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가 오늘날 나를 존재하게 했던 부모님그리고 부인산소에 벌초를 해보았습니다 )
제 사 (祭 祀 )---추석을 기다리면서
나는 어렸을때 부터 부모님이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를 지내는데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지내는것을 보아왔고 또 같이 지내왔다.
즉 아버지로 해서 부모님이 되신것이다.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가 있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저의 선친이 부모님 제사가 닥치면 한달전부터 준비하신것이다.
고향 나주장에 미리 가서서 좋은 제물을 사 오신다. 그리고 제삿날에는 숙부님
또 고모님 내외분들 해서 집안이 가득찬다. 그럴것이 친손자,외손자 외손녀 전부
모이면 자리가 앉을때가 없다.우리가 어렷을적이니 한집에 4~6명씩 되니 친사촌
고종사촌만해도 4집이니 손주들만해도 20명가까히 된다. 그야말로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그때만해도 먹고 살기 어려우니 제사지내고도 며칠씩 더지내다 집으로 간다
그러니 제사지내는 주체측에서 보면 농경사회에서 상당한경비와 가계지출이 되는
셈이다.그렇게 지내서 그런지 지금도 사촌,고종사촌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
나는 농경사회에서 해방이후에 태어나서 50년대60년대 어려운 농촌에서 살아오면서
가난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면서 살아왔다.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등륵금마련을
어머니가 계란,닭 감등등을 시골장에 팔아서 그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서 학교 공부를
했다.그러니 다른참고서 책을 사서 공부를 제대로 할수가 있을까 생각해볼수가 있다
이왕이야기 나왔으니 학교 다닌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니 농촌에서 일을 하시기가 힘든다.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때도
학교갔다오면 소깔베서 소죽써줄라 농번기때면 일할랴 공부는 언제 할것인가?
그렇게해서 나는 66년도에 서울로가서 대학공부를 해보겠노라고 서울로 무임승차해서
올라 온것이다
여기서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제사 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나는 그래서 부모님들이 지극정성으로 제사지내오시는 모습을 어렸을때부터 보아왔으니
나도 지금껏 제사지내는 일을 정성을 다해서 지내왔다, 내가 2004년도에 공무원 정년
퇴직을 하게되니 제사가 제일 걱정이 되었다. 정년 퇴직 하던해에 할아버지 제사가 닥치기
전에 나주에 있었는데 고향나주에서 5일장에서 제물을 차에다 사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낸 기억이 난다.그리고 공무원 재직중에는 수당중에서 효도휴가비란 돈이 나온다.
기억으로 본봉급여액에 70% 그러니 그때돈으로 7.8십만원돈이 되는것 같다 그래서 제사
지내는 일은 걱정이 않된다.그렇게 제사를 잘지내고 오다가 정년퇴직을 하니 제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제사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에피소드가 있다 .2006년 도에 지금까지 우리집 안방을 잘지켜 주었고 각종 제사도 정성껏
잘지내든 부인이 투병중에 있을때는 제사를 못지내는 적이 있었다.
참 많이 걱정이 되었다 부인이 투병중에 고통을 받고 있으니 제사를 지낼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제사를 않지내본적이 없다. 내가 지기금까지 혼자 지내면서도 1년에
제사가 5번을 지낸다 .아직까지 도 내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지낸다.
처음에는 남자가 혼자 지내면서 제사를 지낸다느게 촐아하고 서글프기가 짝이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가니 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제사(祭 祀)를 이렇게 생각한다.부모님의 제사를 놓고보자.이세상에 부모님이 아니면
어떻게 이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떻게 커서 교육을 받고 결혼을 해서 이사회에 적응을 해서
살아갈것인가 ? 그래서 돌아가신후지만 자손된도리로 정성을 다해서 정결하게 마련된 과일과
반찬으로 또는 생선 ,나물등을 마련해서 맑은 술을 부어서 향불을 피워서 조상님에게 감사의
예(禮)를 올리는 것이아닌가!
"夫 樹 欲 靜 而 風 不 停 ,子 欲 養 而 親 不 待 "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해도 바람이 멈춰 주지않고, 자식이 부모님을 봉양하고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기다려 주지않는다" 라는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자식이 철이들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할려고 하나 이미 돌아가신후라는 겁니다.그러니 효도도 때를 잘맞춰야
진가가 나는 것이지 나중에 후회하면 뭘하겠습니까.그러니 살아생전에 효를 다하고 돌아가신
후라도 부모님에게 ,조상님에게 추석이라든가 제사때라든가 조금만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면
될것을 시대가 변하고 바뀌어오니 가치관의 혼돈속에서 중심을 못잡으니 참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가 서구문명이 들어 오고 하다보니 천주교 기독교등등의 교회때문에 제사의 진정한
가치와 모습을 모르고 교회에서는 않지낸다느니 ,천주교에서는 어덯게 한다느니 혼란만
가중될 따름입니다.진정한 참모습을 보고 서구문명도 서구 교회사상도 소화를 해야지 그걸 못하는
우리들의 삶의 일부분이 혼란이 오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닥아오는 추석에는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조상님에게 대접을 하고 즐거운 가족들과함께 돌아
가신 조상들의 음덕을 되새기면서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자적어 봅니다
하늘은 높고 맑으며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조상님들의 산소을 돌아보고
예를 갖추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2011.9월 가을 추석을 앞두고 도봉산 산록에서 雲 巖 용상써보다
첫댓글 명절때에 차례를 지내겨나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제사... 사실 이런건 모두 우리 살아있는 자손들의 화목을 위하여 정해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혼이 어찌 모시어 그 음식을 잡수시겠습니까... 해도 그날만은 돌아가신 아른들을 기리며 후손들이 모여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라고 마련한 제도인 셈이지요. 그런 좋은 뜻의 제도이니 귀찮다 미신이다 하지말고 우리것으로 지켜 나가야 할것입니다. ^*^
유교적 가풍의 집안대대로 내려온 제사~
후손들 힘들까 제우답 도 마련해놓고 내려온 풍속도 사대봉손 하며 저의집도 이어가고 습니다만
대종가 아닌 소종가 종부는 그냥 때되면 남편따라 사는삶에 제수장만해주는 일이 고작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루에 세 끼니를 먹어야 하는데
죽은 사람은 1년에 한 번만 먹어도 되는지요.
교장선생님...
저 혼내지 마세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