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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이 병 주
8년 전의 일이다.
늦은 가을, 추수는 거의 끝나고 보리같이까지의 잠깐 동안을, 한숨 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산야에 감돌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지리산 산록의 S라는 소읍, 어떤 여인숙에 묵고 있었다.
선영의 묘사(墓祀)에 참례도 할 겸, 1년치 양식을 수확기에 값이 싼 원산지에서 사놓을 요량으로 그 소읍에 들렀던 참인데 철 거른 장마를 만나 꼼짝없이 1주일이나 여인숙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여름철의 장마는 때때로 상쾌한 맛이 있다. 그러나 늦은 가을의 짓궂은 장마는 비 사이로 으스스 스며드는 한기까지 겹쳐 불쾌하기 짝이 없다. 쳐다보면 잔뜩 찌푸린 남빛의 하늘, 돌아보면 소조(簫條)한 산과 들, 이곳저곳에 버섯처럼 깔린 회색 지붕의 중락(衆落). 단조롭기 한이 없는 산촌에 쉴새없이 쏟아지는 비란 우울하기만 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 여인숙 주인과 나와는 서로 면식이 있었던 까닭에 내겐 넓고 깨끗한 방을 제공하고 풍성하게 불을 지펴 주었다. 그래 온종일 방안은 훈훈했다. 그 훈훈한 방에서 나는 아침에도 자고 저녁에도 자고 낮엔 낮대로 낮잠을 자다가 간혹 깨어서는 하품을 하며 지냈다. 간혹 잠을 깨었을 때란 식사하는 시간이다. 할 일도 없는 터라, 식사 때마다 얼근하게 반주를 마셔 놓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졸음이 왔다. 말하자면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하는 동작을 되풀이하며 무료를 메꿀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사람은 한없이 게으를 수 있다는 대발견을 하게 되었다.
내가 묵고 있는 여인숙의 다른 방들도 꽉 차 있었다. 변소에 드나들면서의 침작이 비좁은 방에 더러는 4, 5명, 더러는 7, 8명찍 비비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을 S읍의 장터에 몰려온 행상인들이거니 했다. 장터에 있다가 나처럼 비에 갇혀 있는 처지의 사람들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인가 굳이 물어볼 흥미조차 없었다. 단조로운 빗소리를 들으며 며칠이고 방안에 갇혀서 먹고 자고, 자고 먹고 있으면 정서는 물론 호기심마저 둔마(鈍磨)되고 만다.
그러한 어느날 밤이었다. 나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잠을 깼다. 저녁밥을 먹곤 곧 잠이 든 모양이다. 밤 어느 때쯤 되었는가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성냥을 그어 램프불을 켰다. 빗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려도 단단히 뚫린 모양이었다.
떠들썩한 소리는 바로 이웃방에서 들려왔다. 두세 사람의 소리가 아니고 적어도 7, 8인의 소리는 되는 성 싶었다. 그 소리 가운데는 날카롭고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나는 노름을 하다가 일어난 싸움이 아닌가고 얼핏 생각했으나 계약 위반이니, 배은망덕이니, 사기니 하는 말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의 말들이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는 점이 이상했다.
시간이 갈수록 노성(怒聲)과 매성(罵聲)이 높아만 갔다. “죽여버려라 ! 개자식.”하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한 곳으로 모이는 듯한 소리가 나고, 묏을 걷어차는 소리, 발길이 빗나가 벽을 차는 소리까지 들렸다. 뺨을 치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아무래도 한 사람을 상대로 여리 사람이 덤벼들고 있는 것 같은데 공격하는 소리만 들리고 이에 대항하는 소리는 천연 들리지 않았다.
가만 듣고 있으니 노성과 매성이 일정한 기복으로써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왁자지껄하다간 잠깐 조용해지고 그러다간 다시 왁자지껄하는 것이다. 나는 언덕에 부딪히는 파도를 연상했다. 부딪힐 땐 소리를 높이고, 밀려나갈 땐 고요해지는 ……. 이런 생각도 순식간이었다. 한결 높은 고함소리와 몇 개의 발이 한꺼번에 하나의 대상을 걷어차는 맹렬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공격 당하는 사람은 아마 죽었든지 실신했을지 몰랐다.
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우선 주인을 불렀다. 이렇게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주인집에서 한마디 말리는 동정도 없는 것이 괘씸했던 것이다. 먹을 갈아붙인 것 같은 캄캄한 밤, 줄기찬 빗소리였다.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나는 노크도 없이 옆방의 문을 잡아당겼다.
문을 열자 방 안에서 터져나오는 듯한 이상한 악취가 코를 쏘았다. 비좁은 방에 10여 명의 사람이 하나의 노인을 가운데 두고 꽉 둘러 서 있는 광경, 그것을 한쪽 벽에 매달려 있는 호롱불이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뒤에 생각한 것이지만 그건 《수호지(水許誌)》의 어떤 장면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불의의 난입자를 맞아 한동안 멈칫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 틈으로 방 한가운데 넝마뭉치치럼 쭈그리고 있는 노인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분격에 사로잡혔다. 그 노인에게 대한 동정이라기보다 며칠을 비 때문에 갇혀 있는 울분이 그 노인의 처참한 정황에 분출구를 찾은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짤막한 사이가 지나자, 그 자리에선 대표자격인 듯한 사나이가 말을 걸었다.
“댁은 뉘기시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나는 그 물음엔 아랑곳없이, 밤중에 이게 무슨 짓들이냐고 쏘아붙였다.
“남의 일 참견 마슈. 보아하니 옆방에 묵고 있는 손님 같은데 가서 잠이나 자슈.”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당신들이 이린 소란을 피우는데 어떻게 잠을 자느냐고 뱉았다. 노인 하나를 상대로 10여 명이 덤벼들어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무슨 곡절인지는 몰라도 이건 분명히 린치라고 말하고, 그 노인을 내놓으라고 우겼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거든 간섭도 마슈.”
하는 그 대표자격의 사람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나는 집단 폭행이란, 사정을 따질 이전의 문제라고 했다. 만약 저 노인에게 잘못이 있으면 법에 의해서 따질 일이지 집단 폭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겼다.
“법 가지고 처리할 수 없는 문제도 있는 거유. 댁은 댁 일이나 보슈. 그리고 노인, 노인 하는데 저 자는 노인이 아뇨.”
나는 노인이건 노인이 아니건 사정은 똑같다고 했다. 그러자 문 가까이에 있던 자가 나를 밀어제치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나는 그 노인을 이리 못내놓겠느냐고 고함을 지르며 문을 닫게 했다. 이때 여인숙 주인이 나타났다.
“밤중에 왜 이러시오, 가서 주무시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여인숙 주인에게 나는 화를 냈다.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사람 하나를 죽이려고 드는데 주인은 그걸 말릴 생각도 없이 내버려 두겠느냐고 따졌다.
“우리와 전연 딴판의 사람들이오, 이 사람들은. 그들끼리 무슨 일이 있는가 봅니다. 사전에 내게 얘길 하드먼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 사람 하나 죽여 없애야겠다고 사전에 연락을 하더냐고 윽박질렀다.
“아아니. 단체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 사람 때문에 오늘 상당한 낭패를 당한 모양이오. 그 때문에 오늘밤 좀 따져야겠으니 시끄러워도 좀 참아달라는 말이 있었지요.”
나는 약간 위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을 공범으로 몰아세웠다. 저 사람이 죽든지, 심한 상처를 입든지 하면 주인도 공범으로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찔러놓고 만약 그런 화를 당하기 싫거든 빨리 경찰서에 연락하라고 다그쳤다. 이런 충고를 했는데도 경찰서에 연락하지 않으면 당신이 공범이란 사실에 대해서 내가 증인으로 나서주겠다고까지 했다.
공범이 된다는 말에 주인도 사태가 만만잖다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주인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방안에서 그 대표자격인 사나이가 벌떡 일어섰다.
“경찰에까지 가실 필요는 없읍니다. 우린 저 자를 죽이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더러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사정을 좀 들으시유. 들으시고 판단을 하슈.”
나는 사정을 듣겠으니까 공격 대상이 된 그 사람을 데리고 누구든 한 사람만 내 방으로 오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들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눈치였다. 대표자격인 사나이가 그 사람을 부축해 일으켜 세워 내 방으로 왔다.
나는 주인도 같이 앉으라고 했다. 그러자 눈이 위로 지째어진 간벽(痛癖) 이
있어 보이는 중년 여인이 슬택스 차림으로 따라 들어왔다. 대표자격 인 사나
이는 그 여자를 자기 마누라라고 했다.
나는 공격의 대상이 된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 고통스러울 테니 누워 있으라고 해도 그는 응하지 않고 비스듬히 벽에 기대 눈을 감은 채 앉았다. 왼편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었다. 아까 호롱불 밑에서 얼핏 보았을 땐 70 가까운 노인이 아닌가 했는데 램프불 밑에서 가까이 보니 아직 50에는 먼 40대의 사나이같이 보였다. 약간 대머리가 까진, 준수한 콧날과 야무진 입 모습을 가진, 그러나 선량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턱에서 귀로 이은 선엔 고상한 기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초라한 옷차림, 아까 받은 봉변의 흔적이 역연했음에도 어딘지모르게 상스럽지 않은 느낌이 그냥 남아 있다는 건 심상한 인물이 아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초췌한 기품, 지쳐 버린 기품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표자격인 사나이도 그와는 동년배쯤 되어 보였다. 산전수전을 겪은 듯한 다구진 정력 같은 것이 느껴지는 사나이였다.
좌정을 하니 아까의 흥분이 거짓말 같았다. 나는 주인더러 술상을 차려오라고 일렀다. 대표자격인 사나이는 어디서부티 말을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눈치로 천정을 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들었다 하고 있었다.
술상이 들어왔다. 주인이 주전자를 들려고 하니까 그 사나이는, 사촌누이가 따라도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이 난다면서 주전자를 자기 마누라에게 넘겼다. 그런 동작으로 해서 자리의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대표자격 인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우린 곡마단 일행입니다. 불초 제가 단장이구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6.25동란 전엔 상당히 큰 곡마단이었지요. 말이 아홉 필이나 있었구. 사변통에 이 꼬락서니가 됐읍니다. 60명이 넘던 단원이 열 일곱으로 줄고 말도 없어지구. 말 없는 곡마단이 얼˙마나 쓸쓸한 건지 선생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김빠진 맥주는 비유도 안 되지요.”
언제나 손님 상대를 해온 탓인지, 단장의 말은 유창했다.
“이런 꼴이니 큰 도시는 돌지 못하고 소도시를 돌고 있지요. 소도시를 돌며 돈을 멀어가지고 단을 재건할 계획인데 어디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돌고 있는 동안에 흩어진 동지도 만날 수 있을 게구, 어쩌다 말도 두어 필이나마 살 수 있을 게구. 그게 희망이지요. 말 없는 곡마단을 누가 먹여 줍니까. 기껏 그네타기, 줄타기, 속임수, 이런 걸 보러 손님이 옵니까.”
단장은 단숨에 글라스를 비우고 그 잔을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참 오래간만의 술이라고 했다.
“저 사람…….” 하면서 단장은 안대를 낀 사나이를 가리켰다.
“저 사람을 만난 것이 열흘 됩니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들은 K읍에서 흥행하고 있었지요. K읍이란 여기서 80리쯤 떨어진 곳에 있지요. 흥행 마지막 날인데 저 사람이 나를 찾드구먼요. 이름을 송인규라고 하고 마술사라고 하면서. 얼마나 반가왔는지 선생님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말 없는 곡마단, 술사(術師) 없는 곡마단에 마술사가 나타났으니 우리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기분이었지요.”
이때 나는 마술사라는 사람에게 술잔을 권했더니 그는 그 잔을 거절하면서 냉수 한 그릇 주었으면 하고 신음했다. 단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찔리는 모양이었다.
“난 마누라허구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흘렸지요. 마술사하고도, 인도 마술사라고 들었을 때 이제야 우리에게 운이 돌아왔다고 좋아했읍니다.”
“제 남편의 감격심은 별나요.”
곁에서 단장의 마누라가 한마디 거들었다.
“우선 기술을 한번 보자고 했지요. 그래 그 기술, 아니 마술을 보았지요. 정말 신기하드구먼요. 계약을 하기 전에 공개할 수 없다기에 나와 내 마누라 둘이서만 봤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읍니다. 곡마단 생활 30년에 그런 신기한 기술은 처음 봤으니까요. 그래 그의 요구조건을 물었지요. 선금을 20만 환 내라고 합디다. 그리고 매달 월급을 5만 환으로 하구. 가진 것이 있다면야 20만 환만 내겠어요? 2백만 환이라도 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처지에 20만 환이란 목돈이 어디에 있겠읍니까. K읍에서의 흥행은 근래에 없는 대성공이었읍니다만 밥값이다 잡비다 제외하고 나니까 겨우 3만 환 남짓한 돈밖엔 남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정이 이와 같으니 우선 2만 환만 받고 앞으론 월급 외에, 수입의 반을 나눠 20만 환을 채워드릴 테니 같이 일하자구 빌듯이 했읍니다.”
여기서 단장은 일단 말을 끊었다. 억제하고 있던 흥분이 되살아나는 모양이었다.
“말을 들어 주어야죠. 도리가 없어 팔 수 있는 물건은 죄다 팔기로 했지요. 마누라의 단벌 나들이옷, 내 시계는 물론 단원 중에 시계를 가진 사람은 모조리 그 시계를 공출케 하고. 그래 이럭저럭 맞추어 보았더니 10만 환이 됩디다. 그걸 가지고 사정사정했더니 겨우 승낙을 했어요. 저 양반이 말입니다.”
단장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송인규란 자의 태도를 보아서도 알 수가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K읍에서 곧바루 이곳으로 왔지요. 이리로 올 때 트럭에선 운전사 옆자리에 태우고 잠자리도 가장 좋은 곳으로 골라 주고, 극진한 대접을 했읍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비가 왔지요. 가설극장의 말뚝도 치지 못한 채 꼬박 일주일을 이 모양으로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다간 여관비도 벌 수 없게 되겠어요. 연구한 끝에 그동안 밥값이라도 빌기 위해서 이곳 국민학교 교장선생님과 지서장에게 애걸을 했읍니다. 유지, 학부형들과 아동을 모시고 마술을 보여드리겠다구요. 처음에는 거절했었읍니다. 그랬는데 인도 마술 이야기를 하니까 그건 교육상으로 유익하겠다고 허가가 내렸어요.”
단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장의 마누라가 말을 이었다.
“다음은 제가 얘기하지요. 학교와 지서와 교섭이 다 되고 돈도 얼만가 받는다논 약속까지 했는데 글쎄, 지 양반이 말을 듣지 않았읍니다. 5만 환을 마저 주지 않으면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다지 않아요? 글쎄, 그게 될 말이예요? 돈 한 푼 없는 우리의 사정을 알면서, 다만 얼마라도 밥값을 치르지 않으면 오늘부터라도 여관에서 밤을 줄 수 없다고 말한 사정을 알면서, 딱 거절하지 않아요? 세상에 그런 얌체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자기도 이런 사회에서 살아왔다면 무보수로라도 우선 돌봐주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죄다 팔아 모은 돈을 가쳤으면 아무리 싫더라도 수고 좀 해주면 어때요?”
단장이 입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혼이 났쇠다. 지서장이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인도 마술이란 엉터리 없는 거짓말을 해가지고 자기와 교장을 농락했다는 거예요. 그리곤 바로 저를 사기꾼 취급을 했읍니다. 아동들과 학부형을 모아놓고 도리가 있어야죠. 그냥 시작을 했지요. 나는 교실의 창문에 붙어 서서 여관 쪽을 바라봤읍니다. 지 마술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할 짓은 다 했는데도 저자는 나타나지 않드군요. 나는 아동들 앞에 끓어앉아 통곡하고 싶었어요. 교장선생님은 그래도 5천 환의 돈을 싸줍디다만 난 굶어 죽어도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인도 마술을 한다고 해놓고 하지도 않았으니 그 돈을 어떻게 받아요. 단원들도 흥분했지요. 당장 저 자를 때려 죽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놈 하나 때려 죽이고 모두들 감옥살이를 하자는 겁니다. 비를 맞고 학교에서 돌아오며 모두들 울었지요. 돌아와 보니 저자는 벽에 기댄 채 장승처럼 눈을 감고 앉아 있었읍니다. 내 마누라는 퉁퉁 부은 눈으로 울고 있고 간청을 하다가 하다가 너무나 억울해서 운다지 않아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 당신의 마술이고 뭐고 다 귀찮으니 돈을 도루 내놓으라고 했지요. 그처럼 몰인정한 자의 마술을 사가지고 잘된들 얼마나 잘되겠느냐는 거지요. 그랬더니 저자는 그 돈을 받은 즉시로 고향에 있는 사촌에게 보냈다면서 우편국의 영수증을 내놓지 않겠어요? 그래 마지막 희망까지 없어져 버린 겁니다. 그 돈이나 받아가지고 밥값이나 치르고 비가 개면 딴 곳으로 옮기려던 참인데 이 꼴이란 말입니다. 그래 우리들이 저자를 책망하는 것이 나쁘단 말씀입니까. 발길로 찼기로소니 안될 짓을 한 것입니까. 뺨을 때렸기로소니 못할 짓을 한 겹니까?”
단장 내외의 흥분을 참으라고 해놓고 나는 송인규더러 이때까지의 이야기가 참말이냐고 물었다.
송인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혼잣말처럼 사람이 그처럼 매정스러울 수가 있느냐고 중얼거렸더니 송인규는 자기도 터질 것 같다고 들릴 듯 말 듯 신음하듯 말했다. 그래,
“미안하게 생각한단 말이지요?”
했더니,
“미안하다 뿐입니까. 내가 나쁜 놈이지요. 내가 죽일 놈이지요.”
“진작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될 걸.”
“단장보구 돈 20만 환을 달라고 할 때나, 학교에서 마술을 하라고 할 때나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읍니다.”
“속으로 울면서 왜 거절했지?”
단장이 소리를 높였다
“이유가 있었지요.”
“이유?”
단장의 얼굴에 조소가 번졌다.
“그럼 그 이유를 단장에게 말씀하시질 않구.”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정말 말 못할 이유가 있읍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말합니까. 그 이유를 말하느니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요.”
하면서 송인규는 울먹였다.
“말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야. 동정을 받기 위한 어리석은 수작은 작작 해!”
단장의 주먹이 와들와들 떨렸다.
“말 못할 이유도 있는 겁니다.”
나는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 얼른 이렇게 말하고 단장에게 물었다.
“당신은 분명히 이 사람의 마술을 보았읍니까?”
“보구말구요, 보았길래 10만 환이나 준 게 아닙니까.”
“마술은 훌륭해요. 오늘 그걸 하기만 했더면 우리 모두의 입장이 살았을 거예요.”
단장의 마누라도 이렇게 거들었다.
나는 송인규란 마술사의 감정을 유발할 양으로 중얼거렸다.
“그처럼 훌륭한 마술사이면서 그러한 청을 거절해야 할 이유란 뭣 일까?”
“그러니까 나는 죽어야 합니다. 맞아 죽어야 합니다.”
“네가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아? 어디까지라도 끌고 다니면서 골탕을 먹여 야겠어.”
단장의 격한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송인규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겐 깊은 비극을 간직한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뜻하지 않게 이 소용돌이에 휩싸여들어 이대로 끝장을 낼 수는 없다고.
나는 단장더러 이렇게 물었다.
“15만 환만 드리면 송선생을 놔주시겠어요?”
단장은 단번에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여러분도 딱하고 이 송선생도 딱하니 내가 도와 드리겠단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단장은,
“그러나 선생께서 그렇게 하실 아무런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할 수 없는 이유란 것도 있고, 그렇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꼭 그렇게 하여야 할 일도 있고, 그게 인생이 아니겠읍니까.”
단장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 15만 환쯤 될 수 있을 것 같은 돈묶음을 단장 앞에 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말 없는 곡마단을 말이 있는 곡마단으로 만드시오. 그런데 단장, 단원들을 이리로 오라고 하시오. 우리 이 밤을 흥겹게 지냅시다.”
취한 김에 한 말이 내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향연이 되었다.
나는 막걸리, 소주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가지고 오라고 주인더러 일렀다.
산촌. 심야. 쏟아지는 비 . 고함을 질러도 좋았다. 노래를 불러도 좋았다. 곡마단 일행은 앉아서 할 수 있는 기술은 죄다 부렸다. 피에로 역(役)의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중얼거렸다.
“사람은 오래 살고 볼기여. 오래 살고 볼기여.”
그들 인생의 곡절이 사무친 얘기와 노래와 술에 취해 밤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덧 창이 밝았다. 누군가 소리를 쳤다.
“비가 멎었다!”
모두들 환성을 올렸다. 거짓말같이 맑게 갠 가을의 아침 하늘이었다.
비는 멎었지만 당장에 길은 트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하루를 더 그곳에 묵고 다음날 헤어졌다.
나는 지금도 그 산촌에서의 향연을 가끔 회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곡마단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진 알 수가 없다. 간혹 곡마단의 천막을 볼 때마다 그 곡마단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만 그후 아직 ‘해동(海東)서커스’ 란 깃발을 본 적이 없다.
송인규는 기막힌 기억력의 소유자이며, 화술도 능했다. 다음은 마술사 송인규의 이야기다.
송인규가 충청남도의 어느 상업학교를 졸업한 것은 1941년이었다. 그 해에 송은 지원병으로 나갔다. 말이 지원병이지 강박(强迫) 당한 것이다. 가난한 집의 5형제 중에서 네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형들의 덕분에 겨우 상업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졸업하고 취직처를 찾고 있던 중이라 지원병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는 일경(日警)의 공갈조 권유를 물리칠 수 없는 궁지에 몰렸었다.
지원병 훈련소를 나와 나남(羅南)에 있는 20사단에 입영(入營)한 것이 1942년의 2월. 거기서 초년병 훈련을 끝내자, 송인규가 소속해 있던 공병대대는 남방으로 전출하게 되었다.
중등학교를 나왔으니 간부 후보생이 될 법도 했으나 그저 유순하기만 하고 요령이 모자란 그는 일등병의 계급장을 단 채 남방행 수송선에 탔다. 당시 일본군은 전년에 필리핀을 점령하고 타이를 석권(席卷)했고, 그 여세로써 버마까지 수중에 넣고 있었다.
송인규가 속한 부대를 태운 수송선이 말래카 해협을 지나 앤다만 제도(諸島) 를 좌편으로 보며 북상해서 랭군에 이르렀을 때는 랭군의 거리마다 집 마다에 일장기(日章旗)가 휘날리고 있었다.
랭군은 겉으로 화려하고 뒤론 지저분한 도시였다. 호사와 빈곤이 기묘하게 교차된 불결한 거리였으나 그 거리가 풍기는 이국 정서는 긴 항해 생활에서 느낀 피로를 풀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졸병에겐 휴식이 없다. 배에서 실어내린 장비를 다시 열차에다 실어야 했다.
랭군에 머물기를 이틀, 송인규는 방향도 모르는 채 북쪽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열차 창 너머로 보이는 이라와디 강의 수량은 풍부했다. 연변의 정글도 눈에 신비스러웠고 일대로 퍼진 곡창지대의 수전이 협착한 고국의 들만 보고 자란 송인규에게는 시원스러웠다. 이 라와디 강 위로 오르내리는 배와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한가한 모습을 볼 때 전쟁과는 먼 평화로윤 땅에 우악스러운 무장을 하고 들어온 자신들에게 일종의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게조차 했다.
송인규의 부대는 맨달레이에서 내렸다. 거기가 당분간 부대의 주둔지로 되는 모양이었다. 아라칸 산맥을 넘어 임팔로 진군할 것이라느니, 이미 했느니 하는 풍문이 돌았지만 송인규는 긴 여행에 지쳐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맨달레이에 머무르게 되자, 송인규는 그 지방의 풍경에 놀랐다. 맨달레이는 중부 버마에 자리잡은 옛날의 왕성(王城)이다. 이라와디 강을 옆으로 끼고 조금 높다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앞날을 바라보는 희망보다 지난날에의 회상 속에 숨쉬고 있는 도시였다.
맨달레이는 I857년 버마 최후의 왕조 아라운파야 왕(王) 이 도읍을 정한 곳이며 I886년 영국과의 싸움에 아라운파야 왕조가 패망해서 버마가 인도(印度) 의 한 주(州)가 되자 폐도(廢都)가 되었다.
아름다운 맨달레이의 풍경이었으나 송인규의 병정 생활은 고되고, 힘든 노역의 연속이었다. 매일처럼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방공호를 파야 했고, 영미군(英美軍)이 혹시 버마에 들어오지나 않을까 해서 진지 구축에 바빴다.
그럭저럭 그해는 보내고 I943년이 닥쳐왔다. 임팔에서의 실패와 태평양 전역의 지지부진한 전세(戰勢)로 해서 버마의 일본군을 둘러싼 공기는 어수선했다. 처음엔 일본군에게 환영의 빛을 보이던 주민들의 표정에도 이상한 감정이 나타났다. 8월이었다. 일본군의 승인을 얻어 버마의 독립 선언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맨달레이에서도 축하식전이 있었다.
맨달레이의 축하식 장에서 일본군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식이 바야흐로 진행 중인데 연단 밑에서 폭탄이 티졌다. 누군가가 시한폭탄을 장치한 것이다. 이 시한폭탄의 폭발을 신호로 버마군의 일부가 봉기했다. 식장은 수라장이 되었다. 봉기한 버마군은 일본군이 무장까지 시켜 자기들의 동맹군으로서 양성한 군대였다
비상소집을 받고 송인규가 속한 부대원들이 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폭동은 이미 진압된 후이고 광장에는 수없이 많은 시체가 구르고 있었다. 곧 폭동자들을 적발하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날 체포된 사람만 해도 수백 명 이상이었다. 체포된 이 폭도들은 맨달레이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각 부대에 할당 수용되었다. 송인규의 부대에는 가장 중요한 주동자라고 할 만한 폭도 일곱 명이 배당되어 왔다. 위병소에 잇달아 지은 영창은 너무나 협소하고 도로에 가깝다고 해서 이때까진 창고로 쓰던 곳을 개조하고 거기다 철문을 달아 폭도 일곱 명을 수용 감금하기로 했다.
당시 부대에선 대부분의 병력이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있었고 대내(隊內)에 머물러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얼마 되지 않는 병력 가운데서 6명의 특별 영창 감시병을 뽑았다. 그중의 한 사람으로 송인규도 뽑혔다. 송인규의 일본 병영에 있어서의 이름은 마쓰야마 일등병이다.
송인규 등 6명의 감시병은 다음과 같은 엄격한 수칙(守則)을 받았다.
I.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수감자와 이야기하지 말 것.
2. 소정의 음식물 외는 일체 들여 놓지 말 것.
3. 감방에 가까이 가지 말고 적어도 2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감시할 것.
4. 기타는 일반 보초 수칙, 영챵 감시 수칙과 같음.
5. 이상을 어겼을 때는 이적 행위죄(禾lj敵行爲罪)를 적용하여 일본 육군 형 법이 정한 가장 중한 벌을 적용한다.
이 수칙 외의 주의 사항으로선, 7명 가운데는 1명의 인도인이 있다, 그 인도인은 이름 높은 마술사다, 조금만 방심하다간 그 마술에 걸려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것이 있었다.
송인규는 그 인도인 마술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여섯 버마인은 모두 키가 작았다. 코도 납작하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이들에 비할 때 그 크란파니라고 하는 인도인 마술사는 키가 버마인보다 목에서부터 위는 더 있는 것 같았고, 코도 덩실 높았다. 움푹 파인 눈엔 지혜의 빛이 있었다. 거무스레한 얼굴은 둘러싼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그 얼굴에 위엄을 주고 있었다.
감시당하는 사람보다 감시하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송인규는 수칙대로 그들을 감시하는 데 질렸다. 그들이 떠들거나 뭐라고 호소라도 하면 단조로움이 덜하겠지만 이들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않았다.
참선(參禪) 하는 모양 그대로 단정하게 앉아 있는, 흡사 불상과 같은 그들을 보고 있으니 어마어마하게 내건 수칙이란 것이 오히려 유머러스하고 총에다 칼까지 꽂고 버티고 서 있는 스스로의 모양이 가소로울 때가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송인규는 담배에다 불을 붙여 가지고 철창 가까이 가서,
“세이레이 카운데?”
하고 말을 걸어 보았다. 담배 어떠냐고 물어 본 것이다.
감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 중에서 가장 젊은 버마인이 손을 내밀어 그 담배를 받았다.
“체스틴 바데.”
고맙다는 버마의 말이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송인규는 버마인들과 버마의 낱말, 또는 영어의 낱말을 주고받을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순찰 장교가 돌아간 틈을 타서 담배를 넣어 주고 찻물〔茶水〕도 달라는 대로 넣어 주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송인규는 감방에 물을 넣어 주다가 순찰 장교에게 들켰다. 이제 막 돌아보고 간 순찰 장교가 돌연히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 순찰 장교도 한국인이었다. 일본 육사(陸士)를 나온 육군 중위였다. 순찰 장교는 당황하고 있는 송인규를 불리세우곤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칼집째 풀어 쥐고 송인규의 어깨를 내리쳤다.
“이 고약한 놈 같으니, 당장 헌병대에 넘겨야겠다. 네가 지금 물을 주고 있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 줄 알지. 대일본제국에 항거한 놈들이야. 곧 총살해 버릴 놈들이란 말이다. 자식! 너도 그 패거리와 똑같은 놈이로구나. 너도 함께 총살을 해버릴 테다. 적전에서의 이적 행위는 사형인 줄 알지?”
그리고 다시 칼집 째 송인규의 가슴패기를 찌르며,
“진정한 일본 군인이 되려면 조선 사람은 내지인(內地人) 이상으로 분발해야 한단 말야. 하여간 별명이 있을 때까지 근무하고 있어.”
감방에 있는 사람들은 송인규에게 미안해 했다. 그러나 송인규는 순찰 장교에 대한 반발로써도 범칙적 친절을 계속했다.
그날 밤 송인규는 인사계 준위에게 불려갔다.
“너 오늘 순찰 장교에게 들켰지. 감시병의 생명은 수칙을 지키는 데 있어. 당장에라도 영창에 집어넣으라는 것을 내가 간원해서 용서하도록 했다. 네 몸이 약해서 비교적 수월한 근무를 시킬 셈으로 거길 보냈는데, 앞으로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해.”
그 이튿날 근무하러 나갔더니 교대병이 사라지고 동료가 변소엘 간 틈에 인도인 마술사가 송인규를 불렀다.
“마쓰야마상!”
유창한 일본말로 부르는데 인규는 놀랐다.
“당신에게 꼭 가르쳐 줄 것이 있습니다. 어제 당신에게 봉변을 준 장교가
아까 당신과 교대한 병정을 보고 말했읍니다. 당신은 코리어인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 코리어인은 신용이 안되니 당신을 경계하라고 합디다.”
송인규는 그 인도인이 자기와 순찰 장교(히로까와 중위)를 이간시키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 “설마 그럴 리가.” 하고 얼버무렸다.
“정말 그런 말 했읍니다.”
“그 장교도 코리어인인데 어찌 코리어인이 코리어인을 신용 못한다고 했을까 해서요.”
송인규가 이렇게 말하자 인도인은 놀란 시늉을 했다.
“그 사람이 코리어인이오? 놀랐읍니다. 정말 놀랐읍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수 있읍니까?”
일본 군인이 되려면 조선인은 내지인보다 분발해야 한다는 말은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히로까와 중위의 입장으로선 능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송인규는 순순하게 소화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까 인도인이 전한 말 같은 것을 동료인 일본인에게 말했다는 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자기가 조선 사람이란 걸 일본인 병정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 말을 듣고 일본인 동료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여 간 불유쾌한 일이었다.
“코리어인으로서 일본의 장교가 되자면 어떻게 합니까?”
인도인이 이렇게 물어왔다.
“간부 후보생이 되거나 일본 사관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코리어인으로서 일본의 사관이 된 사람은 모두 그 사관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입니까?”
“글쎄요.”
“당신들 코리어인은 민족 사상, 조국 독립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요.”
“마쓰야마상, 민족 사상 가지고 있읍니까?”
송인규는 망설였다. 과연 자기가 민족 사상을 가지고 있는 건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민족의식을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몰랐다. 그래. “갖도록 노력을 하고 있읍니다.”
하고 간신히 답했다.
“우리 인도 사람, 영국의 지배받은 지 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민족사상 들끓고 있읍니다. 코리어, 일본보다 역사가 깊은 나라입니다. 내 잘 압니다. 그런데도 저런 장교를 용납한단 말입니까. 우리 인도 사람 가운데도 영국의 지휘받는 군인, 관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독립운동 하는 사람에겐 머리 안 올라갑니다. 더더구나 인도 사람 신용 못한다는 따위 말 안합니다. 그리고 못합니다. 저런 자 민족의 적입니다. 멀지 않아 일본 망하면 저런 자 철지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민족 문제에 발언권 주어선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철저한 용병 근성(傭兵根性)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용병은 개나 짐승이나 다름없읍니다. 마쓰야마상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마쓰야마상. 인간성 훌륭해서 내 이런 말 합니다.”
동료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인도인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인규는 뭐가 뭔지 모르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수감된 지 2주일이 넘어서였다. 헌병대에서 인도인을 데리러 왔다. 부대 본부에 가서 취조를 했다. 우연히 송인규가 입회 감시의 명령을 받았다.
인도인을 앞에 앉히고 헌병은 대뜸 물었다. :
“일본말을 잘 한다지?”
“…….”
“여기 당신에게 관한 정보가 있어. 직업 마술사. 버마 거주. 인도 비밀 결사 회원. 외국어는 20개 국어에 능하고, 그중에 일본어도 끼어 있어,”
“…….”
“그럼 이 정보가 틀렸단 말인가?”
거대한 체구의, 심각한 표정을 한 인도인에 비할 때 심문하는 헌병의 꼴은 족제비를 연상시켰다.
“그러면 영어로 하지.”
통역이 헌병 곁에 앉았다.
당시의 문답을 간추리면 대강 다음과 같다.
“이름은?”
“크란파니.”
“국적은?”
“인도.”
“인도 어디?”
“캘커타.”
“카스트는?”
“하리.”
“가족은?”
“마누라 하나.”
“지금 어디 살고 있지?”
“떠돌아다니는 신세니 모른다.”
“지난번 사건을 누구누구와 모의했지?”
“모의한 일 없다.”
“지령을 누구한테서 받았지?”
“지령받은 일 없다.”
“영국 정보 기관에서 지령이 내려왔지? 바른대로 말해.”
“영국은 나와 적대되는 나라다. 적에게서 지령을 받나?”
“그럼 간디의 지령을 받았나?”
“마하트마 간디가 그런 지령을 내릴 리가 없지 않으냐?”
“간디는 영국의 전쟁 목적을 위해서는 지금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마하트마 간디는 오직 인류의 행복과 인도의 독립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영국과 협력하는 것이 인도 독립에 도움이 되는가?”
“일본과 협력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간디는 협력하지 않는다.”
“여하간 당신은 영국의 지령을 받고 시한폭탄을 장치한 거지.”
“그런 일은 없다. 다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그 시한폭탄을 장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그것을 장치한 사람을 부러워했다.”
“버마 독립에 샘이 난 건가?”
“난 진정한 버마의 독립을 원한다. 그러나 일복인이 하는 짓은 사기다. 엉터리다. 버마인을 모욕하는 행위다.”
“건방진 소리 하지 말라. 버마의 지도자와 민중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만약 지도자들과 민중들이 환영하고 있다면 그건 속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버마의 지도자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줄 믿는다. 그러나 저러나 지도자들과 민중을 각성시키기 위한 뜻으로서도 그런 행동은 필요했다고 본다.”
“잘 지껄이는군. 그럼 앞으로도 그런 행동을 하겠단 말이지.”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
“제대로 자백했구나. 허지만 앞으론 그따위 짓을 할 기회가 없을 거니 안
심 하게.”
이때 헌병은 곁에서 필기하고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해놓고 다시 심문을 계속했다.
“너는 인도와 버마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영국의 주구(走狗)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번 사건은 영국의 정보기관이 조종한 사건이란 건 이미 판명되었어. 그 사건에 네가 관련되었으니까 너는 그 주구란 말야.”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당신이 부정한다고 해서 우리 손아귀를 빠져나갈 것 같애 ?”
“빠져나같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욱 거짓이 없다.”
“그럴 바엔 영웅이 되어 보는 것이 어때. 네가 했다고만 하면 영웅이 될게 아냐? 이왕 총살을 당할 바에야 영웅으로서 죽는 것이 좋지 않아?”
“영웅 아닌 자가 영웅으로서 죽을 순 없다. 그러나 내가 한 짓이라고 내가 승인하면 붙들린 버마인 모두를 풀어줄 수 있는가?”
“그런 건 이 자리에서 대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본래의 주장을 굽힐 수 없다.”
헌병은 서류를 챙겨 일어서면서 말했다.
“어차피 당신은 죽는다. 곧 군사재판이 있을 것 이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 두라.”
이상하게도 버마인들은 한 번도 불려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인도인만은 그 뒤부턴 매일 밤 불려나가서 돌아올 땐 실신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송인규가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인도인은 이번 사건과는 전연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일본 헌병 당국은 영국인의 지령을 받은 인도인의 소행으로서 그 사건을 꾸며나갈 계획 인 것 같았다.
며칠 후 군사재판이 열렸다.
군사재판정은 부대 내에 있는 장교 식당이었다. 송인규를 포함한 감시병 6명은 인도인과 버마인을 한 줄에 묶어 재판정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이미 다른 곳에서 데리구 온 듯한 2명의 인도인과 수감을 채우지 않은 수명의 버마인들이 와 있었다.
“정면 중앙에 재판장이 앉고 피고석을 향해 오른편에 검찰관, 왼편에 배석 법무장교가 앉았다. 그밖엔 2명의 서기가 있을 뿐 변호인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재판은 버마인의 리(審理)에서부티 시작되었다.
성명, 연령, 주소를 물은 다음,
“군대를 선동한 적이 있는가?”
“영국 정보기관과 내통한 적이 있는가?”
“비밀걸사에 가담하고 있는가?”
를 묻고 모두가 부정하니까, 다시 추궁하지도 않고 싱겹게 심의를 끝냈다.
인도인에 대한 추궁은 맹렬했다. 영국 기관의 지령을 받고 시한폭탄을 장치한 것이라고 단정해 놓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버마의 독립식전을 파괴하려는 자는 버마인일 수가 없다. 오랫동안 버마인과 반목해 오던 인도인과 독립을 기어이 방해해야만 될 영국이다. 피고 크란파니가 영국 기관의 앞잡이란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크란파니와 그의 연루자가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있는 것을 본 증인듣이 있다.”
검찰관은 이렇게 말하고는 세 사람의 버마인(수갑을 채우지 않고 대기 시키고 있던 사람들)을 증언대에 세웠다.
증언대에 선 버마인들의 눈엔 공포의 빛이 가득차 있었다. 검찰관이 크랸파니와 다른 2명의 인도인을 똑똑히 보라고 해도 겁에 질린 눈으로 힐끔 했을 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증인들이 본 사람은 분명히 이 사람들이지?”
증인들은 말이 없었다.
“분명히 이 사람들이지? 만약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총살이다. 이 사람들이 틀림없지?”
검찰관의 고함소리에 세 버마인들은 보일 둥 말 둥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는 할 말이 있거든 하라.”
검찰관은 위엄을 뽐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크랸파니는 침착했다. 깊은 눈빛으로 증인들을 보았다.
“나를 죽이고 싶거든 그지 죽여라. 마하트마 간디의 제자인 나는 폭력으로써 폭력에 항거하지 않는다. 나 하나를 죽이면 될 텐데, 지 젊은 버마인들로 하여금 대죄(大罪)를 짓게 조작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증언대에 끌려나온 젊은 버마 진구들이여 ! 나는 당신들을 용서한다. 얼마나 공포에 시달렸기에 그대들이 마음에도 없는 증인을 했겠나. 내가 죽는 것은 결코 그대들 증연 때문이 아니니 내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지 말라. 양심을 가책할 필요도 없다. 그대들이 증언을 하지 않고 단호히 거부했더라도 그들은 결국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버마는 아직 독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자리가 충분한 증거다. 이러한 음모 조작을 하는 근성을 가진 자들이 어찌 진정한 독립을 당신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 독립은 앞으로 그대들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이번의 일은 독립에의 방해가 되었지 계단은 되지 못한다. 여기서 동으로 가면 코리어라는 나라가 있다. 일본은 그들에게 독립을 준다고 해놓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또 만주라는 곳이 있다. 독립을 준다고 해놓고 역시 노예로 만들었다. 몇 천 년의 우의가 있는 나라에도 그들은 그랬거늘 그 버릇을 버마에서 일조에 고치리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나. 독립이란 군사적으로도 예속하지 않아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예속하지 않아야 하고, 항차 정치적으로 예속해선 안 된다. 예속 속의 풍족보다 가난한 독립을 택해야 한다.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버마의 친구들이여 ! 나는 인도인이긴 하나 버마를 내 조국과 같이 사랑해 왔다. 우리 동족 중에는 버마인과 반목하고 있는 사람이 없지 않으나 나는 이것을 대단히 잘못된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야 할 처지에 있다. 가까운 장래에 빛나는 앞길이 튄다. 그 희망을 안고 나는 기쁘게 죽어갈 수가 있다. 재관장, 그리고 검찰관, 이 사건은 버마인을 회유(懷柔) 하고 인도인과 버마인을 이간시키기 위한 조작이며, 그리기 위해서 나 크란파니라고 하는 희생 이 필요했다논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속일 수 없을 것이니 언젠가 너희들은 너희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할 때가 올 것이다. 꼭 그날이 와야만 한다.”
재판정은 숙연했다. 뭐라고 말하려던 검찰관도 검푸른 얼굴을 긴장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판결이 있었다.
버마인 6명은 군대 선동 사실 여부가 밝혀질 때까지 헌병대가 지정하는 곳에 연금하기로 하고, 인도인 2명에겐 총살에 의한 사형이란 판결이 내렸다.
어처구니 없는 재판이었다. 감시병 6명은 크란파니 하나만을 데리고 영창으로 돌아왔다.
총살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 시간을 같이 하고 줄곧 그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운 사람이면 또 모른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경우는 참으로 견디어 내기 힘드는 일이다.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 크란파니는 쇠고랑이 채워 있었다. 선고를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그의 태도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나 침착하게 고요한 눈을 뜨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무슨 마술이나 부리지 않을까 해서 접근하길 꺼려했던 사람들도 크란파니의 조용한 태도에 익숙해지자 모두들 친절하게 대하게 되었다. 히로까와 중위를 제외하곤 순찰을 온 장교들이나 하사관들도 감방 속에 있는 크란파니를 동정어린 눈으로 보게 되었다.
크란파니의 사상이야 어떻든, 그 사건과는 직접적 인 관련이 없는데도 헌병대의 조작으로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대 전원이 알고 있는 터였다.
9월에 접어들자 작업량은 많아지고 병력은 모자란다는 이유로 감시병 6명을 5명으로 줄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송인규는 그 5명 가운데 끼게 되었다. 종전대로 3교대제였으나 전엔 2명씩 하던 것을 1명찍 맡아 감시하기로 되었다.
그때부터 송인규는 마음놓고 크란파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자 무슨 할 말이 송인규에게 있었겠는가. 어설픈 위로를 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되려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날 송인규는 다음과 같은 말을 걸어 보았다.
“자기들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잘못을 깨닫고 있을 것이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아직껏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잘될 것도 같지않습니까.”
크란파니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들이 망설이고 있는 줄 아십니까. 상부에 보고하고 있는 거겠지요. 사건이 발생했으니 범인은 잡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일본군 수사기관의 위신도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들은 버마인을 죽이기는 싫은 겁니다. 민심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위신도 세우고 민심도 사고 명분도 세우고 하자면 꼭 나를 죽여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만 고통이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에겐 조금도 두려워할 게 없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난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 벌써 목숨을 던져놓고 있었소.”
“세상에 어찌 그런 무상(無償)의 행동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어째서 무상의 행동인가요? 당신도 릴레이 경주를 아실 겁니다. 누군가가 결승점에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꼭 나라야 된다는 법이 그 경주에 있읍니까. 자기가 제일주자(第一走者) 가 되었다고 해서 영광이 돌아오지 않습니까. 나는 민족 독립의 횃불을 천하는 선수의 한 사람이오. 내 뒤엔 무수한 선수가 있읍니다. 내 앞에 무수한 선수가 있었던 것처럼. 이러한 선수라는 의식보다 더한 보상(報償)이 어디 있겠소. 나 하나가 죽어서 수만의 행복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이 자신(自信) 이상의 보상이 어디에 있겠으며 이 죽음 이상의 값비싼 죽음이 어디 있겠소. 값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값비싸게 죽을 수 있다는 건 영광된 일이며 행복된 일입니다. 사람은 값없이 죽어선 안 됩니다.”
“허지만 쓸쓸하지 않습니까?”
“쓸쓸하긴. 나는 언제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이 있읍니다. 네루와도 같이 있구요. 마음이 통하면 같이 있는 겁니다.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와의 구별도 없읍니다. 어디 있어도. 비록 난 혼자 있는 것 같아도 나는 여리 선생님과 선배와 동지들과 같이 있는 겁니다.”
어느때는 이렇게도 말했다.
“두고 보시오. 이번 전쟁엔 일본과 독일과 이탈리아가 꼭 방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국이나 미국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식민지의 백성들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코리어인도 단결만 하면 이 기회에 독립을 이룰 수가 있을 겁니다.”
송인규는 조국의 독립이란 말을 듣자 가슴이 설랬다. 중경(重慶)으로 가면 한국 독립군이 있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생각나기도 했다.
크란파니는 또 다음과 같은 인도의 시를 일본말로 번역해서 들려주기도 했다.
“행동에만 전념하라
결과에 관해선 마음을 쓰지 말라
행동의 결과를 원치 말라
오직 활동에 힘쓰라.”
이것은 바가바드 기타의 시라고 했다.
“형제에 대해서 사랑을 얘기해선 안 된다. 그저 사랑하라. 교의(敎義)와 종교를 논해서도 안 된다. 종교는 하나밖에 없다. 모든 걍물은 바다로 간다. 전 진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전진하게 하라.”
이것이 미키라난다 경전(經典)의 일절이라고 했다.
어느 날이다. 크란파니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송인규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신은 기회를 보고 탈출하시오. 이런 꼴로 살아봤자 일본의 노예로서 사는 것이고 만약 이대로 죽어 보시오. 영영 당신은 일본의 노예로서 죽는 겁니다. 죽은 사람은 자기 평생을 수정(修正)할 수 없읍니다. 엄숙한 섭리에 의해서 이 세상에 생을 받아 욕된 나날을 보내고 욕된 죽음을 해서야 될 말입니까. 죽어도 민족을 위해서 죽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당신처럼 희귀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욕된 생활을 보내서는 안되고, 욕되게 죽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고는 송인규더러 연필과 종이를 달라고 했다. 인규가 연필과 종이를 넣어주자, 크란파니는 뭣인가를 열심 히 쓰고는 그 종이와 펜을 도로 내어주며 말했다.
“여기 편지 두 장이 있소. 하나는 당신이 탈출했을 때, 또는 탈출을 못하고 그냥 일본군에 있다가 일본이 항복했을 때 인도의 관헌이나 영국의 관헌이나 버마의 관헌에게 보이시오. 하나는 내 마누라에계 쓴 편지입니다. 만약 당신이 탈출하거든 그 편지를 가지고 내 마누라에게로 가십시오. 내 처는 카타 지방에 있소. 주소를 거기 써 두었으니 찾을 수가 있을 겁니다. 카타 지방까진 일본군이 들어가지 않았고 곧 패배할 거니까 앞으로도 일본군이 가지 못할 겁니다.”
송인규는 그 편지를 접어 소중하게 안 포겟에 넣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걍 이렇습니다. ‘이 편지를 가진 마쓰야마란 일본 병정은 코리어인으로서 본의 아니게 전선으로 끌려나온 사람입니다. 나, 마술사 크란파니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총살을 당할 때까지 나의 감시병 노릇을 한 사람인데 그 따뜻한 마음씨나 깊은 인간성은 내 최후의 시간을 복되게 해 주었고 나의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북돋워 주었읍니다. 이 세상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비록 무명의 병사일망정 인간의 가장 고귀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이분에게 영국 관민, 인도 관민, 버마 관민, 오란다 관민이시여 ! 최대한의 대우를 하실 것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가는 크란파니가 최후의 성의를 모아 간원하는 바입니다. 신의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송인규가 그 편지의 내용을 들었을 때 이때까지 그의 가슴 속에 혼돈 상태로 있던 덩어리가 돌연 하나의 명확한 형태로 굳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내 힘으로 이 분을 구출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송인규는 고맙다고 하고 마누라에게 가는 편지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부치겠노라고 했다.
“내 마누라는 카렌족(族)의 딸이지요. 카렌족이란 이 버마에 사는 소수민주의 하나입니다. 슬기로운 민족이지요. 내 마누라는 이 카렌족의 딸로서 하늘의 별처럼 예쁘고 진흙 속의 연꽃처럼 청정하고 슬기로운 소녀입니다.”
“소녀입니까?”
“그렇지요. 세계에 평화가 오면 나는 내 마누라를 데리고 세계를 한 바퀴 돌 작정 이었읍니다. 가는 곳마다 나의 마술에 사람들은 황홀할 것이니 갈채를 받으면 나는 나의 예쁜 마누라를 관중 앞에 내세우고, 여리분 갈채는 이 여인에게 보내 주십시오, 내 마술의 영감은 이 여인에게서 나왔읍니다, 그러니 내 마술의 영광은 당연히 이 여인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연설할 작정이지요. 나는 내 마누라를 슬기로운 카렌족에서 골라 아흡 살 때부터 교육을 시켰지요. 인레 호반(湖畔)에서 자랐다고 해서 이름을 인레라고 고쳐 짓고, 지금은 열 아흡. 영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할 줄 알죠. 세계를 무대로 한 마술사의 아내가 되려면 그쯤 말을 알아야 하니까요.”
“크란파니 씨, 그린데 당신은 왜 버마에 왔지요?”
“마술 흥행도 하고 버마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도 하고 겸사겸사로 왔는데 이곳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지요.”
“인도엔 그 후 돌아가 보지 않았읍니까?”
“몇 번 돌아갔었지요. 짧은 동안. 그리고 인도뿐 아니라 자카르타에도 가고 마닐라에도 가고 홍콩에도 가고 했지요. 우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걸혼하고 난 후부턴 마누라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장기 여행은 하지 못했읍니다.”
“하필 카렌족의 여자와 결혼한 이유는?”
“인도에서 마누라를 구하기란 힘들답니다. 카스트〔位階制度〕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해서 다른 카스트에 속한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읍니다. 나는 카스트 축에도 들지 못하는 하리입니다. 영어론 언티치어블이라고도 하지요. 말하자면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란 겁니다. 내가 인도에서 결혼을 하려면 이 하리 속에서 배필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리 속에서 현명한 여자를 구한다는 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을 짓밟혀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슬기가 마멸되어 버렸읍니다. 인도에 있을 때는 결혼할 의사를 갖지도 않았지요. 이곳에 와서 우연히 어떤 카렌족의 가족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아홉 살 난 딸이 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난한 집이라서 나는 그 집을 도와줄 겸 그 딸을 내 손으로 기르기로 했지요.”
“카스트란 것은 뭡니까?”
“리그베다에 프르샤스크라는 경전이 있읍니다. 그 경전 가운데 이런 신화가 있읍니다. 프르샤(原人)를 분할했을 때 입과 양팔과 양다리와 양발로 갈랐는데 그 입을 바라문이라고 하고 팔을 크샤트리아라고 하고 다리를 바이샤라고 하고 발을 수드라라고 했답니다. 바라문이 최고의 계급, 그 다음이 크샤트리아, 다음이 바이샤, 다음이 수드라, 이를테면 노예지요. 하리은 이수드라보다도 천한 계급입니다.”
“현대 사회에 어찌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읍니까?”
“어느 나라엔들 불합리한 관습이 없을 수 있읍니까?”
“불합리한 것이면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아요.”
“카스트제(制)는 인도교(印度敎) 의 타락한 부분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이것을 철폐하려는 대운동이 일어나고 있읍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 선봉이지요. 마하트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읍니다. 불가촉천민제도는 힌두교도의 죄악이다. 힌두교도는 이 때문에 고민하고 그 죄를 속죄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동포에게 대한 부채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불가촉천민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고뇌를 나눠 가질 각오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불가촉천민을 하리이라고 불렀읍니다. 하리이란 신의 아이들이란 뜻이지요. 몸소 하리 속에서 살고, 변소 소제 같은 것도 손수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현재 하리의 엘리트엔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는 크란파니가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냐고 물었더니 타골이 지은 노래인데 인도가 독립되는 날엔 인도의 국가(國歌)가 될지도 모르는 노래라고 했다. 크란파니는 그 노래를 다음과 같이 송인규에게 번역해 주었다.
“신이여 ! 그대, 인간의 마음을 영도하고 인도의 운명을 영도하는 신이여 ! 그대의 이름은 반잡, 신드, 크쟈라트, 마라타의 마음과 트리비다, 오리사, 멩골의 마음을 높인다.
그대의 이름은 빈디아. 히말라야의 봉우리에마다 메아리치고 얌너 강가의 물결과 화(和) 하고, 인도양의 파도에 찬가(讚歌)를 엮는다.
그대 이름에 의하여 우리들의 마음은 잠깨어 그대를 챤찬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대는 인간에게 복을 주며 영생을 준다. 인도의 운명을 영도하는 신이여, 신에게 승리 있어라!”
무거운 시간이 크란파니의 주위를 흘러갔다. 송인규에게도 무거운 나날이었고, 무거운 시간이었다.
‘크란파니를 구해야 한다.’
처음엔 막연했던 상념 이 차츰 구체적인 결심으로 변해 갔다. 결심으로 변해 가자 송인규는 주위가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되고 보니 전처럼 자유로이 크란파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망설이던 끝에 어느날 밤 송인규는 크란파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봤다.
“당신 마누라 있는 곳이 카타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요? 걸어서.”
“걸어선 일주일은 잡아야 됩니다.”
“일주일!”
하고 인규는 입 속에서 중얼거렸다.
“헌데 그런 건 왜 묻습니까?”
“크란파니 씨, 당신은 마술사라고 하지 않았소. 어디 마술을 부려 이 감방에서 빠져나갈 순 없소? ”
크란파니는 고요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빠져나가 버리면 당신이 총살당하지 않습니까? ”
“그럼 내가 총살당할까봐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데도 나가지 않는 겁니까?”
“그릴 리야 있읍니까. 내 마술은 그런 게 아니오. 철창을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마술이 아닙니다. 세상에 그런 기슬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내게 만약 생명이 있으면 앞으론 그런 마술을 연구해 볼 참입니다만…….”
송인규는 답답했다. 억울하게 하나의 인재가 죽어가는데 그것을 눈앞에 보면서 속수무책이란 상황이 한스러웠다. 부대원 일동에게 호소해서 구명 운동을 벌여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일뿐더러 최후의 수단마저 망쳐 버릴 염려가 있었다.
최후의 수단이란 송인규가 크란파니를 영창에서 꺼내가지고 같이 탈출하는 계책이다.
그러나 어떻게? 송인규는 그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 몰두했다.
우선 열쇠 문제다. 열쇠는 위병사령(衛兵司令)이 보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열쇠는 부대장 부관의 책상 왼편 줄 서랍 세 번째에 있다. 특별 영창을 만들었을 때 자물쇠를 사가지고 왔다. 자물쇠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었다. 하나를 빼어 부관은 위병사령에게 주며 교대할 때마다 인수 인계를 엄하게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남은 열쇠를 대수롭잖게 자기 책상 서랍에다 넣어버리는 것을 송인규가 목격했다. 그 기역이 없었던들 송인규는 탈출 계획을 꾸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위병소에 있는 열쇠를 훔치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부관 책상 서랍에 있는 열쇠를 훔치기란 쉬운 일이다.
탈출하는 방법은?
다행히 인규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 공병대에선 자재 운반을 위해서 특수 운전병을 양성시킨다. 그 틈틈에 일반병도 운전을 배우는 기회가 있었다. 게다가 인규에겐 손재주가 있어서 자동차 수리를 썩 잘했다.
‘옳지, 동료 운전수가 고장난 차를 끌고 오면 내가 하번(下番)했을 때 고쳐주마고 하고 이 영창 뒤편에 있는 자동차 수리장에다 갖다 놓으라고 하자. 그때 그 차를…….’
송인규의 머리 속에서는 정밀하게 계획이 짜여져 갔다.
다음은 정보다. 어디로 이송을 하건, 형 집행을 하건, 그걸 사전에 알아내야 했다.
9월도 중순에 접어든 어느 날의 오후, 송인규와 다른 하나의 감시병은 위병사령에게 불려 갔다.
위병사령에게서 다음과 같은 지시가 있었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허지만 내일 중대한 일이 있다. 지금 우리 부대에 수용되어 있는 인도인을 내일 총살한다. 시간과 장소는 미정. 힌병대에서 오면 너희들 감시병도 형장(刑場)에까지 수행해야 한다. 한 두어 달 같이 있었으니 정의상으로라도 형장까지는 같이 가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알고 복장을 정비해 둬라.”
송인규는 자기 가슴 속에 일어난 급격한 동요를 위명사령이 알아차릴까봐 위병사령을 똑바로 보질 못했다. 심장의 동계(動悸)가 상대방에 들리지나 않을까 겁 날 정도로 심했다. 그러나 위병사령은 불온한 계책을 송인규가 꾸미고 있다는 것을 엄두에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허기야 유순하기만 한 졸병의 가슴 속에 무엄하고도 대담한 계책이 있을 줄이야 알 까닭이 없다. 송인규는 한편 이처럼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배신해야 하는 자기 자신에게 죄스러운 감정마저 가졌다. 허지만 히로까와 중위에 대한 반발이 그런 감정을 말끔히 지워주는 작용을 했다.
그날 밤 송인규는 불침번의 눈을 피해 부관실에 들어가 감쪽같이 영창의 열쇠를 훔쳐내 오는 데 성공했다. 같은 부대의 동료인 불침번의 눈을 속이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었다.
고장난 차는 며칠 전부티 영창 뒤 수리장에 갖다 두었다. 수리도 이미 끝냈다. 다만 수리가 끝난 줄 알면 딴 데로 출동시킬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휘발유 파이프를 빼놓고 바테리의 선을 풀어 놓았다. 그것은 교대하러 가며 이어 놓으면 될 일이었다.
오전 10시에 송인규는 상번을 했다. 순찰장교가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순찰장교는 정각 1시에 왔다. 그때의 순찰장교는 히로까와였다. 히로까와는 송인규의 근무 보고를 어디 흠잡을 곳이 없나, 하는 눈초리로써 듣고, 보고가 끝나자 그. 눈초리를 감방 안에 있는 크란파니에게 옮겼다. 내일 총살한다는 사실을 히로까와는 물론 알고 있을 티인데 크란파니를 들여다보는 그의 눈초리는 너무나 비정한 것이었다. 송인규는 순찰장교가 건너편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30분 후쯤엔 허둥지둥할 히로까와의 당황한 모습을 상상하니 용기가 곱이 되었다.
이젠 최후의 모험이 남았다. 이 모험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만사의 성패는 걸려 있다. .그러나 송인규는 일본 군대의 생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십중팔구 마지막의 연극이 적중할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상관의 명령이면 전후좌우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는 일본군의 맹점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송인규는 깊은 호흡을 두서너 번 되풀이해서 뛰는 동계를 가라앉히곤 위병소와 직결되어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당번병 2명에서 1명으로 줄일 때 긴급용으로 전화를 가설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기화(奇貨)였다. 수화기에서 졸음에 겨운 소리가 들렸다. 송인규는 성색(聲色)을 바꾸어 단호한 어조로써 말했다.
“부관 명령!”
졸음에 겨운 듯한 대답이 단번에 긴장된 대탑으로 바뀌었다.
“사단 사령부의 명령으로 자동차 한 대를 즉시 사령부로 보내야 한다. 시간의 지체가 안 되도록 이 명령과 동시에 영문을 열어라. 통과하고 나면 지체없이 영문을 닫아라!”
복창하려는 것을,
“복창 불필요, 즉시 개문!”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놓고 송인규는 영문이 열리는가를 볼 수 있는 지점에까지 뛰어갔다. 병정 두 사람이 나와 영문을 열고 있었다. 그는 감방으로 달려와 자물쇠를 열었다.
“빨리 하시오, 탈출이다!”
그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크란파니는 황급히 송인규의 뒤를 따랐다. 송인규는 수갑이 채워져 부자유한 인도인을 트릭 뒤칸에 밀어올려 천막을 뒤집어쓰고 누우라고 이르곤 운전대에 올라 악셀을 밟았다.
순식간에 자동차는 쏜살같이 영문을 빠져나왔다. 위병들이 정지하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무시하고 빠져나온 것이다. 빠져나온 지 잠깐 후, 백미러를 보았더니 병정들은 다시 영문을 닫고 있었다.
불안한 가운데서도 송인규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간이들!”
뒤에 생각해 본 일이지만 아찔한 대목이 많았다. 위병소에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주번사령이다. 부관 아니라 부대장이라도 위병소에 명령을 할 땐 반드시 주번사령을 통해야 한다. 그러니 위병들이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었더라면 이상하다고 곧 위명사령에게 알려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송인규는 그저 북쪽으로반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길 트이는 곳으로만 달렸다.
우기(雨期)여서 어떤 곳은 길인지 강인지 분간할 수 없는 데도 있었지만 마구 달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는지 주위는 완전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송인규는 강기슭에까지 왔다. 송인규가 달려온 길이 거기서 막혀 버린 것이다. 그는 크란파니를 차에서 내리게 하고 우선 수갑부터 풀었다.
크란파니는 멍청하게 말이 없었다. 너무나 급격하게 닥친 일이 되어서 그 침착한 크란파니로서도 뭐라고 말할 주변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앞을 보면 망망한 강. 뒤를 보니 망망한 들. 누구도 뒤따라오는 것 같진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요?”
“사강인 것 같은데 .”
“사강?”
송인규는 질색을 했다.
“그럼 맨달레이의 남쪽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나는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고만 생각을 했는데.”
맨달레 이의 남쪽이면 위험했다.
“여기까지 빠져나오긴 했는데 어떡하면 좋지요?”
“건너편 아바로 갑시다. 아바논 폐허니까 일본군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자동차를 버려야 하겠구먼요.”
“그래야죠.”
송인규는 차를 냥떠러지까지 몰고 가서 엔진을 건 채 밀어 떨어뜨렸다. 망망한 이라와디 강 속으로 자동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배를 타기 위해선 조금 걸어야 했다. 스콜을 알리는 먹구름이 머리 위에 닥쳐와 있었다.
송인규는 군복을 벗어 버리고 내복차림이 되었다. 그래가지고 스콜을 맞으니 버마인과 조금도 다를 게 없이 되었다.
스콜이 멎자, 강은 다시 조용해졌다. 크란파니와 송인규는 요행히 배를 얻어 아바로 건너갔다.
배 안에서 송인규는 크란파니에게 오늘 있었을 총살 얘기를 했다.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사전에 얘기하지 못했다는 사연도 덧붙였다. 크란파니는 눈물을 글썽 거리며 송인규의 손을 붙들고 한참 동안 놓칠 않았다.
아바의 폐허에서 이틀 밤을 잤다. 음식도 의복도 크란파니가 어디선가 마련해 왔다.
이틀을 거기서 쉰 것은 대사를 치르고 난 뒤의 피로를 푸는 의미도 있었지만 크란파니의 집이 있는 카타까지의 길에 무슨 위험이 없는가 하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틀을 거기서 묵는 동안 송인규는 아바에 관련된 이야기를 크란파니에게서 들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명조(明朝)가 멸망하자 멸망 최후의 천자가 이 아바로 망명했다. 당시 아바논 버마의 왕도였다. 버마 왕은 망명 온 명나라의 천자를 극진히 대접하고 보호했다. 명나라를 패망시킨 청국(淸國)은 천자를 돌려보내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버마 왕은 이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조정은 두 파로 갈렸다. 한 파는 돌려주자고 하고, 한 파는 돌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드디어 명나라의 천자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파가 임금을 빌로도 자루에 넣어 이라와디강에 던지고 그 임금의 동생을 임금으로 등극시키고 명나라의 천자를 청나라의 손에 넘겨 주었다.
빌로도에 쌌건 말았건 이라와디 강에 던져졌으면 그 임금은 악어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인규에겐 그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아바에서 카타로. 머나먼 길이었다. 황량한 사막이 있는가 하면 숨이 막힐 듯한 정글이 있고, 새소리에 놀라는가 하면 엄청난 크기의 뱀에 놀라기도 했다. 선편은 아무래도 위험하니 결국은 도보로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크란파니의 말에 의하면 만고미답(萬古未踏) 이란 정글을 헤쳐나가기도 했다.
10여 일이 걸려서야 카타 부근에 왔다. 카타 부근의 산야는 고국을 닮았었다. 소나무가 있고, 밤나무도 있고, 느티나무도 있었다. 송림을 지나는 송뢰(松籟)에 고국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카타의 크란파니 집은 원주민들의 집과는 전연 딴판인 현대식 건물이었다. 붉은 슬레이트에 하얀 벽,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한 화단에 둘러싸인 그윽한 향기 속의 꿈처럼 아담한 집에서 크란파니의 마누라 인레는 남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꽃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인레는 정말 아름다왔다. 검은 머리, 윤택 있는 밀빛의 피부, 흑요석을 방불케 하는 크고 맑은 눈동자. 열 아흡 살의 신선함을 지니면서 귀부인다운 우아함을 검한, 파리의 가두에 세워도 사람들이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미모와 섬세한 육체를 가진 여인이었다.
송인규는 이 집의 기약 없는 식객이 되었다.
1944년의 1월이 되었다. 버마의 1월은 한국의 기후로선 4월과 비슷하다. 송인규가 크란파니의 식객이 된 지도 이미 4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송인규는 크란파니를 통해 세계의 정세를 소상하게 들었다. 크란파니에 의하면 세계대전은 1945년이 아니면 1946년의 초쯤에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인도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세계 최고(最高)의 성자(聖者)들도 인도에 살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열악(劣惡)한 사람도 인도인이라고 했다. 가장 몽매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인도인, 가장 승고한 혜지(慧智)를 가진 사람도 인도인이라고 했다.
병(病) 이란 병, 이 지상에 있는 병치고 인도에서 발견되지 못할 것이 없고, 가장 추악한 가난에서 가장 호화로운 부(富)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의 패턴을 인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인도는 전 세계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병든 낙타와 같다고도 했다.
이 모든 모순과 병폐를 고치려면, 고칠 생각이라도 하려면 우선 인도가 독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크란파니외 지식에서브다 크란파니의 조국에의 사랑이 송인규를 감동시켰다. 보다도 인도인의 줄기찬 독립투쟁사는 놀라운 것이었다.
1942년에만 해도 간디 지도하의 반영 독립운동(反英獨立運動)이 전 인도에
퍼져 간디, 네루 등 지도자는 체포되었고, 영국 관헌의 탄압은 격심했다. 8월 에서 11월까지의 3개월 동안 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3천 2백 명 이상이 부상하고. 10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과거 30년 동안 영국에 항거해서 죽고 투옥당한 수를 헤아리자면 수백만을 넘는다고 하니 인도 국민의 그 끈기엔 다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서 조국은 어떠한가. 송인규의 짧은 견문으로써 볼 때 독립에의 의욕이나 투쟁에 있어서 인도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독립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들었으나, 현재 국내에선 소극적인 독립 의욕은 있을 망정 적극적인 독립 투쟁은 거의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원병 훈련소에 있을 때 소위 민족의 지도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와서 훌륭한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라고 권유한 연설을 몇 차례고 들은 적 이 있었는데 그러한 기억이 크란파니 앞에서 수치스럽게 생각나기도 했다.
크란파니에 의하면 인도는 적도의 기온에서부터 북극의 기온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온의 패턴을 골고루 지니고 있고 세계 각국에 있는 동물, 식물의 천 종류(全種類)를 인도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고 했다. 동양과 서양의 중간에 있으며, 인종도 백인, 흑인, 황인의 중간종(中間種) 이라고 했다. 인도의 고민은 세계의 고민이고, 인도 문제의 해결은 곧 세계 문제를 푸는 가장 큰 단서가 되리라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 그러니까 더욱 안타깝게 인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술을 배운 동기로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리의 아들로서 태어나 생업(生業)의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겨우 먹고 살기 위한 생업을 택하기는 싫었다. 인도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싶었고, 하리을 해방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그만한 여유를 줄 수 있는 생업이라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큰 사업을 하자면 자본이 있어야 했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자면 학교엘 다녀야 했다. 그것은 모두 불가능한 길이었다. 그래 마술사가 되길 작정했다. 이렇게 작정한 것이 열다섯 살 때였다.
“내 선생은 크란파니. 나의 이름 크란파니는 그 선생님이 물려준 겁니다. 줄곧 20년 피나는 노력의 연속이었읍니다. 마술을 매우고 난 후에야 나는 공부를 했지요. 어학은 앞선 20년 동안에 선생님에게 배웠고. 마술사의 무기는 말입니다. 마술이란 곧 화술(話術)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신도 범인이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져야 돼요, 그래가지고서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다.”
송인규는 그에게 마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마술을 배우기엔 이미 나이가 지났다고 말하면서도 생명의 은인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줄잡아도 10년은 걸립니다. 그동안 고국에 돌아갈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요? ”
“10년 아니라 20년이라도 꼭 배우고야 말겠읍니다.”
“그럼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송인규는 크란파니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는 스승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술을 배우는 것이니 아무리 불합리한 지시에도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 이것이 크란파니가 송인규에게 한 스승으로서의 첫 발언이었다.
크란파니는 제자 송인규를 위해서 자기 집에서 5백 미티쯤 떨어진 산 속에 조그마한 암자를 지었다. 거기가 송인규의 수련도장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강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면 채소와 고기와 쌀로 된 한 그릇 죽을 먹고 하루종일 참선하는 자세로써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루종일 뙤약볕을 쪼이며 암자 앞 바위에 앉아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일체의 잡념을 버리고 어떤 마력(魔力)에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의탁할 수 있기 위한 고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술사는 고행승(苦行僧)과 달라 보통 이상의 체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풍부한 음식과 적당한 운동은 어떠한 고행 중에서도 빼놓아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거의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따위의 수련만 가지고 한 해가 갔다. 송인규가 크란파니의 제자가 되어 꼭 1년이 지나고 2년째 접어드는 날, 크란파니는 송인규더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술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문답이 있었다.
“부처님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다.”
“달리 믿는 신이나 인물이 있읍니까?”
“없읍니다.”
“그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없음니까? ”
“있읍니다.”
“그게 누굽니까?”
“어머닙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티 마음 속에서 어머니만 외우십시오. 쉴새 없이 외우는 겁니다. 운동할 때와 식사할 때만 빼고 줄곧 어머니만 외워야 합니다. 당신께 마력을 주는 사람이 오늘 결정되었읍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힘으로 마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마음 속에서 외우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도록 하십시오. 어느 때 반기던 순간의 어머니의 얼굴과 그 모습을 하나만 고정시켜 당신 눈앞에 떠오르게 하십시오. 일체의 잡념을 없애고 오직 어머니의 어느 한때의 얼굴을 당신 눈앞에 떠오르게 하는 겁니다. 그 작업이 끝났을 때 당신의 수련이 시작됩니다. 2년이 되건 3년이 되건 그 작업을 완수하지 못하면 다음 수련으로 넘어갈 수가 없읍니다. 그러니 당신 자신이 이만하면 어머니의 어느 때의 모습을 고정시키는 데 성공하고 어떤 때건 필요하면 그 이미지를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게 말하십시오.”
이렇게 이르곤 크란파니는 송인규의 암자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네 번 식사를 나르는 인레 외엔 송인규가 만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운동은 아령과 철봉, 줄넘기, 암자에서 강으로, 강에서 암자로, 거기서 산중턱까지 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일을 하루 두 번. 그 외는 자유롭게 앉았다가 섰다가 하면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염불 외우듯 마음 속에서 외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때의 어머니의 얼굴을 고정시켜, 그 이미지를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리는 일은 쉬운 것 같으면서 쉽지가 않았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다. 어머니의 얼굴은 자꾸만 뒤바뀌어 나타나기만 했다. 상업학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반겨 주던 얼굴이 나타나는가 하면 지원병 훈련소에 들어갈 때의 초라한 얼굴이 나다나고, 어느 때의 방학에 귀향했을 때의 얼굴이 나타나는가 하면 온통 먼지를 쓰고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송인규는 상업학교 입학시험에 합격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어머니의 얼굴을 고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땐 어머니도 그다지 늙지 않았다. 반기는 얼굴에 생기가 있었다. 이마의 주름도 그다지 흉하지 않았다. 머리에 흰 것이 가끔 보이기는 했어도 단정하게 빗어 올리면 젊은이 머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 얼굴을 고정시키기가 힘 드는 것이다.
마음이 초조할수록 곤란은 더했다. 석 달이 지나고 넉 달이 지났다. 송인규는 암자 안에 들어앉아 참선하는 자세로써 어머니를 외우고 그 이미지를 고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런데 용이하질 않았다.
8월이 지나자, 겨우 이만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 식사를 가지고 온 인레더러 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일렀다.
“선생님은 맨달레이에 나가셨어요.”
“맨달레이? 선생님이 맨달레이로 나가셔도 됩니까?”
“아마 괜잖은 모양이지요.”
송인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외계와 단절하고 살고 있는 터라 일본이 항복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크란파니도 송인규의 수련을 생각해서 고의로 그 기쁜 소식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그렇게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인레에게 이르고, 송인규는 그동안에 더욱 자신을 얻을 수 있게 해 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크란파니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보름쯤 지나서였다. 크란파니는 한 꾸러미 종이 다발을 들고 송인규의 암자에 나타났다.
“나를 보자고 했다지요?”
“네.”
“어떤 사정이 있읍니까?”
“어머니의 얼굴을 고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참 수련이 빠르셨음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그럼 여기 종이가 꼭 천 장이 있읍니다. 하루에 두 장씩 당신이 고정시켰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십시오. 이건 미술로써 그리는 것이 아니니까, 어머니의 얼굴의 기분을 낸 정도도 안 되고 감정적인 과장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주름 하나도 빼놓지 말며, 점 하나도 빼놓아선 안 됩니다. 가장 자신이 있게 그렸다고 생각할 때 내게 연락하도록 하십시오.”
송인규는 가슴이 뜨끔했다. 하루에 두 장씩 그리라니 1천 장을 그리려면 5백 일이 걸린다. 5백 일이 되어야 다음 수련으로 넘어간단 말인가.
사실은 5백 일이 지나 천 장을 그렸어도 크란파니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천 장하고 3백 장을 더 그렸을 때 비로소 크란파니의 승인을 얻었다. 그때의
크란파니의 말은 이랬다.
“눈부신 발전입니다. 놀라운 재능입니다. 내가 수련할 때도 이렇게 빠르진 못했읍니다.”
그날 비로소 크란파니의 마술 세 가지를 볼 수가 있었다.
하나는 달걀에서 닭을 만들고 닭을 다시 달걀로 만드는 마술이었다.
또 하나는 흙만 담겨 있는 화분에다가 겨자알만한 씨앗을 뿌려 놓고 순식간에 거기서 싹이 돋고 떡갈잎이 나오고 줄기가 오르고 잎이 피고 꽃을 피게 하는 마술이었다.
세째는 사려 있는 로프를 공중에 던져 꼿꼿하게 세워 놓고 크란파니가 그 로프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마술이었다.
송인규는 그 신비스러운 마술에 압도당했다. 크란파니가 신처럼 우러러보였다. 자기도 저런 마술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황홀했다.
“처음엔 달걀에서 닭을 나오게 하는 마술에서부티 시작합시다.”
크란파니의 이 말과 더불어 드디어 본격적인 수련이 송인규에게 가해졌다.
이 날부터 송인규는 시간 관념을 잊고 고국을 잇었다.
“마술사란 환각을 만들어내는 술사(術師)입니다. 당신은 어머니에 대한 환각을 거의 완전히 만들어낼 수 있읍니다. 그 힘으로 당신은 갖가지의 환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지(素地)를 닦은 셈입니다. 그런데 마술사는 스스로가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 환각을 관중들이 갖게끔 작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문제(大問題)입니다. 관중들로 하여금 이쪽이 의도한 환각을 갖게끔 하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이 그 환각을 믿어야 합니다. 환각에 대한 나 자신의 절대적인 신앙을 관중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니 먼저 당신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환각을 만들어야 합니다.”
크란파니가 보여준 닭은 노랑, 파랑, 갖가지의 빛깔이 섞인 닭이었는데 송인규가 만들어야 하는 닭은 흰 것이라야 했다. 크란파니는 흰 빛깔의 닭을 조그마한 조롱(鳥籠) 속에 넣어가지고 송인규의 암자에 갖다 놓았다.
“닭과 같이 먹고 자고 노십시오. 그 모든 세부를 암송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익숙해야 합니다. 닭과 친하십시오. 당신 어깨 위에 앉아 놀 수 있고, 당신 손바닥 위에 앉아 놀 수 있고, 당신이 부르면 올 수 있도록 닭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한 장 찍은 닭을 사생(寫生)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시작한 닭과의 공동생활이 몇 달 몇 해가 지났는지 송인규에겐 알 수가 없다. 닭이 완전히 송인규의 분신(分身)처럼 되고, 그 털 하나하나의 차림새까지 외우게 되었을 때 크란파니는 오늘부티 이 닭을 딴 데로 보내야겠다고 말하며 송인규의 눈을 들여다봤다. 송인규는 닭과의 이별에 가슴이 아팠다. 그래 어떠한 정(情)에도 끌려서는 안 된다는 스승의 엄한 교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각(不覺)의 눈물을 흘렸다.
“됐읍니다.”
그 눈물을 보자 크란파니는 웃음을 띠며,
“진정 닭을 지울 때가 되었읍니다.”
라고 하면서 닭 대신 천신(全身)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송인규의 방에다 걸었다.
송인규는 거울 속의 자기를 보고 놀랐다. 이때까지 자기의 얼굴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전연 달랐던 것이다. 약간 벗겨져 올라간 이마도 옛날의 이마가 아니었다.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눈동자는 전에 없던 광채로써 빛나고 있었다. 턱에서 귀로 올라간 선(線)이 야무졌다. 몸 전체에서 정기(精氣) 있는 기품이 풍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기 얼굴을 보고 놀라고 있는 송인규를 향해서 크란파니는 중얼거렸다.
“좋은 얼굴입니다. 반쯤 마술사가 된 얼굴입니다. 한 가지 일에만 정진하고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 있읍니다. 당신이 일본 군대에 있었을 때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읍니다. 그건 지친 짐승의 얼굴이었고 노예의 얼굴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거울을 가지고 온 것은 당신 얼굴을 보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대수련(大修練)이 이 거울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다음 수련은 거울을 향해 앉아 이미 없어진 닭을 시켜 송인규의 어깨, 머리, 손 위에 앉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눈물까지 흘린 당신을 생각하면 그 닭이 당신의 부름에 따라 언제든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의 어깨나 머리나 손 위에 와 앉을 것입니다. 와 앉았다는 느낌만으로선 안 됩니다. 당신의 육안으로 저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어깨, 머리, 손 위에 와 앉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미 없어진 당신의 닭을 저 거울 속에서 당신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역력하게 닭이 보였을 때 내게 연락하십시오.”
닭의 세부(細部)와 더불어 천체의 윤곽을 동시에 눈앞에 그리면서 거울 앞에 앉아 있었지만 거울에 비지는 것은 송인규의 얼굴뿐이고 닭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 어머니를 외우며 닭의 이미지를 쫓길 몇 달이 걸렸는지 몇 해가 흘렀는지 몰랐다. 송인규는 그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새벽에 강엘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거울 앞에 앉았을 때 돌연 그 닭이 송인규의 어깨 위에 앉은 것이다. 그것이 거울 속에 역력히 보였다. 손 위에 와 앉아라!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랬더니 손 위에 와 앉는 것이 아닌가. 다시 어깨로 가라! 닭은 다시 어깨로 갔다. 다시 손으로 가라! 닭은 손 위로 갔다.
인레가 아침식사를 가지고 왔을 때 송인규는 환각에서 깨어났다. 얼굴에선 스콜에 젖은 것처럼 땀이 흐르고 등에 흘러내리는 땀줄기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송인규는 너무나도 황홀한 나머지 밥맛을 잃었다.
인레가 뭐라고 전했는지, 크란파니가 급히 암자로 뛰어들어왔다. 넋을 잃고 있는 송인규를 보자, 크란파니는 덥석 안아 일으켜세웠다. 말하지 않아도 크란파니는 알아차린 것이다.
“빨리 식사를 하시오. 오늘부티 새 날이 시작됩니다.”
환희에 넘친 크란파니의 외침이었다.
그날 오후부터 크란파니는 송인규의 암자에서 인규와 같이 기거하게 되었다. 식사도 같이 하고, 운동도 같이 하고 송인규가 거울 앞에 앉아 있을 때는 그 뒤에 줄곧 서 있었다.
송인규 눈에 보이는 닭을 크란파니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송인규는 자기가 본 닭의 모습을 소상하게 설명해야 한다. 소상하게 설명함으로써 자기의 환각을 크란파니에게 전한다. 수련에 있어서의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송인규는 이젠 뚜렷하게 보이는 거울 속의 닭을 침착한 어조로써 설명했다.
“갈색에 누른 빛이 섞인 주둥이, 끝이 그다지 날카롭지는 않습니다. 그 신월형(新月形) 주둥이를 타고 올라가면 에머랄드에 붉은 빛이 섞인 듯한 눈동자가 있읍니다. 슬픈 듯한 눈동자, 그 언저리에 은회색의 눈썹이 있지요. 머리 모양은 달걀형으로 예쁘고 벼슬은 새빨간 빛깔, 왼편으로 약간 갸우뚱합니다. 곱게 흘러내린 목덜미, 윤택이 나는 하얀 빛깔의 털, 날개를 조금 들썩했읍니다. 날개 밑에 밀생한 그 부드러운 털, 털을 통해서도 탐스럽게 살이 찐 몸집을 알 수 있읍니다. 꼬리엔 갈색의 반점이 보일락 말락 찍혀 있고, 발은 이 우아한 몸뚱어리에 비해서 어설픔니다. 진회색의 빛깔에다 굵다랗게 금이 검친 듯한 다리, 한 다리를 올렸읍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정교한 묘사, 치밀한 설명이 필요했다. 송인규는 날을 따라 정치(精緻)한 설명을 발굴해야만 했다.
이러기를 몇 달이 지났는지 몇 해가 지났는지 송인규는 알 바가 없었다.
그 다음의 수련은 달걀에서 닭이 나오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왼손으로 달걀을 가리며 나타날 닭에 관한 소상한 설명을 한다. 그 설명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고 있으면 바른손에 닭이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까지의 수련에서는 닭의 환각을 눈으로써 만들어야 했는데 이 단계에선 촉감으로써도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믾은 시간이 갔으나 땀에 배인 스스로의 손가락이 애달프게 느껴질 뿐 닭의 촉감은 이르지 않았다. 송인규는 환각을 촉감으로써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떨었다. 눈으로 보는 환각은 꿈을 꾼 경험에서나 회상이 정열로써나 가능하리란 생각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지만 촉각으로써의 환각은 전연 경험이 없었다.
전연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짐하게 되자, 더욱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가 생겨나고 그 의구 때문에 정신의 집중이 흐려지기도 했다.
명민한 크란파니는 이 위기를 간파했다.
“믿어야 합니다. 불가능하리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의구가 있을 땐 절대로 성사가 되질 않습니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이때까지의 수련은 죄다 허사가 됩니다. 믿으십시오..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당신이 닭을 만졌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십시오. 당신이 일본 군대를 탈출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읍니까. 그러한 용기가 있으리라고 그전에 상상이나 했읍니까.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 위에 마술의 탑이 서는 것입니다. 신념을 가지시오. 신념을!”
불을 뿜는 듯한 크란파니의 설교였다.
이 설교가 있은 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의구를 씻고 정신을 집중시켜 단좌(端坐)한 채 몇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정신 집중의 심도가 깊어 식사를 가지고 온 인레가 깨우는 바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한 때도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험난한 고개를 넘어서면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송인규는 그 고개도 넘어섰다. 남은 것은 최후의 수련이었다. 최후의 수련이란 스스로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환각의 닭을 관중에게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것을 크란파니는 환각의 전달이라고 했다. 환각의 전달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마술사가 탄생한다.
이때 크란파니가 환각의 전달은 자기가 없어도 자기 마누라인 인레를 상대로 해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 그동안에 인도엘 다녀오겠다고 했다.
인도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는 것은 수련 도중에 있는 송인규의 정신 통일을 방해해선 안 되겠다는 배려에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후 매일매일 인레 상대의 수련이 거듭되었다. 아무리 해도 환각의 전달은 안 되었다. 인레는 언제나 그 큰 흑요석 같은 눈을 진지하게 뜨고 송인규의 손 언지리를 바라보고 있건만 끝에 가선 안타깝게 고개를 저었다. 자기 눈에는 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건조기가 우기로 접어들고 다시 건조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몇만 번을 되풀이해도 환각의 전달은 되지 않았다. 절망에 가까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가련한 인레는 격려의 말을 보내며, 보통사람으로선 견디지 못할 고생을 성심껏 참고 견디어 주었다.
만월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스콜이 멎고 일진의 바람이 지나가더니 하늘의 구름은 말쑥하게 사라졌다. 이제 막 비에 젖은 나뭇잎 위에 달빛은 미끄러지듯 그윽했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산 속의 꽃 향기가 송인규의 암자를 에워싸고 방에까지 흘려들었다.
달빛을 옆얼굴에 받으며 눈을 크게 뜨고 송인규의 손끝을 지켜보고 앉은 인레의 모습은 이 방의 아름다움을 응집해서 만든 선녀와 같았다. 바로 선녀였다.
이상한 영감 같은 것이 송인규의 뇌리를 스치고 가슴 속에 설렜다.
이 밤 마지막의 수련이라고 다침하고 송인규는 달걀을 바른손으로 옮기며,
“갈색에 누른 빛이 섞인 주둥이…….”
하며 자기가 만들어낼 닭의 설명을 해 내려갔다. 조용한 방 안에 나지막하게 주워 섬기고 있는 인규의 말은 산골 개울의 물줄기가 달빛을 받고 빛나며 흐르는 리듬을 닮았다.
이때였다. 돌연 인레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보였어요, 보였어요, 닭이 보였어요!”
흰 털이 달빛을 받고 은빛으로 빛나는 닭이 인규의 바른손 위에 전아한 모습을 나타냈다. 인규는 그 닭을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히말라야의 신, 강가의 신이어, 신의 섭리를 이어받은 어머니의 은혜여, 이 닭은 천지의 조화가 일순의 조화로 현현한 영물. 이제 원형으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주문을 외우고 바른손에 남은 달걀을 소중하게 곁에 있는 항아리에 넣었다.
이로써 송인규의 마술은 그 최후의 수련을 끝내고 완성된 것이다.
법열이라고나 할까. 송인규는 아직 깨지 않는 황홀 속에서 인레를 안았다. 인레도 꿈 속에 있는 듯했다. 인레의 팔이 인규의 머리를 안았다. 인규와 인레는 자기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송인규는 긴 세월 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회상과 같은 욕망이 체내에서 솟구쳐오름을 느꼈다. 이 욕망의 바람(風)이 인레의 젊은 육체에 전달되었음인지 인레의 숨소리는 신음하는 듯 가빴다. 눈을 감은 채 있는 얼굴. 그 긴 눈썹이 만월의 빛을 받아 화사한 얼굴 위에 섬세한 그림자를 엮었다.
우주의 만상이 일체 그 소리를 죽인 것 같았다. 송인규는 자기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심장 소리를 거대한 망지로써 성벽을 치는 소리처럼 들었다. 그는 인레의 뜨거운 입술에 자기의 볼을 비볐다.
분류(奔流)하는 욕망은 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송인규는 인레의 육체, 그 깊은 속으로 스스로를 함몰시킬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인레의 온몸은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떨었다. 그의 욕망의 첨단이 깊은 곳에서 저항에 부딪히는 것 같았을 때 송인규는 반 광란상태에 있었다. 광란이 극해 신음소리와 함께 저항의 벽이 무너지자 인규는 비로소 인레의 깊은 곳에 스스로를 묻었다. 인레의 육체는 환희를 고통하고 고통을 환희하는 반복 속에서 움직 였다.
급격한 높이에 이른 욕망이 가라앉자 송인규는 주위를 살폈다. 만월은 피를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주위의 산용(山容)이 삽엄한 힐책처럼 다가섰다.
죽은 듯한 인레의 육체를 안아 일으켰을 때 송인규는 하얀 시트의 일부를 물들인 피를 달빛 아래서 봤다. 그는 아까의 저항감을 그 피와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상념은 ‘처녀!’ 그러나 그럴 리가 있을 순 없다.
송인규는 인레를 자기 무릎 위에 안아 눕히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처녀?”
인레는 보일락말락하게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당신은 선생님의 마누라가 아니었소?”
인레는 역시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인규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 밤, 인레는 인규의 품안에서 잤다. 잠들기 전에 인레가 띄엄띄엄 한 말에 의하면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인레는 크란파니의 마누라로 되어 있었으나 육체의 부부는 인레가 스물 한 살 되는 생일부터 시작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스물 한 살이 되었는데도 육체의 부부가 되지 않은 것은 크란파니가 생명의 은인인 송인규가 생애를 걸고 엄숙한 수련을 하고 있으니 인규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피차의 몸을 청정(淸淨)하게 갖자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송인규는 이제 만사가 끝난 후, 그 깊은 크란파니의 마음을 알아보니 가슴이 떨렸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인레에의 사랑이 너무나 거세게 인규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수련도 끝났다. 기분이 내키면 연습만 하면 되는 것이다. 송인규는 인레와의 사랑에 몰두하면 되었다. 인레의 송인규에 대한 사랑도 날과 더불어 자랐다. 송인규와 인레는 크란파니가 돌아오면 솔직하게 고백할 각오를 했다. 크란파니의 충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이와 같은 행복을 얻기 위해선 그보다 더한 것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인규는 생각했다. 다짐했다.
크라파니가 돌아왔다. 송인규가 수련 결과를 알리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아니했다. 그리고 환각의 전달을 확인하고 나서,
“앞으로 몇 가지 요령만 더 가르치면 되겠지만 혼자서 수련할 수도 있으니 곧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하고, 크란파니는 그날로 맨달레이에 나갔다. 송인규의 귀국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귀국! 반가운 일이긴 했다. 그러나 인레를 어떻게 하면 될까. 송인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란파니는 여전히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만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도 묵지 않고 다시 맨달레이로 간 데는 그 영리한 육감으로 인레와의 관계를 눈치챈 데 그 원인이 있는 성싶었다.
인규는 인레더러 같이 가자고 했다. 하룻 동안을 생각한 끝에 인레는 같이 떠나겠다고 했다. 크란파니의 마누라가 될 자격을 이미 상실한 때문도 있지만 송인규와의 사랑이 더 절실하다는 이야기였다.
송인규의 양복, 내복, 구두 일체를 장만하고 귀국하는 데 필요한 서류까지 갖추어서 크란파니가 돌아온 것은 정확하게 일주일 후였다. 돌아오자마자 크란파니는,
“귀국하길 작정했으면 하루라도 빠른 것이 좋으니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나도록 하십시오.”
라는 듣기엔 독촉 같기도 한 말을 했다.
그날 밤 송별의 만찬이 있었다. 고백할 기회와 인레를 데리고 갈 의사를 표명할 기회를 찾고 있는 송인규에겐 안절부절 못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크란파니는 좀처럼 그런 기회를 주질 않았다. 미리 알고 있으면서 고의로 그런 기회를 봉쇄하는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크란파니는 감개무량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읍니다. 지금이 I953년 3월입니다. 버마도 독립했고, 우리 인도도 독립 했고, 당신의 나라도 독립을 했읍니다. 그러나 슬픈 일이 있었읍니다. 우리 인류의 지도자이며 인도의 영도자이신 마하트마 간디가 I948년 월 30일, 흉적의 흉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읍니다. 그리고 우리 인도가 독립했다고는 하나 통일된 독립을 하지 못하고 파키스탄과 분열된 독립을 했읍니다. 앞으로의 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당신 나라도 38선으로 남북이 갈라졌읍니다. 갈라진 채 독립을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3년 전부터 전쟁 상태에 있읍니다. 그러니 당신은 곧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쯤에 머물러 있다가 전쟁이 끝나거든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하루빨리 당신의 나라에 평화가 오도록 빌겠읍니다.”
다음엔 마술에 대한 주의가 있었다.
“앞서 보았겠지만 화분에 씨앗을 뿌려 순식간에 꽃을 피우는 마술도 역시 환각의 전달입니다. 어떤 꽃이건 하나를 정해서 꽃잎 하나하나의 소상한 무늬까지 외우도록 해서 먼지 스스로의 환각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은 닭의 마술과 같은 요령입니다. 충분한 수련이 되어 있으니까 정진만 하면 1년 안 걸려 그 마술도 마스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프를 거슬러 올라가는 마술은 실제로 로프를 타는 기술부터 연마해야 하니까 어려울 것이니 단념해야 합니다. 닭의 마술, 꽃의 마술, 두 가지면 훌륭한 마술사로서 행세할 수가 있고 다음은 스스로가 창안해저 좋은 기술을 엮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꼭 주의해야 할 것은 닭의 마술을 할 땐 달걀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언제나 열 개쯤 준비하고 있다가 사전에 어머니의 이미지를 눈앞에 떠오르게 하고 그 어머니가 가리키는 달걀을 가지고 행하도록 하십시오. 술중(術中)에 수탉이 나타나면 당신에게 커다란 불행이 닥칠 것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알려준 달걀이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쓴 달걀은 두 번 쓸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인도의 독립도 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면 생명의 은인에게 대한 나의 성의가 모자라지나 않았나 하고 두럽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아니 죽어서라도 당신을 잊을 순 없을 것입니다.”
고백할 기회를 놓친 채 송인규는 암자로 돌아왔다. 이 카타에서의 밤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벅찼지만 인레의 문제가 마음 속에 걸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떠나는 날 아침. 인레가 식사를 가져왔다. 어젯밤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종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다른 방에서 따로따로 잤다고 하고, 얘기할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송인규가 떠나기 전에 꼭 강단을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식사를 마지고 크란파니를 찾았다.
크란파니는 송인규에게 1천 차트, 한국돈으론 당시 백만 환 이상의 돈을 주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곧 떠나심시오. 그리고 인레를 데리고 가십시오. 어젯밤 얘기할까 했지만 그 뒤의 분위기가 인레를 위해서나 당신을 위해서나 또 나를 위해서나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보류하기로 한 겁니다. 인레의 여권까지 준비가 되어 있으니 수월하게 일본까지는 인레를 데리고 갈 수 있을 겁니다. 그 뒤는 당신이 알아서 고국엘 같이 갈 수 있도록 조처를 하십시오.”
그리곤 인레를 불렀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고이 간직했던 인레를 내가 가장 큰 은혜를 입은 당신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라면 나는 어떠한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내 생명이 필요하다면 드릴 각오도 있읍니다. 인레는 내 생명 이상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서약은 받아놓아야 하겠읍니다. 내 생명을 드릴 때는 서약이 필요 없겠지만 내 생명 이상의 생명이니 나는 꼭 당신에게서 서약을 받아야 하겠읍니다. 이 서약은 지고지대(至高至大)한 섭리의 신 앞에 하는 서약입니다. 만약 이 서약을 어기면 죽음 이상의 파멸이 온다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서약이란 다른 것이 아님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레 이외의 여자를 알아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레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든, 인레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인레 이외의 여자를 알아선 안 된다논 뜻을 아시겠지요?”
“알겠읍니다.”
“그럼 서약할 수 있겠읍니까?”
고백할 여유를 주지 않고 이렇게 처리하는 크란파니 앞에서 송인규는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송인규는 고개를 떨군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서약하겠읍니다.”
“내 일굴을 똑바로 보고 다시 한번 서약하십시오.”
송인규는 얼굴을 들었다. 크란파니의 눈이 쏘는 듯 인규의 시선과 부딪혔다. 혜지와 우수가 섞인 눈. 신비름다고밖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눈에는 체관한 것 같은 고요함과 통곡을 참는 것 같은 슬픔이 고여 있었다.
“인레 이외의 여자를 알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좋습니다.”
시원한 아침 공기 속인데도 크란파니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솟아 있었다. 크란파니는 조용히 인레에게 눈을 옮겼다.
“인레여, 내 사랑하던 인레여! 이 젊은이를 지구 끝까지에라도 따라가서 성심과 성의를 다해 사랑해라. 사랑해라. 너의 사랑을 받을 자질과 인격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고 그도 또한 너를 사랑할 것이다. 지금 네가 가는 나라는 불행하지만 네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될 땐 이 청년을 도와서 그 나라에 봉사하길 잊지 말아라. 아들딸을 낳거든 애국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인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용기를 갖도록 가르쳐라. 세계에 평화가 오면 나는 너를 데리고 세계 각국을 방문해서 내가 받는 갈채를 네게 선사하려고 했었는데 그 일까지도 이 청년이 맡아줄 것으로 믿는다. 가거라!
인레 ! 신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다 ”
카타에서 배를 탔다.
크란파니는 박아놓은 말뚝처럼 배 가는 방향을 보고 서 있었다. 인레는 몸부림치며 소리를 터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울었다. 인레의 몸부림이 크란파니의 심중에 어떠한 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생각하니 안다까왔다. 크란파니의 흰 티반이 시야에서 껴지자 송인규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철쇄(鐵鎖)로 묶은 속박에서 풀려나온 것 같은 안도감, 허탈감이었다.
송인규는 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산하(山河)에 눈과 마음을 쏟기로 했다. 10년이나 살던 곳이 아니냐.
푸른 하늘, 창창하게 양안(兩岸) 가득히 흐르는 강물. 조금 가니 정글이 나타났다. 정글에선 화려한 및 깔의 재들이 날고 있었다. 원숭이의 무리들이 끽끽거리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고 있었다. 강가에 있다가 배를 보자 밀림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가는 사자도 볼 수가 있었다. 긴 코를 물에 담그고 한가하게 서 있는 코끼리도 있었다. 곳곳에 그로테스크한 악어의 대가리도 보였다.
밤이 되니 하늘 가득하게 챤란한 별들이 남국의 정서에 서려 있었다.
하룻밤을 지나 맨달레이에 이르렀다. 맨달레이. 10년 전 새벽의 탈주가 선명하게 송인규의 뇌리에 차례차례로 인화(印晝)되어 갔다. 열쇠를 훔칠 때의 그 심했던 가슴의 동계(動悸). 전화를 걸 때의 공포. 영문을 돌파할 때의 그 전율. 그처럼 뽐내던 일본군은 모두들 어떤 꼴을 하고 맨탈레이를 떠났을까. 히르까와라는 중위는 살아서 고국에 돌아갔을까.
하여간 그 새벽의 탈주가 없었더라면 크란파니도 없고 인레도 이렇게 송인규 곁에 있을 수도 없고, 항차 마술사 송인규가 존재할 까닭이 없다.
송인규가 이련 회상을 이야기하자, 인레는 감격해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사강과 아바를 지날 적에는 10년 전의 이야기를 했다.
중부 버마에 들어서자 한동안 사막이 나타났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에 간혹 괴상한 얌괴(岩塊)가 나타나기도 했다. 암염(岩鹽)의 덩어리라고 했다. 그리고 곧 전개되는 일망무진의 청전(靑田)이 연속되는 곡창지대. 랭군에 도착한 것은 카타를 떠난 지 꼬박 8일 만이었다. 송인규와 인레가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선 약 일주일을 랭군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일주일 동안이 송인규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둘이는 낮이면 파고다 구경을 다니고 밤이면 극장엘 갔다. 모든 풍경이 송인규와 인레를 위해서 장만된 것처럼 즐거웠다.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타야 할 그날의 아침, 인레는 돌연히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어젯밤까지 그처럼 상냥하고 활발했던 인레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러더니 배를 타러 부두까지 갔을 때 인레는 울음을 터뜨렸다.
“난 버마를 떠나지 못하겠읍니다. 크란파니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읍니다.”
송인규는 인레의 돌변한 태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웬만한 설득을 가지고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인레를 버마에 두고 떠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크란파니의 발을 씻고 한평생을 지내도 좋습니다. 노예로서 지내도 좋습니다. 그러나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나지 맙시다. 이곳에서 삽시다.”
인레의 광란에 가까운 태도를 보고 송인규는 크란파니와 인레와의 관계를 얼핏 생각해 보았다. 20년 동안을 지내오는 동안 그들을 이은 유대란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의 사랑을 초월한 보다 숭고하고 보다 강한 사랑의 유대로써 두 사람은 묶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송인규는 비켜설 생각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 인레와 같이 있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 크란파니의 종이 되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송인규는 버마를 떠날 생각을 단념할까 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조국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에 사로잡히자, 허황한 눈으로 자기가 타야 할 배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레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다. 송인규와 같이 떠나고 싶은 생각과 남아야 한다는 생각과 송인규도 같이 못 떠나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럴 수도 없다는 생각 사이로 헤매고 있는 듯싶었다.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나 나는 크란파니를 두고 떠날 수는 없읍니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 인레를 보고 송인규는 나만이라도 진정해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 혼자 떠나자. 그리고 곧 버마로 돌아오면 될 게 아니냐.’
뒤에 생각했을 때 이것 이 커다란 함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송인규가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었더라면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레!”
송인규는 인레의 어깨를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크란파니 선생에게로 돌아가라. 그러나 당신은 어디까지나 나의 마누라다. 나의 사랑이다. 신생님도 너를 마누라로선 맞아주지 않을 것이다. 시종하는 종으로서 신생님을 모셔라. 나는 고국에 갔다가 곧 돌아올 게다. 돌아오고야 말 게다. 인레를 위해서.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
인레는 눈물어린 눈으로 송인규의 눈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송인규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듯이. 꼭 돌아온다는 그 말이 믿을 수 있는 말인지를 확인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예쁜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다.
"꼭 돌아오시지요?”
“돌아오고말고.”
인레는 와락 송인규를 껴안았다.
“꼭 돌아와야 해요 돌아오셔야 합니다.¨
송인규는 트랩을 오르고 인레는 부두에 남았다 인규가 배 위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자 인레는 그 자리에 쓰리지듯 주지앉아 버렸다.
배가 기적을 울리며 떠나기 시작했다. 인레는 두 팔을 배 쪽으로 내밀면서 울부짖었다. 인규는 입술을 깨물먼서 통곡을 견디었다.
‘정말 내가 다시 버마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인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에 생각이 미치자 인규는 미칠 것 같았다. 고국엘 갔다가 다시 온다는 말은 왜 했는가 후회가 되었다. 만약 그 말만 안했던들 최후의 순간엔 인레가 배를 탔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어 자기 가슴을 조각조각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휘말렸다.
청춘을 묻은 버마. 처음이고 마지막인 사랑인데, 송인규의 시야엔 아무런 풍경도 비치질 않았다. 그는 홍콩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정신착란 상태에 있었다. 겨우 그를 지탱한 것은 1년, 늦어도 2년 후엔 인레를 찾아오리란 지극히 막연하고도 애매한 희망 때문이었다.
홍콩에서 송인규는 처음 흥행을 했다. 호텔 명부에 마술사라고 기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호텔측의 요청을 받고 어떤 만찬회의 여흥에 참례했다. 송인규의 마술은 절찬을 받았다. 그 보수는 호텔 비용을 치르고 일본까지의 비행기표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직업 마술사로서의 시작은 대성공이었다.
그 그늘엔 유머러스한 일도 있었다. 송인규가 마술을 할 때 신문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그랬는데 현상을 해보니 제스처를 쓰고 있는 송인규만 있고 닭이 보이지 않았다. 신문기자들은 엉터리가 아니냐고 송인규를 회견석 상에서 힐난했다. 송인규는 위엄을 갖추고 딱 잘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술이란 환각의 전달이요. 나는 카메라의 눈에까지 환각을 전달할 순 없소.”
홍콩에서 일본으로 갔다. 송인규는 일본에서 한국의 동란이 끝나길 기다릴 참이었다. 그동안에 이때까진 용어(用語)로써 영어나 일본어를 써왔으니 한국말을 사용하는 마술을 익히고 동시에 ‘꽃의 마술’을 수련할 예정을 세웠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나날은 예상 외로 바빴다. 이곳저곳에서 초청이 왔다. 인기가 나게 되자 닭의 마술 하나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꽃의 마술을 수련할 겨를이 없게 되었다. 술도 마시게 되고 그러자니 생활 자체가 점점 해이하게 되어갔다. 인레에의 모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나 이별의 고통은 날이 감에 따라 무마되어 갔다.
이러한 어느 날 사건은 오오사까에서 발생했다. 전날 밤 술이 얼근하게 취한 그 기분으로 거리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버마를 떠난 후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은 이때가 치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좋질 않았다. 주취에서 오는 고통에 검쳐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흥행은 하오 1시에 있었다. 송인규는 목욕을 하고 한 꾸리미 달걀을 탁자 위에 놓고 어머니의 이미지를 염두에 떠올리려고 했다. 웬일일까, 그날따라 어머니의 이미지가 자꾸만 변하고 흐러졌다. 몇 시간이 걸려도 정신의 집중이 안 되었다. 시간이 다가왔다. 송인규는 달걀 꾸러미를 무대 뒤에까지 가지고 갔다. 거기서 애를 써도 되질 않았다. 드디어 출연할 시간이 왔다. 송인규는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들고 무대로 나갔다.
주문을 외우고 마음 속에서 부르면서 달걀을 관중들 앞에 보이고 나서 지금 곧 나타날 닭의 모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환각이 흐트러진 것 같은 느낌에 초조했다. 그러나 닭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송인규는 자기도 므르게 “악” 소리를 질렀다.
나타난 닭은 수탉이었다. 수탉이 나타나면 화가 닥친다는 크란파니의 말이 뇌리를 스치자 현기증이 났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수탉의 눈, 그 눈은 카타에서 마지막의 이별을 할 때 크란파니가 송인규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이었다. 슬픔을 머금은 듯한 그 눈, ‘인레 외에 다른 여자를 알아선 안된다’는 서약이 되살아났다. 모두가 순식간의 일이었다. 송인규는 왼편 눈을 예리한 주둥이에 의해 칵 찍히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자, 두 손으로써 눈을 가렸다. 쥐고 있던 달걀이 이마에 부딪히고 그 달갈에서 나온 액체가 왼눈에서 나온 검붉은 피에 섞여 송인규의 앞가슴에 흘러내렸다.
송인규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어느 안과병원에서였다. 의사는 백만 명 가운데 한 번 있을 수 있는 사례(事例)라고 했다. 심한 정신적 충격이란 이유밖엔 그 돌발 사건을 설명할 선례(先例)와 재료가 없다는 것이다. 송인규의 왼쪽 눈은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다.
실명한 후 송인규는 하숙방에 침거하며 크란파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용서를 받기 전 마술을 할 생각은 완전히 없어졌다. 낮이고 밤이고 송인규는 크란파니의 이미지를 찾았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송인규의 눈앞에 나타나는 크란파니는 이별의 아침 송인규를 바라보던 엄숙한 그 얼굴이며, 한다는 말은 ‘이 서약을 어기면 죽음 이상의 파멸이 온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선언일 뿐이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갔다. 한국의 동란은 끝났다고 들었다. 크란파니의 용서를 얻어 다시 마술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으로서 귀국하려는 희망은 버려야 했다. 수중에 돈은 떨어지고 거지의 몰골이 되었다. 송인규는 구걸하듯 여비를 마련해서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크란파니의 용서가 내린 것은 그 배 위에서였다. 거지의 꼴로서 돌아가면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하실까, 하고 상심에 젖은 마음으로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송인규는 크란파니 선생을 불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나타나기에 힘들었던 크란파니가 이웃방에서 나타나듯 선명한 이미지로서 송인규 앞에 섰다. 용서를 비는 송인규의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크란파니의 얼굴엔 수심 이 있었지만 동시에 미소도 있었다. 그리고 짤막하게 말했다.
“용서한다. 코리어의 친구여!”
13년 만에 돌아온 고국이었다. 23세에 고국을 떠나 36세에 돌아온 셈인데 오오사까의 사건 이후 송인규는 눈에 보이게 초췌해졌다. 누구도 36세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50가까운 사람으로 봤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를 위시해서 위의 형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아우는 동란 통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을 모른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조카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겨우 몸을 붙일 만한 것이래야 사촌동생의 집이었다. 사촌동생과는 인규가 지원병으로 가기 전 각별히 의좋게 지낸 사이이기도 했다. 그 사촌동생 집에서 농사를 거들며 3년을 지냈다. 가난한 집에 얹혀 살자니 그저 딱하기만 했으나 자기가 마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또한 할 생각도 없었다. 이러한 정황 가운데 사촌동생의 아내가 병석에 눕게 되었다. 급히 수술을 해야만 할 명이라고 했다. 30만 환쯤 있어야 급한 빚을 갚고 사촌 계수의 병치료를 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송인규는 지원병 시절 비교적 잘 산다고 들은 친구들의 이름들을 기억 속에서 캐내려고 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K읍에서 산다는 옛기억을 더듬어 인규는 K읍에까지 갔었다. K읍에 가 보니 그 친구는 사변 통에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의 낙망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실신한 사람 모양 거리를 해매고 있는데 눈에 뜨인 것이 ‘해동 써커스’의 깃발이었다. 송인규는 달걀가게 앞에 가서 우두커니 섰었다. 어머니의 이미지가 나다나 달걀 하나를 가리켰다. 달걀을 하나 사들고 송인규는 ‘해동 써커스’의 단장을 찾았다. 마술을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한 것이다.
송인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나는 다음 몇 가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단장 앞에서 한 마술은 썩 잘 되었단 말이지요?”
“그랬읍니다.”
“그럼 왜 여기 와선 하지 않았죠?”
“부끄리운 얘깁니다만 K읍에서 단장한테 돈을 받지 않았읍니까. 우편국에 가서 그걸 사촌에게 보내놓으니 아주 마음이 가벼워졌읍니다. 그래 조금 남긴 돈을 가지고 어떤 주막집엘 들렀지요. 오래간만에 마신 술이라 기분좋게 취했읍니다. 취한 김에 그날 밤 그 주막에 있는 여자허구 또 외도를 했읍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의 일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짝하는 느낌이었읍니다. 도망을 갈까 했지만, 다시 크란파니 선생께 애걸하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게다가 그처럼 좋아 날띄는 단장 내외분을 배신하기 싫었읍니다. 기가 막힙디다. 이대로 마술을 했다간 틀림없이 수탉이 나올 것 같았읍니다. 남은 눈 하나 실명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눈, 닭의 눈을 상상하니 겁에 질렸읍니다. 나는 그때부터 크란파니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며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용서를 빌었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이미지 자체가 흔들리는 데다가 나타나셔도 그 슬픈 눈과 엄한 모습뿐으로 그냥 사라져버렸읍니다. 이곳에 오니 비가 오지 않겠읍니까. 나는 살았다고 생각했지요. 그동안에 용서를 빌 수도 있을 거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읍니다. 환장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국민학교에서 마술을 하라는 청을 받았으니 내 마음은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단장의 부인이 간청을 할 때 공연히 돈을 가지고 떼를 썼지요.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수작이었지요. 그러면서도 눈을 감은 채 크란파니 선생을 마음 속에서 부르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허사였읍니다. 나는 수탉이 나와 나의 남은 눈이 실명하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할까 하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져보았읍니다. 그리나 마술이란 환각의 전달인데 그런 상황으로선 수탉도 나오지 않을는지 모른다논 의구가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때의 나의 마음은 지옥이었읍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파멸이란 뜻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읍니다. 단장과 단원에게 인간 아닌 사람이 되고, 게다가 생면부지한 선생님에까지 누를 미치게 하고 크란파니 선생의 고귀한 은혜를 짓밟고 인레에의 사랑을 모독했으니 나는 죽어 마땅한 인간입니다.”
“그런 얘기를 미리 했더라면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니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결국은 하기 싫으니까 둘러대는 변명이라고만 생각했지 별수 없었을 것 아닙니까. 난 봉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밤이 깊었다. 옆방의 곡마단원들도 모두들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돈 10만 환을 꺼내 노자라도 하라고 주고 그 고난의 역정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일렀다. 송인규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송인규를 보고 하마터면 잊을 삔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그 히로까와 중위라는 사람의 소식을 알아보았소?”
“알아볼 필요조자 없읍니다. 굉장히 높은 사람이 되어 있읍니다.”
이렇게 답하는 승인규의 입 언지리에 쓴웃음이 번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몇 친구에게 했었다. 그랬는데 그 중의 한 친구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 넌 마술을 봤느냐?”
“남은 한 눈을 마저 잃을까봐, 아니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겁에 질려 있는 사람을 보고 마술을 하라고 할 수 있겠던가.”
이렇게 답을 하니까, 그 친구는 썩 잘 꾸며진 이야기이긴 한데 아무래도 네가 한 수 넘은 것이라고 한다. 그 친구의 말은 말[馬]도 없는 곡마단에서 갇혀 밥값을 치를 방도가 없게 되어 놓으니 돈푼이나 있어 보이고 인심이 좋을 성부른 너를 이용하기 위해 그런 연극을 꾸몄을 거라는 것이다.
“며칠 같은 집에 있었으니까 너라는 인간을 주인에게 들어서라도 대강 짐작했을 것 아냐.”
하지만 송인규란 사람의 인품이나, 단장과 단원들의 서슬이나, 송인규가 한 이야기의 결구(結構)와 밀도를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고(나는 아직도 아니 시간이 갈수록 송인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처럼 세상과 사람을 의심한대서야 어디 샅 맛이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 친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바루 마술이란 말이다. 환각의 전달이란 말이다. 마술은 화술(話術)이라고 하더라며 ? 그런 뜻에서 송인규란 자는 틀림없는 마술사란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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