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15]稼亭先生28, 途中避雨有感[도중피우유감]
가정집 제16권 / 율시(律詩)
稼亭先生文集卷之十六 / 律詩
途中避雨有感[도중피우유감]
도중에 비를 피하며 느낀 바가 있어서
甲第當街蔭綠槐。高門應爲子孫開。
年來易主無車 馬。唯有行人避雨來。
거리에 임한 저택에 녹음 드리운 느티나무 / 甲第當街蔭綠槐
높은 대문도 응당 자손을 위해서 세웠으리 / 高門應爲子孫開
몇 년 사이 주인 바뀌고 거마의 자취도 없이 / 年來易主無車馬
오직 길 가는 사람만이 비 피하러 오는구나 / 唯有行人避雨來
[주-D001] 거리에……느티나무 : 왕년에 재상의 저택이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주나라 때 삼공(三公)이 궁정의 느티나무 세 그루를 정면으로
향한 위치에서 조회를 하곤 하였으므로 삼괴(三槐)가
삼공(三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또 송나라 왕우(王祐)가 자기 마당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는
자기의 자손이 반드시 삼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의 둘째 아들 단(旦)이 재상에 올랐던 내용을
소재로 해서 소식(蘇軾)이 〈삼괴당명(三槐堂名)〉을 지은 일화가 유명하다.
[주-D002] 높은……세웠으리 : 한나라 우공(于公)이 옥사(獄事)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에 의해
생사(生祠)가 세워지기까지 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집을 수리하면서
“내가 음덕을 많이 쌓은 만큼 우리 자손 중에 고관이 많이 나올 테니
좁은 문을 개조해서 사마(駟馬)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하겠다.”라고 하고는 대문을 높이 세웠다.
그런데 과연 그의 아들 우정국(于定國)이 승상이 되고 나서
그 뒤를 이어서 대대로 자손들이 봉후(封侯)된
‘우공고문(于公高門)’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