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9_푸하님과 보성 갯마을 횟집과 율포 바닷가
2024년 8월 9일은 오전엔 도도녀가 되고, 점심 이후 푸하님과 함께 짧은 시간(4시간 정도)을 오지게 고맙고, 감사함이 버무려진 반나절이다. 난 흔치 않은 이런 귀한 하루를 ‘오고감탕의 하루’라 말한다.
너무 뜨거운 날씨로 움직임 자체가 무서울 정도라 연일 집도 이후 6박 7일을 석가헌에 머물렀다. 이어서 2박 3일 남도 여행을 마치고 스무날 만인 08/09일에 중앙도서관 의자에 앉았다. 매번 그랬듯이 아침 8시 45분 집에서 나와야 9시 정각에 도서관 주차 안전 바가 열리고 정상 주차할 수 있다. 내 맘으로 2층 고정된 자리에 앉아 와이파이 연결하여 작업 세팅을 마치고 막 시작한다. 그때야 4~50분 전에 들어온 푸하님의 문자를 확인한다. 오늘 시간 어떠냐 물어 점심 12시에 매번 만나는 곳에서 보기로.
내가 이번 여름휴가 전(07/24)에 푸하님에게 거문도 여행으로 물회나 하모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했었다. 당시 손자의 폐렴과 자신의 감기로 어렵다는 걸 말하면서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이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푸하님은 크고 작은 대소사가 낀 그 바쁜 중에도 뭔가 불편하고 불투명한 약속을 지키려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나 역시 모처럼 나온 도서관 행이니 12시에 만나기로 하고 난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열나 작업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내 차는 그곳에 두고 그녀의 차로 바꿔탄다. 푸하와 난 딱히 말하지 않아도 운전은 그녀가 도맡아 하고 난 식사비를 내는 것이 내가 정한 불문율이다. 매번 말하지만, 그녀는 세상 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맛집도 아주 잘 아는 천재성이 있다. 푸하님이 내게 ‘하모’가 먹고 싶냐고 묻기에 하모는 이틀 전 완도와 땅끝 여행에서 입에서 냄새나도록 많이 먹어서 아니라 답했다. 물회는 속 재료로 뭘 사용하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나기에 물회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푸하가 잘 안다는 한 시간 거리(약 68km)의 보성까지 간다. 화순에서 도곡을 지나 보성으로 향하는 길은 전전날 땅끝 가는 길이다. 때마침 활짝 핀 백일홍 가로수(배롱나무)가 너무 멋졌다. 마치 우리를 호위하듯 양옆으로 끝도 없이 줄줄이 서서 경례를 부치는 듯.
난 솔직히 여행이 곁들어지면 모를까 뭘 먹으러 맛집 찾아 먼 길을 나서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올여름엔 며칠 전에도 땅끝 해남과 완도를 다녀왔고 오늘은 보성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을 저지르고 보니 맛난 것을 찾아다닌다는 게 참 즐거움을 준다는 게 신기했다. 동행이 있고 없고의 문제도 있지만 대신 운전해 주는 동반자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조금 값이 비싸서인지 모르겠지만 땅끝 맴섬의 물회(20,000원)보다 보성 갯마을의 모듬물회(24,000원)가 훨씬 맛있었다.
푸하는 사계절 중 여름이 제일 싫고, 더위라면 질색이란다. 그럼에도 푸하에게 점심을 배불리 먹었으니 율포 바닷가 산책하자니 손사래를 친다. 이런 땡 더위에 꿉꿉한 바닷가 산책은 엄두도 못 낸다더니 잠시 후 그러면 한번 가보자니 난 그녀의 차 안에 있는 무지개 양산을 쓰고 그녀도 노란 양산을 들고 나선다. 모래사장으로 들어와서는 신발까지 벗고 해변을 거닐었다. 덧신까지 벗어버린 그녀는 금방 뜨거운 모래로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듯 비명이다. 여름 바닷가를 즐길 준비는 제로지만 양산 하나씩만으로도 한여름을 만끽한다.
비릿한 바닷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철썩대는 파도와 물보라, 선선한 바닷바람이 분다. 의외의 소소한 기쁨이었는지 한참을 걷다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오밀조밀한 조형물들도 그런대로 좋고 유명 백사장만큼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다. 질색하며 싫다던 바닷가 산책도 좋다니 그녀의 이런 긍정 마인드 덕분에 나의 풀샷이 만들어졌다. 그다지 많지 않은 피서객 풍경에 부드러운 바닷바람과 화사한 햇살이 무지개 양산과 어우러져 그녀의 손에서 인생 샷이 나온다.
오후 4시 30분엔 어린이집으로 손자를 데리러 간다는 푸하님. 나도 그 시간이면 헬스 요가하러 가는 일상이니 절묘하다. 점심때 딸과 사위에게 줄(2인분) 물회 포장까지 내가 계산하니 맘으로 불편했던지 찐 옥수수와 제과점 식빵까지 챙겨 내 차에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