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사리
사리는 빠알리어로 사리라(sarīra)에서 온 말이다.
sarīra는 무슨 뜻인가?
빠알리어 경전에 등장하는 sarīra는 몸, 시체, 유골로 사용되었다.
대반열반경에 붓다의 반열반 당시를 서술한 장면에서 붓다께서 존체를 sarīra라고, 붓다의 존체를 화장하고 나온 유골을 sarīra라고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리는 유골을 의미한다.
붓다의 존체를 화장했을 때, 일곱 부족과 한 개의 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사리분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사리분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사신과 함께 온 군대가 창칼로 무장하고 전쟁을 준비하였다. 결국 도나 바라문이 중재하여 사리는 일곱 부족과 한 나라에 분배되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여덟 개의 사맄탑이 생겨났다. 그것이 근본팔탑이다.
그 근본팔탑을 세운 부족과 나라는 다음과 같다.
꾸시나라의 말라족, 웨살리의 릿차위족, 까삘라의 사끼야족, 알라깝빠의 불리족, 라마의 꼴리야족, 웻타디빠의 바라문들, 빠와의 말라족 그리고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다.
이후 아소까 왕이 근본팔탑을 열고 사리를 꺼내, 인도 전역에 팔만 사천 탑을 세우고 붓다의 사리를 나눠 봉안하였다. 아소까는 불교를 인도 전역에 전파하기 위해 사리탑 프로젝트를 진행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붓다의 사리는 뿔뿔히 흩어져 결국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아소까 왕이 라마의 꼴리야족이 세운 사리탑에서 사리를 꺼내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용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딛쳐 사리를 꺼내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산치 대탑의 돌난간에는 이 장면을 묘사하는 부조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지금도 네팔 룸비니 가까이에 있는 라마가마(현재 람그람)에 가면 아소까왕이 꺼내지 못한 사리탑을 볼 수 있다.
대영제국 시절에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붓다의 유적지 발굴에 경쟁이 붙었다. 그중 한 명인 윌리엄 펩페가 현재 삐쁘라와의 한 언덕을 파내려갔을 때 석관을 발견하였다. 그 석관 안에 네 개의 사리용기와 한 개의 보석 용기가 있었다. 그중 한 개의 사리용기에는 명문이 있었다.
"Iyaṃ salila nidhane Buddhasa bhagavate sakyanam"
"이 사리함은 존귀하신 사끼야족의 부처님에 속한다."
내가 고대 방언인 서북인도의 쁘라끄리트어 방언을 알지 못해 이 해석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붓다의 사리라는 명문이 새겨진 사리함이 발견된 것은 놀라운 발견이고, 이 사리함에 들어있는 사리는 붓다의 사리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붓다의 사리다!'라고 소리높여 워쳐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 부처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사리탑 옆의 승원터에서 "까삘라왓투의 비구 상가"라는 명문이 새겨진 인장이 발견됨으로 이곳이 경전에 나오는 까삘라왓투임이 중명되었고, 그 사리탑이 까삘롸왓투의 사끼야족이 세운 붓다의 사라탑임이 증명되었다.
이것이 델리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옛날에는 박물관 안 한쪽 귀퉁이에 모셔져 있었는데, 이번 성지순례에는 박물관 밖에 따로 지어진 붓다의 사리 전시실에서 붓다의 사리를 친견하였다.
성지순례를 가면 근본팔탑 중에 네 곳을 볼 수 있다. 라즈기르의 아자따삿뚜가 세운 사리탑, 바이샬리의 릿차위족이 세운 사리탑, 람그람의 꼴리야족이 세운 사리탑, 삐쁘라와의 사끼야족이 세운 사리탑이다. 라자가하의 아자따삿뚜 왕이 세운 스투파는 기단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바이샬리의 릿차위족이 세운 스투파는 터만 남아있고, 거기서 발견된 사라함에는 재만 남아있었다. 그 재는 빠뜨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람그람의 꼴리야족이 세운 스투파는 아직 발굴이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붓다의 사리가 발견된 삐쁘라와의 사끼야족이 세운 스투파가 있다.
당신이 델리박물관에 가면 붓다의 진짜 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진짜 붓다의 사리이구나라고 감동이 밀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 사리가 결코 진주나 사파이어 보석처럼 빛나는 사리가 아니고 그냥 유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얀마 까바예 파고다에 붓다의 사리가 한 과 모셔져 있다. 당신이 미얀마 까바예 파고다에 가서 5불을 지불하면 직원들이 붓다의 사리를 당신의 이마에 정대해준다. 그 붓다의 사리도 물론 유골이다. 이 사리도 사끼야족이 세운 스투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미얀마에 있는 유일한 붓다의 사리이다.
스리랑카의 불치사에 모셔져 있는 붓다의 치아사리는 옛날 남인도의 깔링가 왕국에서 증여한 것이다. 어떻게 붓다의 치아사리가 깔링가 왕국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치아사리가 스리랑카의 국보 1호에 해당한다.
그럼 여기서 우리나라의 적멸보궁과 절마타 탑마다 붓다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데 이건 어찌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생각해보라. 인도 본토에도 델리박물관에서 겨우 붓다의 사리를 볼 수 있다. 미얀마와 스리랑카에도 붓다의 사리가 겨우 한 과 모셔져 있다. 그 미얀마와 스리랑카는 인도와 인접해있고, 국민의 90%, 70% 이상이 불교도이다. 역사적으로 미얀마와 스리랑카의 역대 왕들도 신심이 대단한 불교도였다. 역사적으로 보드가야의 대탑은 수천 년 동안 스리랑카와 미얀마 왕들이 보수 사절단을 보내 관리해왔다. 그런 나라도 붓다의 사리가 한 과 모셔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리 붓다의 사리가 많을까?
첫댓글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면 형상과 기복에 만연한 한국 불자들의 현주인지 ᆢ
바람이 차갑습니다
감기조심하십시요
사두ㅡ사두ㅡ사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