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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집의 큰 아들 태홍이의 입시발표가 있었다. 태홍이는 이번에 대원외고 시험에 응시하였다.
본인 스스로 영어를 좋아하고 외국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태홍이는 3년전 내가 방문교수로 미국 UCLA에 갔을 때 같이 가서 2년간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입학할 때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해서 ESL반(영어를 제2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학생을 위한 특별반) 가운데서도 초급반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빠른 속도로 영어를 습득하여 보통 애들이 2년 정도 걸려서 졸업하는 ESL반을 1년만에 졸업하고 다음에 정규반에 들어갔고 반년만에 다시 그 학교의 최우수반에 들어갔다.
그 학교는 LA의 공립학교 가운데서는 가장 학력이 높은 학교였다. 우리야 마침 UCLA 아파트 근처에 그 학교가 있기 때문에 주소지에 따라 입학한 것이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수반 운영 때문에 극성스러운 한국 학부모들이 멀리서도 학생들을 입학시키려고 하는 유명한 학교였다. 태홍이는 마지막 학기에서는 최우수반에서도 체육을 제외한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전분야에서 A학점을 받았다. 그때부터 태홍이가 상당한 학습능력을 갖춘 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태홍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실력을 발휘해서 올해 5월에 나의 권유로 시험삼아 쳐본 토플에서 300점 만점에 267점을 얻었다. 미국의 일반대학 입학허가 기준 성적이 213점이고 최고 명문대학에서 요구하는 성적이 250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중학교 3년 학생이 별다른 준비없이 혼자서 토플 책 한권 읽고 시험쳐서 얻은 점수 치고는 상당히 높은 점수이다.
그때부터 나는 태홍이가 외국어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1학기 말에 관악동작교육청 관할내의 중학교에서 영어 전교 1등 하는 애들만 선발해서 친 시험에서 2등을 하였고 곧이어 서울시교육청에서 주관하여 각 구청 대표로 모인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경시대회를 치렀는데 거기서도 2등을 하였다. 본인 스스로도 자랑스러워 하였지만 나도 태홍이가 참 대견하였다. 그래서 나는 태홍이가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였고 본인 또한 외국어고에 진학하기를 강렬하게 희망하였다.
몇 달전 태홍이 학교에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태홍이가 외고를 지망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담임선생님은 태홍이를 외고입시대비 전문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권유하였다. 주변 사람 또한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학원에 안보내면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학원에 보내는 것에 반대하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평소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교육, 특히 입시를 위한 사교육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입시전문학원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태홍이 또한 자기 혼자 힘으로 충분히 갈 수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어제 나와 아내는 이사갈 집을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광진구 강변역과 광나루역 근처로 가서 집을 보러다녔다. 몇 군데 집을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서 단번에 계약을 끝냈다. 그리고 바로 몇 분 뒤에 전화로 태홍이의 낙방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듣기에 참담할 정도로 실망한 태홍이의 목소리로.
나는 멍~하였다. 내가 옛날 첫 대입에 낙방하였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니 사실 그때는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던 것같다. 가장 크게 충격적인 낙방소식은 석사장교 시험에서의 낙방이었던 것같다. 당시 대학원을 마친 사람은 6개월 장교 훈련만으로 군복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들이 자신들의 아들들을 군대서 면제시키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도저히 떨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한 시험이었기에 낙방소식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이번에 태홍이의 낙방 소식은 그에 못지않았던 것같다. 특히 낙담한 태홍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부모가 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내가 대학입시에 낙방하였을 때 아버지의 낙담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재수하는 일년 동안에 아버지의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것도 생각났다. 그런데 태홍이 실력으로는 도저히 낙방할 리가 없을텐데 왜 떨어졌을까? 학원을 보내지 않은 것이 낙방의 원인일까? 괜히 내 원칙만 주장하다가 아들의 꿈을 꺾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태홍이에게 미안한 일인데...
돌아오는 길에 강변북로를 타고 오다가 멍~한 가운데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건너야 할 다리를 한 참 지나쳤다. 원래는 반포대교나 동작대교를 건너서 집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몇 개의 다리를 지나쳐 마포대교까지 간 것이었다. 그것도 옆에 타고 있던 동네 부동산 아저씨가 일러주어서 비로소 알았다. 멍한 가운데 생각에 잠겨서 잠시 표지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공덕동으로 해서 복잡한 용산전자상가를 거쳐서 다시 한강대교로 오느라 무려 4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집 구해주느라 따라 나선 동네 부동산 아저씨에게 미안하였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내 마음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태홍이를 위로할 말도 대충 정리할 수 있었다. 돌아와보니 우울한 표정의 태홍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우선 태홍이를 포옹하였다. 그리고 난 뒤에 위로하였다.
너는 지금껏 학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성취를 이루었고 그것을 너 스스로 기뻐하지 않았니? 엄마 아빠는 그것이 대견하단다. 처음 낙방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엄마 아빠도 낙담하였단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너의 실력과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입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외고가 반드시 좋은 대학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사실 대학입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란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빌빌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란다. 그리고 좀 더 길게 보면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것도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란다. 출세한 사람 가운데도 불행한 사람이 정말 많지. 아니 출세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 보다 마음이 더 공허한 경우가 많지. 출세를 위해 바둥거리다 보니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무시하고 살아가기가 십상이기 때문이지.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란다. 자기 내면의 행복이 바탕이 되었을 때 외적 성공이 의미가 있는 것이란다.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외적 성공은 오히려 삶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단다. 아빠는 성공한 태홍이보다는 행복한 태홍이가 되기를 바란단다. 태홍아 힘내. 너는 우리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란다. 너가 이렇게 건강하게 착하게 자라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스스로 알아서 공부까지 잘 하니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바라는 바가 없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니 너가 생각해도 너는 행복한 아이가 맞지?
그리고 외고 가지 않아도 너의 영어실력을 계속 키우고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으니 걱정마라. 아빠가 도와줄께. 그리고 혹시 학원에 못가서 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니. 만약 그렇다면 아빠가 정말 미안하구나.
태홍이는 자기 실력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학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원망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정말 태홍이가 대견하였다.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태홍이는 충격에서 벗어나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표정도 다시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하루가 지나 글을 쓰는 지금 밖에서는 동생들과 장난치면서 웃는 태홍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다시 웃음을 찾으니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는 것같았다. 이러한 것도 다 아버지가 되는 과정 중의 하나이리라.
2003년 11월 16일 너른돌
위의 글은 3년전 태홍이가 외고에 낙방하였을 때 제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그 뒤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고1때는 사실 일반고에서 25%정도의 성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학은 전체에서 중간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600명 가운데 370등을 하였더군요. 아내는 걱정이 되어서 수학만이라도 과외를 시키자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반대했지만 저의 주장만을 고집할 수는 없어 아이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태홍이가 과외를 단호하게 반대하더군요. 자기가 알아서 할 터이니 그냥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태홍이의 뜻대로 하자고 하였죠.
그러더니 <수학의 정석> 책을 사서 혼자서 학습계획표를 세우고 공부를 하더군요. 다른 과목도 다 마찬
가지였습니다. 주로 학습지를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EBS 방송수업을 많이 들었지요.
계속 혼자 공부를 해서 그런지 2학년 때까지도 그다지 성적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더군요. 3월에 보는 첫 모의 수능시험에서 전교 석차에 들어가게 되었죠.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 모두 깜짝 놀랐지요.
그 뒤로는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게 되었고 이번 수능까지 오게 된 것이랍니다. 사실 대입 결과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도 스스로 잘 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너른돌님, 아드님은 '성공한 태홍이'도 되고 '행복한 태홍이'도 될 겁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학에서의 공부는 창의력이고 창의력은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보다 태홍이처럼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에게서 나오게 마련이지요. 아드님 잘 키우셨네요. 그나저나 저는 딸만 둘인데 큰 애가 이제 고1 올라갑니다. 생각보다는 잘 해주고 있는데 곧 너른돌님처럼 저도 수험생 아빠가 되겠네요. 글을 읽고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감샤~ ^^*
백하님, 감사합니다. 백하님도 이제 머지 않아 수험생 부모가 되시겠네요. 그 전에 제가 또 한 번 더 수험생 부모가 되어야 하네요. 둘째가 이제 고2에 올라가거든요. 사실 부모가 하는 게 뭐 있나요, 애들이 다 하죠. 백하님의 아이가 잘해주고 있다 하니 다행입니다.
행운이 아니라 좋은 소식 함께 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