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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反面敎師)
나쁜 일만 가르치는 교사라는 뜻으로, 자기가 당한 기분 나쁜 일을 남에게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음을 이르는 말이다.
反 : 거꾸로 반(又/2)
面 : 얼굴 면(面/0)
敎 : 가르칠 교(攵/7)
師 : 스승 사(巾/7)
(유사어)
타산지석(他山之石)
이 성어는 극히 나쁜 면만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란 뜻으로, 중국에서 제국주의자, 반동파, 수정주의자를 이르는 말이다. 이것이 의미가 확장돼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란 뜻으로 쓰인다.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의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비슷한 뜻을 가지나, 그보다 의미가 더욱 직설적이다.
논어(論語) 제4 이인편(里仁篇)에 있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자왈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어진 이의 행동을 보거든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동을 보거든 안으로 스스로를 반성한다.”
공자께서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같아지려고 생각하고, 현명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마음 속으로 자신을 반성하라”고 하셨다.
즉 뛰어난 인물과 만나면 나도 그와 같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하찮은 사람과 만나면 나도 저 사람과 꼭 같은 점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마음 속으로 자신을 반성하라는 것이다.
순자(荀子) 수신편(脩身篇)에 견선수연필이자존 견불선초연필이자성(見善脩然必以自存 見不善愀然必以自省)는 말이 나타나는데, 견선수연필이자존(見善脩然必以自存)은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와 그리고 견불선초연필이자성(見不善楸然必以自省)은 견불현이내자성야(見不賢而內自省也)와 그 뜻이 같다.
즉 바른 사람을 보면 몸을 단정히 하여 반드시 자신을 살피고, 바르지 않은 사람을 보면 두려워하며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라는 말이다. 덕이 있고 행실이 바르며 품격이 있는 사람은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본받고 싶고, 나쁜 것을 보면 그와 같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각성한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언행 그 자체로 우리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고, 또 우리 스스로를 반성케 함으로써 우리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다. 후자를 우리는 흔히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한편 논어(論語) 제 7 술이편(述而篇)에 나타나는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말도 이 장의 말과 그 뜻이 비슷하다고 하겠다. 즉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좋은 자을 가려 뽑아 이에 따르고 나쁜 자는 이를 고쳐나갈 일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으나, 스승 아닌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보고서 이를 통하여 위대한 인격을 이루었다고 하니, 위의 말은 참으로 깊이 음미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가 진정으로 닮았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닮지 말아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택동(毛澤東)이 공산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다. 그는 반동분자들을 가리키면서 “일부 중죄인을 빼고는 체포하거나 숙청하지 말고, 그 냥 제 자리에 두고 고립시킨 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이용하면 된다”고 한 게 시초라고 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였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반면교사가 있으며 누구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면교사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한국의 무능한 위정자들은 반면교사라는 말을 곧잘 쓰는데, 그들이야 말로 국민에겐 참으로 뻔뻔스런 반면교사들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반면교사를 보고 깨달아서 교사로 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또한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도록 늘 언행을 삼가며 겸손하고 올곧게 처신하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롭고 행복하다. 인생에는 실패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실패한다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인생에 도전하라.
그런데 문제는 실패한 후다. 한번이나 두번의 실패로 의기소침해 버린다면 아무것도 안 된다. 실패를 해도 그 실패에서 무엇인가 배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아울러 실패에서 배우는 것은 자기 실패에서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어느 날, 당(唐)나라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이 “병기고(兵器庫)를 점검해 보니 수(隋)나라 때와 비교해 병기가 많이 부족하오니 보충할 것을 지시해 주십시요”라고 당태종(唐太宗)에게 아뢰자,
태종은 “병기고를 채워 외적에 대비하는 일은 확실히 지체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병기고를 채우는 일보다 정치에 정력을 쏟아 백성의 생활 향상에 뜻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나의 가장 중요한 무기다.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멸망한 것은 무기가 부족하였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인의(人義)를 버려 백성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양제와 같은 실패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당태종은 선인들의 실패를 반면교사하여 정치에 임했다고 한다. 한번 실패하면 그 만큼 영리해진다. 이렇게 되려면 그 전제로서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타(自他)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평소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실패를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성공을 칭송하고 실패를 경멸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인 정서이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고, 오히려 실패를 성공의 한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실패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성공에 이른 사례는 한 개인이나, 나라나, 기업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발명왕 에디슨은 무려 2000번이 넘는 실패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했는데 그때 그는 “2000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2000번의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고 말했다.
기원전 216년, 세계 최강 로마군 8만 7200명이 아프리카의 한니발 장군과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수적으로 거의 반인 한니발의 군대에게 로마는 져서 군인들이 거의 전멸해 버렸다. 로마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였고, 이 전쟁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3분의 2를 빼앗겼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지도자들은 이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문책을 하지 않고 도리어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음 전쟁을 준비시켰다. 그 결과, 로마군은 아프리카 자마전투에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한니발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로써 로마의 천년제국은 시작될 수 있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디쓴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그 실패 때문에 정신 차리고 나머지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 일본의 기업가인 고야마 노보루 씨는 직원들에게 “일부러 실패와 아픈 기억을 만들어 줌으로써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부러 실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실패하지 않고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다.
천년은 갈 일을 해라
종합기획실 발령을 받고 출근하기 전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치챈 아버지가 어머니를 시켜 아래층으로 호출했다. 그제야 발령받은 걸 말씀드렸다. '걱정도 되겠지'라며 아버지는 술 한 잔을 따라 주며 마시라고 했다.
이어 "걱정은 내가 할 수 없을 때 생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면 걱정은 사라진다. 할 수 없는 사람을 발령내는 건 인사권자가 걱정할 일이다"며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하면 된다"고 간단히 정리했다.
'다만'이라고 허두를 잡은 아버지가 한참 뜸을 들이다 내놓은 말이다. "낯선 곳에 가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라. 그러면 떨어진 휴지나 문방구가 보일 게다. 그걸 줍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숙이면 보이고 낮추면 쉽게 주울 수 있다."
아버지는 '어느 회사든 기획실은 그 조직의 핵심 부서다'고 전제한 뒤 '기획'이 뭐냐고 불쑥 물었다. 머뭇거리자 아버지의 설명은 이랬다.
기획(企劃)과 계획(計劃)은 둘 다 일을 이루기 위해 미리 생각하고 세우는 것을 의미하지만, 엄연하게 다르다. 기획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계획은 세부적인 실행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기획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과 방향을 제시한다. 계획은 기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어 “기획의 기(企)자는 ‘꾀하다’나 ‘도모하다’, ‘발돋움하다’라는 뜻이다. 파자하면 사람 인(人)자와 발 지(止)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지’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으로 ‘발’이라는 뜻이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해 크게 ‘발돋움한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기’는 발돋움해서 멀리 바라본다는 뜻이다”라고 정의했다.
획(劃)자는 '긋다'나 '계획하다'는 뜻이다. 그림 화(畵)자와 칼 도(刀)자가 결합했다.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그림'이라는 말이다. '자국을 내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획(畫)에 칼 도자가 붙어 '칼자국을 내서 나누다'의 뜻을 지닌다.
그렇게 설명한 아버지는 "기획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니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한 반면 계획은 이미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어서 논리성과 합리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기획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므로 유연성이 중요하지만, 계획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니 확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구분지었다.
자세가 정해졌으면 부탁 하나 하겠다면서 아버지는 "천년은 갈 일을 해라"라고 당부했다. 천년 갈 일을 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첫째, 일 년도 못 갈 일은 하지 마라. 일이 년 갈 일이면 선험자들이 고심해 만든 길을 따라가라. 특히 전임자들이 만들어놓은 고민을 백지화해서는 안 된다. 백지화는 계획이나 정책의 일관성을 잃어 신뢰를 떨어뜨리고,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이미 투입된 비용의 낭비도 문제지만 집행하는 이들의 기대감만 갉아먹는다. 다른 계획의 집행력마저 약화할 우려가 있다며 길게 폐해를 설명해 경고했다.
둘째, 기획자인 네 이름을 반드시 남겨 책임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서울 성곽은 천년은 커녕 아직 600년도 안 됐는데 상당 부분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걸 쌓은 이들의 이름이 들어간 축석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책임성을 강조했다.
셋째는 기획한 일이 집행될 현장에 반드시 가 볼 것을 주문했다. "책상에 앉아서 상상만으로 채울 수 없는 간극은 집행 현장에서만 느끼고 답을 구할 수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감당하기 어려우면 언제든 그 자리를 떠나라. 능력이 안 되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너나 조직을 위해서도 불행하다"고 못박았다.
아버지는 야율초재(耶律楚材)를 불러내 유목국가에 불과한 몽골을 칭기즈칸의 참모가 돼 세계제국으로 발돋움시킨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오고타이 칸이 '아버지께서 대제국을 남겨주셨고, 나는 그것을 개혁하려고 한다, 그대는 좋은 방법이 있는가?'란 질문에 야율초재가 답한 말을 새기라고 일러줬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새로운 제도로 백성을 번거롭게 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불합리한 것을 제거하십시오(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아버지는 천 년은 갈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큰 그림을 그리고, 기본을 탄탄하게 다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어렵다면 야율초재처럼 불합리한 것을 없애는 일이라도 매진하라며 내 걱정을 덜어줬다.
천 년 넘은 구조물은 서울엔 없다. 옛 선인들이 개성을 오가던 세검정 옛길만이 천 년을 넘었다. 때때로 그 길을 오르내리며 선조들이 발돋움해 앞을 내다본 창의성을 되뇌어 본다.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주고 싶은 창의성은 모진 각오와 노력이 없으면 쉽게 얻을 수 없다.
▶️ 反(돌이킬 반/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은 ❶회의문자로 仮(반)과 동자(同字)이다. 又(우)는 손을, 厂(엄)은 언덕의 뜻으로 뒤엎는다 또는 반대(反對)를 뜻한다. 비탈진 지형은 정상이 아니므로 반대를 의미한다. 反(반)은 위에서 덮는데 대하여 밑으로부터도 뒤덮는 일, 그 양쪽을 합하면 반복이란 말이 된다. 또 손바닥을 뒤집다, 배반하다, 돌아오다, 돌아보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反자는 ‘되돌아오다’나 ‘뒤집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反자는 厂(기슭 엄)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厂자는 산기슭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추상적인 물건으로 응용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反자를 보면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어떠한 물건을 손으로 뒤집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反자는 ‘뒤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배반하다’나 ‘반역하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反(반)은 변증법(辨證法)의 정(正), 반(反), 합(合)의 세 가지 계기 가운데에서 부정(否定)을 뜻하는 계기나 반립(反立)의 뜻으로 ①돌이키다 ②돌아오다, 되돌아가다 ③되풀이하다, 반복하다 ④뒤집다, 뒤엎다 ⑤배반하다 ⑥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어긋나다 ⑦반대하다 ⑧물러나다, 후퇴하다 ⑨보복하다, 앙갚음하다 ⑩되돌아보다, 반성하다 ⑪꾸짖다, 나무라다 ⑫보답하다, 되갚음하다 ⑬바꾸다, 고치다 ⑭죄를 가벼이 하다 ⑮휘다 ⑯구르다, 뒤척이다 ⑰기울다 ⑱튀기다 ⑲생각하다, 유추(類推)하다 ⑳대답하다 ㉑기인(起因)하다 ㉒모반(謀叛), 반역(反逆) ㉓번(횟수를 세는 단위) ㉔반대로, 도리어 ㉕더한층, 더욱더 그리고 ⓐ어렵다, 곤란하다(번) 그리고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판) ㉡팔다(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정(正), 도울 찬(贊)이다. 용례로는 공산주의를 반대함을 반공(反共), 반대로 움직임을 반동(反動),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두 사물이 맞서 있는 상태 또는 어떤 의견이나 제안 등에 찬성하지 않음을 반대(反對), 반사로 비친 그림자를 반영(反影), 반사하여 비침을 반영(反映),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한 가지 일을 되풀이 함을 반복(反復), 자극이나 작용에 대응하여 일어남을 반응(反應), 전쟁을 반대함을 반전(反戰), 쳐들어 오는 적을 되받아 공격함을 반격(反擊), 상대방에 반대하여 대들음을 반항(反抗),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표시를 반기(反旗), 서로 미워함을 반목(反目),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반성(反省), 반대되는 뜻을 반의(反意),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반객위주(反客爲主),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반구제기(反求諸己),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눈으로 봄을 반목질시(反目嫉視), 언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거나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반복무상(反覆無常), 도리어 처음 만 같지 못함이라는 반불여초(反不如初),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반수발사(反首拔舍),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반수불수(反水不收) 등에 쓰인다.
▶️ 面(낯 면/밀가루 면)은 ❶상형문자로 麵(면)과 麪(면)의 간자(簡字)이고, 靣(면)은 속자(俗字)이다. 面(면)은 사람의 얼굴과 그 윤곽을 나타낸다. 나중에 물건의 거죽이나,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리다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面자는 사람의 ‘얼굴’이나 ‘평면’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面자는 사람의 머리둘레와 눈을 특징지어서 그린 것이다. 面자의 갑골문을 보면 길쭉한 타원형 안에 하나의 눈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面자가 단순히 ‘얼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표정’이나 ‘겉모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面(면)은 (1)겉으로 드러난 쪽의 바닥 (2)입체(立體)의 평면(平面), 또는 겉면 (3)검도(劍道)나 야구(野球)에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제구(諸具) (4)향하고 있는 어떤 쪽 (5)신문 따위의 페이지 (6)낯이나 체면(體面) (7)인쇄한 책장이나 종이장의 한 쪽, 또는 이것을 세는 단위(불완전 명사). 쪽. 페이지 (8)몇 개의 이(里)로 구성된, 군(郡)의 관할에 딸린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종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하나이었으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인 군의 단순한 행정 구역으로 되었음. 등의 뜻으로 ①낯, 얼굴 ②표정(表情), 얼굴빛 ③모양, 모습 ④겉, 표면 ⑤겉치레 ⑥탈, 가면(假面) ⑦앞, 면전 ⑧방면(方面), 쪽 ⑨평면 ⑩면(행정 구역 단위) ⑪면(물건의 세는 단위) ⑫밀가루 ⑬보릿가루 ⑭국수 ⑮만나다 ⑯대면하다 ⑰등지다, 외면하다 ⑱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면의 관할 구역 안을 면내(面內),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대하여 보고 있는 앞을 면전(面前), 얼굴을 마주 대함을 면접(面接), 얼굴을 대하여 만나봄을 면회(面會), 면에 사는 주민을 면민(面民),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면담(面談)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눔을 얼굴을 서로 알고 있음을 면식(面識), 바로 그 사람앞에서 잘못을 책망함을 면책(面責),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거나 논박함을 면박(面駁), 물체의 상하나 전후 이외의 좌우의 면을 측면(側面), 물체의 뒤쪽에 있는 면을 이면(裏面), 어떠한 사실과 반대되거나 다른 방면을 반면(反面), 일이 되어 나가는 상태 또는 그 장면을 국면(局面), 밖으로 나타난 모양 또는 대면하기를 꺼려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림을 외면(外面),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바깥 면이나 겉모양을 표면(表面), 어떤 지역이 있는 방향 또는 그 일대를 방면(方面), 얼굴을 씻음을 세면(洗面), 눈 코 입 등이 있는 머리의 앞쪽 또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것을 안면(顔面), 일이 바로 눈앞에 닥침을 당면(當面), 얼굴 생김새가 밉살스러움을 이르는 말을 면목가증(面目可憎), 서로 얼굴을 통 모른다는 말을 면목부지(面目不知),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얼굴빛이 흙빛과 같다는 말을 면여토색(面如土色),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면종복배(面從腹背) 등에 쓰인다.
▶️ 敎(가르칠 교)는 ❶회의문자로 教(교)의 본자(本字)로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合字)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敎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敎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그래서 敎(교)는 (1)종교(宗敎) (2)삼문(三門) 즉 교(敎), 율(律), 선(禪) 중(中)의 하나. 이 교는 경론(經論)으로써 신앙(信仰)의 근본을 삼음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본받다 ③가르침 ④~로 하여금 ~하게 함 ⑤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⑥종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연(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침을 교수(敎授), 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을 교육(敎育),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을 교과서(敎科書), 학교 교사 가운데, 오로지 수업에만 쓰이는 방을 교실(敎室), 가르치고 깨우침, 타이름, 훈계함을 교훈(敎訓), 가르쳐 기름을 교양(敎養), 가르치고 배우는 데 쓰이는 재료를 교재(敎材),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종교 단체의 모임을 교회(敎會),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종교 상의 이치나 원리를 교리(敎理),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교도(敎徒), 가르쳐서 익히게 함을 교습(敎習), 교재로 쓰는 책을 교재(敎本), 종교를 믿는 사람을 교인(敎人),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이라는 뜻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을 교외별전(敎外別傳),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 시킨다는 말을 교학상장(敎學相長),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교부초래(敎婦初來),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의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에 쓰인다.
▶️ 師(스승 사)는 ❶회의문자로 师(사)의 본자(本字)이다. 왼쪽(지층의 겹)과 오른쪽(골고루 돎)의 합자(合字)이다. 옛날에는 언덕에 사람이 모여 살고 또 군대(軍隊)가 주둔했으므로 사람이 많다에서, '군대'의 뜻이 되었다. 또 사람의 모범이 되어 남을 이끄는 사람에서, '선생'의 뜻이 되었다. 사람이 많다는 뜻에서 '수도(首都)'도 師(사)라 한다. ❷회의문자로 師자는 '스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師자는 阜(언덕 부)자와 帀(두를 잡)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帀자는 '빙 두르다'라는 뜻을 표현한 모양자이다. 그러니 師자는 언덕을 빙 두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師자는 본래 군대 조직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고대에는 약 2,500명의 병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니 師자는 군인의 수가 언덕 하나를 빙 두를 정도의 규모라는 뜻이었다. 師자는 후에 '스승'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는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스승의 주변을 제자들이 빙 둘러 앉아있는 것에 비유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師(사)는 (1)스승 (2)고대(古代) 중국의 군제(軍制)에서, 여(旅)의 5배, 곧 2천 500인을 이르던 말 (3)조선시대 때의 세자사(世子師)를 달리 이르던 말 (4)조선시대 때 세손사(世孫師)를 달리 이르던 말 (5)고려 때 세자사(世子師)를 달리 이르던 말 등의 뜻으로 ①스승 ②군사(軍士), 군대(軍隊) ③벼슬아치 ④벼슬 ⑤뭇 사람 ⑥신령(神靈), 신의 칭호(稱號) ⑦전문적인 기예를 닦은 사람 ⑧악관(樂官), 악공(樂工) ⑨육십사괘의 하나 ⑩사자(獅子) ⑪스승으로 삼다, 모범으로 삼다 ⑫기준으로 삼고 따르다, 법으로 삼게 하다 ⑬수효가 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스승 부(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우 제(弟)이다. 용례로는 모든 행동과 학덕이 남의 스승이 될 만한 모범이나 본보기를 사범(師範), 스승으로 섬김을 사사(師事), 학예에 뛰어나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사장(師匠), 스승과 제자를 사제(師弟), 스승의 의견이나 학설을 사설(師說), 가르침의 은혜가 높은 스승을 아버지처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사부(師父), 학식과 덕행이 높아 세상 사람의 표적이 될 만한 사람을 사표(師表), 스승의 집을 사가(師家), 스승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사법(師法), 스승과 벗을 사우(師友), 스승의 은혜를 사은(師恩),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스승을 교사(敎師), 병을 진찰 치료하는 사람을 의사(醫師), 학교의 부탁을 받아 강의하는 교원을 강사(講師), 은혜를 베풀어 준 스승이라는 뜻으로 스승을 감사한 마음으로 이르는 말을 은사(恩師), 으뜸 장수 밑에서 작전을 짜고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을 군사(軍師),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감 또는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연구하여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제동행(師弟同行), 군사를 출정시킬 때에는 엄한 군법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사출이율(師出以律), 자기의 생각만을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사심자시(師心自是), 스승이 엄하면 자연히 가르치는 道도 존엄해짐을 이르는 말을 사엄도존(師嚴道尊),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 감을 일컫는 말을 사자상승(師資相承), 덕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뜻으로 마주치는 환경과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수행에 도움이 됨을 이르는 말을 덕무상사(德無常師),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무엇이나 내 몸가짐에 대한 깨우침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후세까지 오래도록 모든 사람의 스승으로 숭앙되는 덕과 학문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세지사(百世之師),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리오 라는 뜻으로 성인에게는 일정한 스승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하상사지유(何常師之有),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좇는다는 뜻으로 먼 곳으로 유학감을 이르는 말을 부급종사(負芨從師),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존사애제(尊師愛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