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음복 술
-최 재 경
발랑 박씨 우리 할머니는 영동이 고향이라
점방 이름도 영동상회였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를 영동상회 아이들이라 불렀다
주로, 쌀 연탄 생선 채소 과일 담배 성냥 소주를 낱개로 팔았고, 나무상자 유리 속에는
사탕 과자 껌 건빵 애들 주전부리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서서 먹는 술청 바닥에는, 어른이 들어가도 남을 커다란 단지가 묻어 있어
술 배달 자전거가 와서 막걸리를 들어붓고 가면, 할머니는 물도 한 바가지 타는 걸 보았다
엄니 아부지 동생들은 사랑채에서 잠을 잤지만
나는 꼭 할머니와 둘 만 안채인 가겟방에서 자고 일어났다
통금 전 아버지를 도와 미닫이 판자 문을 닫고 나면
출출한 나를 뜨끈한 두부나 묵을 해주셨고, 무서운 엣날얘기도 해주셨다
술청에 서서 막쇠주를 둘이서 홀짝거리거나, 막걸리를 휘휘 저어 한 사발 씩 했다
안주로는 박하사탕이나 동치미 무수쪼가리를 먹었다
그러다 술이 알딸딸하면, 할머니 쭈굴한 젖을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었다
1904년 팔월 스무 이래 태어나시어, 82를 사시다 가셨다
청상과부 발랑 박씨 박순애 할머니, 평생 해소 기침에 시달렸어도
하루 소주 두 병, 담배 세 곽은 너끈히 드시다 가셨다
해마다 할머니 제사가 있는 날이면
현조비유인밀양박씨신위 앞에서, 나는
음복술에 취해 할머니를 부르다 또 떨어졌다.
첫댓글 형님 할머님 본관이 반남이예요? 밀양이예요? ㅎㅎㅎ 반남 박씨를 발랑 박씨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요. 너무 자세히 감상했나봐요. 생활 냄새와 사람 냄새가나서 참 좋아요.
알려주어 고맙네 동생, 밀양 박씨인데 사람들이 놀리느라 그렇게 불렀다네, 고마워.
올 1월 1일이 첫 기일이었던 시엄니도 밀양 박씨였는데...
쬐그만 당신의 모습이 생각나요.
시방도 할머니 생각이 나요, 쬐그만 당신이요.
증조 할머니가 밀양 박씨, 울매나 별났던지 울아버지께서 박씨하고 결혼하지 말랬어요 ㅎ 선생님의 애주가 할머니 닮았나보다 젬나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