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란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명백한 사실이 아닌데도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에 의해서 거짓된 정보가 흘러가고, 때로는 나와 좋은 관계에 있던 사람마저도 그러한 이야기를 흘려듣고 나에 대해 안색(顔色)을 바꾸는 일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나를 신뢰했던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등의 매체가 발달되어 있어서 가짜 뉴스나 확인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더 쉽게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 가짜 뉴스를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목격하게 됩니다.
욥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독백을 늘어놓자, 가장 연장자로 추정되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입을 열어 욥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1절). 엘리바사의 말은 4장에 이어 5장까지 계속됩니다. 엘리바스는 “누가 네게 말하면 넌 짜증이 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라는 말로 욥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2절). 욥의 탄식을 듣고 있던 엘리바스는 아마도 ‘듣자 듣자, 하니 한마디 안 하고는 안 되겠네’하는 마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엘리바스는 일단 욥이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훈계도 하고, 힘없는 자들을 붙잡아 다시 힘을 얻도록 도와주었고, 어려운 자들을 도와 용기를 주었다는 것을 언급하며(3절, 4절), 이제 욥 자신이 그러한 어려움을 겪게 되니 더 힘들어하고 낙망하는 것을 보니 참 아이러니(irony)하다고 말합니다(5절).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살려고 애썼던 욥이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되묻습니다(7절). 엘리바스는 욥을 책망하거나, 비아냥거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엘리바스는 욥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지금 욥이 고통을 당하며 보이는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엘리바스의 말은 한마디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입니다. 지금 고난과 고통이 찾아온 것은 괜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 그러한 고통이 찾아온 것이라는 말입니다(7절~11절). 그리고 엘리바스는 자신이 경험한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합니다(12절~21절). 이것은 엘리바스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환상인데,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혹은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엘리바스의 이 환상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았을 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보아도 무방한 내용입니다. 물론 이 환상을 통해 본 내용들이 하나님께서 욥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합니다. 그저 그 전에 보았던 환상을 욥의 상황을 보면서 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바스가 환상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한 진리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보다 의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17절). 심지어 하나님의 종이나,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들조차 하나님의 의(義)에는 비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18절), 인생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이야 하나님과 견줄 수조차 없다는 말씀입니다(19절~21절). 그러니 인간에게서 의로운 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마땅하며, 그런 의미에서 욥이 아무리 의롭다한들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으며, 그렇기에 욥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욥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엘리바스의 변론은 꽤 논리적이고, 성경적 진리에 타당한 내용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엘리바스의 변론과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평가하셨던 내용이 서로 상충(相衝)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매우 정직하며 온전하여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평가하십니다(욥 1:8; 2:3).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욥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 엄청난 고통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논지(論旨)는 맞는 말이며, 명확한 진리였지만, 엘리바스의 말은 욥에게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엘리바스의 말이 욥에게 해당된다고 한다면 엘리바스가 하나님보다 위에서 욥을 평가하고 정죄한 것이 됩니다.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살폈어야 했습니다. 엘리바스가 신비스러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다면, 이번에도 하나님께 욥의 상황에 대해서 묻고 욥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지에 대해 하나님께 여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일반적 진리로 욥의 상황에 기계적인 적용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그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떤 상황에 적용해야 할 땐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묵상이 없이 너무 쉽게 단정 짓고 조언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조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확실한 진리여도, 그 진리가 상황에 걸맞지 않게 잘못 적용되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바스나 욥의 다른 친구들도 섣불리 욥에 대해 조언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욥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심정에 공감(共感)하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아마 욥기가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의 마음을 받아주고, 계속하여 그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공감하며 다독거렸다면 오히려 욥이 쉽게 그 해답을 찾아서 스스로 안정을 더 찾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고, 훈수(訓手)를 두려고 합니다. 그들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을 먼저 갖는다면 섣부른 교훈이나 훈수, 조언보다 상대방이 훨씬 더 옳은 길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과 고통과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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