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불볕더위는 괴롭다. 시원한 음료수는 다 마시기도 전에 뜨뜻미지근해진다. 이 더위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음식은 누가 뭐래도 '냉면'이다. 국물과 면발을 동시에 마시고 나면 입에서 가슴까지 시원하다.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냉면, 그 종류도 워낙 다양하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칡냉면, 막국수, 콩국수, 초계면 등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면요리이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려니 쉽지 않다. 왜냐하면, 냉면전문점을 제외한 다른 식당에서 취급하는 냉면은 물냉면과 비빔냉면 이렇게 두 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알고 먹으면 맛있는 냉면, 그 속을 들여다보자.
맛있기로 유명한 북쪽의 국수
냉면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맛'이다. 전기와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 팔도는 지방 고유의 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훗날 개화기를 거치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각 지방의 음식문화가 퍼지며 교류했다. 또 냉장고의 등장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대표적 면 요리는 평양냉면, 함흥냉면으로 꼽힌다.
근데, 우리가 부르는 '함흥냉면'이 북한에는 없다. 그와 가장 비슷한 음식이 '감자넝마국수'다. '넝마'는 '녹말'의 함경도 방언으로, 감자녹말로 만든 국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음식이 태어난 함경도는 평지보다 산지가 많은 험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에 각 가정집에서 작은 텃밭에 감자를 심었고 인근 지방에서도 감자가 유용한 주식이었다. 게다가 산간지방이면서 동해와 접해 있어 해산물을 활용한 음식도 발달했다. 그 유명한 것이 가자미식해이다.
전기가 없었던 한 겨울, 함경도의 한 가정집을 가보자. 그해에 거두어들인 감자가 주방 한편에 쌓여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바쁜 손을 놀린다. 미리 감자녹말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놓은 것을 꺼내 반죽을 하고 있다. 한주먹 크기의 반죽 덩어리를 작은 구멍들이 뚫린 틀에 통과시켜 면발을 낸다. 면발을 반으로 나눠 두 그릇에 담는다. 한 그릇에는 동치미 국물을 넣고, 다른 한 그릇에는 반찬 중 가자미식해를 얹는다.
위처럼 가정에서 해먹었던 감자국수요리가 현재 함흥냉면의 원형으로 전해진다. 가정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이기에 기호별로 다른 부재료가 들어가겠지만, 동치미 국물로 시원하게 먹기도 했고, 생선으로 만든 매콤한 양념의 반찬을 넣었던 것은 함경도 감자넝마국수의 특색이다.
새터민이 만드는 찬국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터민이 운영하는 북한음식전문점이 있다. 공덕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류경옥을 찾았다. 이곳 사장 안미옥씨는 3대째 식당을 운영한다. 그의 할머니는 함경도에서 맛있는 감자국수를 마는 유명인이었고, 그의 어머니가 대를 이어 지금도 북쪽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남쪽에서 북한음식전문점을 하고 있으니 3대째라는 설명이다.
[왼쪽/오른쪽]함흥식 냉면 / 명태와 면발
주문한 함흥식 냉면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냉면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두툼한 살점이 눈길을 끄는데, 익힌 명태다. 매콤한 양념과 푸짐한 살점이 입안 가득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이어서 면발을 먹어보니, 다른 곳의 면발보다는 질기지만 예상했던 정도보다는 약하다 싶다. 이에 안 사장은 "실제로 감자로만 면발을 뽑아내놓으면 너무 질기다고 손님들이 불편해하더라"라며 "많은 시행착오 끝에 손님들이 좋아하는 질김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함흥냉면은 겨울 음식이예요. 매운 거 먹으면 열이 나니까 매운 양념을 넣었죠. 겨울마다 뜨뜻한 온돌 구석에 앉아 먹었던 감자넝마국수가 생각나요. 면발이 안 끊어지니까 건너 사람이 땅겨서 끊어주고, 뱃속에서 입까지 면이 이어져 있으니 잘못 땅기면 주르륵 나와서 웃음이 터지곤 했어요"
류경옥의 물냉면은 매콤한 양념이 들어간다
물냉면도 주문해서 먹어봤다. 근데 여기는 얼음이 없다. "북쪽에서는 얼음이나 살얼음을 넣은 냉면이 없어요. 얼음이 있으면 얼얼하다고 하나요. 그래서 맛을 못 느끼게 되잖나요. 얼음이 없어도 충분히 시원한데 말이에요" 냉면이란 말도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를 대신하는 명칭이 '찬국수'다. 차가운 국물이면 되는 것을 굳이 얼음까지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맛이 좀 슴슴하죠. 조미료를 안 쓰고 고기와 뼈로 국물을 낼 때도 푹 우려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개운하니까요. 어떤 분은 맛이 담백하다고 하고 어떤 분은 맛이 심심하다고 하는데, 이게 몸에 좋은 맛이라고 생각해요"
더위에 지쳐 시원함을 찾아 오는 손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맛을 더 느낄 수 있도록 얼음을 빼고 주는 마음씨가 더욱 시원하게 와 닿는다. 감자넝마국수와 함흥냉면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질기고, 맵싸한 함경도의 풍미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취재협조 : 류경옥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426-15
02-711-0797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경부고속 한남IC → '한남대교, 올림픽대로' 방면 올림픽대로 진입 → '김포공항' 방면 → 반포대교 → 강변북로 → 마포대교 북단 ('공덕오거리' 방면 우측) → 공덕역 → 류경옥 (마포구 공덕동 426-15)
2.숙소
서울가든호텔 : 마포구 도화동, 02-717-9441
호텔서교 : 마포구 서교동, 02-333-7771
킴게스트하우스 : 마포구 합정동, 02-337-9894
가나모텔 : 마포구 도화동, 070-7762-7192
첫댓글 저는 명동의 함흥면옥을 가는 편인데... 아니면 오장동으로 가든지.
먹고싶네요.....같이 가셔요!
그러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