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싱커블 작전(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전선 종료 직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구상하고, 영국군이 실행 가능성을 연구했던 작전. 원래 계획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처칠답게 독일에 주둔한 소련군을 공격, 궁극적으로 동유럽에 전개한 소련군을 소련 영내로 몰아내기 위한 작전이었다.
당연히 현실성은 없었다. 일단 영국이나 미국의 국민들은 더 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뜬금없이 얼마전까지 나치 독일을 상대로 같이 싸우던 소련을 제대로 된 명분도 없이 공격하여 새로운 전쟁을 만드는 것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민주주의 국가인 영미에서는 정권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참고로 카를 되니츠가 이 가능성을 믿고 꼼수를 부리려고 했으나 아이젠하워에게 허튼짓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얌전히 항복했다.
여기에 영국군 수뇌부도 하나같이 반대했다. 영국 육군 원수였던 버나드 몽고메리가 "군사학의 제1법칙은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결사반대했다. 영국 육군 참모본부 유럽에 전개한 영미군의 병력이 소련군의 1/3이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말렸다. 더욱이 일본인의 자살공격에 수많은 희생이 많이 따를 것 같은 대일전에 소련을 참전시키려던 미국이 소련을 적으로 돌리는 이런 계획에 찬동할리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처칠의 아이디어는 폐기되었다. 어쨌든 소련은 스파이망을 통해 어느정도 이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며, 이 때문에 냉전은 더욱 앞당겨졌다. 물론 소련 수뇌부도 이 작전을 비웃었다.
1945년 5월에 독일 영내에 전개한 각국의 야전군 단위 부대들. 소련군 및 친소동맹군(폴란드군+유고군+루마니아군)이 서부전선 연합군(미군+영국군+자유 프랑스군+캐나다군)을 수로 압도함을 볼 수 있다. 명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처칠의 언싱커블 작전은 실행이 불가능했다. 물론 지상군만 표기된거지만 어차피 해군은 여기서 딱히 할 일이 없고 제공권이야 영미군이 어렵지 않게 잡겠지만 육군의 전력차가 너무 커서 버틸 수 없다.
처칠은 갈리폴리 전투 이후로도 말도 안되는 군사 계획을 밀다가 자원만 낭비하거나 피해만 입는 경우가 많았다. 말레이 해전 건은 정작 승리한 일본군 해군 측에서도 항공력을 제대로 평가 못하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브래덕 작전 등 군사적 무능은 대전 초에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제대로 된 현대전 지휘관으로 성장한 이오시프 스탈린과는 비교도 안 되고 그 아돌프 히틀러 이상이다. 그나마 처칠은 실력있는 지휘관/참모들이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수습해줬고 처칠 본인의 말솜씨가 뛰어나서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이후 냉전이 본격화된 1950년대에 한국전쟁으로 위기감을 느낀 나토 사령부에서 소련군이 나토에 선전포고 했을 경우에 대비한 방어작전에 이 이름이 붙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된 지 한참 후인 1998년에 기밀 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