드와 비교했을 때 신형 4기통 엔진의 소리가 별로라서 이런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사운드만 가지고 평가하는 게 아니다. 엔진의 진동과 소음 그리고 출력을 전달하는 느낌 심지어 카이맨이 도로 가장자리에서 보이는 움직임들도 모두 감안해서 얘기하는 총평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테스트에서는 카이맨이 전통의 강자로 군림했던 2도어 스포츠 쿠페 시장에 도전자들이 속속 생겨나는 춘추전국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규모도 작고 독특한 스포츠 쿠페 시장에 등장한 한 차는 빼어난 디자인과 엔진 감성으로 시장을 유혹한다. 다른 한 차는 실용성과 박력 있는 엔진으로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둘 다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장점이다.
종잇장 차이로 1위에 올랐지만 카이맨은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까? 몸무게는 1400kg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지만 로드스터라는 멋진 수식어는 없다. 하드톱 컨버터블도 아니다. 신고 있는 타이어도 광폭이 아니고 휠베이스도 짧다. 분명 카이맨의 위세는 전에 비해 턱없이 약해졌다. 완벽한 강자가 나타나기 전까진 시장은 포르쉐의 규칙대로 흘러간다. 이번 테스트로 판단하건대 그 시간이 그리 길어 보이지는 않는다.
2. On track
TT RS를 포함해 시승차 3대를 나눠 타고 블라이튼 파크 트랙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꽤 쌀쌀했다. 바짝 마른 서킷에서 시승하려고 한 번 미룬 일정이었는데 또 비가 내렸다. 오늘은 날씨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랩타입을 측정할 요량이었다. 주위 온도가 9도를 가리키는 상황이라 간밤에 내린 비만 아니었다면 타이어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트랙이 꽤 미끄러웠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덕분에 트랙션뿐만 아니라 균형감과 전반적인 주행 특징까지 살펴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3대 모두 자세제어장치(ESP)를 끄고 시승하기로 했다. ESP가 작동하지 않아야 한계 부근에서 자동차의 특징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랩타임을 여러 차례 측정하면서 전자장치가 켜 있으면 가장 빠른 주행 모드에서도 최단기록을 끌어내는 데 제약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자장치에 의존하지 않은 순수한 기계식 성능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M2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사실은 코너를 몇 개 돌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트랙션이 약하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분명한 방해 요소였다. 더 큰 문제는 트랙션을 방해하는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이었다. 코너에서 오버스티어를 일으키는 경향도 있어서 항상 M2의 꼬리 부분을 쫓아간다는 느낌이었다. 1초를 다투는 서킷에서 매번 미끄러지고 계속 타이어가 헛돌면서 시간을 제법 낭비하는 상황은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았다.
M2를 잘 다루려면 재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티어링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해서 조작이 더 어렵다. 날카롭고 정확한 인풋을 넣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자는 때때로 과다한 인풋을 넣게 되면 주행이 산만해지기 일쑤다. 물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다. 특히 1분 1초가 중요한 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1분11초60이라는 랩타임은 힘겨운 노력의 결과지만 라이벌에게 곧 따라잡힐 것 같았다.
궂은 날씨는 TT RS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트랙에서는 항상 그렇지 않다. 강력한 5기통 엔진의 출력과 토크가 환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기록만 보면 타이어가 잘 굴러가는 상황에서 TT RS는 경쟁차를 손쉽게 이긴다. 코너에서도 접지력은 충분하지만 트랙션과 측면 그립이 한계에 다다르면 좀 더 신중한 핸들링이 필요하다. 랭커스터에서 불시의 공격을 날리는 시케인이야말로 스로틀이 닫혔을 때 나타나는 TT RS의 오버스티어 경향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구간이다. 빨리 방향을 전환하면 스티어링 록, 스로틀, 따라잡을 공간이 있어야 하는 관성 드리프트 효과가 나타난다. 그 결과 TT RS의 한계를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주행을 하게 된다.
정확히 한계치까지 차를 밀어붙이면 효과는 극적이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다. 한계를 지나치게 되면 해결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할덱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원상회복 효과를 내기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순식간에 변하는 산만함이냐 일관성이 없는 움직임이냐인데 1분10초35 랩타임을 보면 성능 자체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다음 주자는 포르쉐 718 카이맨 S. 미드십 엔진에 최대토크가 높은 차는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몇 대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중에서 카이맨은 단연 가장 뛰어나고 흥미롭고 랩타임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차다. 3대 중에서 유일한 수동변속기라서 아주 약간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더 흥미롭다.
넓은 회전수 범위에서 강력한 토크를 내는 4기통 엔진의 성능은 탁월하다. 카본세라믹 브레이크도 감각이나 ABS 측면에서 모두 테스트 대상 중 가장 뛰어나다. 노면이 너무나 미끄러워서 3대 모두 각각의 ABS에 크게 의존했다. 애석하게도 카이맨이 최단 랩타임을 기록할 때, 직선도로 끝에서 브레이크 밟기를 주저하면서 0.1초나 0.2초 정도 더 느려진 듯하다.
TT RS만큼 좋은 트랙션은 아니지만 카이맨도 가속성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균형감도 흠잡을 데 없다. 포트 프로이드의 가파른 경사에서도 뒤차축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가속을 하며 상당히 높은 속도를 훌륭하게 유지했다. 3대 중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서킷만 돌고 싶은 차였다. 최단기록이 1분11초01이라서 TT RS에 1위를 내주고 말았지만 주행감만큼은 최고다. 기록과 느낌은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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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해도 못가면ㅋ TT RS 노랭이로 한번 가보고 싶어요^^
트랙 결과가 흥미롭네요. ㅎ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