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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듣기는 힘들지만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던지고 치며 달린다. 부산지역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인 '부산 데프 자이언츠'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그래픽=이재민 기자 eif2002@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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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20명 넘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12명만 남아 - 공식경기 단 1승 못해도 전국대회 우승꿈 포기 않고 - 운동장 모퉁이 더부살이 연습해도 우리는 웃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야구 참 좋아합니다. 지난해 프로야구장을 찾은 관중이 680만 명을 넘어섰다지요. 야구계에서는 올해에는 700만 돌파가 무난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야구 폐인'들은 4월의 시즌 시작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프로야구가 인기를 끌다보니 사회인 야구도 덩달아 봄을 맞고 있습니다. 야구를 할 만한 공간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방망이와 글러브를 든 사람들로 붐빕니다. 주위에 마땅한 연습장이 없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주말마다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가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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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야구단 '부산 데프자이언츠' 선수들이 훈련 도중 결의를 다지고 있다. 불끈 쥔 주먹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묻어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있는 힘껏 공을 던지고, 사력을 다해 배트를 휘두르고, 번개처럼 달려 2루를 훔치다 보면 고단한 일상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은 상큼하게 정화가 된다고 합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하는 막걸리 한 잔의 맛은 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많은 동호인들이 입에서 '이 맛에 야구를 한다'는 말이 한목소리로 나오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야구를 '죽도록 좋아해도' 방망이 한 번 깜냥껏 허공에 대고 가르지 못하는 이들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합니다. 연습장을 구할 비용이 없어 학교 운동장 한 구석의 틈바구니에서 공 몇 번 던지는 것으로 야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팀들과 시합을 하고 싶어도 언감생심입니다. 수준이 차이 나기도 하거니와, 장비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너희들도 야구하는 팀이냐'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무슨 이런 팀이 있느냐고요.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이들은 부산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인 '부산 데프 자이언츠'입니다.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도 비장애인처럼 야구를 미치게 좋아합니다. 그들처럼 마음껏 뛰고 달리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비장애인들도 확보하기 힘든 연습장은 이들에게 아예 차례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들 어렵게 사는 터라 많은 돈을 들여 괜찮은 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대개 출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한 일을 하는 까닭에 전 회원이 함께 모이는 것 역시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데프 자이언츠는 연습부족으로 청각장애인 야구대회에서 지금까지 단 1승도 챙겨보지 못했습니다. 나가는 족족 완패를 당했다고 합니다. '한 번만 이겼으면 죽어도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도 데프 자이언츠 사람들은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자꾸 실력을 쌓다보면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비장애인들과도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최근 데프 자이언츠는 신입회원을 모집하면서 '세상을 향한 소리없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기 마련입니다.
며칠간 포근했던 기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던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야구 유니폼을 입은 몇명이 부산 개성고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영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 헬멧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글러브와 야구공 몇개가 이들이 갖고 있는 장비의 전부. 급기야 한창 시합에 열중하고 있는 옆 운동장의 사회인 야구팀에게서 타격 연습을 위해 방망이 몇 자루를 빌려올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장비를 책임지고 있는 회원이 집안 사정으로 이날 연습에 불참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여유장비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야구팀. 부산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인 '부산 데프 자이언츠'의 현주소다.
◇ 야구? 우리도 한다면 한다
데프 자이언츠는 지난 2010년 2월 출범했다. 그 전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농아인야구대회를 본 뒤 평소 야구를 좋아하던 20여 명이 '우리도 한 번 해보자'며 힘을 모았다.
야구단 발족에는 이들의 입이 되어 주고 있는 이수민(여·47) 사무국장의 힘이 컸다. 일본어 통역일을 하는 이 국장은 일본에서 공부를 할 당시 수화를 배울 정도로 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귀국한 뒤 우리나라 청각장애인들이 보유한 지식과 정보의 수준이 일본보다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국장은 이런 현실을 개선해보고자 평소 알고 지내던 청각장애인들과 야구단을 만들기로 했다. 이 국장은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을 자주 연습장에 데려온다. 회원들과 어울리면서부터 두 딸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린 것이 그에게는 큰 다행이다.
데프 자이언츠의 현재 단장인 이형복(42) 씨는 이 국장의 제자다. 대학교 1학년 때 장애인 학교에 국어를 가르치려고 갔던 이 국장은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이 단장을 만났다. 그 때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이 단장은 의류관련 회사에서 재단일을 한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학교 때는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데프 자이언츠에서는 외야수로 뛰고 있다.
하고 싶어 하던 운동을 할 수 있어 즐겁기만 한 이 단장이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있다.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계속 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열린 공식 경기에서 이 팀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서울과 청주, 충주의 연합팀과 맞붙어 대등한 경기를 펼친 뒤 한껏 자신감을 얻었다. 아직 야구팀이 없는 울산과 김해 등의 재능있는 청각장애인들을 받아 들여 한 팀을 만들면 충분히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우리들의 투지 꺾을 수 없다!
데프 자이언츠의 투수 김강국(49) 씨는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분포한 이 팀에서 최고령 선수다. 무슨 운동이든 수준급의 실력을 발휘할만큼 재주가 있다. 팀의 맏형답게 선수들을 한데 모으고 다독거려주는 역할을 한다.
부산농아인협회 수영구 지부장이기도 한 김 씨는 야구가 정신 및 육체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예찬론을 펼쳤다. 그의 현재 소원은 팀이 어느 대회에서건 1등을 한 뒤 영예롭게 은퇴를 하는 것이다.
아빠를 따라 주말마다 운동장을 찾은 김 씨의 아들 도훈(12) 군은 "허리가 좋지 않은 아빠가 다칠까봐 늘 걱정이 된다"면서도 "아빠가 자랑스럽다"며 기특한 말을 했다.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의 장애 정도는 1~4급으로 다양하다. 청각장애인은 2급이 최고 등급이나 한 회원은 시각장애까지 겹쳐 1급(중복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팀에서 외야수로 뛰는 막내 김민엽(23)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장애등급 4급이어서 듣고 말하는데 큰 불편은 없다. 지금 부산대 특수교육과 4학년이다. 그의 꿈은 남들보다 좀 더 크다. 열심히 연습을 해 단순히 1승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팀을 부산 사회인리그에 가입시켜 비장애인과 겨뤄보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다만 김 씨는 올 가을이 되면 잠시 팀을 떠나야 한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다. 특수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 준비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는 "빨리 시험에 합격해 다시 팀원들과 야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털어 놨다.
◇ 넘기 힘든 현실의 장벽
지난 2010년 데프 자이언츠가 발족될 당시 출발은 좋았다. 주위의 관심도 높았고, 프로야구 출신 선수를 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선수단 분위기도 한껏 고조돼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실적인 걸림돌이 서서히 이들을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들에게 닥친 것은 경제적 부담. 특정 단체의 후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주머니를 털어 해결해야 했다. 각종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도 십시일반 보탤 수밖에 없다. 당초 20명을 웃돌던 회원이 지금 12명으로 준 것은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마땅한 운동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데프 자이언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이나 사설 연습장은 대개 일정액을 지불하고 사회인 야구단과 연간계획을 맺기 때문에 경제력이 열악한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일반 운동장의 한 모통이에서 흉내만을 내고는 연습을 마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함께 모여 운동을 할 시간을 맞추기 힘든 것도 데프 자이언츠의 고민이다. 퇴근이 칼처럼 지켜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드물어 일요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이 사무국장은 "직장의 책임자들이 '조그마한 배려'를 해준다면 데프 자이언츠의 전력 향상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들이 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데프 자이언츠는 지난해 해체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성적은 나지 않고, 회원도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자포자기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회원들은 갑론을박 끝에 여기에서 그만둘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팀이 해체되면 다시 만들기도 힘들거니와 앞으로 청각장애인들이 취미활동을 할 기회를 영원히 뺏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아 팀 존속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날 추운 날씨 속에서도 훈련을 치러낸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은 연습이 끝나자 모두 글러브를 맞댔다. 그리고는 한 손을 허공을 향해 던졌다. '소리없이 강한' 그들의 각오가 불끈 새나왔다.
# '1인 후원자' 박동혁 씨
"장비 유니폼부터 우선 지원, 함께 힘이 될 분 찾습니다"
부산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의 얼굴에는 요즘 희망이 넘쳐 흐른다. 딱히 훈련이 잘되서라거나, 성적이 좋을 것이란 예감이 들어서가 아니다. 지난 2010년 창단 후 처음으로 후원회장이 부임했기 때문이다.
박동혁(58·사진) 씨는 얼마전까지 야구용품을 생산, 판매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랬던 그는 우연히 장애인 행사에서 데프 자이언츠의 이수민 사무국장을 만난 뒤 이 팀과 인연의 끈을 맺었다. 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도와줄 이를 찾다가 여의치 않자 직접 나서게 됐고, 그런 이유로 자신의 말마따나 '어쩔 수 없이 엮이고 말았다'.
지난 달 25일 회원들과 상견례를 한 박 회장은 선수들에게 장비와 유니폼 지원 등을 약속했다. 또 지금은 1인 후원자에 불과하지만 될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 공식 후원회를 만든 뒤 지속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국장은 이날 이후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귀뜸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 회장은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일단 한 번 뱉은 말은 지켜야겠지만 후원이라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것이 아니어서다. 그래서 박 회장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부산 을숙도로타리클럽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의 뜻에 공감한 다수의 지인들이 함께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제적인 부분만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데프 자이언츠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청각장애인 야구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첫 만남에서 데프 자이언츠 사람들이 굉장히 순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비 지원에 이어 다음으로는 이들이 마음놓고 연습을 할 수 있는 구장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볼 생각입니다. 부산시나 롯데 자이언츠 등과도 접촉을 해보려 합니다. 시나 구단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후원에 동참해 주시면 더 좋겠지요. 그러면 데프 자이언츠 회원들은 비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응도 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후원 문의 부산 데프자이언츠(cafe. naver.com/bdeafgiants), 사무국 010-4220-94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