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간 대화와 이해를 위해 노력해온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이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교회 안팎으로 신학과 영성을 다루는 연구소들이 많지만, 특별히 ‘영성의 토착화와 종교 간의 학문적 대화’를 연구 주제로 삼는 곳으로는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이 유일하다. 오는 9일 열리는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앞두고 연구원장 최현민 수녀를 만나 종교대화의 의미와 그간의 성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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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장 최현민 수녀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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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대화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현민 수녀는 먼저 “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희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시지만, 아버지는 철저히 유교 전통 안에서 살아오신 분이셨어요. 할머니는 불자셨고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었고, 여기에 그리스도 신앙도 받아들여진 것이죠. 한국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이 이제 겨우 230년 남짓 되었고, 한 가정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 속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으로 성장하게 돼요. 그러니 영성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종교뿐만 아니라 신앙의 뿌리 근저에 있는 나의 문화적 영성 또한 이해해야 합니다.”
종교 간 대화는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영성의 또 다른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 수녀는 의도적으로 ‘다른 종교’라는 표현보다 ‘이웃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이 여러 종교 중에서도 특히 유교와 불교의 영성을 깊이 있게 연구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양에서 전해온 천주교 신앙과 그 신앙이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의 문화, 이 두 가지의 조화가 바로 연구소가 주요 연구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영성의 토착화’라 할 수 있다. 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 수녀는 그 자신도 “이웃 종교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그리스도교 영성이 더 깊어지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서양에서 온 교회의 언어들은 마치 옷에 맞지 않은 양복을 입은 것처럼 내 피부에 완전히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불교의 언어를 접하고,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신앙의 언어와 만나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어요. 불교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계기가 됐어요.”
연구원이 설립된 1993년 당시 천주교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의 제안으로 월간 <영성생활>을 2년째 발간하고 있었다. <영성생활>은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국 문화에 토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업이었는데, 한국인의 문화와 영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불교와 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씨튼연구원 초대 원장이자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인 김승혜 수녀는 종범 스님(전 중앙승가대학 총장), 최근덕 성균관장, 개신교 신자인 길희성 명예교수(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종교인 모임을 결성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를 열기로 마음을 모았다. 세미나 참여 인원이 늘어 10명가량의 각 종단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70번째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종교 모임 참석자들 중에는 20년 동안 계속 나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중간에 나이가 드셔서 은퇴하신 분들의 자리는 젊은 학자들이 메웠고요. 보통 ‘종교대화’ 같은 주제의 행사들은 일회성으로 끝나는데,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서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런 변화는 그분들이 교단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이어지겠죠.”
종교인들의 전문적인 대화 모임 이외에도 연구원에서는 매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종교대화 강좌도 20년째 열고 있다. 강좌는 종교인 모임의 내용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다양한 종교인들을 강사로 초대하는데, 올해의 강좌 주제는 ‘몸, 마음,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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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9일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이 주최한 ‘종교대화 강좌’에서 원불교 권도갑 교무가 강의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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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설립 이후 10여 년간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를 비교해 서로를 배우는 데 집중했고, 2004년부터는 ‘생태’를 화두로 종교가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왔다. 이에 따라 종교대화 강좌도 2007년부터 작년까지 ‘생태 위기와 종교적 대안’, ‘각 종교의 생태영성’, ‘생태영성과 공동체운동’ 등을 주제로 삼았다. 올해는 새로운 화두를 모색하는 기점으로, 특히 최 수녀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들로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종교는 행복이 소유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가르치셨고, 부처님은 ‘적게 가져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생태계 파괴와 공동체 와해의 문제도 여기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많은 분들이 그러한 지혜를 종교 간의 대화 속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구원의 활동 20년을 되짚어보면서 최 수녀는 교회가 종교대화에 있어서 아직 소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 수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종교대화의 문을 열었지만, 문만 열어두고 그 이후의 활동은 소극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국 천주교도 사제와 평신도 양성 과정에 있어서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교대화 씨튼연구원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9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견지동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하나뿐인 지구, 생태문제와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열린다. 유교와 원불교, 그리스도교 등 각 종교에서 바라본 자연관과 인간관에 대한 발표와 종합토론을 통해 생태 문제 해결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모색한다. (문의 / 종교대화 씨튼연구원 02-741-2353, www.setondialo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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