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영화 <더플랜> 검증을 내세운 <노플랜> 방송에서 국내 개표에 대해 “기계에 전적으로 개표를 맡기는 전자개표 시스템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투표지분류기로 분류한 뒤 수만 명의 개표종사자들이 검증하는 절차를 밟기에 ‘조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진술은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선관위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전자투개표’를 하고자 준비해왔다. 1994년. 3. 16. 제정한 ‘공직선거법 부칙 제5조’는 전자투표 및 개표에 대해 규정한다. 공직선거법 제278조(전산조직에 의한 투표·개표)는 2000년 2월 16일 신설됐다. 선관위는 2005년에 ‘전자선거추진팀’까지 꾸려 공직선거에 전자 투개표 방식을 도입하고자 공을 들였다. 또 ‘전산조직에 의한 투개표’를 위해 ‘터치스크린’을 도입하려 했으나 그 조작 위험성을 우려한 여야의 반대로 사업이 좌초된 바 있다(2008년 10월 6일 행안위 국감에서 예산 3500억 삭감).
사실 ‘투표지분류기’는 전자투개표 방식인 ‘터치스크린’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성격이 짙다. 가령 지난 2002년 투표지분류기 개발 활용계획서를 보면 ‘개표결과의 실시간 전송기능’이란 대목이 나온다. 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개표가 완료된 후보자별 득표수(미분류투표지 집계수 포함)는 투표지분류기와 연결된 제어용PC에서 개표소에 설치된 개표관리 전산보고용 PC로 LAN으로 연결하여 공중망 또는 정부고속통신망을 통하여 중앙위원회서버(DB)에 전송하는 기능을 제공하여야 함”
이와 유사한 ‘개표결과의 실시간 전송 기능’에 대한 내용은 2009년 투표지분류기 제안 입찰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를 개표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면서도, 이처럼 ‘주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해왔으며, 지금도 “투표지분류기의 분류 결과는 틀림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지난 2014년 3월 중앙선관위는 “제18대 대선 개표에서 투표지분류기의 오분류가 한 건도 없었는지” 묻는 정보공개청구 질의를 받고, “투표지분류기에서 특정 후보자의 득표가 다른 후보자의 득표로 잘못 인식한 사례는 없었다”고 회신하였다. 하지만 2015년 8월 28일 민원회신에서는 18대 대선 당시 전체 93개 투표구(서울 양천구 목3동 제4투 박근혜 후보 +86표, 신정7동 제1투 문재인 후보 +18표, 양재1동 1투 박 +41, 문+46, 논현 고잔동 6투 박 +36, 기타 89개 투표구 박 +36)에서 1표~10표 이상의 득표수 변동이 이었다고 답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는 오분류된 숫자가 아니라 “심사집계부에서 분류하는 동안 계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 한다며 오분류(혼표) 사실을 극구 부인하였다. 그러나 18대 대선 당시 혼표가 발생한 사실은 당시 참관인이나 관람인이 찍은 전남 순천 개표소 촬영사진, 서울 서초구 촬영 영상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투표지분류기는 정확하다”는 선관위의 확신과 홍보는 18대 대선 당시 개표사무원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투표지분류기로 분류한 결과는 검표 하나마나 정확하다”는 생각에 검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들은 개표관리매뉴얼에서 모든 투표지를 “2~3번 전량 육안으로 정확히 확인 심사”를 하라는 지침이 있음에도 그 지침과 달리 날림개표(휘리릭 개표)를 당연시 하였다.
현행법상 개표는 투표지분류기를 보조수단으로 쓰면서 수작업 개표를 하게 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투표지분류기의 분류 결과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다. 물론 최근에는 수많은 시민이 개표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표 감시활동을 펼치기에 그간 관행처럼 되풀이되던 날림개표는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 특히 선관위가 2016년 4.13 총선부터 개표에 투표지심사계수기를 도입함으로써 심사집계부 단계의 날림개표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또 참관인들의 감시활동도 활발해 날림개표를 하다가는 큰 반발을 산다는 사실을 알고 각 선관위도 조심한다.
하지만 18대 대선 개표 당시만 해도 개표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전혀 높지 않았으며 감시활동도 찾기 힘든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 18대 대선에서는 수작업 개표가 거의 누락되다시피 하였으며, 이 사실은 개표상황표와 개표 영상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대 대선에서 수작업 개표가 거의 누락되었다는 사실은 곧 전자개표(투표지분류기)로 개표 결과가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이는 선거법 위반이며 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의 주요 무효 사유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