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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치과의사이자 목회자로 지역사회를 위해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유영호 원장이 통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진우 |
치과 진료실 한 가운데 자리잡고 앉은 통기타는 오래 돼 색이 바랬고 손때가 묻어 있었다. 친근한 동네 치과의사이면서 최근 개척교회 목사로 변신한 유영호(68) 유영호치과의원 원장의 삶은 열정적이다. 치과의사로, 가수로, 아마추어 화가로, 스포츠맨으로, 사회봉사자로, 목회자로 살아온 삶은 다채롭고 굴곡도 심했다.
춘천 출신으로 고향에서 개업한 치과의사 1호이다. 1978년 개업 당시 춘천시내에 치과는 여섯 곳에 불과했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고 무의촌이 많았다. 춘천 외곽의 읍면 지역으로 무료 봉사활동을 열정적으로 다녔다. 천직인 치과의사의 본분을 충실히 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에 따라 로터리클럽 활동 등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유 원장은 강원도치과의사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춘천경실련 공동대표, 춘천YMCA 이사장 등 지역사회 곳곳에 손길을 뻗쳤다.
유 원장은 학창시절 예체능에 재능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달리기 선수, 중학교 때는 야구선수, 고등학교 때는 유도선수로 체육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했다.
경희대 치대를 다니던 유 원장은 본과 2학년때 돌연 휴학을 하고 1971∼1972년 1년간 가수활동을 한다. 그의 대학 동창인 가수 윤형주를 학교 페스티벌 등 무대에서 만나기도 했다. 가수로 변신한 치대생 청년 유영호는 서울의 유명 클럽을 누볐다. 무대에서 건전가요(팝송)를 주로 불렀다. 가수 김상희가 사회보던 프로그램 ‘KBS 세븐스튜디오’에서 팝송을 불렀던 일을 비롯해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목 받았던 기억을 되새겼다. 주로 라디오에 출연했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가수로 ‘꽃반지 끼고’를 부른 은희 등을 꼽았다. 탤런트 김자옥의 남편인 가수 오승근과의 교류도 떠올렸다. 연예계 생활은 보는 사람은 즐겁지만 활동하는 사람은 괴로운 일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40대를 거치며 위기와 고통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그 난관을 극복하면서 1995년부터 복음가수로 변신했다. 그렇게 2개의 앨범을 냈다. 음악은 그의 인생을 관통했다. 유 원장은 8년 신학공부 끝에 2012년 3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같은 해 9월 춘천 중앙로 치과 건물 3층에 교회를 개척했다. 빽빽한 그의 이력에 직함이 하나 더해졌다.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직함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기쁜우리 주의숲 교회 담임목사. 20명 안팎의 신자들과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간다.
주중에는 환자들의 아픈 이를 돌보고 치료하고 주일에는 교인들의 영혼을 힐링 한다. 통기타로 중후한 선율에 복음을 실어 전파한다.
“복음은 영어로 굿뉴스잖아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게 사명이지요.”
유 원장은 그림도 그린다. 아마추어 화가들과 함께 두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작품들은 치과와 교회에 당당하게 걸려있다. 난해한 듯 하나 차분한 색조의 그림들이 그의 성품을 대변해 준다. 그를 결정적으로 성장시킨 것은 시련이었다. 44살 때 다니던 교회가 부패 추문에 휩싸이고 가까운 이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자연히 몸도 무너져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까지 왔다. 그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로 주로 찬양사역을 했어요. 기타는 내 애인이에요.”
유 원장은 즐겁게 산다. 목회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고민한다.
“올 4월부터 춘천지역 군장병들을 위해 꿈꾸는 청년 만들기 주의 숲 캠페인을 벌여요. 주일에 외출 외박나온 군인 청년들에게 따뜻한 말씀을 전하고 맛있는 점심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제대 후 건강한 사회와 나라의 기둥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그에게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비친다. 이동명 sunshine@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