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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
문의전화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64 |
홈페이지 | http://tour.hadong.go.kr |
2. 작은 어항에서 맞는 노을 : 신노량항 낙조
신노량항은 금남면사무소가 있는 작은 어항이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는 방파제 안쪽으로 고깃배가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다. 앞바다는 다도해 섬들로 가득하다. 항구 오른쪽에 길게 누운 섬이 대도이고 그 옆이 농섬이다. 농섬 옆 바다가 관음포 앞바다로 이순신 장군 전몰유적지이다.
남해대교 너머로 지는 노량항 낙조 (사진제공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신노량항의 낙조는 정겹다. 저녁 무렵이면 대도너머로 해가 지며 하늘을 붉게 태운다. 이순신 장군의 영혼은 불타는 저 낙조처럼 이 바다를 뒤덮다 사라졌다. 그 영혼은 이제 우리의 심장에서 살아 숨쉬며 피에서 피로 영원히 이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멸의 영혼이라 불린다.
하루 해의 마지막 햇살이 항구 옆 작은 갯벌에 즐비한 목살 사이로 떨어지면 작은 어항은 저녁 준비로 술렁인다. 바람조차 잠들 곳을 찾아가는 듯 어수선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어항의 낙조..
[왼쪽/오른쪽] 신노량항에서 손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섬 대도 / 신노량항은 양식장을 오가는 배와 어선들로 붐빈다
노량항은 남해로 건너가는 항구였다. 남해대교가 생기며 옛 노량항은 축소되고 금남면 지금 자리에 신노량항이 섰다. 하동화력발전소와 멀리 광양산업단지가 내다보이는데 밤이면 불을 환하게 밝혀 야간경관이 뛰어나다.
노량포구는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겨울이면 강을 거슬러 오르려는 참숭어가 노량항에서 많이 잡힌다. 매년 11월이면 참숭어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참숭어 맨손으로 잡기 등 신나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
문의전화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9 |
홈페이지 | http://tour.hadong.go.kr |
대중교통 | 하동시외버스터미널 입구 출발. 시외버스 남해시외버스터미널하차. 남해시외버스터미널 출발 농어촌 버스탑승 노량 정류장 하차 |
3. 누가 알랴 백의종군 길 그 처절한 심정을 : 하동읍성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이순신 장군은 조정으로 불려 올라가 문초를 당한다. 왜적이 바다를 건너오니 막으라는 어명을 거역한 죄였다. 전쟁 중에 그것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장군을 처형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간의 공적을 감안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백의종군 하는 것으로 형이 바뀐 것은 그 와중에 천만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2만 대군을 몰고 다시금 조선을 침략한 왜적은 백성을 도륙하며 승승장구 진격을 하였다. 남원성에서 조선군과 명군, 관민 모두 1만명이 전멸하며 전라도 곡창지대가 왜적의 손에 넘어갔다. 급박하게 소용돌이 치는 전란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하기 위해 합천에 있는 권율장군의 진영으로 갔다.
조선 태종 때 쌓은 하동읍성
장군이 걸은 길은 한양에서 아산과 구례를 거쳐 하동, 진주, 산청, 합천에 이르렀다가 진주, 구례로 돌아온다. 관직을 박탈 당하고 평민의 신분으로 가는 길. 들려오는 급박한 전선의 소식을 듣는 장군의 심정이 어땠을까. 장군은 합천으로 가기 위해 하동읍성에서 이틀을 머물러 쉬었다.
하동읍성은 조선 태종 때 쌓은 산성이다. 1703년 지금의 하동읍으로 옮기기 전까지 현청 소재지가 있던 곳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성이 함락되어 객사와 관아, 향교 등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었다. 장군은 머물렀을 때는 왜적이 남기고 간 상처가 생생했을 것이다.
하동읍성은 한바퀴 도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작은 성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당시 장군의 심정을 되새겨 보자.
[왼쪽/오른쪽] 돌 무더기를 솓아부은 듯한 성벽 / 하동읍성을 따라 둘러보는 길이 있다.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산151 |
문의전화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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