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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레나언니의 글을보니 언젠가 오딜이 게시판에 소나기를 올린적이있어서 찾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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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6일날 쓴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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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오딜이는 이런기분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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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레나님의 글을읽고 "소나기"가 생각나시는분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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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갑자기 문득 떠오르는......
: 난 소나기를 정말 좋아한다. 그 cool한 느낌! 글구 황순원의 "소나기" 날 가슴떨리게 만들었던 소설!
: 오늘 은 왠지 "소나기"가 읽고 싶어서...
: 사춘기의 아련한 추억에 잠기고 싶은 님들은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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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m~ 아직도 사춘기인 오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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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나 기 - 황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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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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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 걷어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 들여다 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 새끼라도
: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 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 하나 집어 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 "이 바보."
: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 갈꽃뿐.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발돋움을 했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 생각됐다. 저 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였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었다.
: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갈꽃머리에서
: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 가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 보았다.
: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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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부터 좀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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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어떤 날,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 보았다. 물 속에 손을 잠갔다. 세수를 하였다. 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검게 탄 얼굴이
: 그대로 비치었다. 싫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로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 '숨어서 내가 하는 일을 엿보고 있었구나.' 소년은 달리기 시작했다. 디딤돌을
: 헛디뎠다. 한 발이 물 속에 빠졌다. 더 달렸다. 몸을 가릴 데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이
: 쪽 길에는 갈밭도 없다. 메밀밭이다. 전에 없이 메밀꽃 내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고
: 생각했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찔한 액체가 입술에 흘러들었다. 코피였다. 소년은 한
: 손으로 코피를 훔쳐 내면서 그냥 달렸다. 어디선가 '바보, 바보'하는 소리가 자꾸만
: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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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이었다.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체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소녀 앞에서
: 한 번 실수를 했을 뿐, 여태 큰길 가듯이 건너던 징검다리를 오늘은 조심스럽게 건넌다.
: "얘."
: 못 들은 체했다. 둑 위로 올라섰다.
: "얘. 이게 무슨 조개지?"
: 자기도 모르게 돌아섰다. 소녀의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얼른 소녀의 손바닥으로
: 눈을 떨구었다.
: "비단조개"
: "이름도 참 곱다."
: 갈림길에 왔다. 여기서 소녀는 아래편으로 한 삼 마장쯤, 소년은 우대로 한 십 리
: 가까운 길을 가야 한다.
: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 벌 끝을 가리켰다.
: "없다."
: "우리, 가 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 "저래봬도 멀다."
: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있을 땐 사뭇 먼 데까지도 소풍 갔었다."
: 소녀의 눈이 금새 '바보, 바보' 할 것만 같았다.
: 논 사잇길로 돌아섰다. 벼 가을걷이하는 곁을 지났다.
: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소년이 새끼줄을 흔들었다. 참새가 몇 마리 날아간다.
: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 "아, 재밌다!"
: 소녀가 허수아비 줄을 잡더니 흔들어 댄다. 허수아비가 자꾸 우쭐거리며 춤을 춘다.
: 소녀의 왼쪽 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었다. 저만큼 허수아비가 또 서 있다. 소녀가
: 그리로 달려간다. 그 뒤를 소년도 달렸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린다.
: 메뚜기가 따끔따끔 얼굴에 와 부딪친다. 쪽빛으로 한껏 갠 가을 하늘이 소년의
: 눈앞에서 맴을 돈다. 어지럽다.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 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보니, 소녀는 지금 자기가 지나쳐 온 허수아비를 흔들고
: 있다. 좀 전 허수아비보다 더 우쭐거린다. 논이 끝난 곳에 도랑이 하나 있었다. 소녀가
: 먼저 뛰어 건넜다.
: 거기서부터 산 밑까지는 밭이었다. 수숫단을 세워 놓은 밭머리를 지났다.
: "저게 뭐니?"
: "원두막."
: "여기 참외, 맛있니?"
: "그럼.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 "하나 먹어 봤으면."
: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우밭으로 들어가, 무우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개 건넨다. 그리고는 이렇게 먹어야
: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 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 "아, 맵고 지려."
: 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 "참, 맛 없어 못 먹겠다."
: 소년이 더 멀리 팽개쳐 버렸다.
: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잎이 눈에 따가왔다.
: "야아!"
: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그런데, 이 양산같이 생긴
: 노란 꽃이 뭐지?"
: "마타리꽃."
: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 떠올리며.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 그러나, 소녀는
: "하나도 버리지 마라."
: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초가집이 몇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한
: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유달리 주위가 조용해 진 것 같았다. 따가운
: 가을 햇살만이 말라 가는 풀 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 "저건 또 무슨 꽃이지?"
: 적쟎이 비탈진 곳에 칡덩굴이 엉키어 꽃을 달고 있었다.
: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 저 꽃을 보니까 등나무 밑에서 놀던 동무들 생각이 난다."
: 소녀가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꽃송이가 많이 달린 줄기를 잡고 끊기
: 시작한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만다. 칡덩굴을 그러쥐었다. 소년이 놀라 달려갔다.
: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올리며, 소년은 제가 꺾어다 줄 것을
: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오른쪽 무릎에 핏방울이 내맺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 생채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홱 일어나
: 저 쪽으로 달려간다. 좀 만에 숨이 차 돌아온 소년은
: "이걸 바르면 낫는다."
: 송진을 생채기에다 문질러 바르고는 그 달음으로 칡덩굴 있는 데로 내려가, 꽃 많이
: 달린 몇 줄기를 이빨로 끊어 가지고 올라온다. 그리고는,
: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
: 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 내면서,
: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뜩선뜩 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 기울고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 했다.
: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 어깨를 싸 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는,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 골라 발 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
: 없었다.
: 밖을 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 놓은 수숫단
: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 이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 됐다.
: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 망그러졌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 기운으로 해서
: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 개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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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는 소녀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 매일같이 개울가로 달려와 봐도 뵈지 않았다.
: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살피기도 했다. 남 몰래 5학년 여자 반을 엿보기도
: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 그 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이 쪽
: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 "그 동안 앓았다."
: 어쩐지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 "그 날, 소나기 맞은 탓 아냐?"
: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 "인제 다 났냐?"
: "아직도......"
: "그럼, 누워 있어야지."
: "하도 갑갑해서 나왔다.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날 어디서 이런 물이
: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
: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 "내, 생각해 냈다. 그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 물이다."
: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대추를 땄다. 낼 제사 지내려고....."
: 대추 한 줌을 내 준다. 소년은 주춤한다.
: "맛봐라.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심었다는데, 아주 달다."
: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 "참, 알도 굵다!"
: "그리고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고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게 됐다."
: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 초시 손자가
: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것이 이번에는 고향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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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 돌아오는 길에는 열 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
: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 가는
: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 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
: 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고 닭 한 마리를
: 안고 있었다.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
: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 "이만하면 될까?"
: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 "벌써 며칠째 '걀걀' 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크진 않아도 살은 쪘을 거여요."
: 소년이 이번에는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어디 가시느냐고 물어 보았다.
: "저, 서당골 윤 초시 댁에 가신다. 제삿상에라도 놓으시라고....."
: "그럼, 큰 놈으로 하나 가져가지. 저 얼룩수탉으로....."
: 이 말에, 아버지는 허허 웃고 나서,
: "임마, 그래도 이게 실속이 있다."
: 소년은 공연히 열적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 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 갈겼다. 쇠파리라도 잡는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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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 하늘 아래 한결 가까와 보였다.
: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
: 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 "허, 참, 세상일도....."
: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 오던 집마저
: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 "증손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 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선 윤
: 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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