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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대세 "내년에 유럽 간다!" | ||||||||||||||||||
조선대학교에서의 경험, 해외진출, 그리고 한국선수들에 대해 | ||||||||||||||||||
축구선수 정대세(25) - 감바 오사카와 함께 공격축구(Aggressive soccer)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가와사키 프론타레(Kawasaki Frontale)의 명실상부한 스트라이커. 보통의 J리그 포워드들과 전혀 다른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일본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평가에는 정대세가 입단한 2006년이래 소속팀 가와사키가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06년 2위, 07년 5위, 08년 2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첨언하자면, 가와사키는 2003년까지는 그저 그런 팀에 불과했다. 뚜렷한 특징이 없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J2의 강호' 정도? 이랬던 가와사키를 감바 오사카, 우라와 레즈에 필적하는 공격형 풋볼 클럽으로 탈바꿈시킨 이가 세키즈카 다카시(関塚隆, 48) 감독이다. 2004년 가와사키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J2 역사에 남을 34승 3무 7패( J2 1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가와사키 돌풍을 일으켰다. 세키즈카 감독이 추구하는 중원의 치밀함과 전선(前線)의 패기는, 2005년 J1 승격이후 가와사키 축구를 정의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고 클럽팀은 J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가와사키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할 정대세(鄭大世)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정대세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 작년 3월 상하이에서 열린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북한전에서 흘린 '눈물', 그리고 SBS의 다큐멘터리에서 "일본 노래방에서 한국 노래를 자주 부른다"는 발언 등 주로 '축구'보다는 '민족적인 그 무엇'에 포커스를 맞추어 왔다. 그동안 여기 일본에서 정대세의 플레이를 보아왔던 나는, 그가 이런 축구 이외의 모습으로 알려지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정대세의 민족"이 아닌 "정대세의 축구"를 한번 소개해 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그가 느낀 한국과 북한, 일본의 축구환경, 전례가 없었던 조선대학교(이하 '조대')출신 J리거의 감추어진 비화, 무엇보다 지난 5월 16일 주빌로 이와타의 경기에서 보여준 이근호 봉쇄작전의 뒷얘기 등 심플한 축구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5월 20일 오후 4시 가와사키의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그라운드에서는 쓰쿠바 대학과의 연습시합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카무라 켄고, 기구치 코스케 등 레귤러 멤버들은 스트레칭 등 가벼운 훈련을 하고 있었고, 정대세는 혼자 묵묵히 그라운드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의 러닝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중 브라질 출신의 포워드 주닝요가 눈에 들어왔다. 완전한 오프인 듯 사복차림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19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ACL시합이 있었기 때문에 주전선수들은 가벼운 훈련 메뉴를 소화했다고 한다.) 매우 브라질적(?)인 분위기였던지라 뭘 물어도 답해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정대세 선수를 인터뷰하러 왔다. 그와 플레이 해보니 어떤가? "벌써 2년 동안 같이 뛰고 있으니 호흡이나 그런 건 완벽하다." - 어제는 많이 아쉬웠겠다. 2-0 완패였는데... "포항도 잘했지만, 우리한테도 아쉬운 찬스가 많았다. 하지만 본선은 또 다르니까. 암튼 정대세는 아주 뛰어나고 성실한 굿 플레이어다. 하하" 주닝요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환하게 웃을 즈음 마침 정대세도 인터뷰 준비가 끝난 듯 사복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그에게 오늘 인터뷰는 이런 식으로 진행하고 싶다고 말하니 "아! 그거 좋습니다. 재미있겠습니다. 하하하"라는 투박한 '조선어'로 흔쾌히 웃는다. 다음은 가와사키의 클럽하우스에서 약 40분간 진행된 정대세와의 인터뷰 전문(全文)이다. - 정대세 선수는 한국에 소개는 많이 되었는데, 사실 민족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축구선수 정대세가 어떤 축구 인생을 걸어 왔는지에 관해서 인터뷰를 진행해 볼까 합니다. "아! 그거 좋네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먼저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텁니다. 조선학교에 다녔는데 고학년 형님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면서 공 차는 것에 흥미를 가졌죠. 처음엔 끼워 달라고 그러기 힘드니까, 그냥 학교 끝나고 늦게까지 할 게 없으니까 혼자서 리프팅도 하고 그러면서 축구와 친해졌습니다." - 혼자서? "네. 혼자서" - 혼자서 공차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아뇨.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하하. 남학생들은 대부분이 축구를 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 축구 말고는 다른 운동을 안 했어요. 축구 아니면 무소속 그런 분위기였죠. 처음부터 축구는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또 당연히 열심히 잘하려고 했죠. 그런게 인정받았는지 몰라도 금방 시합에 나가고 그랬습니다. 3학년 때부터 오른쪽 날개로 공식시합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저 외엔 다들 5,6학년 형님들이었어요" -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 공을 차는데 그땐 어떤 마음가짐으로? "뭐랄까. '내 인생의 주인이 축구'라는 거창한 생각도 했습니다. 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공부를 못한 것도 있었지만(웃음) 축구의 좋은 점은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왜 중고교 때 민감해지지 되지 않습니까? 뭐라 그러죠 그거. 주위 사람들 신경쓰고..." - 사춘기? "아. 네 그거 사춘기. 누가 싸움했다더라, 쟤는 이런 애야 같은 주위의 평판들. 아무래도 그런 평판을 신경 쓰게 되니까. 특히 저는 다른 이들보다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누가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죠. 그런데 축구를 하게 되면 일단 공을 계속 차야 되니까 다 잊어버릴 수 있잖아요. 이거 나한테 딱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차면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거든요." - 지금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전혀 그랬을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웃음) "하하.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하나도 없지만, 그때는 암튼 좀 그랬습니다." - 언제부터 프로선수를 의식하기 시작했나요? "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진학할 때니까 고등학교 3학년? 물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 생활하는게 들어가는 가장 좋지만, 오퍼나 그런 게 없으니까 들어갈 수 없죠. 그렇다면, 대학에서 몇 년간 경험을 쌓고서라도 프로로 들어가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가 어렸을 때부터 프로의 꿈을 가지고 저 역시 가졌었습니다만, 이건 그냥 막연한 꿈입니다. 처음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그러니까 현실적인 직업으로써 "프로"를 의식하게 된 게 바로 고3 때였습니다"
"아, 저도 물론 조대에 가면 프로선수가 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일본의 대학, 일테면 메이지 대학 시험도 보고 그랬는데 떨어져 버렸어요. 그때 아이치 조고 코치 선생님께서 우선은 조대에서 열심히 해보자고 하셔서 조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조대에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웃음)" - 그렇지만 또 조대에서 4년간 축구부 활동을 했어요. 학교 레벨을 볼 때 J리그에 들어가기란 정말 힘들었을 텐데 4년간 줄곧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어요. 그 노력의 원동력, 동기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그렇죠. 어렵습니다. 조대가 속해 있는 대학리그를 보면 간토(관동) 대학 리그가 1부, 2부로 나뉘어 있고, 그 밑에 다시 도쿄지역리그가 1부 부터 4부까지 있습니다. 보통은 그냥 6부리그까지 있다고 하는데, 4부(도쿄 2부)부터는 그냥 취미, 놀이로 공차는 거니까. 그걸 알 수 있는 게 4부 리그에 속한 팀 중에는 시합 끝나면 그냥 담배 피우고, 술 마시러 가는데도 있습니다. 3부(도쿄 1부)도 거의 비슷하고 간토 2부 정도 되어야 공 좀 찬다 그런 분위기죠" - 조대는 당시 몇 부 소속이었습니까? "3부(도쿄 1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합을 하면서 정말 이런 상대들하고 시합해서 프로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많이 들었습니다. 프로팀 스카우트들이 당연히 안 옵니다. 한때는 내가 인생의 결정을 잘못 내린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도 들고 그랬습니다" - 후회를 했다? "아뇨. 후회라기 보다는 회의를 느꼈는데 또 금방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조고(조선고교) 에서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조대 안오고 일본학교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그렇게 일본학교 간 조고 선수들 중에 운동 그만두는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축구보다 노는 것, 여자 만나고 술 마시는 데 빠져 버려서 결국 유망했던 선수들도 결국 축구 말고 다른 일 해버리죠. 그런데 조대는 전체적으로 봐서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선수의 의욕도 높았고 대단했습니다. 전국의 우수한 조고 출신들이 몰리니까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환경 자체가 공만 차야 했던 환경이었습니다. 바깥으로 쉽게 못 나가니까" - 바깥으로 못 나간다는 건 무슨 말이죠? "아, 그게 학교 밖을 나갈 수는 있는데 한번 나가려면 절차가 복잡합니다. 이것저것 허락도 받아야 하고. 조대 축구부 아니 조대생 전부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만, 밖에 나가는 게 너무 귀찮은 겁니다. 시부야나 하라주쿠 같은덴 또 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안에만 있게 되고 안에 있으면 할 게 없으니까 공 차게 되는 겁니다. 답답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이 환경이 좋았어요. 축구라는 것을 언제나 할 수 있었으니까" - 그렇게 캠퍼스 안에만 계속 있다 보면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을 거 같은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에피소드...음...(조금 쑥스러운듯) 아! 그렇다. 연애를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다들 밖에 안 나가니까 한번 사귀면 학교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청춘의 좋은 기억입니다. 하하. - 아..아니 그거 말고 축구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아! 그렇군요. 축구에 관한 에피소드였군요. 하하. (숙고한 후) 제가 1학년 때 일인데 그때 입학한 우리 동기들이 전국 각 조고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보여준 인재들이라 꽤 강했습니다. 연습시합을 해도 우리 1학년들이 다른 학년들 매번 이겼으니까요. 그런데 그 해 조대가 브라질 원정을 간다는 데 2,4학년만 간다는 겁니다. 3학년 부원이 3명밖에 없었던지라 3,4학년이 안가는 건 이해가 되었지만, 왜 2,4학년만 브라질 가고, 우리는 이바라기(도쿄 인근)에 가야 하는 건지. 우리도 브라질 가고 싶었는데. 아무튼 각각 브라질, 이바라기 원정 갔다 와서 얼마나 늘었는지 서로 테스트를 했어요. 우리가 5-0으로 이겨 버렸습니다. 브라질 다녀온 2,4학년 팀을 이바라기에 다녀온 우리들이 깨 버린 거죠. 하하하." - 아까 규율이 엄격하다고 그랬는데 선후배 간의 규율이나 그런 건 어땠나요. 5대0으로 이겨 버렸으면 나중에 사석에서 한 소리 들었을 거 같은데. "아,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시합이니까. 선배들도 시합결과나 그런 거 가지고 화내거나 하는 건 절대 없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동기생들도 세니까 서로가 라이벌 의식도 가졌고 또 그런 주변환경 속에 있었던 것이 나중에 프로선수가 될 때 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게다가 여자친구도 사귀고... "그렇죠. 사실은 그게 가장...하하하" - 졸업하자 마자 2006년 시즌부터 가와사키 프론타레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누구나가 인정하는 가와사키의 에이스 포워드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볼때 어떤가요? "에이스나 그런 건 과분한 평가고. 제가 이 정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제가 잘해서라기 보다 모두 주위 선수들 덕분입니다. 주닝요나 나카무라 켄고등 좋은 선수들이 주위에 있어서 그런 겁니다. 나카무라의 패스, 그리고 주닝요도 벌써 2년째 같이 있어서 호흡이 척척 맞습니다. 만약 다른 팀에 갔다면 이정도 성적은 절대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 아까 주닝요 선수도 밖에서 잠깐 봤는데, 정대세 선수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베리 굿'이라고... "하하하. 같이 오래동안 해 왔고 또 호흡도 잘 맞으니까. 저도 시합중에는 주닝요 선수의 위치나 그런 걸 항상 염두에 두면서 플레이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나카무라와 함께 대표팀에서 콤비를 맞추고 있는 '리틀 나카무라'가 바로 정대세의 팀동료 나카무라 켄고(中村 憲剛, 29)다. 순스케를 연상케 하는 그의 공간패스력과 프리킥 능력은 정대세와 주닝요로 대표되는 가와사키식 공격축구를 백업하고 있다. 또 정대세는 저돌적이고 고집스러운 골잡이의 인상이 강하지만 포스트 플레이 능력도 탁월하다. 주닝요의 득점을 서포트 해주는 정대세의 포스트 플레이는 J리그에서도 상당한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 2007년 시즌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동아시아 대회에서는 3시합에서 8골을 넣었고, 리그에서도 12골을 기록했습니다. 주닝요도 22골을 넣는 등 이 시즌의 총득점수가 무려 66 득점. 리그 2위의 공격력이었죠. 당시 정대세 선수는 그때까지 가와사키 부동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가나하 가즈키(29, 빗셀고베) 선수를 대신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을텐데 2007년 시즌을 돌이켜 봤을 때 어떤가요? "2007년은 저에게 있어 축구를 오래, 길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해였습니다. 2006년엔 가나하 선수가 주전이기도 해서 거의 시합을 하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거 내년에 짤리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가나하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라는 것도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레귤러로 뛰면서 팀성적도 좋았고, 제 개인성적도 좋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기쁘고 흥분되고 정말 제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시즌이 아닐까 합니다." - 중압감은 없었다? "전혀. 전혀 없었습니다. 중압감, 긴장감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 컸습니다. 팀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열심히 뛰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또 단순하게 경기 나가면 역시 재미있습니다. 안 나가면 재미없잖아요. 경기를 나가야 시합이 이기든 지든 자기 경험이 쌓이는 거고. 앞으로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해야 겠다는 실전감각도 생기고." - 이전 가와사키의 팀컬러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는데, 2004년 세키즈카 감독이 부임하면서 가와사키의 공격 축구라는 특징이 생겨났다. 정대세 선수가 입단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리그에서도 안정적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감독의 지휘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감독님이 언제나 절 중용해 주시면서 또 칭찬도 해 주시고...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 장점을 정말 잘 살려 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저는 아마 다른 팀에 갔었다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활약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가와사키의 좋은 선수들과 감독님이 지향하시는 전술에 언제나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 무섭지 않아요? "무섭다기 보다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감독님이 제 재능을 봐줬고 또 찾아주었고, 꽃 피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좋은 동료들과 감독님 덕분에 저도 나름대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 팀 동료들과는 모두 친한 거 같습니다. "네. 정말 모두 친합니다." - 시합에 임할 때의 기분이랄까, 좌우명 같은 게 있다면? "거창한 것은 없구요. 그냥 눈앞에 있는 상대한테는 절대 지지말자... 그런 마음은 가집니다." - 일테면 투지같은 것?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아무것도 가진게 없습니다. 실력도 없고, 그렇다고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제 개인 능력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 이 팀에 들어와서 주위 선수들이 워낙 뛰어나니까.....(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 아? 아. 네... 그러니까 시합에 임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좌우명 같은 거. "아. 맞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무슨 재능을 가진게 없어요. 실력이 없다보니 정신력으로 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합에 임할 때 그래서, 내가 오늘 기술은 질 수 있을수 있지만, 정신력만큼은 절대, 절대로 지지 말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끝까지 뛰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기에 나섭니다." - 존경하는 축구선수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축구선수가 있다면? "존경하는 분은 김광호. 이유는 대학시절 감독님이셨으니까. 하하. 농담이구요. 김광호 감독님의 플레이도 그렇고 인간적인 면이라던가. 모든 면에 있어서 존경합니다. 닮고 싶은 선수는 클루이베르트입니다.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비슷한 플레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일부러 그렇게 하고자 노력할 때도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비슷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하하." - 프로 들어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잠시 생각하다가) 지지난 주에 중국에서 있었던 ACL 경기." - 텐진하고의 경기 1-3으로 졌던 시합? "네. 시합이야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으니 어쩔 순 없는 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축구가 아니고 그냥 막 싸움을 걸어 오니까. 아,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자식들. 아무튼 그때 세상에 이런 축구도 있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는데요. 이건 공 잡고 드리블 하려고만 하면 태클이 발목 위쪽으로 들어오니까. 정말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축구도 있구나라는 것. 하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쯤 이런 축구를 경험하면 무서운 게 사라지니까요. 실제로 리그 돌아와서는 상당히 냉정하게 시합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우연찮게 북한, 한국, 일본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선수인데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북한의 국가대표이기도 하며 또 한국 클럽팀과 시합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간 보고 느낀 한국, 북한, 일본 3국의 축구스타일은 어떻던가요? "한국분들이 2008년 이후에 저를 응원해 주시고 그런다는 말씀은 듣고 있습니다. ACL을 통해 한국 클럽들과도 시합 하면서 제 세계가 확장되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한국 클럽팀과 축구해 보면, 어제(5월 19일) 포항과의 경기에서도 그랬는데. 정말 정신력이 달라요, 정신력이. 일본 선수들도 재능있고 잘하죠. 그런데 정작 시합만 하면 한국 선수들이 막 달라 붙으니까 뭐랄까 압도된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실력마저 있으니. 앞에서 앞에서 끊으려고 달려 드니까요. 피지컬도 좋고. 근력훈련도 많이 하죠?" - 체력훈련만 해서 문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웃음) "역시 그렇군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몸이 약해요. 고운 축구, 아름다운 축구를 할려고 해요. 격렬한 축구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쪽을 꼽으라면 격렬한 축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에 비해 조선(북한)은 축구 실력, 기술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정말 수준이 낮습니다.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정신력에 관해서라면 가장 뛰어납니다. 한국보다 셉니다. 조선(북한)은 무조건 정신력입니다. 이 정신력만으로 한국,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까 대단한 겁니다." - 일테면 군인정신? "하하하. 군인정신. 맞아요."
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345§ion=sc1§ion2=스포츠 |
첫댓글 제가어떻게감히.. 워낙다르다뇨 ㅠㅠㅠㅠㅠㅠ 겸손하셔요 인민루니님
정대세, 사람이 참 괜찮아 보이네요. ^^
그냥 케이리그에서 보고싶다
ㅋㅋㅋㅋ 폭력축구중국
"세상에 이런 축구도 있구나"
역시 듕극은
ㅋㅋ솔직하네 잘되길바라는선수
ㅋㅋ 근데 기자 마지막에서 두번째 질문 맨체스터에서 박지성과 함께 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히 자랑.ㅋㅋㅋ 박지성 때문에 기자까지 목에 힘주네..ㅋㅋㅋ
대륙은 일찌감치 조별예선에서 조기탈락한게 다행
중국리그는 하도 팬들과 언론에게 까이다보니 악과 이겨보려는 꼼수만 남은듯한 느낌이 좀 드네요
정대세...A매치 경기 보니 예의두 바르고, 플레이도 맘에 들구, 인터뷰 보니 멘탈두 괜찮아 보이네요
짱깨는 축구하면안되..
그냥 말하는게 너무호감이네 ㅋㅋ 됨됨이가 괜찮아보임
톈진 조약
솔직하고 긍정적이고 겸손하고... 인민루니 열심히 해서 꼭 대성하길
정대세 한국으로 귀화(귀순?)해라~
재미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귀화하면 대표팀에서 못뛰어요 ^^;; 북한대표팀경력때문에.
국적은 한국인데 피파 특별케이스로 북한 대표로 뛰는거임 ㅋㅋ
A매치 경기 끝나고 박지성한테 공손하게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티뷔에 비춰졌을때 난 이미 팬이 됐음!! K리그 왔음 좋겠다
멋지다~ 겸손하고 유쾌하고.. 유럽에서 봤음좋겠네 ㅎ
에피소드...음...(조금 쑥스러운듯) 아! 그렇다. 연애를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다들 밖에 안 나가니까 한번 사귀면 학교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청춘의 좋은 기억입니다. 하하.
그거 말고 축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세요.
일본 진짜 대학축구 인프라 쩌네요.
보면 볼수록 호감이란 말이야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선수!! 힘내요!!
언론에서 하도 남북더비때마다 박지성vs정대세 이런글 써서 그렇지 그전부터 정대세는 박지성과 자신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수라고 인터뷰해왔죠
이금희아나운서가 각별히 지켜보고있다는 정대세..
이 사람 좀 대단하다 싶어요... 외관상으로 보기엔 삼국에 어정쩡히 걸쳐 있지만..자기신념만은 굉장히 확고해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