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주인이 준비한 전복죽으로 아침을 들었다.
요즈음 전복이 너무너무 비싸단다.
아침식사 후 동쪽 끝에 있는 목섬을 다녀오기로...
새의 목같이 생겼다하여 목섬이라고 한다나.
아침바다펜션에서 200m 떨어진 곳에 1박 2일의 강호동이 묵었던 집이
있다. "섬이랑 나랑"이란 펜션이다.
그곳을 지나 20여 분 걸으니 목섬 도착.
가는 길에 처음으로 동백이 제법 핀 나무를 보았다.
목섬도 남쪽 상록수가 울창해 열대우림을 지나는 느낌이다.
동쪽 끝에 있는 곳으로 가니 깎아지른 바위 사이 사이로 바닷물이 부
서지며 포말을 이뤄댄다.
날씨는 너무 포근하여 찬바람이 일지 않으니 이게 봄이 아니고 무엇
이랴!
다시 돌아서 목섬 반대방향으로 돌아 펜션으로 돌아온 다음 차를 몰고
청산도 남쪽에 있는 범바위로 향한다.
마을에서 걸어 올라야 슬로시티인 청산도에 제격인데 시간이 없어 차
로 방문한다.
범바위는 아랫마을에서 쳐다보면 범이 웅크리고 앉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범바위라 한단다.
범바위는 지구보다 자기장이 센 곳으로 나침판 바늘이 하염없이 빙글
빙글 돈단다. 해도에도 자기장 이상 지역으로 표시되었다 한다.
소위 버뮤다 삼각지대.
우리나라에 자기장 이상 지구가 몇 군데 있다고 하는데 금산 보리암
도 이상 지역이란다.
범 바 위
범바위를 오르니 바위들이 제주도 용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날카로워 딛고 오르기 무척 부담스러웠다.
범 바 위 앞 상 도
전 망 대
전망대를 지나 다시 차를 타고 청산도 서남쪽 끝에 있는 화랑포를 한
바퀴 돌았다.
배 시간이 다가옴에 부둣가로 방향을 잡는다.
1시 출항하는 배를 타고 청산도를 떠난다.
이것으로 짧은 일정으로 청산도를 훑고 떠난다.
단지 슬로시티라는 곳을 번개불에 콩튀기 듯 훑으니 조금은 미안하다.
완도로 돌아와 간단하게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강진 병영면에 있는
하멜기념관과 전라병영성을 들러보기로 하였다.
강진군 병영면은 조선조에 전라도와 제주도를 총괄하는 육균의 총지
휘부가 있었던 곳이란다.
지금 복원 중에 있으며 하멜이 7년동안 유배되어 노역했던 곳으로
하멜의 역사적 흔적을 기리기위해 하멜기념관을 세워 놓았다.
하멜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보고서"의 저자로 네덜
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으로 일본으로 이동 중 제주도에 표착하여 서
울, 강진, 여수 등으로 유배되어 13년간이나 살았다 한다. 병영에서
7년 살았고 계속되는 기근으로 남원, 순천, 여수로 분산 수용되다가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여 네델란드로 돌아갔는데 동인도회사에서 받
지못한 임금을 받기 위해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가 바로 "하
멜 보고서"라고 한다. 이 후로 서양에 조선을 최초로 소개하는 자료
가 되었단다.
기념관 옆으로 한골목이란 곳이 있는데 이는 1.5km의 골목을 가르키
는곳으로 황토와 돌을 이용하여 빗살무늬 방식으로 쌓아놓은 담으로
네델란드 양식이라 하멜식 돌담이라 한단다.
하 멜 식 돌 담
저녁은 나주 영산강 홍어를 시식하기로...
나주 가기 전 시간이 남아 무위사를 탐방하기로 하였다.
7년 전 갑년 여행 때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강진 무위사였는데 그곳
을 다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 당시 없었던 성보 박물관을 다시 지어 그곳에 보물들을 보관하였
나 본 데 자물쇠로 잠가놓아 관람할 수가 없었다.
조선 정종 때 지은 볼 품없는 극락보전과 선각대사 편광탑비나 사진
찍고 그냥 나왔다.
무 위 사 극 락 보 전 (국보 13호)
선 각 대 사 편 광 탑 비 (보물 507호)
극락전 3존불(보물1312호)과 후불벽화인 아미타삼존도(보물 1313호)
극락전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극락전 사면벽화 29점(보물 1315호)
이곳에서는 7년 전 사진을 다시 올려 본다.
무위사를 떠나 나주로 가는 길에 태평양 설록차를 생산하는 제다농
원을 지난다. 보성 대한다원 만큼이나 넓은 것 같다.
제 다 농 원 차 밭
나주 영산강 홍어 거리에 도착해 간판이 그럴 듯한 집으로 들어가 홍
어를 주문하였다.
이 집은 전통 전라도식이 아니라 전국적인 스타일로 홍어를 삭힌 집
이라고 하는데 역시 홍어가 서울에서 먹던 방식이어서 심하게 삭히지
않아 거부감이 덜 했다.
오늘은 옛날 나주목사의 숙소였던 나주목사 내아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나주목사 내아는 객사인 금성관 가까이 있으며 과거 정수루가 정문
이었다 한다.
즉 내아 건너에 관아인 집무실이 있었으나 일제시대 때 철거 되었다
고 한다.
목사내아를 문화체험용으로 숙박하게 하여 놓은 곳은 전국에서 이곳
이 처음이란다.
내아에는 과거 유명한 목사였던 유석증과 김성일을 기리기위해 유석
증방, 김성일방을 두고,옆 별채에는 여러 사람이 들 수있는 큰 방과
2인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유석증은 광해군 때 사람이고 김성일은 일본으로 갔던 통신부사로 일
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돌아온 뒤 일본 침략이 없다고 보고한 인
물이다.
그러나 목사로서 백성을 위하는 정치는 잘 하였나 보다.
우리가 묵은 방은 9명이 한 방에 묵을 수있는 큰 방으로 1박 15만원
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하니 관리인(시청공무원)이 차를 대접하고 내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한다.
나주 목사 내아 금학헌(琴鶴軒)
나주 목사 내아
문제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방에 화장실을 들이지 못해 세면과 샤
워는 다른 건물에서 해야하는 불편이 따른다.
또한 온수도 순간 온수기를 사용하는 것 같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사용하면 찬물이 나올가 불안하다.
본채는 옛날식으로 나무를 때서 구들을 덮히고 별채는 그냥 전기로
보온을 한단다.
넓은 방에서 편히 자고 일어나니 봄비가 남도의 땅을 적신다.
관아 동헌 정 수 루
관아 객사 금 성 관
(2012년 3월 1일)
첫댓글
보리홍어 앳국에 탁빼기 한잔,,,~~
즐거운 저녁시간 되십시오.
풍류...
멋을 아는 분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