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노벨상은 원래 벤자민 휘소 리에게 가야 할 상이다.”
스티븐 와인버그(1979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위 인용은 스티븐 와인버그의 노벨상 수상 소감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기에 나오는 벤자민 휘소 리의 본명은 이휘소. 입지전적의 물리학자이며 한국인 중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시 되었던 인물입니다.
1935년에 태어난 그는 고등학생 때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에 입학한, 이른바 상당히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에 주한미군 부인회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지요.
이휘소는 미국에서도 돋보이는 인재였습니다. 마이애미 대학에서 학사 학위,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 학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요.
학교 순위 매기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기는 한데, 저 중에서 펜실베니아는 흔히 미국 명문대의 척도로 여겨지는 아이비리그 소속입니다(참고로 아이비리그는 원래 미국 북동부의 사립대학 스포츠 리그를 뜻하는 거지 명문대를 규정하려고 만들어진 용어는 아닙니다). 다른 곳도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지요.
도장 깨기 하듯 폭풍 같은 속도로 학위를 취득한 이휘소는 이후에도 화려한 행보를 지속합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회원, 펜실배니아 대학교 조교수, 양전닝 이론물리학 연구소 정교수, 페르마 국립 가속기 연구소 이론물리학 초대부장, 시카고 대학교 교수 등등...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자발 대칭 깨짐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맵시 쿼크의 질량 예측’, ‘물리우주론적 리-와인버그 경계의 계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렵지요? 저도 어렵습니다... 이게 소립자 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들인데, 관련 논문 좀 보고 쉽게 설명하고 싶었으나 제 능력 바깥에 있더군요.
다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휘소의 게이지 이론은 힉스 메커니즘의 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신의 입자라고 대대적인 보도를 했던 그 힉스 입자입니다. 피터 힉스(201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논문을 보고 힉스 입자라는 명칭을 붙인 게 이휘소로 알려져 있지요.
맨 위에 인용한 와인버그의 말 역시 괜한 소리가 아닌 게 1979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들의 연구에는 모두 이휘소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와인버그의 논문을 심사하고(그래서 ‘리-와인버그 경계’입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압두스 살람의 연구를 재평가했지요. 살람 역시 ‘벤자민 리의 자리에 내가 있다’라 말하며 이휘소를 추켜세웠습니다.
그럼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나?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죽은 사람은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휘소는 1977년에 타이어 펑크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거든요. 그의 나이 고작 44세였습니다.
한창 연구를 하던 때인 만큼 아쉬운 죽음이었고, 이 때문에 누군가 암살 사주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법정 진술이나 자동차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암살은 아닙니다. 음모론이 너무 심각해서 이휘소의 제자인 강주상 교수는 <이휘소 평전>에서 음모론을 논파하는데만 한 파트를 할애하기도 했지요.
위에서 언급했듯 이휘소는 엄연한 소립자 물리학의 권위자지만 국내에서는 그를 핵물리학자로 잘못 아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건 김진명 씨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탓이 큽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이용후 박사의 모델이 이휘소인데, 작품 내에서 이용후는 미국에서 핵실험 설계도를 빼돌리는 것으로 나오지요. 그의 죽음 역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음모라고 나옵니다.
뭐 박정희 대통령이 책 제목과 같은 프로젝트명으로 핵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기는 한데 여기에 이휘소가 개입했다는 건 김진명 씨의 망상에서 나온 개드립입니다. 군사정권의 자주국방을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지요. 오히려 이휘소 본인은 핵무기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핵무기는 언젠가 반드시 없어져야 하며, 특히 독재가 행해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강주상, <이휘소 평전> 중 이휘소 본인의 발언
애초에 핵무기란게 설계도 하나 딸랑 가져다준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설계 이론 자체는 이미 이휘소 생전 대학교 학부생 논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개되어 있었지요. 정말 필요한 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수백 명의 핵공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재료가 될 우라늄이나 플라토늄입니다. 맨하튼 프로젝트 참여 인원이 몇 명인지, 여기서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이나 나왔는지 알았으면 이런 헛소리는 못했을 텐데요...
이휘소의 유족들은 소설에서 왜곡된 이휘소의 모습에 반발했습니다. 아내인 심만청(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씨는 “그는 남편에 대해 온갖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썼고 남편의 이름에 먹칠을 했습니다.”라고 인터뷰까지 했지요.
이 문제는 명예훼손 소송까지 가게 됩니다. 명예훼손 자체는 기각되었지만 내용이 허위임은 인정받았고 책 본문의 이휘소 실명을 삭제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지요. 김진명 씨는 이후에도 쭉 역사소설이랍시고 여러 책을 내기는 했는데, 여전히 그의 작품은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실제 역사와 안드로메다급으로 차이가 나지요.
여하튼 오늘 글에서 이휘소를 높게 평가하는 건 제가 이해도 하지 못하는 그의 연구 결과물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미국 유학 후 미국인으로 귀화했지만, 본인이 태어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지요. 한국 물리학 발전을 위해 하계대학원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지요.
“위수령 발동, 학생운동 탄압 등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로 우리가 추진 중인 여름학교 사업을 재고하게 됩니다.
(중략)
여름학교의 책임을 맡게 된다면 내가 한국의 현 정권과 그 억압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까 걱정이 됩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입니다. 한 편으로는 한국의 과학 발전을 위하여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하는 이러한 처사들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에서 이에 관한 초청이 오더라도 수락하지 않을 결심입니다. 엉뚱한 짓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국 국민의 장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휘소 박사가 한국과학원 부원장 정근모 박사에게 보낸 서한 중
이휘소 박사는 유신독재와 같은 한국의 반민주적 상황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때문에 한국 물리학계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초청을 모두 거부했지요. 물론 핵개발 같은 것에 협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요. 그는 국익 따위를 위해 과학자의 양심을 버릴 생각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에게 본받을 것은 이런 게 아닐까요.
ps1. 더 자세한 내용은 <이휘소 평전>(강주상 저, 럭스미디어)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품절되었군요. 중고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발견하게 되면 일독을 권합니다.
첫댓글 20년하고 더 됩니다. 김진명 씨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그때의 이휘소 박사의 일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아니군요.
공부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온한 저녁시간 되시길 바라며
굿나잇 ^~^
씨의 소설이 점점 국수주의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극적이기도 하구요.
오늘도 평온한 저녁시간 되시길 바라며
굿나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