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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압록강, 그리고 본계수동
4박 5일, 자연과 역사 속에서 만난 특별한 여행
2026년 9월 4일 ~ 9월 8일
설렘을 안고 떠난 4박 5일의 중국 여행.
백두산의 장엄한 자연과 고구려의 역사,
그리고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우리의 아픈 현실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었다.
✈️ 9월 4일 — 심양에서 통화로
12시 45분 인천을 출발해
13시 40분 심양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약 3시간을 달려
고구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통화로 이동했다.
신압록강대교를 바라보며
개통을 앞둔 현장을 둘러보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니
이번 여행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9월 5일 — 백두산 북파, 천지와의 만남
버스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북파로 향하고,
정상부근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후,5분정도 걸어서
천문봉으로 올라갔다.
백두산 북파 천지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북파 천지.
신비롭게 모습을 드러낸 천지를 바라보는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장백산 장백폭포:
가이드님이 베푼 삶은 계란
장백폭포로 향하는 계단길은 다소 고단했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온천군과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마침내 아름다운 장백폭포를 마주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인증사진을 남겼다.
9월 6일 — 백두산 서파, 1,442개의 계단
백두산 천지의 광명 을 찬탄합니다.
계단을 걷다가 잠시 쉬어 갑니다.
가마를 타고 가는 분,
백두산 서파 :계단을 걸어갑니다
버스를 타고 약 40분을 이동해 서파로 향했다.
천지까지 이어지는 1,442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기에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가마를 탈까, 직접 걸어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쉬엄쉬엄 내 두 발로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가마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조금 더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충분히 걸을 만했다.
다만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혹시 오늘은 천지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편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맑게 열린 하늘과 눈부신 구름,
그리고 천지에 비친 아름다운 반영!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백두산 천지 정상에서 산들님들의 여유!
이토록 맑고 아름다운 천지를 만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동안과 충분히 휴식하는 동안에는 맑은 날씨 임에 감사 했다
하산길 주변 하늘이 다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회색빛 구름으로 뒤덮였다.
많은 인파 들 틈에서도 회장님의 지시대로 일행모두 흡족히 기념사진을 촬영 할수있었고 ,천지의 청정한 백두산 천지를 마음 껏 담고 품고,
아름다운 자연의 은혜에 감사 드렸다.
구름 덮인 하늘 바라보며
서둘러 하산했다.
금강대협곡 — 어린아이의 순수한 표현
이어 V자 형태의 금강대협곡 숲길을 걸었다.
깊게 파인 협곡과 기암괴석을 바라보던 한 어린아이가
바위를 보며 **“우주의 이빨 같다”**고 표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의 순수하고 기발한 감성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른의 눈으로 보던 자연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순간이었다.
9월 7일 — 단동과 압록강, 그리고 평화를 생각하다
압록강 배 에서 북한 풍경을 바라봅니다.
약 3시간 30분을 달려 단동으로 이동했다.
고구려 시대에는 염난수라고 불렸다고 전해지는
역사의 강,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가며
끊어진 다리를 지나 북한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북한 주민들,
차가 지나가는 모습과 옥수수밭,
강 건너편의 북한 들판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숙연해졌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한강의 물줄기처럼 이어져야 할 강이
어느 순간 경계가 되어버린 현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하나가 될 그날과 한반도의 평화를
조용히 기원했다.
압록강 단교:
압록강단교를 직접 걸어보고
사진도 남겼다.
북한에서 들어오는 기차
철교 아래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북한의 아파트를 바라보며 걷고,
압록강 물에 손도 씻어보며
역사와 현실을 온몸으로 느껴본 하루였다.
9월 8일 — 본계수동, 자연이 빚은 지하세계
마지막 여행지는 본계수동.
버스로 약 2시간 30분을 이동해
배를 타고 신비로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세월 동안 물과 바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동굴의 모습.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세계에 감탄하며
4박 5일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리고 심양공항으로 이동해
18시 출발 비행기에 탑승할때부터
여행 마친 우리들을 환영 이라도 하듯 맑은 하늘에 아름다운 석양과 마주했다.
감사 하게도 창가 좌석이 선택되어
심양 출발에서 인천 도착 전 까지
아름다운 노을 을 품어
행복한 여행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멋진 여행 이었다
여행을 마치며
백두산 천지의 푸른 물결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아름다운 반영,
장백폭포의 웅장한 물줄기와
금강대협곡의 신비로운 바위들,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의 모습과
그 강물에 담긴 우리의 역사,
그리고 본계수동 깊은 곳에서 만난
자연의 신비까지….
이번 4박 5일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사람과 인연을 함께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은 여행을 함께 만들어 주신
산들투어 어랑 김주호 회장님,
그리고 함께 걸으며 웃고 추억을 나눈
산들 회원님들,
거북이산우님들,
성곡 산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인연에 감사하고,
함께한 소중한 추억에 감사하며,
모두 늘 건강하시고
멋진 백두산 천지를 품은 정기로
행복한 날들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박5일 여행동안 함께 동행하여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백두산과 본계수동 등 여행가기전에 공부했어야 했는데
오늘에야 역사와 유래등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본계수동
본계수동의 역사와 유래
1.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동굴 본계수동은 사람이 만든 동굴이 아니라, 석회암 지층을 지하수가 아주 오랜 세월 녹여 만들어진 자연 석회암 동굴입니다.
지질학적으로 약 40만 년 전부터 동굴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연구되어 있습니다.
2. 옛 이름은 ‘사씨왜자동(谢家崴子洞)’ 옛날 이곳은 **‘사씨왜자(谢家崴子)’**라고 불렸고, 동굴도 사씨왜자동이라고 불렸습니다.
‘왜자(崴子)’는 현지에서 산이나 물길이 굽어지는 지형을 가리키는 말로 설명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청나라 강희제 때 ‘사 노구두(谢老疙瘩)’라는 농민이 빚쟁이를 피해 동굴에 숨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씨왜자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다만 이것은 전설·민간 이야기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3. 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조사 1960년대부터 동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와 탐사가 이루어졌고, 1983년 5월 1일 일반 관광객에게 정식 개방되었습니다.
4. 지금은 중국 국가 5A 관광지 본계수동은 현재 국가 5A급 관광지이며, 동굴 전체 길이는 약 5,800m, 관광객에게 개방된 구간은 약 2,800m입니다.
특히 동굴 속 지하수를 배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 가장 유명합니다.
**“수십만 년 동안 물이 바위를 조금씩 녹여 만든 거대한 지하 궁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굴 안은 일 년 내내 약 12℃ 정도로 비교적 서늘하고, 지하수가 끊임없이 흐릅니다.
그래서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지면서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계수동(本溪水洞)
수십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신비로운 지하 세계
물과 바위가 만든 자연의 걸작을 만나다.
백두산 이름의 유래
**백두산(白頭山)**은 한자로
‘흰 백(白) + 머리 두(頭) + 산(山)’, 즉 **‘흰 머리를 가진 산’**이라는 뜻입니다.
산 정상부가 흰 부석과 화산암, 눈 등으로 덮여 멀리서 보면 하얀 머리를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설명됩니다.
예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백두산(白頭山) — 흰 머리를 가진 산
장백산(長白山) —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름
태백산(太白山) — 아주 희고 큰 산이라는 뜻으로 옛 기록에 등장
불함산(不咸山) — 고대 문헌에 나타나는 이름
우리 역사 속 백두산
백두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산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백두산 일대가 국경과 관련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가 국경을 확인하기 위해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운 일도 있습니다.
또한 백두산은 우리 문학과 민속에서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 독립운동과 백두산
근현대사에서도 백두산과 만주 일대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요한 활동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백두산은 오늘날에도 많은 한국인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와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천지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거대한 칼데라에 물이 고여 형성된 화산호입니다.
현재의 천지는 약 10세기경 있었던 대규모 화산 분화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화산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백두산은 ‘흰 머리를 이고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백두산이라 불렸으며, 오랜 세월 우리 역사·문화·국경사·독립운동과 함께해 온 상징적인 산입니다.
백두산, 역사의 숨결을 품은 산
하얀 머리를 이고 우뚝 솟은 산,
그래서 이름도 **백두산(白頭山)**이라 했던가.
오랜 세월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 왔습니다.
옛사람들은 이 산을
태백산, 불함산이라 부르기도 했고,
조선과 청나라가 국경을 확인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장엄한 산자락에 서서
푸른 하늘과 신비로운 천지를 바라봅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산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지나온 역사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백두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산.
이번 여행에서 마주한 백두산의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역사와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백두산의 웅장한 풍경과 여행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쉽지 않은 여정을 무사히 다녀오시고, 생생한 여행기와 멋진 사진까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함께 백두산을 여행한 듯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