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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선생
도치씨는 수족관에서 바글거리는 미꾸라지를 보자 막 던지려던 아내의 화장품 통을 제자리에 놓았다. 문득, 정말로 문득 예전에 본 기막힌 생각을 했다. 아니 기막혔던 지난 기억을 떠 올렸다. 뿐만 아니라 도암이 했던 말도 기억해냈다.
도암은 인사동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관상철학가다.
그가 했던 기이한 행위와 말이 아내의 부정을 목격하고 분노에 찬 지금의 도치씨 마음에 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낙석처럼 팍 꽂혔다.
“선생은 내 말 명심해 두시오. 아홉수를 넘기려면 여난을 한번 당해야 할 팔자요.”
“나를 관상쟁이라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일반 관상쟁이하고 수준이 틀리오. 나는 심곡산사에서 수년간 도를 닦고 취도한 몸이며 사람하나 죽이고 살리는 비법을 깨우친 사람이오.”
도치씨는 무릎을 탁 쳤다. 아니다. 엄지와 중지를 비틀어 탁 소리를 냈다.
도치씨가 관상철학가 도암을 알게 된 것은 낚시터에서였다.
그날 도암은 도치씨의 세길 건너 옆자리에 앉아서 피라미 류의 잡어입질 외엔 밤새도록 입질다운 입질 한번 못 받고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딱한 생각에 도치씨가 미끼를 나눠주려고 했지만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모른 체 했다. 낚시터에서 도치씨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도암과 말 한번 눈길한번 마주치지 않았는데 도암의 거드름이 거슬린 것은 순전히 그의 낚시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피라미나 구구리 같은 잡어가 나오면 발로 밟아 뭉개버리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혼자서 투덜대는 모습이 도치씨를 불쾌하게 했던 것이다.
“에이. 조무래기들! 죽을 자리를 보고 나와야지 아무데나 설치고 다니나?”
도치씨는 도암의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리던 대상어가 아니라도 먹지 않을 것이면 생명으로 존중해 줘야할 낚시꾼으로서의 기본 매너가 없었다. 게다가 밤새 가래침을 저수지에 탁탁 뱉는 모습이 정나미 떨어졌다.
어쨌거나 가능한 도암의 무례한 행동에 신경을 끊고 도치씨는 밤새 지루하지 않을 만큼 수확한 반면, 도암은 혼자서 별 짓을 다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2시간은 더 지나야 하지만 도치씨는 도암의 하는 꼴이 더 이상 보기 싫어 자리를 접을 요령으로 낚싯대를 챙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였다.
빈탕으로 혼자 발광하며 밤을 꼬박새운 도암이 희붐해진 산등성이를 등에 지고 도치씨에게 슬금슬금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아! 선생! 공사다망한데 실례를 무릅쓰오!”
아직 어두워서 어깨는 보이지 않아 잘 모르지만 목에 단단히 깁스를 한 도암이 도치씨에게 말했다. 깁스란 것은 석고나 콘크리트깁스가 아니고 목에 잔득 힘을 주고 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암의 말하는 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도치씨가 핀잔 같이 응수했다. 허지만 이 응수가 도암과의 오랜 인연이 될 줄은 그때 도치씨는 몰랐다.
처음 도암이 말을 걸었을 때. 도치씨는 도암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건너보면 절터라고 도암이 말을 건넨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도암이 말했다.
“아무리 지나가는 객이라도 사람이 말을 하면 들은 척은 해야 하는 거 아니오?”
마지못해 도치씨가 대답했다.
“용건이 뭐유?”
“용건이랄 건 없고 지금 선생이 낚시를 시마이하려니까 물어 볼 여건이 된 거 같아 내가 어려운 걸음 한거외다.”
도치씨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제가 사장님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피곤해서 그런겁니다.”
도치씨는 자신의 태도가 틀렸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기 때문에 사과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러나 도치씨의 이 사과발언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상대의 아픈 심정을 꼬집는 말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밤새 낚싯대를 들어다 놨다 하니까 무척 피곤합니다. 그래서 제 말이 좀 거칠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 해주십시오. 필요하시면 이 미끼 사용하십시오. 그럼 이만 전 실례하겠습니다.”
도암에게 사용했던 징거미새우를 건네주며 도치씨가 날쌔게 낚시도구를 가방에 쑤셔 넣고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도암이 접착제처럼 도치씨를 물고 늘어졌다.
“아! 선생! 일부러 자리 급하게 뜰 필요는 없수다. 내가 선생에게 미끼동냥하려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럴 마음도 없수. 허지만.”
도치씨가 도암을 비로소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첫댓글 또하나의 주인공 도암 선생이 등장 했군요..
여자와의 관계가 도암으로부터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 입니다.
아픈 데가 좀 우선 하신지요.
건강 조심 해서 건필 하세요..
걱정해 주신 마음 고맙습니다.
요즈음 전 손가락 수난을 엄청 받네요...ㅎ
며칠전엔 엄지손가락을 찔렸는데 물에 넣었더니 후유증통증이 또 도졌어요
허지만 염려덕분에 다행히 글 쓸만합니다
오늘도 편안하시고 멋진날되세요
도암 선생을 낚시터에서 껄끄럽게 만났지만
그래도 도치의 여자관계를 해결 해주지 안을가
조심스헙게 점처 봅니다.
고맙습니다 김일수님
김일수님의 기대만큼 도암선생이 해결해 줄지 의문스럽습니다...ㅎ
오늘밤도 멋진밤되세요
관상 철학가 도암 선생 너무 신통 방통 하게 맞추었나 보군요.
도치의 부인이 바람 나지 안았길 은그히 기대 해봅니다.
ㅎ
편한밤 오랜만에 천일염님 뵙네요
편히 쉬세요
지금도 손가락이 불편 하식가 봅니다.
무리 하지 마시고 건강에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소설 즐감 했슴니다.
고맙습니다 산아래님
그,렇습니다 아직은 좀...그래서 오타도 많이 나고요.
허지만 산야래님 이렇게 뵈니 얼마나 좋습니까?...ㅋ
고운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