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하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한국 그러면 가장 빨리 연상되는 것은 한국은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도 한국의 초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부지런히 내놓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이 아이낳기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주택가격의 급등과 끝을 알 수 없는 경쟁사회 등 아이를 키울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우려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여성 그룹이 급증하고 아직 남성에 비해 평등하게 살지 못한다는 의식이 여성들의 사고 기조에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간과하면 안되는 것 가운데 책임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일종의 책임감이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약간의 행복감도 있지만 그 하부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라는 것이 무거운 압력이라고만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책임감속에 행복도 보람도 싹트는 것이다. 회사를 이끄는 최고 고위층은 얼마나 책임감이 막중하겠는가. 하지만 그 최고 고위층에게 압박과 스트레스만 있겠는가. 자신이 수많은 직원을 이끌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그들과 함께 회사의 발전을 꾀한다는 바로 그 희열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회사 고위층들이 책임감이 귀찮고 두려워 회사를 포기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책임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젊은이들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지금 젊은이들의 부모격인 50대후반에서 70대들의 문제가 상당하다.그들은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이다. 엄청난 경쟁속에서 자랐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속에서도 그들의 부모들이 먹지도 입지도 않고 키운 세대들이다. 부모들은 못배워도 자식들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싶었던 세력들이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도 이뤘고 세계 가장 거지국가에서 세계 10위국으로 급성장을 이룬 것 아닌가.하지만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베이비부머들은 나름 성장하는 보람과 기쁨을 누렸다. 나라가 급성장하면서 일자리도 풍성해서 고등교육을 받으면 취직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씀씀이도 풍성해졌다. 베이버부머들은 회사에 취직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자가용차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때 낳은 자녀들이 지금 20대후반에서 40대들이다. 지금 한국의 출산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간과한 것이 있다.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아주 요상한 심리를 자식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을 철저하게 심어준 것이다. 이른바 책임감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급성장하는 세파에 휩쓸리느라 자식들의 집안 공부는 태만했다. 학교선생들과 학원선생들이 잘 가르쳐주겠지 나는 그냥 열심히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팽개쳐버렸다.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열심히 회사일하고 돈버는 맛에 푹 빠져 있었으니 말이다. 점차 좋아지는 가전제품 사는 맛에 또는 조금씩 아파트 평수 넓혀가는 희열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그결과 이 사회는 책임감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기본이 되는 덕목이 사라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책임감이 사라진다. 책임감은 그냥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어릴때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조금씩 터득하면서 몸에 쌓여야 그 효과를 발휘하는 덕목이다. 자식으로서, 학교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한부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교육을 받았다. 친구가 밥 먹여주느냐 친구따라 강남가느냐는 등의 표현이 그렇게 등장했다. 온 사회가 오로지 경쟁으로 얼룩지는 형편이 됐다. 오로지 성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언제 책임감이라는 것을 배웠겠는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개체는 모두 경쟁 상대자인데 말이다. 그런 부모아래 성장한 세대들이 지금 이 나라 핵심 젊은 세력들이다. 자식도 책임감이 없이는 잉태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 알고 주위에 관심이 없는데 무슨 2세 타령일까.
책임감이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책임감은 지금 이 나라 모든 계층에서 실종되어가는 상황이다. 사회지도층들의 책임감 상실은 더욱 우려스럽다. 타 그룹을 지적하는데는 능하지만 대안이나 어떻게 국면을 타개할 것인가에는 너무도 허술하다. 바로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이끄는 힘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잘못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무조건 지적을 해놓고 어떻하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그러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갈등도 책임감이 없는 과정에서 더욱 팽창한다. 나와 조금만 다르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을 때 증폭된다. 스스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면 무조건 타인을 비방하거나 폄훼하지 못하는 법이다. 책임감이 사라지는 사회에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크게 작게 모두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책임감이 없는데 무슨 발전을 바랄 수 있을까. 타인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책임감의 일종이다. 무조건 나만 생존하면 된다는 그 극단적 이기주의로 무장한 사회에는 정말 희망과 가능성은 없다. 이 사회의 모든 문제와 폐단의 시초는 바로 책임감 결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2023년 7월 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