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몇 시간 째 계속 책상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나리가 2교시
수업이 끝나자 터벅터벅 비어있는 내 앞에 있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어제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느라 내 전화도 끊어버린 주제에 오늘은
또 나에게 무슨 상의를 하러 저런 고민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화를 내려는 입을 꾹 다물고선 그녀를 쳐다보았다.
과연 이번 그녀의 남자친구는 무엇이 그녀에게 부족한 것일까.
바로 전 남자친구는 얼굴이 못 생겨서 그녀가 차 버렸는데.
그리고 나리는 몇 분 동안 척을 괴고 고민을 하는 가 싶더니 조그만 입술
사이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다희야."
"왜? 무슨 고민 있니?"
"있잖아. 얼굴 못 생긴 건 참겠는데..이건 정말 못 참겠어."
과연 그녀가 외모보다 더 못 참겠다고 한 건 무엇일까.
"왜 뭔데? 돈이 없대? 아님 얼굴 성형수술 했대?"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이름이.."
그리곤 그녀는 더 이상 떠올리기 싫다는 듯 고개를 좌 우로 저었다.
"이름이 왜? 뭔데?"
나리는 긴 한숨을 내 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왕경태."
나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난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한 가지 잊고 있는 듯 하다.
"왕경태" 라는 이름도 흔하지 않으며 결코 평범치 않은 이름이지만
그녀의 이름도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의 이름 못지 않게 충분히 웃음이 나오는
이름이라는 걸 말이다.
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의 말을 해 주기 시작했다.
"나리야,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부모님이 애써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이잖니.
그런 걸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난 정말 너에게 실망 할 지도 몰라."
내 위로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녀의 얼굴엔 환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치? 그런데 왜 놀리고 난리들이야. 흥!"
내가 분명히 장담하건데 왕경태라는 놈 분명히 일주일 안으로 그녀의
다음 희생자가 될 듯 싶다.
그녀는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해준 것이 꽤 고마웠던지 내 손목을 잡고서
싫다는데도 궂이 매점에 가서 빵을 사준다며 끌고갔다.
"다희야,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인 가봐! 맛있겠다! 난 이거 먹어야지."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매점 안을 잘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덥썩 집어드는 나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곧이어 그녀가 사준다는 보름달 빵 하나를 들고
그녀와 같이 매점을 나오는데 어디선가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
"어. 싫다, 싫어. 꿈에 나올까 무섭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서 180센치 키 큰 남자를 올려다보며 소리를 지르는
노란 머리 여자아이.
그리고 바로 앞에서 띠꺼운 표정으로 노란 머리 여자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은..남자아이는 임우빈.
어제부터 오늘아침까지의 악몽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희야, 뭐해?"
"아, 아니야.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말야. 빨리 가자."
나리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막 매점을 빠져 나오려고 할 때
노란 머리 여자아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또 다시 내 발목을 잡아 버렸다.
"누군데? 또 유다연인가 그 계집애라면서 말 같지 않은 말을 집어치워.
그 계집애 너 친구라는 거 알만한 애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다연이의 이름이 노란 머리의 입에서 튀어나옴과 동시에 저절로 내 시선은
그 둘에게로 향해버렸다.
그리고 노란 머리의 말을 귀찮다는 듯 쳐다보던 임우빈은 고개를 시선을
다른데 두며 고개를 돌렸고, 하필이면 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리곤 그 놈의 사악한 미소와 함께 튀어나온 말은 저 놈과 내가 악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쟤야. 쟤. 문 앞에 서 있는 애. 그러니까 이젠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마."
"거짓말! 저런 애가 너 여자친구라고?! 하! 정말 웃겨서 말이 안 나온다!"
"믿던 말던 네 마음대로 해. 난 이만 여자친구 님에게 가 봐야 할 거 같으니까."
뜯어서 한 입도 먹지 못한 아까운 보름달 빵을 마지막 임우빈의
말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놀란 눈이 되어 할 말을 잃은 내 앞으로 정확히
바닥으로 떨어진 보름달 빵을 지그시 밟고서 내 손목을 거칠게 잡는 임우빈의
손에 의해 도망치듯 매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매점을 나오기 전..진서와 라면을 먹다 굳어버린 해서의 표정을 난 보았다.
학교 건물 구석진 곳으로 끌려가서야 내 손목에 잡힌 임우빈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 빨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감싸쥐며 그에게 다그치듯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야!"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을게. 너한테 피해 가는 거 없으니까."
어제처럼 공으로 얼굴을 맞추고서 나에게 괜찮냐 물어오는 그 뻔뻔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내게 차가운 음성으로 날 쏘아보며 말하는 임우빈.
정말 임우빈은 미안한 마음을 느낄 줄 모르는 놈이다.
"뭐? 피해 가는 거 없어? 그 여자애 눈 보니까 독기가 잔뜩 들어 있던데?
보아하니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골빈 여자아이 같은데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네가 알아서 이 선에서 끊어버려라."
두 눈에 힘을 팍팍 주며 임우빈에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놈의 말에 대꾸해 주었다.
임우빈은 잠자코 내 말을 듣더니 가소롭다는 듯 픽 웃어버린다.
"코미디가 따로 없네. 나 참 말 같지도 않아서.."
내 말 따윈 놈에겐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 했는지 어이없다는 듯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비웃는 임우빈에게 인상을 찡그리며 한 걸음
다가가 또 다시 목소리를 놉혔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니? 웃겨? 아,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너 나보다 한 살이나 어리잖아! 말 짧게 자르지마."
"한살이나 많은 선배님 대접받고 싶다?! 그런 명령은 나한테 안 통해."
지금에서야 임우빈의 짧은 말꼬리가 신경에 거슬렸고 난 그에게 짧게
말을 자르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오늘 아침까지 놈을 본 나로선 그가
내 요구대로 해 주지 않을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난 단호하게 내 말문을 막아버린 임우빈을 있는 힘껏 노려보지만 그는
그 후론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후 임우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표정으로 잔뜩 인상을 쓰며 그의 입이 열렸다.
"한 달 만이다. 딱 한달."
"뭐가?"
"한 달만 저 계집애 입 좀 다물게..씨발."
무언가 말하기 고통스러워하는 임우빈의 표정이 날 답답하게 만들었다.
"..사귀는 척 좀 해줘."
곧이어 그의 입에서 작게 새어 나온 말이 날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놈이 내 동생 친구라는 것 마저 기분이 더러운데 날 더러 사귀는 척을 해달라
말하는 놈을 일분동안 쳐다보았다.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없다.
당연히 난 그의 요구에 "NO"라고 거절할 셈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쫒아 다니는 여자를 왜 내가 나서서 막아 줘야 되는건데?
난 그런 귀찮은 일 무지무지 싫어하거든?!"
게다가 그런 게 아니라도 매점에서 날 바라보던 해서를 잊을 수 가 없었다.
나와 임우빈은 "사귀는 척"이지만 보는 사람들은 "사귀는 사이"로 착각할 테니까.
난 그와 관련된 어떠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너가 내 여자친구라고 다 말 해 버렸잖아. 소문은 금방 돌 거라고."
"아니라고 말하면 돼."
"과연 그게 될까? 네가 하는 말은 뻥으로 들릴 걸. 정말 머리하나 드럽게 나쁘네."
"뭐? 머리가 나쁘다고? 야!"
머리가 나쁘단 말에 손가락을 들곤 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욕을 한바가지 붓기도 전에 놈은 자기 얼굴 앞에 들이댄
내 손가락을 치우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순순히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 그 계집애한테 맞는다?
현명한 판단하길 바래."
임우빈은 자기 말만 내 뱉곤 멍한 날 내버려두곤 등을 돌려 저만치 걸어간다.
그러다 다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반쯤 비틀어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
손가락을 놉히 치켜드는데.
"한가지 더, 그 계집애 집안이 조폭이거든? 밤길 조심해라."
"야, 야! 임우빈! 너 거기 안 서?!"
짧은 다리로 놈을 쫒아가기 위해 뛰다 돌부리에 걸려 바닥으로
착지한 내 몸뚱이.
정말 싫다! 네 놈이 난 정말 싫어!
어제는 공으로 얼굴을 맞히더니, 아침엔 네 놈 때문에 삼십분 동안 무릎꿇고 있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내 목숨을 빼앗을 참이냐!
이 놈과 악연은 악연인가 보다. 이렇게 꼬이고 꼬이는 걸 보면.
까진 무릎을 감싸쥐고 난 멀어져 보이지 않는 놈의 잘난 뒷통수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난 죽어도 안 해! 아니 못해!"
조폭이랬다. 조폭.
검은 양복을 입고 단란주점 뒤에서 자금을 조종하며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 조폭.
티비에 나오는 조폭들은 모두들 그렇게 보였고, 내 머릿속에도
조폭은 그렇게 연상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계집애 생긴 것도 험악하게 생긴 것이
사람 두 세 명은 아무렇지 않게 때려죽일 것처럼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임우빈 그 못된 놈 때문에 언제 내 목이 두 도각이 날지 몰라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날 내려다보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들자 나리의 호기심
가득한 반짝이는 두 눈이 보인다.
"정말이야? 정말 네가 아까 남자애랑 사겨? 게 혹시 너가 복수하겠다고 한 애 맞지?
벌써 그런 사이까지 된 거야? 부럽다."
그리고 쏟아지는 나리의 질문들에 난 더욱 인상을 쓰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나한테 비밀이야?"
"아니라고! 미나리! 너 그렇게 할 일 없어? 할 일 없으면 왕경탠가 안경탠가
그 이상한 이름 뭘로 바꿀 건 지 생각이나 해!"
죄 없는 나리에게 지금 그녀의 최대 고민인 왕경태의 이름을 들먹이며
화풀이를 하자 그녀의 반짝이던 두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이 되었다.
그리곤 내게 등을 돌려 가는 그녀의 중얼거리는 작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깐 이름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라면서.."
그렇게 화가 난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 먼저 슝 하고 교실을 나가버리고
교실 주번인 난 먼저 도망친 주번 때문에 혼자 청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마포로 바닥을 닦아 준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방을 메고 있는 채로 바닥을 닦고 있는 해서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해서야.."
"왜?"
해서는 책상 사이사이를 닦으며 대답을 한다.
"왜 바닥을 닦고 있어? 내가 할게."
"나도 주번인걸."
해서의 마포를 빼앗으며 말하자 해서는 싱긋 웃으며 주번이라고 답해준다.
주번은 내 앞에 앉아 있는 삐쭉머리 남자앤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해서를 바라보자 해서는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친절하게 다시 말해준다.
"바꿔 달래서 바꿔줬어."
"아. 그럼 해서 너랑 내가 같이 주번이네."
"그러니까 빨리 청소하고 집에 가자!"
해서는 교실 안을 뛰어 다니며 바닥을 문지르고 바닥을 다 쓸고 책상
줄을 맞추었다.
아깐 혼자 도망쳤다고 속으로 욕했는데 알고 보니 삐쭉머리 남자애는
좋은 아이었나보다.
혼자 들떠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해서가 내 가방을
들고 내 눈앞에 가져다 준다.
"이제 다 했으니까 가자."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건네 받았다.
해서는 먼저 교실을 나가서 나도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교문을 나오자 해서는 어제처럼 가방 끈을 잡아당기며 쫄랑쫄랑 걷는다.
그리곤 하늘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날 한번 쳐다보곤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다희, 나한테 거짓말했다."
"거짓말..?"
"남자친구 없댔잖아. 근데 알고 보니 아니었잖아."
난 또다시 매점에서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던 해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라고 말하려던 매 목소리는 그저 입안에서 맴 돌 뿐.
밖으로 내 뱉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아니라고 말한다면 난 두 번이나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니까..
난 끝내 그러지 못했다.
"다희 남자친구 유명한 애잖아. 올 해 일 학년 농구스타. 그치?"
해서의 입에서 나온 "다희 남자친구"란 말이 언젠간 해서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하겠다 다짐했던 내 결심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해서의 비꼬는 말투가 내 가슴을 너무나 욱신거리게 만들고 난 두 주먹을
쥔 채 해서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고개만 숙였다.
그런데 나와 걸음을 맞추며 걷고 있던 해서의 발걸음 소리가 멈춰지고
자연적으로 내 시선은 뒤에 우뚝 멈춰버린 해서에게로 향했다.
"다희야 하늘은 보라고 있는 거야.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하늘 못 보잖아.
그럼 하늘이 슬퍼 한 단 말야."
"..응?"
"그러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주라."
내 앞으로 걸어와 어깨를 잡으며 지금까지 봐왔던 얼굴 중에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해서.
하늘이 슬퍼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 해서가 하늘을
보기 원한다면 그래 야지.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곤 씨익 하얀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해서에게 거짓말을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엔 꼭 해서한테
내 맘을 말 해 줘야지. 그래 야지. 그럼 해서도 날 이해해 줄 거야.
지금 내 앞에 있는 해서가 웃고 있으니 방금 전 까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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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연상 연하 연애법※05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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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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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정말,,잼따,,원츄원츄,,,강츄강츄,,,,,또또 담편,,언제 나와요,,빨리요,,빨리요,,,,
ㅜ_ㅜ찬양바라기님 리플 감사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