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글/유 영재(호주 거주)
집착이란 말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나 불자(佛子)들에겐 매우 부정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불가(佛家)에선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고 괴로움은 집착에서부터 온다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의 가르침대로라면 우리의 일상사에서 모든 욕심과 집착을 끊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원리다. 그러나 과연 지금 같은 생활에서 집착을 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있을지 많은 의문이 든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사회에서 집착을 끊고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 한계에 도전하듯 죽을힘을 다 해 질주하는데 그 경쟁을 그만두라는 것은 사회의 낙오자가 되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보며 현실에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이 과연 진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하다가 안 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삶, 조그만 시련에도 도망치듯 보따리를 싸는 삶, 오히려 목적에 매진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삶, 그것이 진정 집착을 버린 삶이란 말인가? 그러면 성불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무엇이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죽을둥 살둥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은 무엇이며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말 못하는 짐승들도 먹이를 위해 싸움을 하고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데 그럼 그런 것들도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그러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의 의식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스님의 책에서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평생을 찾아 헤매던 진리를 발견한 것 같이 뛸 듯이 기뻣다. 지금까지 집착이라는 말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일 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하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착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중지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집착이란 말이 이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스님의 말처럼 낡은 생각, 낡은 생활 습관, 낡은 울타리, 낡은 탈을 벗어 던지는 것이 집착을 끊는 것이리라. 새롭게 변화된 환경, 역동적으로 생멸을 거듭하는 우주의 질서를 따라가며 매일 매일 새로워지는 것 그것이 집착을 끊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버리고 새롭게 변하는 세상의 이치에 맞추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듯 새롭게 새롭게 거듭나는 삶 말이다. 마음속의 독재자 같은 고리타분한 것을 집어 던지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뽀얗게 뭍은 아집의 먼지를 털어 내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집착을 끊어낸 삶이 아니겠는가?
“생명은 늘 새롭다. 생명은 늘 흐르는 강물처럼 새롭다. 그런데 틀에 갇히면, 늪에 갇히면, 그것이 상하고 만다. 거듭거듭 둘레에 에워싼 제방을 무너뜨리고라도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
스님의 말처럼 집요하게 쫓아오는 구습들을 잘라내고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에든 역행하지 않는 마음으로.... 조계종 스님들의 난투극을 본 법정 스님은 동아일보에 기고하던 글을 그만두고 말았다. 같은 스님으로서 면목이 없다는 뜻에서였다. 이렇듯 늘 맑고 깨끗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쪽으로 마음을 내야 할게다. 일신의 편안함이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그 역행하는 것들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불합리한 방법을 묵인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 그것이 집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집착을 버린다는 뜻은 목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목적에 다가가는 자기 자신의 낡고 구태의연한 방법을 버리라는 뜻임을.
모든 사물을 흑백의 논리로 보아오던 서양사람들의 사회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들의 관념이 이제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없다고 믿었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엄연히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이 하나 하나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수치로 표시하는 방법으로 사회 발전을 이룩하여 왔던 지금까지의 방법에 한계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모든 관념을 깨야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옛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동양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말이다. 경영학계의 거장 피터 드러커 역시 이 지식 사회에선 지식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식노동자란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으로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지식이나 통찰력을 이용하여 제품이나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개선시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직된 사고(思考)를 버려야 된다. 과거의 틀을 과감히 허물어야만 구습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집착을 버리라는 것을 목적 자체를 버리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여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집착을 끊는다는 것은 목적 자체를 끊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다가가는 낡은 방법을, 낡은 생각을 단절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이 사실을 안 이상 헌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듯 집착을 끊으며 살고 싶다. 목적자체를 썩게 만드는 낡은 생각을 비워내며.....
200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