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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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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 주일밤예배 설교문
【맥 추 감 사 주 일】
본 문 : 출애굽기 14 : 10 - 14
제 목 :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찬 양 : 218, 300, 336, 365, 449, 543.
복음송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찬미예수2000. No,718)
할렐루야!!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역에서 자유를 찾아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따라 정신없이 얼마를 가다보니 넓은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 바다를 건널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듯 술렁이기 시작을 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왕의 병마들이 뽀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온갖 창검으로 무장한 애굽의 군대가 추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를 가르쳐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고 합니다.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죽음의 공포와 절망의 위기에 직면한 백성들은 급기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1-12절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고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같으면 안 그럴 것 갔습니까?
<예> 여러 해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부드러운 땅위의 살인」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캄보디아가 공산화가 될 때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자유를 찾아 태국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피난민 대열 중에는 항공 회사의 스튜어디스였던 미모의 론(Rhon)이란 여인이 생후 4개월 된 아기를 안고 힘든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남편에게 넘겨주면서 ‘나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으니 당신은 이 아기를 데리고 빨리 피난을 가서 꼭 살아 훗날 내가 죽은 이곳을 다시 찾아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빨리 떠나라고 재촉을 하였습니다. 결국 남편은 아기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내는 거의 죽어가면서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결국 남편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살아보겠다고 자유를 찾아 피난길에 올랐던 론의 가족과 그 뒤를 쫓는 크메르의 공산군, 애굽의 고통에서 자유를 찾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들과 그 앞을 가로막는 홍해 바다,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의 마병들, 이것들이 바로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위기의 순간이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다급하게 쫓기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다급하게 추격해 오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때론 경제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말 못할 가정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질병의 문제가 자신을 시시각각으로 쫓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되는데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또 가로막고 있습니다. 전후좌우(前後左右)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홍해 바닷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애굽 나라의 바로왕은 왜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까?
(1) 무수한 노동력의 상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만 60만 명이었습니다. 그들을 돈 한 푼 주지 않고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려서 집을 짓고 성을 쌓고, 공장을 짓고, 길을 닦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매로 두들겨 때리기만 하면 기계처럼 돌아가며 일하는 것이 바로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굽에서 그 많은 노동력을 순순히 내 보낼 리가 없습니다.
(2) 또 바로왕의 권위와 체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앗수르 나라와 애굽이 세계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다투던 때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애굽의 바로 왕이 일개 히브리 노예들을 모세의 요청으로 보냈다고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당장 앗수르 나라가 쳐들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왕이 아무리 버티고 보내지 않으려고 해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냈고 바로 왕과 애굽 나라에 재앙을 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바로왕의 대결은 하나님과 바로왕의 대결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로왕은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금방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잡아오겠다고 추격을 한 것입니다.
2. 위기의 순간은 우리가 살아갈 때 누구나 겪는 현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홍해도 건너기 어려운 바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들의 삶에는 광야와 같은 때도 있고 홍해와 같은 때도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순조롭던 사업이 갑자가 실패를 하고 행복했던 가정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사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몸에 아니면 가족에게 고치기 어려운 난치병이 들려서 온 가정이 근심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입니다. 아무도 나는 이런 어려움에 부딪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어려움을 당했을 때 쉽게 절망해 버리고 맙니다. 쉽게 포기해 버리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위기의 순간에 절망이나 원망이나 불평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환난이나 위기의 순간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아마도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면 애굽에서 영원히 종노릇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자기들의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자신들의 뜻한바 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환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에 전도하러 갔다가 죽도록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날이 밝으면 이제 처형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지하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행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리라”(엡1;3) 라고 하였습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였고
(시118:8-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바다 속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시편 18편 말씀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서도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1.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2.나의 생명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사랑이시며 나의 의지시라
주는 나를 이끄시어 주의길 인도하시며
나의 생의 목자 되시니 내가 따르리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생명의 면류관으로 내게 씌우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4.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하며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무리들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것만 갔습니다.
본문 13-14절 말씀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고 백성들을 진정시킵니다.
(1) 모세는 소란 떨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온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아우성을 치니 참으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생지옥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와 같은 백성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소란을 피울 때가 아닙니다. 고요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2)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원불교 교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원불교 교인들이 어째서 교회 안에 있습니까? 바로 원망 잘하고 불평 잘하고 교만한 사람을 가르쳐 원불교 교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원망 잘하는 백성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 하기전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쏟아 부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티끌 하나 날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적으로 홍해까지 왔는데 또 원망을 합니다.
그 후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역사 가운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가 한 말 중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말씀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결국 이 환난 중에서 구원하여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모세가 어찌 할 수도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가 해 놓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못하게 합니다. 모든 계획을 다 세워놓고 이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할렐루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홍해 바닷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능한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잠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도 바울은 롬8:28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경과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돈독해지고 유익이 되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평상시에는 깨닫지도 못하였으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내 앞에 어떤 환난이나 고통이 닥쳐와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하는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이름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