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사건의 존재론, 역동적 구조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5. 역동적 구조
들뢰즈는 니체에게서 영원하는 생성의 사유를 풍요롭고 포괄적인 형태로 전개한 인물로서, 베르그송에 의해 열린 20세기 형이상학의 완성자이다. 들뢰즈의 연구는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 그리고 문학가인 프루스트 등에 걸쳐있는데, 1968년에 그때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차이와 반복』을 펴내고 이후 점차 철학 외부로 이행하여 『의미의 논리』를 펴내게 된다. 들뢰즈의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후기 구조주의[탈구조주의]’의 담론사적 장에 속해 있는 것이다. 사건은 이 세계에서 새롭게 발생하는/탄생하는 것,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생성이다. 들뢰즈의 생성철학은 구조주의의 연장선상에 성립한 것이나 구조주의에 생성을 도입해 구조를 역동화시킨다. 들뢰즈의 사유는 베르그송과 구조주의를 지양시킨 것이다. 그의 사유는 ‘사건의 사유’이다. 사건은 ‘의미의 생성’이다. 들뢰즈는 사건과 의미를 동시에 사유함으로써(사건=의미, 의미=사건) 베르그송적인 지속의 철학, 자연철학과 구조주의적인 합리주의 철학, 문화철학을 한 차원 높인 것이다. 『의미의 논리』는 계열들의 존재론을 구사한다. 이 책의 구조는 계열화되어 있다.
사건의 존재론은 칸트 이래 전개되어 온 주체의 철학, 내면의 철학을 비판한다. 세계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계열화된다. 예컨대 한 반체제 인사가 어떤 건물 아래를 지나다 위에서 떨어진 벽돌을 맞았을 때, 그 사건 자체는 물리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한 달 전에 있었던 사건 즉 그 반체제 인사가 정부의 한 고위관리를 비판했던 사건과 계열화될 때, 그리고 한 달 뒤의 사건 즉 민주혁명이라는 사건과 계열화될 때 그 사건의 의미는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계열화됨으로써 일정한 의미체계를 형성하며, 인간주체는 이렇게 형성된 계열들의 그물 안에서만 행위하고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들뢰즈의 사유는 주체가 의미를 ‘구성한다’고 보는 주체 내면의 철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구조주의적 사유에 근접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고전적 형태의 구조주의가 시간, 우연, 특수성 등을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사유할 수 없다고 보고, 보다 역동적인 형태의 구조주의를 제시하고 있어 후기구조주의, 역동적 구조주의를 대변한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들뢰즈의 사유는 후기구조주의의 가장 깊은 차원, 즉 존재론의 차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수영 <폭포>
너를 어쩌란 말이냐
너눈 흘러서 내 앞에 섰다
너는 날마다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몸부림친다
5.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과 계열화’로 본 <폭포>
(1) 사건의 발생
들뢰즈의 사건의 존재론에서 사건은 단순히 어떤 일어난 일(사건fact)이나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물과 사태 위에 발생하는 비물질적이고 비실체적인 ‘의미의 층위’를 가리킨다. 사건은 구체적 신체나 사물에 부착되어 있으면서도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고, 표면에서 발생하는 효과로 작동한다. 예컨대 “칼에 베였다”라는 사실 위에 “상처를 입다”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처럼, 사건은 존재의 심층이 아니라 표면적 접속과 변형 속에서 드러나며, 주체와 객체를 변형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들뢰즈에게 사건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의미와 세계를 끊임없이 재배열하는 생성의 운동이며, 존재를 새롭게 구성하는 잠재적 가능성의 전개로 이해된다. 폭포의 ‘떨어짐’ ‘흐름’ ‘몸부림침’은 모두 사건이다. 이 사건들은 폭포라는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의 운동적 효과를 드러낸다.
(2) 사건들의 계열화
들뢰즈가 말하는 사건들의 계열화란 사건들이 단절된 고립적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미적 사슬을 이루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변형되는 과정을 뜻한니다. 사건은 특정한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 사슬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을 불러내고 변주하며, 잠재적 의미의 흐름 속에서 연속적 차원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상처’라는 사건은 단순한 고통에서 멈추지 않고 치유, 기억, 관계의 변화, 새로운 감정의 발생 등으로 계열화되어 확장된다. 즉, 사건들의 계열화는 사건이 세계 속에서 고정되지 않고 차이와 반복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생성적 네트워크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흘러서 섰다->몸부림친다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사건들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쇄(계열)를 이루며 연결된다. 사건은 단일하지 않고, 사건들의 흐름이 시적 주체와 의미를 형성한다.
(3) 역동적 의미 체계의 생성
들뢰즈의 사건 존재론에서 역동적 의미 체계의 생성은 사건이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매번 다른 맥락과 접속을 통해 새롭게 의미를 발생시키는 과정을 가리킨다. 사건은 단순히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세계와 주체,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이의 흐름 속에서 생성되며, 그때마다 새로운 의미망을 짜 올린다. 따라서 의미는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열리고 변주되는 잠재적 장(field)으로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갱신된다. 이렇게 사건은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동적 장을 구성하며, 이는 세계를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게 만든다. 사건들이 계열적으로 발생하면서, 폭포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끊임없는 생성, 삶과 저항, 새로운 생명의 의미 체계를 형성한다. 즉 사건의 흐름 자체가 의미의 역동적 구조가 된다.
(4) 들뢰즈적 관점
김수영의 시 「폭포」를 들뢰즈적 관점에서 읽으면, 이 작품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사건(event)의 존재론을 드러내는 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폭포는 하나의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과 낙하의 사건으로, 들뢰즈가 말한 ‘생성(becoming)’의 운동을 구현한다. 폭포는 그 자체로 완결된 실체라기보다는 떨어지고 부서지고 이어지는 차이의 연속이며, 주체와 객체를 동시에 휘말리게 하는 역동적 장을 형성한다. 김수영이 폭포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직선으로 곧게 떨어지는 힘’인데, 이는 기존의 질서나 억압을 뚫고 새로운 역동적 의미 체계를 열어젖히는 창조적 사건으로 읽힐 수 있다. 들뢰즈적으로 말해, 「폭포」는 세계를 정태적 실체가 아니라 무수한 사건들의 계열화로 바라보게 하고, 시적 언어를 통해 그 생성의 힘을 드러내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의미는 폭포 안에 고정된 본질로 존재하지 않는다. 폭포의 사건적 계열화(떨어짐-흐름-몸부림-새로운 생성)가 의미를 생성하는 동력이 된다. 시는 사건의 운동을 의미의 장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김수영의 <폭포>는 들뢰즈의 사건 존재론으로 분석할 때, (1) 사건은 실체가 아닌 운동의 효과다 (2) 사건들이 계열화되어 흐르며, 의미는 그 계열적 연결 속에서 형성된다. (3) 따라서 의미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사건의 연쇄적 운동에서 발생하는 역동적 구조라 하겠다.
Ⅲ.
사건의 존재론은 사건이 존재의 본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사건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사건은 예측할 수 없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존재론은 사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현대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개념은 존재와 사건,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철학적 논의의 기초가 되고 있다. 사건의 존재론은 우리 삶의 복잡성과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김수영, 윤동주, 기형도 등 걸출한 문학들의 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은 사건이 진정한 경험이라고 한 들뢰즈의 표현대로, 체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수필을 분석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들뢰즈는 사건을 생성의 관점에서 이해하며, 사건이 의미의 생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의미의 논리』에서는 사건이 물질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사건과 의미를 동시에 사유한다. ‘의미의 논리’는 68년에 발표된 ‘차이와 반복’과 더불어 들뢰즈의 대표적인 주저를 이룬다. 들뢰즈가 이 저작들에서 전개한 논리는 흔히 ‘사건의 존재론’ 또는 ‘차이의 존재론’이라고 불리며, 이 존재론은 오늘날의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적 사유다. 그리고 이 사건·차이 개념은 후에 ‘욕망’의 개념으로 변환된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더불어 저술한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이 욕망 개념을 토대로 해 세계사를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들뢰즈는 존재론이라고 하는 순수철학 분야와 역사의 사유라고 하는 보다 실천적이고 시사적인 분야에 동시에 공헌한 보기 드문 예를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