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정희 친구가 MBC 여성시대 30주년 봄편지쇼에 투고한 내용임)
가 방
지은아! 네가 공부하고 있는 경상관이 올려 보이는 벤치 모퉁이에 앉아,
예사롭지 않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크나 큰 축복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큰 절 올리며 감사드리고 싶다.
그러면서 새 생명을, 이 벅찬 환희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구나.
지은아! 이제는 그 힘든 가방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구나.
우리가족 모두가 있는 힘 다해 함께 들었던 그 길고 긴 가방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했던 긴긴 세월들을 눈물 없이 얘기하고 싶어지는구나. 모든 인간은 내면에 저마다의 빛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더라만
우리의 삶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음을 안지도 벌써 15년이 되었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 긴 세월을 피나는 노력과 인내로 혹은 눈물을 삼키며
참아낸 시간들이 흘러 네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은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단다.
이 세상 모두를 얻은 기쁨이었다고나 할까?
지은아!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고 했던가.
하지만 엄마에게는 지금까지의 봄은 봄이 아니었단다.
매년 봄은 왔겠지만 엄마는 한더위가 와서야 봄이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단다. 사랑하는 지은아! 지난 15년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다섯 살 때 눈 구경 시켜달라고 엄마를 졸랐지?
직장생활로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항상 부족하기만 했던 사랑,
무엇이 아까워 그 작은 소원 하나 못 들어줄까싶어
엄마의 직장 동료들과 눈썰매장엘 다녀왔었지?
체온계도 필요 없을 만큼 잔병치레 한 번 없이 잘 자라 주던
네가 그때부터 열이 나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단다.
엄마는 고열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토요일 오후만을 기다렸단다.
직장에서 부서를 옳긴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했고
사적인 일로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는 성격 탓에
병원에 가기 위해 결근을 한다는 생각은 못했단다.
미련한 엄마는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
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먹이며 토요일 오후를 기다리다 약으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부산 침례병원에 너를 입원시켜놓고 자책하고 자책하여
가슴에 멍이 들 즈음, 너는 큰 울음소리와 함께 왼쪽으로 몸이 기울어지고
안면이 일그러지면서 격리실로 보내졌단다.
의사선생님이 “지금은 왼쪽에 장애가 왔지만 오른쪽까지 올지 모르니 걸어서
나갈 생각은 하지마라” 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렸단다.
그때 마침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서 안부전화가 왔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모는 “곧바로 택시 타고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재촉하였다.
주선해주는 사람도 없이, 꽂고 있던 링거를 달고 무작정 서울로 갔단다.
새벽 6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외래진료 시간이 될 때까지 초초한 가슴을 쓸어내며
응급실 바닥에 앉아 기다렸던 그 4시간이 내게는 천만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서둘러 입원수속을 밟고, 보호자 각서에 사인을 하고,
어린이 뇌경색 모야모야 병명이 내려졌을 땐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구나.
뇌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를 잘라야 했을 때, 네가 아끼는 예쁜 삐삐 머리를 자르지 않으려고
떼를 썼을 때, 엄마가슴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단다. 수술실에 자식을 보내놓고 기다려본 엄마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도,
천지가 암흑으로 뒤덮인다 해도 기적과 희망을 찾으려
험한 길을 마다않고 그 길을 걸을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나이만큼 예쁜 어리광과 투정과 때로는 대견함으로 잘 참아내며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는데 엄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기막힌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미안하구나. 세상에는 똑똑하고 현명한 엄마들도 많은데
무지한 엄마와의 인연으로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엄청난 현실을 인정해야하는
너에게 더 이상 무슨 말로 용서를 구할 수 있겠느냐.
너 또래아이들처럼 건강하고 밝고 바르게 잘 자라주기를 기대 할 수 있었겠느냐.
엄마는 암 환자나 사형수들이 간절히 바라는 내일을, 빛과 희망으로 맞이할 자신이 없었단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 쌀쌀한 새벽녘, 지쳐 잠든 너를 흔들어 깨워 싸늘한 휠체어에 태우고
긴 통로를 오가며 많은 검사를 받으면서 스틴븐호킹 박사님의
“인생이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삶이 있어야만 희망이 생긴다.”는
그 말씀을 주문처럼 되 뇌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단다.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절망을 밀어내었다.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는 타고난 능력도 없는 애송이 엄마한테 예고 없이
찾아온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네가 지쳐 잠든 시간이면 기도실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단다.
“간절한 기도는 무쇠를 녹인다.”고 하신 어느 스님의 말씀을 철석(鐵石)같이 믿고,
내 마음이 이렇게 간절하고 뜨거운데 무엇을 못 녹이랴. 뜨거우면 무엇이든
다 녹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도했었다. ‘가장 좋은 약은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까?
사랑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혼신을 다하여 재활의 과정을 시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모든 죄는 이 어미에게 다 돌리시고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정상인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간절함과 절실함이 녹아내린 기도 덕분인지
네 생일날과 어린이날은 희망이 보여 슬프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단다.
뿐만 아니라 담당 박사님의 말씀은 너와 나의 슬픔을 반으로 줄여 주셨다.
나머지 반은 재활치료로 되찾을 수 있다는 기쁨의 숙제를 안고 70여일 만에
서울세브란스 병원 소아신경외과 병동에서 퇴원하게 되었단다.
기특하게도 너는 불편함에 조금씩 적응하며 마음의 상처 없이
언니 수현이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생활을 밝게 잘해 주었단다.
지뢰밭같은 보행길에 왼쪽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약으로 쉽게 치료 되지 않더냐.
사랑하는 지은아! 심각한 장애인임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든 초등학교 때
엄마는 절망을 준비해야만 했고 정신적 손상까지도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가족 모두는 네가 기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부실한 몸을 정신력으로 감내하는 힘을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단다.
너는 네 나름의 내공이 있어서인지 마음 속에 밝고 따뜻한 빛을 안고
그 빛으로 정신적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기 시작하더구나.
누가 뭐라 해도 너는 네 마음속에 밝은 태양을 가득 안고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연중 찾아오는 운동회는 너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쉬게 해달라고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더니 “부딪치고, 마주치고,
함께 어우러져야만 소외되지 않는다.”고 하시더구나.
그 말씀에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네 친구들이 마스게임을 하거나 부채춤을 추거나 이어달리기
경기를 하거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제목의 바구니 터뜨리기를 할 때도
너는 늘 구경꾼이 되어야만 했었지.
그럴 때마다 너와 나는 무언의 약속을 했었지.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여
다음엔 꼭 함께 뛰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손을 꼭 잡았었지.
흔히 말하기를 인간은 누구나 애환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고통과 괴로움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가는 나그네 신세라고도 한다.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고
그 과정을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벅찼단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수현이가 네 가방을 들고 너를 데리고
다녀야 했던 일도 엄마에겐 큰 고통이었단다.
네 언니 수현이는 엄마대신 너를 돌보느라 그 흔한 학원 한 번 못 다니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지은아!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엄마는 직장을 사직하였다.
본격적으로, 적극적으로 재활운동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제까진 재활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어린 수현이에게
너를 맡기고 직장을 다녀야 했었지만 이제는 집중적으로 재활에만 매달려야 하므로
승용차로 통학을 하게 되어 수현이가 들던 가방은 엄마 몫이 되었지.
너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도 왼쪽 송곳니가 나오지 않더구나.
왼쪽의 부실함으로 잇몸 깊숙이 숨어 나오지 못하여 결국 가지런한
오른쪽 치아까지 발치를 하여 교정을 해야만 하였지. 비껴 갈 수도 있을 텐데,
몸은 정직하여 절망을 골고루 맛보게 하더구나.
네가 힘들 것을 염려해 실업계 진학을 권했을 때 “ 어떻게든 이겨내며 잘 할 수 있으니
인문계 가겠다,” 고 했을 땐, 아껴두었던 눈물을 소나기처럼 퍼부으며 말없이
너의 얼굴을 눈물로 비볐다. 그때 엄마는 눈물에도 분명히
순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고등학교에서는 안타깝게도 근육의 재활을 위하여
물리치료에 2년 반을 빼앗겨야 했다.
수능 시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탈모증세가 보이고 운동이 부족해서 근
육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일주일에 두 번은 야간 자습에서
운동으로 소중한 시간을 나누어 써야했다.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너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워 하다가
어느 날 설악산 봉정암을 찾아 나섰다.
그날따라 악천후를 만나 9시간을 모진 비바람과 짙은 안개 속을 헤매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얼마나 불렀는지. 길을 보여 달라고,
내 앞에 길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외할머니를 부르며 헤맨 끝에 텐트를 발견하였단다.
알고 보니 그 텐트는 공룡능선 복구를 위해 일하던 인부들의 임시 거처였다.
비에 젖은 꽁지 빠진 새처럼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가니 인부들은 이미 하산하고 없었다.
빗물과 약간의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나니 대피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대피소로를 찾아 헤맸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젖은 옷을 체온으로 말리면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나니 비바람과 짙은 안개가 말끔하게 걷히고 고
지의 빙하가 녹 듯 봉정암의 아침이 찬란한 햇빛과 함께 찾아왔다.
그제야 텐트를 남겨준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있는 힘 다해 노력해도 부족한 고3 때 너에게는 좋아하는 가수가 생겨서
그 가수에게 너무 집착해 학교생활이 방해를 받을 땐
이 엄마는 하늘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피나게 노력해도 부족한 너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잡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네가 보내는 그 가수의 생일선물상자에 너 몰래 사인 한 장 보내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써서 애원하듯 끼워 넣던 일들을 잊을 수가 없구나.
초등학교 때부터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엔터테인먼트소속사 어느 가수에게
너무나 집착하는 너에게 사인 한 장으로 고3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위로가 되리라 믿었기에.
아마 너 몰래 세 네 번은 편지를 보낸 것 같구나.
수능 시험 날 아침 정해진 자리에 너를 앉혀놓고,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는 너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교실을 나와서는
버스를 두 번 갈아 타고 외할머니 산소에 갔단다.
출산휴가 끝나고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잘 키워주신 외할머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계실 외할머니 산소에 엎드려 “엄마! 지은이가 오늘 큰 시험을 봅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잘 견디게 도와주십시오. ……
엄마! 하늘나라에는 지은이의 특효약이 없는지요.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두 손 모아 인사를 드리며 아직 남은 희망을 향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지은아!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았고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늘어만 가는 체중을 감내 할 수 없을 때
2차 수시에 학교가 정해졌다. 그날은 세상이 모두 내 것이 된 것같이 기뻤다.
너를 안고 어디든지 훨훨 날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경제적으로 보탬이 된다는 주위의 권유에도 엄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십년이 넘도록 복지카드를 발급 받지 않았다.
너의 일생에 족쇄가 되어 쓰여 질 것이 두려웠기에 카드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웠단다.
그러나 네 몫의 복지카드로 교육부의 특혜를 받아 인문계에 진학하게 될 줄이야.……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여유시간이 주어진 지금 혼신을 다해 열심히 운동을 하니 놀랍도록 빠른 변화가 찾아왔다.
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정직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신체 중 어느 부분의 혈관이 내부에 흐름을 방해하고 있어
맑은 샘물을 먹이기 위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5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겨울이면 3~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는 맑은 샘물을 길러 먹인 덕분인지
미리 그려보는 대학생활의 설렘이 풍선처럼 부풀어 마음의 기운이 혈을 따라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내면을 깨워 그 힘을 밖으로 보냈는지
너는 놀랍도록 빠른 변화를 보였다.
나의 분신 지은아! 우리는 실과 바늘이 되어,
어려운 시간들을 끈기와 인내로 함께 해냈다는 자신감에 으쓱해지는구나.
1994년 가을, 처음 마음이, 그 약속을 다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너를 향한 내 마음다짐을 적어 거실 중앙에 걸어두었던 액자를 이젠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은 우리가족 사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다.
물리치료실 공간도 이젠 가족을 위해 넓게 사용하고 싶구나.
지은아! 이제는 아픈 기억들과 버거웠던 시간들도 빠르게 흘러 갈 것이다.
머지않아 너는 너 보다 더 불편한 친구의 작은 가방을 들고 가지 가지
봄꽃이 어우러진 교정에서 향기로운 봄의 향연을 마음껏 즐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희망의 날개를 달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갈 것이다.
오래토록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넓은 캠퍼스를 점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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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정희 친구가 그 동안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면서 살아왔는 데 내면에는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슬픔이 있었다니 심심한 위로의 말을 하면서, 그간의 고생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번개 산행에 서너 번 빠지더니 이 글을 잉태하느라 고통이 따랐구나.
항상 밝은 미소로 우리들을 대해준 정희의 웃음뒤에 이런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줄 몰랐든 내가 너무 미안하구나 ..가슴아팠든 과거사는 강물속에 흘러버리고 지금부터는 지은이가 친구에게 돌려줄 사랑을 기대해보자..정희야!! 핫~팅.
겉으로 전혀 내색없던 친구에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 있었구나 지극 정성은 곧 모든걸 해결해 줄것이다 정희야 ! 힘내라
오정희 친구님의 밝은 웃음 속에 이렇게 큰 마음고생이 있었군요~~~친구님의 애틋한 모성과 큰 노력이 있었기에 좋은 결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런 모성을 가진 오정희 친구님과 딸의 앞날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니 이제는 그 동안 마음 속에 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지내시길 바랍니다~~~고생하신 친구님과 딸을 위해 화이팅~~~!!!!!!
만날때마다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정희친구에게 엄청난일이 있었는걸 몰랐네.엄마의 마음을 받들어 지은이도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정희야 그동안 마음 고생이 너무 많았었네. 그래도 항상 밝게 웃는 너의 모습이 존경스럽구나.이젠 모든 시름 훌훌 털어버리고 항상 웃음을 잃지않고 건강하게 살아 가자꾸나.~~~
장하십니다 지은 어머니!!!!!!!!
이글을 읽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글을 읽는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엄마인 친구는 둘째 딸을 키우면서 애태웠든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ㅠㅠ 정희야 이젠 지은이도 대학에 들어 가서 앞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제몫을 다하리라 믿는단다...이젠 행복하고 좋은 일만 펼쳐지길 빌겠습니다..
안테나가 높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이야...정희도 일의 야누스얼굴을 가졌구먼 그래 친구들 가슴 뭉클하게 핸는데 MBC 그넘들 상은 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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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어머니! 긴긴 세월을 고생한 끝에 좋은 결실을 맺었군요! 당신의 편지를 거울삼아 우리 집에도 훌륭하게 키워볼께요? 그리고 당신 사랑스러운 딸 지은이를 위해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두 손 모아 기도할께요!
거룩한 어머니 사랑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부디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오정희~~ 하면 명랑하고 분위기메이커로만 알고 있었는데, 숨겨진 아픔도 있었구나.... 친구야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친구의 거실중앙에 행복한 모습의 가족사진을 그려봅니다. 가정에 언제나 웃음 가득하길~~~~~~~~~
가슴 시리도록 눈물로 짠 당신의 희생은 한편의 짜릿한 감동을 주는 인간승리의 다큐 드라마를 보는것 같아 고개가 숙연해 진다네.정희만세!
늘 친구들에게 웃음만 주었는데 가슴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줄 누가 알았겠니?지난번 통화로 읽어줄때 난 많이도 울었단다.댓글 쓰니 또 눈물이 나네..너의 진정한 희생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가 왔잖니~ 이젠 지은이와 늘 행복하고 좋은일만 가득하길!!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밝은 웃음이 가득하길바래 ~
우리의 인생은 고행이라오~ 많이 웃고 싶어도 내웃음이 남에게 아픔이될까봐 조심스러워지고 한없는 슬픔이 엄습해와도 이 슬픔의 끝에는 나의 행운도 기다린다고...인생은 끝없는 고행이라오~~~
이 고행의 시를 그냥 지나칠 뻔했구나~~ 오정희야 우리는 저 맑고 푸른 하늘의 끝을 바라보고 영원히 여행을 하고있는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