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별식을 못해 드린 것 같아서, 지난 주말엔 모처럼 ‘안동찜닭’을 했다.
가보차호박에, 고추, 버섯, 밤, 당면까지 넣으니 꽤 푸짐하고 맛깔나게 보였다.
‘아버지, 제가 또 사고를 쳤어요.’
‘엉? 뭔 사고, 다쳤어?’
‘오늘 찜닭이 제대로 됐지 뭐예요? 짭쪼름하니 괜찮으실 거예요.’
닭다리 하나 드시더니,
‘별로야. 맥치킨이 더 마시써’
쩝쩝, 음냐음냐...
아들애의 먹는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형편없진 않은가 본데, 햄버거에게 졌다.
내 아버지는 무역회사에 다니셨다.
외국에서 고철을 사다가 강철 빔, T자, I 자 모양의 철근 등을 만들어 되파셨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하기도 전,
비행기 타 보기도 어려운 시대에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니셨다.
이른바 조기 해외파라 할 수 있으니,
김동길 교수처럼 콧수염에 나비 넥타이를 맨다던지,
아침으론 토스트와 햄을 드신다던지 여러모로 세련되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입이 어찌나 짧고 토종이신지, 외국을 아무리 다니셔도 한식 외엔 드시질 못하셨다.
게다가 거의 채식이셨다.
일본을 가셔도 종일 굶다가 퇴근 후 한국 식당을 찾아 하루 한 끼만 해결하셨다고 한다.
그런 분이 왜 하필 무역을 하셨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한 달 남짓의 월남 출장에서 돌아 오셨을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월남전이 발발하기도 전이었으니 한국 식당이 있을 리도 없고,
지금도 냄새가 감당 안되는 허브들이 그 때는 오죽했으랴?
우리는 김포 공항 출국장을 나오시는 아버지를 알아 보지 못했다.
흡사 과학 실험실에 있던 해골 모형이 양복을 걸치고 걸어 다니는 듯?
게다가 검게 그을린 채...
세월이 지나며 아버지의 입맛도 조금씩은 타협을 해 갔지만,
3년 전 내 집에 오셨을 때까지만 해도 ‘우거지국만 끓여라.’ 와
‘여기까지 오셔서 왜 우거지국 타령이세요?’ 의 전쟁이었다.
맛있는 거, 신기한 거 좋아하는 엄마는 아버지 땜에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없어 불만이셨다.
심지어 빵 한 가지도, 베이글은 딱딱하다, 크로아쌍은 버터가 많다, 호밀빵은 거칠다,
사우어도(sourdough –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명물빵) 는 신내가 난다, 잉글리쉬 머핀은 질기다,
등등 죄다 툇짜를 놓으시는 통에, 결국 한국 베이커리에서 파는 한국식 식빵을 사다 드려야 했다.
엄마 돌아가신 후 내 집에 오신 지 일년 반이 지났다.
연로한 부모와 같이 사는 어려움은 식사 준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화에 지장없게, 입맛에 맞게, 시간 맞추느라 신경쓰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게다가 같은 반찬 두 번 째 올리면 젓가락이 갈 곳을 헤매는지라,
주말엔 일주일치 국과 찌게, 반찬들을 준비하느라 동동거리며
‘평생 엉터리로 살림한 벌을 기어이 받는구나.’ 했다.
다행히 피자는 좀 드셨다.
‘피자가 비싸냐?’
‘왜요? 피자 괜찮으세요?’
‘어엉...난 피자가 그렇게 마시써...’
옳다쿠나, 그 때부터 피자데이(pizza day) 가 생겼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운전대 잡고 졸기도 할 정도로 피곤한데,
‘헹! 오늘은 피자데이...’ 몸과 맘이 편해졌다.
일주일에 하루 만으로도 ‘휴우~’ 하는 느낌인데, 갑자기 햄버거도 좋으시단다.
처음엔 특히 햄버거를 질색하셨다.
손으로 먹는 것도 상스럽고, 질질 흘려서 싫고, 두꺼워서 자칫 틀니 빠질까 걱정되신다는 거였다.
근데 어느날 맥치킨(튀김닭 패티를 넣은 맥도날드 햄버거)에 꽂히셨다.
처음엔 나 편하라고 일부러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조금은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신다.
하루에 네 개를 사다가 점심 때 하나, 저녁에 두 개,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드신다.
얼마나 드시나 보자하고 연일 사다 날랐더니 나흘 정도 계속하신 적도 있다.
‘닭다리 하나 더 드시죠?’
‘싫여, 밥 다 먹었어.’
찜닭을 앞에 두고 양념장과 생강초절임으로 깨작거리는 밥을 드셨다.
두어 시간 후에 아버지에게 가니 인터넷 장기를 들여다 보며 뭔가 오물거리고 계셨다.
눈치 빠른 아들녀석이 슬그머니 나가더니 맥치킨을 사다 드린 모양이다.
‘아버지, 또 햄버거 드세요?’
‘으응...이건 얼마든지 먹겠어.’
‘내일 아침에도 드실 거예요?’
‘으응...똥강아지가 두 개 사 왔어.’
겸연쩍으면서도 행복한 표정이시다.
영양이고 뭐고 당신이 좋으면 되는 거지.
대신 양상치 한 장 더 넣어 드리고, 블루베리 반 컵 정도 같이 드리는 걸로 내 맘을 달래고 있다.
미국 생활 일년 반, 아버지는 이렇게 진화하고 계신다.
당신을 햄버거의 왕, 버거킹으로 명명합니다...ㅎㅎㅎ...
Eastern…(^_^)
첫댓글 샌프란시스코의 버거킹 - 참 멋지십니다. 따님이 아버님을 닮았어요. 멋지고.. 왕성하고.. 세심하고.. 세련되고.. 기타 등등 좋은 거 다~ ㅋ 아버님께서 오랜 세월 투병하시다 며칠 전에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경황이 없어 답글이 늦었어요. 아껴두었다 오늘 제대로 몽창 읽었습니다. 보고 싶당~ ^^*
오늘은 맘먹고 동쪽님 글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옌날생각 나네요 ..
하하하 아버님이 이쪼쪼글할망구를 보고 활짝 웃으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멋지신 킹 입니다. 하하하
목소리님!
강녕하시지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