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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봉남면 봉남교회 순교자 김형배 집사(26)
미국 남장로회 7인의 선교사(테이트, 전킨, 레이놀즈 등)는 1892년 이억만리(異域萬里) 조선 땅에 찾아와 한양에서 준비한 후 1894년 3월 전주와 군산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1894년 5월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그들은 서울로 철수했다가 동학운동이 끝난 1895년 2월 다시 돌아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 헌신했다.
한국 제일의 넓은 평야, 김제 봉남면에도 1904년 선교사의 전도로 주원선 영수(장로되기 전의 직분) 등 몇몇 성도들이 예수를 믿고 대송리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史記(40쪽)에 보면 1897년 김제군 송지동교회(공덕면)가 설립되었고 같은 책 104쪽에는 1903년에 김제군 부량면 대창리교회(현재 대창교회)와 봉남면 월성리교회(현재 월성교회)가 설립되었고 1904년에 봉남면 대송리교회(현재 봉남교회), 1905년 금산면 두정리교회(현재 금산교회)가 설립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동학세력이 집단으로 개종하면서 김국현, 구덕삼, 이기선, 조원배, 곽성국 중심으로 1900년 월촌면에 입석리교회(현재 김제시 봉월교회)가 세워졌다.
▲김제 봉남교회 전경
봉남교회는 1906년에 김옥경 성도(김두환 목사의 선친)가 교회 대지를 헌납함으로 노회로부터 교회설립 허락을 받아 초대 당회장으로 이눌서(William Davis) 선교사가 시무하였다. 서국태(Donald Augustus) 선교사의 주선으로 예배당을 신축했으며 김정남 장로(1대)를 장립하고 김응규 목사가 초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김성근 장로(2대), 김두환 장로(3대), 정기봉 장로(4대) 등을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였다. 봉남교회는 1959년 교단의 분열로 양분되어 봉남교회와 대송교회로 분립 되었다. 현재 봉남교회 박성규 목사와 교인들은 지역사회에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기도하며, 순교자 김형배 집사의 부인 김애순 권사는 100세(1921년생)가 되어서도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여 후손들이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교회에 충성하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
▲김애순 권사 90회 생신때 가족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100여명 모이던 봉남교회에 많은 아픔을 주었고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였다. 1947년 9월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조직할 때 봉남면 단장에 김두환 장로, 부단장에 김형배 집사가 반공 투사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시 김두환 장로(후에 목사로 헌신)는 부산으로 피난 가고, 그와 함께 활동하던 정기봉 장로, 김형배 집사, 하치호 집사, 김성두 집사(김두환 목사 동생), 권태술 청년회장(형은 대령 제대하고 목회)이 남아 있다가 공산군에게 끌려가 전기줄에 묶여 모래밭에 생매장되었다. 이후 한 달이 지나서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뤘다. 순교자의 반열에 선 것이다.
▲김현수장로 김애순권사 박성규목사
순교자 김형배 집사는 1921년 김성근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구금되어 고문당할 때 무릎의 상처에서 피가 겉옷을 적시기까지 한 것을 김 집사는 보았다. 김 집사는 손위 처남이자 노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한 김두환 목사(당시 장로)와 함께 정치 활동에 참여하였다. 교회에서는 찬송 인도자였고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는 한국전쟁 시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교인들과 함께 29세에 순교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애순(당시 29세) 권사와 세 동생이 있고(김형좌 목사, 김형식 장로, 김형기 장로), 두 아들도 장로(김현수, 김선식)로 딸 김선희, 김선순 권사가 순교자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공산당이 떠나고 가해자들이 붙잡혀 죽게 되었을 때, 김형배 집사의 어머니가 나와 “내 아들은 천국 갔으니 걱정할 것 없다. 보복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일이니 절대 죽이면 안 된다” 보복하지 못하게 했으며 가해자들에게 “당신들, 회개하고 예수 믿으세요!” 간곡하게 복음을 전했다고 김형좌 장로가 증언했다.
▲김애순 권사와 3남매
순교자 정봉기 장로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성장하여 두 형님도 장로이다. 그는 한국전쟁 시 공산당에게 붙들려 맞아 죽었으니 35세의 젊은 나이에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봉선 권사(정읍신광교회), 아들 정보은 집사(정읍신광교회), 딸 정순자는 김용남 목사 부인이다. (영월중앙교회) 또한, 순교자 하치호 집사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순이 권사와 장남 하태영 장로(서울 일심교회), 장녀 하정희 집사가 순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순교지에 가서 아쉬울 때가 있다. 순교의 현장을 보존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증언하고 순교자들의 순교신앙을 작은 기념관이나 기념비, 기념동판을 세워야 할 터인데, 하나도 세우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고귀한 순교신앙을 후대에게 유산으로 넘겨주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세워야 할 것이다.
▲매일 새벽기도하는 1920년생 김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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