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등의 유통 체계 확립과 판매 질서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 할 수 있는 약사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약국, 제약사, 도매업체가 연관된 사건을 병합해 판단한 결과 '약사법 95조 1항 8호'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사용기한 경과 의약품을 진열한 약국, 리베이트로 기소된 제약사와 도매업체가 연관돼 있는 대형 사건이었다.
그러나 재판관 4명이 합헌, 5명은 위헌 의견을 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정한 위헌정족수 6명을 넘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헌재 판단은 = 헌재는 "위임 입법의 필요성을 보면 의약품 등의 유통 및 판매를 할 때 약사 등이 제조업자로부터 의약품을 구매하는 경우와 약사가 소비자에게 의약품을 조제, 판매하는 경우 등 다양한 행위가 포함되고, 그 거래 당사자에 따라 준수사항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법에서 이러한 경우를 모두 포괄하는 준수사항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약사 등의 준수사항이란 의약제도의 변화와 거래현실 등을 고려해 정해질 전문적인 사항이므로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하기란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헌재는 "행정부가 의약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의약제도의 도입에 따라 유통 및 판매 단계별로 약사 등이 준수할 세부적 의무를 정해 변화에 대응하고, 수시로 변동하는 의약품의 거래현실을 상황에 맞게 반영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하위법령에 규정될 준수사항의 주된 내용은 '의약품을 적정하게 공급 판매해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치지 않고, 의약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질서나 의약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헌제청 대상 조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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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법 제95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8. 제47조 제1항, 제4항을 위반한 자
관련조항 약사법 제47조(의약품등의 판매 질서) ① 약국개설자,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 수입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약품등의 유통 체계 확립과 판매 질서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지켜야 한다. |
이에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죄형법정주의나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위헌 의견 재판관 5명의 생각은 = 재판관들은 "행정부에게 지나치게 광범위한 입법재량권을 주게 되면 법률로 규정해야 하는 형사처벌요건을 행정부가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결국 행정권에 의한 자의적인 법률의 해석과 집행을 쉽게 용인하는 셈이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죄형법정주의와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배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심판대상 사건 = 약국을 운영하는 A약사는 사용기간이 지난 백선피, 죽엽 등을 판매목적으로 저장, 진열했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이에 서울북부지방법원은 공소사실에 적용된 구 약사법 제95조 제1항 제8호가 위헌이라고 인정할 이유가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B제약사는 '시장조사업체와 조사용역계약을 체결해 자사 제품의 처방유도 및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수백명의 의사에게 역학조사를 의뢰하고 그 대가로 약 13억원을 사례비 형식으로 지급했다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이 제약사는 서울중앙지법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지만 위 신청이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C의약품 도매상은 '의약품의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의료인 등에게 선급금, 이자 등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사실로 기소돼 1심에서 약사법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한 서울고법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자 고법이 이를 수용해 위헌제청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