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테무진).
몽골에서 칭기즈칸을 빼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별로 내세울것이 없기도 하지만 칭기즈칸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큰
제국을 건설한 전설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칭기즈칸의 본래 뜻은 위대한 군주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칭기즈칸은 테무친 이라는 이름을 가진 몽골족의 한 사람을
말하는것이다.
테무친은 1162년 척박한 몽골고원 헨티 아이막 이라는 곳에서 작은 유목민족의 부족장 아들로 태어난다. 테무친은 보르테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적장에게 납치되었다가 적장의 아이를 임신하여 돌아온다. 그후 아버지를 여의고 부족에서 쫒겨난다.
테무진의 나이 39세때인 1201년 11개로 나뉘었던 몽골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하나의 몽골로 통일한다.
테무진은 11명의 부족장 회의 에서 몽골족 전체의 리더인 칭기즈 칸 으로 추대된다. 이로서 몽골제국 통일의역사가 시작된다.
1218년 50여 마리의 낙타를 이끌고 무역차 중앙 아시아를 지나던 칭기즈칸의 부하들은 호라즘 제국의 공격으로 전원 몰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징기즈칸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여 호라즘 제국을 멸망시킨다.
이 사건이 세계 정복의 역사가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13세기 칭기즈칸은 로마제국 이나 알렉산더대왕 제국 보다 넓은
인류역사상 가장큰 몽골제국을 건설한다. 칭기즈칸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수있는 이유는 몽골족이 말을 잘타는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말을 탄 창기즈칸의 전사들은 보병부대를 기갑부대가 밀고 들어가듯이 거칠것이 없었다. 칭기즈칸의 기마병사들은 하루에도 수십km씩을 달랄수있는 정말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의 아그라성의 해자 넓이가 9m라고 한다.
칭기즈칸의 기마부대들이 말을 타고 뛰어 넘을수 있는 넓이가 8m 라서 9m로 했다고 한다. 그당시의 모든 적군들이 아마도 몽골병사들의 말밥굽 소리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을 것이다. 두번째의 승리 요건이 나무에 물소의 뿔과 힘줄로 만든 조립궁 이라는 활 이었다. 조립궁은 탄력이 뛰어나서 화살이 갑옷을 뚤을수있을 정도였다. 이번에 울란바트로에 있는 역사박물관에서 본 조립궁은 보기에도 무시무시 하였다. 그러니 말을 타고 마상에서 조립궁을 쏘는 몽골군을 무슨수로 승리할수 있었겠는가?
또한가지 승리요인은 보르츠 이다. 전쟁에서 승리와 패배는 보급의 유무이다. 식량이나 무기의 보급이 얼마나 원활 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된다. 몽골군들은 고기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전투식량 보르츠와 육포등의 식량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훨씬 간편하게 이동 할수 있었다. 또다른 승리 요인은 다문화 정책 이었다. 칭기즈칸은 세계정복 초기에는 정복한 백성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으나 후기에는 정복당한 백성들이 충성을 맹세하면 왕권과 재산,종교와 문화에 자율권을 인정해서 무역로의 안전을 지킬수 있었다. 마지막 승리 요인으로 넓은 초원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의 뛰어난 시력 이었다. 유목민들중에는 시력이 무려 8 이나 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보통의 일반 유목민들도 시력이 4~5 정도 된다고 한다. 그정도 시력이면 2km정도 떨어진곳의 물체를 정확하게 판별 할수 있다고 한다. 적들 보다 적을 먼저 발견 하므로서 승리의 작전을 구사 할수 있었다.
전세계를 아우르는 몽골제국의 출현으로 각 지역에 고립된 문명과 문화들을 교류 할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다. 선진 기술과 문화를 흡수 하여 몽골제국 통치에 활용 하였다. 문자가 없던 몽골인들이 위그루인에게 문자를 배움으로서 몽골제국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칭기즈칸은 적장의 아이를 임신하고 돌아와 낳은 첫째 아들을 후계자로 인정 하지 않았다. 결국 셋째아들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삼는다. 칭기즈칸의 나이 57세때 전쟁을 시작하여 7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64세때 몽골 고향으로 귀국한다.
전장에서 돌아온 1년뒤인 1227년8월18일 그이 나이 65세에 생을 마감한다.
동방견문록의 저자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폴로(1254~1324)는 칭기즈칸의 손자 이면서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칸 의 총애를 받아 17년간 원나라에서 생활 하면서 관직까지 받게된다.
거대제국 원나라는 쿠빌라이 사망후 분열과 사치로 백성들은 궁핍에 빠진다. 결국 14세기 중반 머리에 붉은 두건을쓴 농민반란(홍건적의 난)으로 원제국은 멸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