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울산 '남창장'
부모님과 함께 장터 구경을

넉넉하다.
그리고 여유롭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의,휴식과 같은 하루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늦은 오후에 찾은 남창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그래도 짐을 꾸리는 상인들의 손놀림은 굼뜨다.
설렁설렁 느긋하기만 하다.
큰 장터를 닮은 걸까?
아니면 5일 후 다시 만날 기약 때문일까?
여하튼 편안한 모습의 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남창장 가기 전,해운대 본가에서 포도주 한 잔 앞에 놓고 아버지와 앉았다.
"아버지. 근처 5일장 중 크고 볼거리 많은 곳 혹시 없을까요?"
당신께서 직접 담그신 포도주 한 잔 탁 털어 넣으시고는
"좌천장과 남창장이 좋지. 그중에도 남창장이 큰 장터라 볼거리가 많을 게다.
너 어머니도 거기서 참기름을 짜먹는데 차비는 빠진다더라."
"그럼 구경삼아 같이 가보시죠?"
은근히 아들 장터 취재가 궁금하신 터라 "그럼 마실 삼아 가볼까?" 하시며 외출 준비를 하신다.
해운대-울산 간 도로를 시원스레 달린 지 20여분 남짓 됐을까?
좌천,장안 너머 온산읍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우회전하여 읍으로 들어선다.
바로 남창역이 나오고 그 인접으로 남창장이 들어서 있다.
남창장은 동부 경남에서도 장의 규모로나,거래되는 물량으로나 크고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각종 산지 농산물이 집하되고 바다에 인접하여 해산물도 풍부한데다 과일과 채소도 지천을 이룬다.
또한 장터 한쪽 넓은 공터에는 개를 비롯해 닭,오리,토끼 등의 가축장도 따로 서는데,
그 규모가 구포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가축중개인이 직접 중매를 할 정도인 가축장에는 오골계,칠면조 등 보양관련
가축은 물론 기러기,청둥오리 등 야생조수도 판매하고 있다.
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서 바삐 한 가게로 불쑥 들어가신다.
뒤이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기서 참기름 짜먹는다. 니한테 주는 참기름도 여기서 짠다 아이가"하시며
찬미참기름집 아주머니를 극구 소개하신다.
어머니께서 소개하셔서 해운대의 단골도 꽤나 생겼다며 수줍게 웃는다.
계속 어머니께서는 바쁘시다.
싸전에 들어서자 백발의 촌부에게 안부를 묻는다.
촌부는 그저 빙긋이 웃는다.
참으로 순박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무슨 곡식이 이다지도 많을까?
자루자루마다 온갖 곡식이 가득가득한데,그런 자루가 사오십여개는 족히 될 것 같다.
슬슬 장터 이곳저곳에서 파장한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전부리를 시작한다.
영락없는 마을 회식자리다.
점심밥을 팔고 한숨 쉬던 국밥집도 덩달아 바빠진다.
상인들의 한잔 술안주거리로,뒤늦은 장터 손님의 요깃거리로,국밥집은 바쁘다.
서너군데 되는 장터국밥집의 무쇠가마솥에서 일제히 구수한 돼지사골 국물이 슬슬 끓어오른다.
시끌벅적 일상을 마친 사람들의 불콰한 얼굴에도 취기가 따라서 끓어오른다.
넓은 장을 돌아다니느라 목이 마르다.
콩국전 앞에서 아버지와 마주 서서 콩국 한 그릇씩 마신다.
한입 가득 차가운 콩국으로 더위가 씻은 듯 사라진다.
장을 떠나며 옛날 찐빵 2천원어치도 떨이로 산다.
날은 더워도 찐빵은 뜨거워야 제 맛이다.
맛있게 잡수시는 부모님을 보며 나 또한 배가 불러온다.
입가에 따스한 온기가 아롱아롱 묻어온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다.
가족과 함께 간절곶으로,진하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즐기다가 출출할 때쯤이면,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남창장엘 가보자.
그곳에는 무쇠가마솥에서 슬슬 끓어오르는 장터국밥이 있고,쫄깃한 찰옥수수가 있고,달콤한 옛날 찐빵이 있다. 옛날 먹거리로 그 시절 추억 여행을 떠나가 보는 남창장에는,우리 부모님이 정말 함께 계신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