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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WOMAN MOMENT
봄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한 2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배우 김희애는 약간 지친 기색이다. 오랜 휴식기를 뒤로하고 강하고 억척스러운 어머니 역할을 맡은 스크린 복귀작 <우아한 거짓말>의 공식 시사회를 마치고 왔기 때문. 영화의 스크롤이 모두 올라가자 만감이 교차해 울음을 터뜨렸던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고 기자들의 질문을 어느 하나 거르지 않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답변했다. 어떤 상황에도 신중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게다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해 대중은 그녀를 사랑하고 질투하며 때론 그녀에게 거리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tvN <꽃보다 누나>를 통해 소박하고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었고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역할로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재개하며 대중에게 한 발 다가서고 있다. 퍼스트룩 화보 촬영장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눈에 띄었다. 아침 일찍부터 진행된 시사회 일정을 마치고 이어지는 고된 일정임에도 스튜디오에 도착해서는 스태프의 식사를 먼저 챙겨주는 자상함,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의상을 확인하며 의견을 나누는 세심함, 그리고 ‘오늘은 지드래곤처럼 찍고 싶다’는 익살스러움으로 분위기를 띄워주는 센스까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지적이되 매우 자연스럽게’라는 에디터의 난처한 콘셉트를 단번에 이해하고 포즈와 무드를 서서히 만들어갔다. 오묘한 빛과 먼지가 교차하는 창가에서 그녀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비주얼들을 만들어냈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노래만이 울려 퍼질 뿐이다. 역시 유난히 만족스러운 촬영은 진행도 빠르다. 단숨에 여러 벌의 화려한 촬영 의상을 소화하고 메이크업을 정리한 그녀는 모든 스태프에게 인사한 뒤, 모니터 프리뷰 화면의 한 컷을 지목했다. 그게 바로 <퍼스트룩> 63호의 커버다.
editor 이상민
자신만의 수식어를 획득하게 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다른 변신’이다.
역설적이지만 고유한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이들은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항상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새로워지려 한다. 반대로 결코 노골적인 가장을 하지도 않는다. 영리하게 앞을 내다보고 성실하게 나아간다.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이 닮고 싶어 하는 김희애의 ‘우아함’ 또한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 일관되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기란 쉽지 않다. 배우들은 자주 도드라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고 획기적인 반전의 강박에 시달린다. 때론 다른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변의 요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자신만의 수식어를 획득하게 된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남다른 변신’이다. 역설적이지만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거나 구축해나가는 이들은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항상 자신만의 방법으로 빈틈없이 조금씩 새로워지려 한다. 반대로 결코 노골적인 가장을 하지도 않는다. 영리하게 앞을 내다보고 성실하게 나아간다.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이 닮고 싶어 하는 김희애의 ‘우아함’ 또한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늘 주인공 역을 맡았던 그녀지만 단 한 번도 전형적인 트렌디드라마의 ‘캔디’나 주말극의 ‘신데렐라’였던 적이 없고, 광고에서도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김희애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상당 부분 여성스럽고 현명하고 고급스러운 배우의 바탕에 기인했고 그녀는 매번 멋지게 ‘우아한’ 변주를 해왔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로. 그리고 다시 한 번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여운과 감동이 가득한 영화로 ‘익숙한 듯하지만 조금은 낯선’ 변주를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서다. 소통, 관심, 그리고 이해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꼭 출연하고 싶었다는 김희애가 21년 만에 선택한 영화다. 커다란 스크린 속 <우아한 거짓말>의 ‘엄마’ 김희애는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봉(3월 13일) 전 완성된 영화를 공개하는 언론 시사회 현장에서 눈물을 쏟아 화제가 됐어요. 배우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본 게 처음이라 관객의 마음과 비슷했을 텐데 그만큼 감동이 컸나 봐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더라고요. 제 연기를 집중적으로 보면서 잘했나 못했나 따지다 보니 온전하게 몰두하지는 못했어요. 그에 비해 (고)아성 양, (김)유정 양, (김)향기 양 등 어린 배우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연기를 잘해서 거기에 감동을 받았어요.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옆집 총각으로 비중도 크지 않았던 유아인 씨까지 후배 배우들이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잘해줬을까 생각하니 제가 정말 행복한 작업을 했더라고요. 촬영 현장에서 그들이 보여준 순수한 눈빛이나 열정적인 모습도 생각나고 그러면서 마치 후폭풍을 맞은 것처럼 왈칵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김희애 씨야 원래 연기파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정말 어린 배우들이 굉장히 섬세하고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더라고요. 함께 연기해본 소감이 어떤가요?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세계적인 연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일찍 데뷔한 편인데 제가 그 친구들 나이였을 땐 그렇게 못했던 것 같아요. 점점 능력도 감성도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연기도 진화한다고 할까요? 좋은 작품도 많이 나오고, 보면서 공부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거죠. 촬영 현장에서 자극도 많이 받았어요. ‘후배들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데 내가 폐 끼치면 절대 안 되겠다’ 싶었어요.
너무 겸손한 평가인데요? 모든 배우가 누구 하나 더하고 덜함 없이 잘 어우러지더군요. 특히 감정을 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적절히 웃음과 메시지가 섞여 있어 좋았어요.
잘 보셨네요. 저도 그런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다소 예민한 소재일 수 있는데 자극적인 표현이 없고 섬세하게 감정 표현을 하잖아요. 인물들 각각의 사연과 마음도 잘 드러나고요. 사실 안 그런 척하면서 남의 흉을 보고 힘들어하고, 그런 일들이 학교에서뿐 아니라 어느 계층이나 어느 집단에서나 있는 일이죠. 주인공 외에 주변 인물들도 한 명 한 명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서 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아마 전 세대 관객분이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한 가지촬영하면서 조금 염려스러웠던 건 성동일 씨나 유아인 씨 캐릭터에 코믹한 부분이 있는데 너무 동떨어지게 보이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정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스럽고 감사해요.
그동안 우아하고 고상한 여배우의 대명사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화장도 거의 안 한 맨 얼굴에 멋도 내지 않고 소리도 막 지르면서 심지어 욕도 하고요. 좀 독특한 엄마더라고요.
실제로는 더할 때도 많아요(웃음). 아들 둘 키워보세요. 나긋나긋 말하고 사뿐사뿐 걷게 되는지. 평정심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차마 사람들 앞에서는 못 해서 그렇지 집에서는 간간이 육두문자도 쓰고, 진짜 ‘쌍욕’할 때도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제 실체를 다 알고 있죠. 물론 저도 그러고 나면 꼭 후회하니까 안 그러려고 노력하죠. 욕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말을 더 잘 듣거나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쟤네는 내 아이가 아니다, 다른 집 아이들이다’ 하고 속으로 되뇌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할 때도 있어요. 근데 어느 집이나 속 안 썩이는 자식 없다고 하잖아요. 모범생이든 1등이든 다들 부모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골치 아픈 점이 있을 거고, 일상에서 그렇게 표현들 하지 않나요? 뭐, 그렇게들 산다고 생각해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왜 이 역할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네요.
<우아한 거짓말>의 ‘현숙’은 제가 연기해본 적 없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별로 본 적 없는 드문 캐릭터예요. 막내딸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에도 큰딸한테서 오버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을 만큼 밝고 씩씩하게 살려고 애쓰는 엄마죠. 주책 맞을 정도로 쿨하고 당당하고요.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일단 감독님을 믿고 선택했어요. 감성이 참 풍부하시잖아요. 전작 <완득이>를 제가 정말 재밌고 감명 깊게 봤거든요. 언젠가 꼭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자식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도 마음이 많이 움직였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꼭 같은 일은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의 일이 많이 생겨요.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반대인 경우도 반드시 한번쯤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부모로서 마음 아픈 소재는 오히려 피하고 싶고, 촬영할 때도 더 힘들고 그런 점이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에 잘해보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김희애 씨는 언제나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아요.
배우들은 대부분 어떤 장면에서든 자기 감정을 최대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군데쯤 확 폭발하듯 터지지 않으면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싶은 생각도 들거든요. 그런데 그게 언제나 정답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 욕구를 계속 누르는 것이 과제예요. 촬영 내내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아이 잃은 엄마가 너무 담담하고 씩씩하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정말 슬플 때 마냥 울지만은 않잖아요. 극 중 엄마는 생활도 계속 꾸려가야 하고 큰딸을 위해 마음을 추슬러야 하고 슬픔에 머물러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죠. 꿋꿋하게 사는 모습에서 슬픔이 더 잘 배어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제가 감정을 드러낸 부분도 감독님께서 편집으로 눌러주셨더라고요. 현실적인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서 아주 만족스러워요.
이번 영화가 21년 만의 출연이더라고요. 정말 오랜만의 스크린 나들이인데 감회가 남다르겠어요.
떨리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래요. 촬영하면서 처음엔 좀 낯설었는데 금방 적응했어요. 아무래도 드라마에 비해서는 여유 있게 진행되니까 차분하게 찍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스크린에서도 자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 사실 배역 비중이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에요. <우아한 거짓말>도 좋은 작품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단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가끔 제가 우아한 이미지만고수할까 우려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때로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한가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좋게 봐주시니 고맙고 한편으로는 제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왜냐하면 실제 제 모습은 정반대에 가까우니까요. 저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게 생긴다고 할까요? 사실 그러려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연기 측면에서는 좋은 점도 많이 있어요. 인물을 표현할 때 훨씬 설득력 있고 풍부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김희애 씨가 최근 <꽃보다 누나>를 통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느낌이에요.
여배우도 사람이라서요. 여성분들 여럿 모이면 그중 공주 같은 성격도 있고 털털한 성격도 있고 애교 많은 성격도 있고 그렇잖아요? 배우들도 똑같아요. 여배우들은 예민하고 성격도 까칠하다는 선입견이 많지만 사회생활 몇 십 년씩 한 사람들인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똑같이 봐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여배우 입장에서는 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노출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24시간 내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중에는 조금 버겁더라고요. 여행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꽃보다 할배> 선생님들 보면서 ‘쉬면서 충전 좀 하자’는 천진한 마음이었는데, 막상 갔더니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또 많은 걸 배웠죠. 실수나 힘들었던 일도 다음에 플러스가 돼서 돌아온다는 걸 늘 살면서 깨달아요.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요.
이제 영화 개봉에 맞춰서 홍보 활동도 할 테고 또 드라마도 병행하는데 무척 힘들겠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시기가 겹쳤어요. 이런 거 보면 정말 인생 계획대로 살아지는 거 아니라니까요(웃음). 지금도 3일을 새벽까지 촬영하고 와서 정신이 좀 없어요. 아까 메이크업 받으면서 혼잣말로 계속 ‘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랬다니까요. 이럴 때 ‘아, 행복하다’ 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우아한 거짓말’을 해요. ‘내일모레 내 나이가 몇인데 여기서 이렇게 예쁘게 옷 입고 사진도 찍고, 바쁘게 일도 하다니….’ 그러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죠. 그러다 보면 피곤은 많이 없어져요.
그럼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는 건가요?
일을 많이 하고 싶긴 해요.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일을 좀 멀리했어요. 물론 아이들이 붙잡은 건 아니지만 옆에 있어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둘 다 기숙사에 들어갔고, 전화해도 잘 받지도 않아요(웃음). 제 길로 돌아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다만,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서 좋은 작품이 절 끌어당겨야 하겠죠. 마음먹은 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려고요.
카키 컬러의 울 소재 벨라인 숏 재킷, 카키 컬러 마이크로 쇼트 팬츠는 모두 아노냐 제로 컬렉션 by 스테파노 필라티. 블랙 스웨이드 샌들은 구찌. 양손에 착용한 반지는 모두 디디에 두보.
네이비 컬러 베스트와 슬랙스 팬츠는 모두 드민. 손목에 착용한 뱅글은 모두 불가리.
화이트 러프 디테일 턱시도 셔츠 블랙 턱시도 슈트는 모두 생 로랑. 물방울 모티프 이어링은 쇼메.
아이보리 컬러 더블 슈트는 고소영.옐로 골드 & 화이트 골드 콤비 펜던트 롱 체인 네클리스와 양손에 착용한 링은 모두 불가리.
editor 이상민
photographer 홍장현
text 이연우
스타일링 최아름(INTREND) 헤어 유다(duet by udha) 메이크업 손대식 세트 김민선 어시스턴트 황선영, 김지연(IN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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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니 기사는 늘 좋아요.
쌍욕할때도있다니...ㅋㅋㅋ너무 의외일거같은데 그것조차 너무 매력으로 다가오네요 ㅋㅋ 아. 아들이부러워요ㅠ실체를다알고싶네요ㅋ
진짜 아들들이 부러워요 다알고있다니ㅋㅋ저한테 전화하시면 일어서서 두손으로 받을텐데 ㅋㅋㅋㅋ
자상함, 세심함, 센스.. 정말 언니 기사는 다 좋아요~~
소탈한 모습 좋습니다^^ 잘보고가요^^
정말 이기사를 보면서 마치 옆에 있는 것 처럼 실감하게 느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