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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불꽃나무 숲☆]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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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나무 숲]
신규호 시선집 / 시문학사(2016.03.3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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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霜降∙1
신규호
길든 개를 내쫓는다
날마다 돌아와 꼬리치는
행복을 매섭게 결별한다
황혼과 어둠을 지나고
대낮의 집착을 버린다
차가운 서릿발, 각성이의
칼을 문 새벽이 진주한 마을
군청색 하늘아래 혼자 섰다
쓰러져 잠들 수 없는
날 선 정신을 치켜들고
차갑게 언 언덕을 밟는 산책
오랜 침 묵 저 편에서
참새 한 마리 울음을 던지고
섬뜩한 단도 한 자루
새벽달이 이마에 차게 닿는다
조각달∙1
신규호
생각은 깜깜하고
태어날 듯 태어나지 않는다
견고한 알 하나
항문 끝에 보이고
대붕大鵬 한 마리 검은 나래를 펴
하늘을 덮고 있다
출산이 끝나면
타조의 알보다 클
생각 한 쪽은 파묻혀
보이지 않고
날은 절 처마 끝에
풍경만 울어댄다
마르지 않는
눈물 한 방울
잠언箴言∙1
신규호
희미한 별 떨기
마주함도 한 때뿐
날 밝으면
지렁이, 도야지, 잡동사니들
우글거리며 튀어나오는 저자 거리,
마음 한 구석
우리를 둘러치고
밤 새워 대못이라도 꽝꽝
두드려 박아 둘 일이다
연鳶
신규호
아이가 연을 띄워 하늘을 본다
하늘은 아이의 눈만큼 깊고
연줄은 천국을 가르며
욕망을 싣는다
눈이 빛난다
손길이 빠르다
입술이 의욕ㅎ다
연줄은 마침내 지상에 내리어
길고 질긴 실타래
허무의 물레를 마련한다
먹∙1
신규호
한밤중 깨어 보니
텅 빈 금갑琴匣* 기일게 누워 있다
왼쪽엔 잠든 고양이
오른쪽엔 불 끈 라디오
손에 익은 어느 것도
이제는 다시 만지고 싶지 않다
머리맡에 열어 놓은
물 담긴 벼루
풀린 먹 향기
방안에 가득하다
한 백년 몸 풀은 물결을
한없이 건너는 아득함
풍뎅이 한 마리
헤엄치는 바다
*금갑琴匣 : 악기(거문고 등)를 담는 산자(케이스 case)
불면의 잠
신규호
강원도에서
오늘 밤 흘러오는 한강의 물은
눈부신 달빛을 서울로
실어 나르고
불면의 밤을
백리 쯤 흘러가다
새벽을 만나
내 모를 빛의 이야길
속살이려나 보다
한강의 달이
어둠 속 깊이
써서 감춘 시구詩句를 누가 찾으랴
눈 감은 자 잠든 밤
별들이 빛나고자
얼마나 몸부림 하는지
어디서 누가 이 밤에
무엇을 말하며 죽어가는지
누가 알랴
불면의허허론 베갯머리로
유성이 흐른다
장마∙1
신규호
질퍽한 길바닥에
두꺼비 한 마리 어기죽거리더니
쇠똥에 앉아 열심인
파리 한 마리 낼름 잡아먹는다
순간, 자동차가 달려와서
두꺼비를 뭉개고 지나간다
차를 운전하는
젊은 여인의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눈 깜짝할 사이다
한 줄도 안 될 역사
흔근한 길바닥만 남고
장마는 지루하게 아어지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신규호
팔을 길게 뻗어본다
한 치의 거리를 좁힐 수 없어
손끝이 바르르 떤다
맞은편에서 뻗은
다른 손끝도
떨고 있다
한 그루 나무는
한 그루 나무의 허공을
벗어날 수 없어
다만 흔들리면서
머리카락 풀어헤쳐
혼자 춤출 뿐
사나운 바람이 불어
부딪히고 뒤엉켜도
무너지지 않는 허공을 끌어안고
까치발로 서서
하늘을 휘젓는 몸짓이
간절하다 하여도
나무와 나무
환 발짝도 못 내딛는
뿌리를 안고 운다
머리 위 푸른 하늘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아득히 날아가는데
동행同行
신규호
개봉동행 버스와 나란히
나의 달이 달린다
뜨거운 석쇠, 서울의
지붕을 뛰어넘고
빌딩을 가로질러
숨바꼭질 하면서
나의 달이 달린다
뛰는 자에겐 뛰고
걷는 자에겐 걸어주는
달의 여유
달이 기계와 동행하는 걸
아무도 모른다
노량진에서 놓친 한강의 달이
집에 와 보니 대문 위에
기다리고 있다
끝내 따라다니는 달의 속셈
달이 미행하는 오늘의 사태
오늘의 비밀
황혼
신규호
돌멩이 하나
한쪽 뺨은 지상에 파묻고
한쪽 뺨은 하늘로 향한 채
울고 있다
초저녁 항토흙이
불그레 젖어 있다
바야흐로
촉각을 세우는
귀뚜라미 한 마리
시詩
신규호
테네리페* 사람들은
휘파람 말을 한다
바다가 바다 너머의 것을
파도로 말하듯
입술을 떨어 울리며
속내를 풀어낸다
귀 기울여 들으면
리듬과 거품 뿐
테네리페 사람들은
파도처럼 말을 한다
휘파람으로
소통한다
*테네리페 :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섬
환골換骨*
신규호
어제는 밤새도록
버선목 뒤집듯
마음을 까발리느라
잠들지 못했습니다
우두둑 우두둑 부러지는
뼈대며 심줄들이 수북이 쌓여
목불인견目不忍見
아침에 작은 산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참새 한 미리 와서
울지 않는
작은 산 하나로
참혹한 내가 누워 있었습니다
*환골換骨 : ‘환골탈태’의 준말
안면도∙1
신규호
거대한 짐승처럼 밤바다는 울고 있었어. 번뜩이는 몸뚱이가 언뜻 눈에 띄었어. 천지를 가득 메운 고래 떼가 캄캄한 포구로 다가와 덮칠 때, 작고 슬픈 눈들이 보였어. 부두로 기어오르는 지느러미도 보였어. 아아, 흉측한 어둠의 몸통도 보였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막강한 힘. 낚싯대를 내던지고 막 뛰었지. 방파제를 할퀴며 포효하는 바다, 어디에도 평화는 없었어. 몸은 어둠 속으로 빠르게 빨려들고. 그저 그뿐이었어. 캄캄한 칠흑의 창자를 아시는가, 그대? 마구 삼켜대는 불법의 폭력을 아시는가, 그대? 안면도는 ‘安眠島’가 아니었어. 새도록 잠 못 들고 ‘한반도’에 숙명처럼 그렇게 붙어 울부짖고 있었어.
하늘보기∙1
신규호
백지 위에 엎드려 시를 슨다.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썼다 지웠다 하며 발을 붙들고 파 내려가면 하늘가지 가 닿을 수 있을까. 밤새 백지와 싸우다 깨어나 보면 새벽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하얗게 바랜 마음이 가볍다. 끝내 하늘도 보지 못하고 백지 하나로 남는 아침, 몸은 깃털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하다. 허나 세상의 벽이 가로막아 움직일 수 없다. 네모진 생활에 갇힌 수인으로 살아가야 하나 보다. 다시 까아만 그을음이 가슴 가득 차 오른다
묵화墨畵
신규호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봉 앞에 선
나는 신이 흘린 먹물 한 점이다
털어버린 먼지로 날리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티끌의 흔적이다, 나는
내가 한 소실점이 되어 있을 때 신은
가장 근엄한 몸짓으로 다가와
다울라기리 봉 큰 손을 내밀어 준다
산 그림자에 묻히어
묵화의 한 모퉁이에 찍혀서
한 점인 내가 여백餘白으로 사라질 때
다울라기리 봉 정상에서 신은
비로소 눈발을 날리며 웃는다
시작詩作
신규호
말꼬리 잡고 말에 매달려
어디까지 가려 하나
어두운 숲길 헤쳐 길을 찾아 떠난 길
예 이르러 바라보니
어느덧 먼 지평선 황혼에 묻혀 있고
피곤한 말은 소리 없이 잠들려 하네
내일이면 또 어디
말고삐 매야 하나
거친 사막일지라도
길은 내야 하고, 가야 하는 것
따라올 이 없는 아득한 곳
말과 함께 가고 또 가야 하는 길
찔레꽃 피다
신규호
그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 놓고 무심코 웃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뒤돌아보니, 찔레꽃이 만발해서 가시 울타리를 덮고 있다. 밉지도 않으면서 상대의 가슴에 가시를 찔러 피멍을 들게 해 놓은 나도 나이지만, 어쩌자고 찔레꽃은 무더기로 피어나서 나 또한 피멍 든 적이 있음을 회상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말 한 마디에 찔려서 마음속에 붉은 상처를 지니지 않은 사람 없을 터이지만, 밉지도 예쁘지도 않은, 뾰족한 가시를 두른 찔레꽃 피는 계절이면 한 짓을 짐짓 뒤돌아보아 후회하게 되고, 후회하다 뒤돌아보면 찔레꽃은 여전히 피어서 가슴을 찔러댄다. 올해도 찔레꽃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그는 아직 비행 중∙1
신규호
마음 속 수천 미터 깊이에 감추어 둔 채
고도 2만 피트 고공을 날고 있는 그는
아직 비행 중임. 착륙 시간은 알 수 없음
스스로 열지 못하는, 섭씨 2천도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을
한 생애의 발자취가 모조리 찍히는
산더미같이 쌓인 사진, 끝을 알 수 없는
긴 녹음테이프, 그리고 증언들과 목격담,
부호들, 암호들, 염문들―
아무도 열 수 없는 블랙박스 하나
그는 사가지고 있다, 비밀처럼, 보석함처럼
착륙 시간이 가까울수록 두렵고 궁금한
오랜 시간 다긴 것, 오해와 착각과 비행
잊고 살아 온, 그래서 마음 편한
제비꽃 몇 송이고 숨긴 채
마음 속 심연의 늪에 눈 뜨고 지켜보는
상자 하나 지니고 아직 비행 중이다, 그는
상자 하나에 내장되는 삶을 짊어지고
사이間∙1
신규호
모니터에 뜬 16세 안젤리나 졸리의 나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첫돌맞이 아기가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다
별을 낳는 별의 어머니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다
나사(NASA)는 망원경으로 21만 광년 떨어진
성운에서 별이 탄생하는 순간, 우주에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를 찍었다
하늘의 자궁 속에서 세포의 ‘잉태와 출생’ 사이가
자궁 밖에서 ‘늙음과 소멸’ 사이로 바뀌면서 차츰
‘죽음’으로 끝나가는 별
지구 위에 윤화를 거듭하는 무생물과 생명체들
누가 망원경으로 어두운 허공 속에서 탄생과 죽음,
죽음과 탄생 사이를 거듭하는 별을 촬영하고 있다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에
숲 속을 거니는 늙은 시인의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잎 진 자작나무를 닮아간다
인터넷 망을 타고∙1
신규호
모니터에서 ‘포탈라 궁’을 꺼내 벽에 붙여 놓는다
서재 안에 가득 차는 승려들의 독경 소리
눈 쌓인 히말라야 영봉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 섰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독수리 떼 뜬다
홀연, 허공에 떠서 아지랑이로 흐려지는 나,
까마득한 날에 꺾었던 꽃 한 송이 울고 있는 지상
허구아비로 흔들리며 새 떼 쫓던 망나니의 날들
지상의 난장판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포탈라 궁을 떼어 모니터에 다시 넣는다
기도 소리, 새 소리, 울음소리 아직 들리는
티베트로 가 길바닥에 배를 깔고 기어야 할
이 밤에 몸 하나 데리고 천리 밖 라싸로 간다
*포탈라궁 : 티벳의 사원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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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시 전집을 내기 전에 선집을 먼저 내기로 했다. 등단 전의 수습작품 일부를 포함해서 100편을 골랐다. 700여 편 가운데 제외할 것들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통증을 겪으며 낳은 제 자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버릴 수 없는 어버이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만지작거리다가 600여 편을 제외할 수박에 없었다. 그렇다고 선정된 100편 모두가 흡족한 것은 아니다. 60년대부터 지금가지 근 50년 동안 대부분 발표된 것이지만, 등단 전의 수습 작품가운데 첫 선을 보이는 것도 몇 편 있다. 작품을 고르다 보니, 시의 우열을 가르는 일이 매우 어렵고, 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절감했다. 작품과 말미에 실린 논평은 연대 순서에 따라 엮었다.
2016년 3월
신 규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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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호 詩選集 [※불꽃나무 숲※]
[ 신규호의 시세계 / 해설4 ] -
신규호의 시적 근거
문덕수 시인, 예술원 회원
1
신규호 시인(1938년 서울에서 출생, 19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은 최근에『허무의 물레(한국아카이브, 2011)』라는 시집의 자서에서, 시대의 격변과 시대의 묵시적 요청에 부응한 새로운 시를 시도해야 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신규호의 생애에서 큰 혁신을 예고한 저서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연에서 자족적自足的으로 생존합니다만 인간 존재는 “세계 내 존재”로서 타자他者관계를 발견하면서 자기를 초월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존재, 즉 현존재Dasein는 (실존철학에서 인간존재를 “현존재”라고 합니다) 항상 “자기를 넘어서서 가는 존재”라고 봅니다만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시집 서문에서
신규호가 언명한 것은 “자기 초월의 한 선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직장을 정년퇴임하고(성결대학교 부총장), 좋은시공연문학회의 대표, 금요시론포럼의 학두學頭를 맡아 문단의 신풍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현재의 위상에서 “새로운 시적 실험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도 환경적 요구의 자기화自己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하루가 온전히 나의 하루가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내일의 꽃 한 송이”가 유혹하기 때문이라는 것(「내일의 꽃」)도 이러한 자기와의 자기 혁신의 일단인지도 모릅니다.
2
초월超越transoendece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어떤 단계段階의 봉오리 같은 정상의 의미가 있다면 그 최고 단계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한 시집이 신규호의『허무의 물레』가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신神이나 무無는 세계 인식의 알파요 오메가이면서 초월의 최고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의 성숙이나 사색의 정상이 여기가 아닌가도 생각되고, 따라서 인생이나 세계의 중심적 의미도 이 속에 내재하지 않는가도 생각됩니다.
〔A〕허공에 뜬 초승달을 가리켜 내가
저기 달이 떠 있네
달이 어디 있어? 친구가 묻는다
저 중천에 떠 있지 않니?
그건 없던 것인데
없다가 있으니 없는 거다
없던 것이 있으니 없는 것이요
있던 것이 없어지니 없는 것이다
친구가 말한다
-시「새털구름」에서
〔B〕맨몸으로 입 다물고
먼지 쌓인 채
빈 마음으로 헛돌고 있다
길게 뽑히던 실
끊긴 지 오래
무거운 침묵만 가득하다
-시「물레」에서
“물레”나 “달”과 같은 사물존재를 지각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러한 사물에서 세계의 최고 실재實在나 무無같은 존재의 시종始終을 발견하여 그러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평이한 이미지로 구축한 것은 경탄할 만한 일로 보입니다. 신神, 무無, 존재 등의 형이상학적 세계의 인식은 분명히 초월적 세계의 인식은 분명히 초월적 세계의 이해입니다. 형이상학이나 절대자(신)가 초월적이라고 일컫는 것은 어떤 제한制限이나 불완전을 넘은 완전이라든가 신비주의 철학이나 소극신학에서 말하는, 이해를 넘은 것, 이신론理神論에서 말하는, 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소외疏外되어 있는 것들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초월적 인식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길게 뽑히던 실/끊긴 지 오래/무거운 침묵만 가득하다”(「물레」)에서 그 침묵의 내재는 무엇일까요? 물레가 역사적 사물이건 아니건 간에, 그 “침묵”속에 내적內積된 무한의 용량은 이미 현재적 과거이므로 “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나간 어느 한 시대의 상황적, 시대적 언어는 분명히 유有의 세계였으나, 지금은 결여된 공空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에덴에서 추방된 후,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창세기4:14), 이후 여호와 신神도 무로 돌아간 존재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전무全無의 뜻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보는 연기설緣起說을 토대로 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연기緣起 pratity samutpada란 무엇일까요? 만물은 연緣에 의해 생긴다는 깨달음의 내용을 표명한 것이라고 보는 한 교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수용 여부보다 참고하라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물에는 고유의 본질本質 즉 자성自性이 없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자성無自性 즉 공空, sunya으로 본다는 이론입니다.
3
하이퍼시는 사물의 가급적 리얼한 사생寫生이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시란 관념의ㅣ 존재를 배제하고, 관념화에 앞서서 물질의 개체인 사물을 묘사하고, 한편 그 사물을 초월한 상상세계의 이미지를 그려서 역설적으로 사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시입니다. 그러므로 “역설의 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물시의 요체는 사물이란 무엇인가 하는 인식 문제부터 시작합니다.
첫째 “공간의 어디에 있는 사물을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물을 멀고 높고 안 보이는 천상이나 상상 세계의 것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장 낮고 잘 보이는 비근한 사물을 중시합니다. 처음부터 신神이나 형이상학, 도덕, 정의, 진리, 이성 등의 어렵고 관념적인 문제를 다루지 말고 비근한 사물을 다루라고 말합니다. 이 시집에서는 비근한 사물이 등장합니다. 유채꽃(사진찍기․1), 카메라(사진찍기․2), 빗방울(빗방울들의 불안), 꽃 한송이(내일의 꽃), 양(바이올린), 나무(나무와 나무 사이), 산수국(맨몸의 시), 민어(맨몸의 시), 바위(맨몸의 시), 산까치(산까치), 약수터(약수터) 등의 사물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사물들은 아주 비근한 것들이고, 결코 형이상학 세계와 관념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이러한 비근한 사물에서 진실眞實,reality을 찾아 이미지화하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하고 추상적인 진리를 논하여 논리의 미궁迷宮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물을 보고, 범속하고 평이한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신규호는 평범한 사물을 바탕으로 해서 비범非凡한 리얼리티를 제시하는 패러독스의 시인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 그의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약여躍如해 보입니다. 이 점을 좀 더 부연해서 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을 읽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나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허나, 나의 하루가 온전한 나의 하루가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냥 믿고 살아간다
내일의 꽃 한송이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시「내일의 꽃」에서
얼마나 평이한 표현입니까. 그러나 “온전한 나의 하루가/된다는 보장이 없는데/그냥 믿고 살아간다/내일의 꽃 한 송이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등은 아주 평이한 표현입니다만, 그 내용은 깊은 철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신규호의 이 시는 ‘쉽다/어렵다’의 개념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는 쉬우나 내용의 논리적 중량은 얼키고 설켜 무겁기 때문입니다. 가벼움/무거움, 일상/비일상, 논리/비논리, 긍정/부정의 변증법이 밑바닥의 논리로 깔려 있습니다.
셋째, 작자는 “그냥 믿고 살아간다”라고 하고 있는데, 무엇을 믿고 살아간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분명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믿는 존내를 신神, 무無, 성서, 교회, 직장, 친구들, 재산, 가족 등으로 열거해 보아도 작자의 믿음이 무엇인지 속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매일 오르내리는 든든한 계단, 무너지지 않는 사무실의 머리 위의 천장, 꺼져서 내려앉지 않은 길바닥 등도 그 믿음 속에 포함될 개연성도 있습니다.
그냥 믿고 살아가는 자세에서 어떤 원리나 자연에의 순명順命의 뜻을 수용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관용寬容, 낙관, 큰 도량을 시사하는 것일까요. 그는 통이 큰 사람입니다만 그렇게만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다원주의多元主義, 상대주의 등을 부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분명히 자신은 세계에서의 소외疏外나 이향異鄕의식 등도 보이고, 이것이 극단화하면 그 대상이 신이건 어느 것이든 타자他者로 바뀌기 마련이며, 그러한 개연성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타자화他者化가 아닌가 생각된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이 세계와 자기와의 삶, 즉 그 관계가 조금 어긋나 있는 그런 의식을 그는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주체인 자기를 객체화한 타자로 인식한다는 것은 확실히 불행한 일입니다. “꽃 한 송이의 유혹”으로 자기를 초월해 나가는 이 실존적 행보行步의 고통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기 초월의 몸짓은 바로 이 시인의 세계인식에 삼투되어 있습니다.
4
이제 좀 더 신규호에게 다가서기로 합니다. 신규호의 시에「나무와 나무 사이」가 있습니다.
팔을 길게 뻗어 본다
한 치의 거리를 좁힐 수 없어
손끝이 바르르 떤다
맞은편에서 뻗은
다른 손끝도
떨고 있다
- 시「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조화와 원만을 강조하고 순명을 중시하는 신규호에게도 자타간自他間에 이러한 차이差異,difference의 철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소쉬르(1857~1913)는 언어학 연구에 있어서 실체론적實体論的 방법에서 관계론적關係論的 원리로 전환시킨 언어학자입니다. 이것은 진리 탐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소쉬르는 “여러 가지 사물 사이에 사람이 세우는 관계는, 그러한 사물에 앞서서 존재하며, 그러한 사물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사물, 부여된 대상이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은 자유롭게 상이한 시점視點으로 그러한 대상을 고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규호의「나무와 나무 사이」는 바로 이러한 관계론적 전환에 대한 언급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소쉬르의 언급에서 특히 1)시점視點, 2)시점과 대상과의 사이의 거리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해서 인식하는 기본적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차이에 대하여 처음으로 철학한 사람은 독일의 라이프니츠(1646~1716)라고 합니다. “모나드”란 하나의 단위를 의미합니다만 중세의 기독교 사상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세계를 구성하고 세계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개체적인 것으로 이해한 듯합니다. 어쨌든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의미에서 모나드 자체는 불멸의 요소로 간주되었습니다. 모나드(monad, Monade)는 “우주의 거울”이라고 말한 그 밑바닥에는 개체들의 차이에 의한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차이의 수만큼의 세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만, “차이”는 차이의 수만큼의 가능한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이란 다른 사람과의 경계 지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손끝이 바르르 떠는 경련은 경계 인식의 신체적 동작이며, 다른 사물과의 차이를 인식했다는 그 신호입니다. 사물과의 차이 인식은 모든 존재의 차이, 즉 그 개별성의 바닥을 이루는 근거가 됩니다. 이러한 차이의 철학은 인간, 종교의 영역으로 확산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타자 운운”하는 것도 차이의 인식에 근거한 지각입니다.
신규호가 사물 사이의 차이를 인식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전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사물의 차이뿐만 아니라 개체(個体,individual)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확립하는 과정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내려가서 분할할 수 없는 개체의 인식(개체와 그 속성의 인식까지 포함해서)은 사물시나 하이퍼시의 근원이 되는 사물 인식의 스타트 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물 개체의 인식은 다른 사물과의 관계 인식입니다. “손끝이 바르르 떨고 있다”는 대목이 사물 인식의 어떤 동작인가를 생각한다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1596~1650)는 사물의 특징을 연장(延長,extension)이라고 말하고, 존 로크(1632~1704)는 고성(固性,solidity)라고 말했습니다만, 연장의 끝이 다른 사물의 연장의 끝에 닿을 때 비로소 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만약에 다른 사물의 경계가 아니라면 그것은 허공虛空이거나 허적虛寂일 것입니다. “허공”이나 “허적”도 관점에 따라 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규호도 “한 그루 나무는/한 그루 나무의 허공을/벗어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자주 논의하기보다 이 시인의 시적 성과를 비교 분석해보는 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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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호의 작품「산과 물」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입니다.
산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면서 물이 아니지요
내가 말하다
-시「산과 물」에서
이 대목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한 어떤 고승의 말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실은 부정이 아니라, 그 고승이 말을 할 때 “산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면서 물이 아니다”라는 생각(깨달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스님이 선승禪僧이었다면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시의 “아니요”(“아니다”라는 형용사의 활용형)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대목을 연상하게 됩니다. 색(色, 산스크리트의repa)은 인식의 대상인 물질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색이란 그 물질적 존재의 색色이나 형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색이란 그 물질적 존재의 색色이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소나무, 진달래, 장미 등 모든 사물의 색은 다 공空이라는 것입니다. 신규호가 사물의 이런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산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요”라는 말에는 산의 물질적 존재임을 긍정하면서 그 사물의 참된 존재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니, 이 말 속에는 긍정, 부정의 어법이 다 포함한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구꽃이나 장미의 발아發芽에서 낙하까지의 과정을 보면 고정된 형태라고는 없고 항상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소나무라고 하고, 장미라고 합니다. 즉 그 속성(屬性, property)은 변화하지만 그 속성을 떠받치고 있는 기체(基体,substance)는 동일성同一性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소나무나 장미를 그 변화 이전이나 이후에도 한 가지로 말합니다. 그런데 속성과 기체를 나누어서 보기보다는 속성의 변화를 그 사물전체의 변화라고 간주하고, 그 존재 자체 변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연기설緣起說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이 점에 대한 연기설의 이론은 미흡합니다).
“색즉시공”의 공空을 수냐sunya라고 하고, 공성空性이라고도 말합니다.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으로 변화한다고 보는 것은 바로 연기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대성한 사람이 나가르쥬나(Ngrjuna 150~250)라는 사람입니다. ‘공’은 무엇이 결여되어 있음, 즉 용기의 속이 텅 비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빌 공空자와 뜻이 잘 맞습니다. 여기서 더 극단화하여 용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공空으로까지 주장하는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소멸한 우주 전체의 공허한 공간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을 “일리야”(ilya)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일리야”는 무無도 존재도 아니며 존재도 무도 아닌 어떤 사태事態라고 말합니다. 비인칭의 공허한 말도 같은 것, 침묵의 중얼거림 간은 것, “아무 것도 없는, 그러나 뭣인지 모를 존재의 힘의 어떤 장場처럼 있다”고 말합니다. 대상과 동의어로 할 수 없는 존재-밀도, 낌새, 장場이라고도 말합니다. 얼핏 보기에 존재의 무한정권 안의 사물(존재a)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이 분명하나 그러한 그 표면적 인상과는 다릅니다. “일리야”는 공허한 환경의 기점에서 나온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리야”가 존재한다면, “공허空虛”라는 기이한 이 잔존환경殘存環境은 사후에도 있을 것이므로 이를 피할 수 없는 불멸성不滅性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죽음도 삶도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일리야를 존재存在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이러한 일리야 존재론을 분단생사론(分段生死論: 삶과 죽음을 직선적 현상으로 보고 직선상의 한 시점과 종점 사이에 삶이 있고, 그 삶이 끝나는 종점도 그 직선상의 지점이라 보는 것이 분단생사론입니다)의 또 다른 변형으로 생각됩니다. 공空에는 1) 여러 가지 존재나 부정이 있고, 2) 부정의 결과로서 자기 초월에 의한 소생蘇生이라는 동시성의 양면도 있습니다.
“메멘트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항상 상기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쿠아시 울티마”(quasi ultima)라는 유사한 말도 있습니다. 최후의 날, 즉 죽음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0)라는 말씀이 있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한 10:17~18)”라는 말씀도 있고, 보들레르(1821~1867)의 시집『악의 꽃』에는「바닥이 없다」라는 시가 있는데, 모든 존재의 밑인 근거가 없음(모든 존재의 근거가 없음, 즉 무근거無根據의 무無를 말한다, 무근거를 “Abgrund"라고 말한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삶이란 날마다 죽어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고 미생未生한 사람에게도 죽음은 없습니다. 존재와 비재非在는 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시「산과 물」의 진의가 아닐까요?(20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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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신규호 시인(1938년 서울에서 출생, 19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은 최근에『허무의 물레(한국아카이브, 2011)』라는 시집의 자서에서, 시대의 격변과 시대의 묵시적 요청에 부응한 새로운 시를 시도해야 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신규호의 생애에서 큰 혁신을 예고한 저서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연에서 자족적自足的으로 생존합니다만 인간 존재는 “세계 내 존재”로서 타자他者관계를 발견하면서 자기를 초월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존재, 즉 현존재Dasein는 (실존철학에서 인간존재를 “현존재”라고 합니다) 항상 “자기를 넘어서서 가는 존재”라고 봅니다만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시집 서문에서 신규호가 언명한 것은 “자기 초월의 한 선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직장을 정년퇴임하고(성결대학교 부총장), 좋은시공연문학회의 대표, 금요시론포럼의 학두學頭를 맡아 문단의 신풍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현재의 위상에서 “새로운 시적 실험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도 환경적 요구의 자기화自己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하루가 온전히 나의 하루가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내일의 꽃 한 송이”가 유혹하기 때문이라는 것(「내일의 꽃」)도 이러한 자기와의 자기 혁신의 일단인지도 모릅니다.
― 문덕수 시인.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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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호 시인∥
∙ 1938년 서울 출생
∙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 공군학사장교(중위)로 만기 제대
∙ 유한 공고, 우신고교 국어교사
∙ 한양대, 인천대, 동국대 예술대학원 강사, 성결대학교 국문학과교수, 동교 부총장(현 명예교수)
∙『현대문학』지로 등단(1966~)
∙ 한국시인협회 심의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역임, 동 협회고문(현)
∙ 한국시문학아카데미 학장 역임(2009~2014)
∙ 한국좋은시공연문학회 창립(2000.1~) 회장(현)
∙ 시집 :『입추이후』『사람아 사람아 슬픈 사람아』『어둠의 눈』『맨발의 사람』『누워서 가는 시계』『보라빛 마음』『길 위에서(영역시선집)』『거대한 우울』『허무의 굴레』외
∙ 저서 :『이상문학연구』『한국현대시연구』『한국기독교시가연구』『한국현대시와 종교』외
∙ 편저 :『한국인의 성시』『샤론의 들꽃』외
∙ 수상 : 문덕수 문학상, 펜문학상, 창조문예상, 동국문학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문학상, 기독교문학상, 후광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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