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름부음
기름부음은 구약적 표현입니다.
신약에서는 성령의 인치심, 성령의 내주하심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성령님이 제한적으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위하여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기름부음, 즉 성령이 임했지요.
구약에서 기름부음의 특별한 예는
이사야에 나옵니다.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자가 그분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 11:1-2)
신약에서는 메시야를 그리스도라고 하지요.
메시야는 히브리어, 그리스도는 그리스어 입니다.
구약에서는 특별한 사람에게 예외적으로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합니다.
구약 요엘서는 신약사건을 미리 예언하였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그리고
오순절날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행:1-4)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벧전 2:9)
예수그리스도, 메시야를 믿는 자는 모두
성령을 받고 기름부음 받은자 입니다.
2. 평신도
그러면 목사를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은 맞나요?
구약적 개념을 신약시대에 억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X 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차별이 없습니다.
자녀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목사가 다른 점은 성경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문으로 보는 지식을
신학교에서 배운다는 점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성경지식을 독점하고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로마문자로 쓰인 성경을 사용하고
일반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이후 성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이제는 모두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성경은 번역본입니다.
성경 원문은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성경의 뜻을 알려면
약간의 원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목사님들은 신학교에서 원어성경을 배웁니다.
일반 평신도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정도 입니다.
언어적 지식의 차이 정도입니다.
성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성경원문을 읽을 수 있느냐 여부를 가지고
성령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원문지식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기름부음의 조건도 아닙니다.
단지 성경을 가르치는데 유용한 도구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교회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섬기기 위한 은사의 하나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은사중의 하나로서 말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믿음을 … 병 고치는 은사를 … 능력 행함을 … 예언함을 …
영들 분별함을 … 각종 방언 말함을 …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리라"
(고전 12:4-11)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 부분이라 …
사도요 … 선지자요 … 교사요 … 능력이요 …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 12:27-28)
3. 제자훈련
그러면 오늘날 목사의 우월적 지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카톨릭의 잘못된 전통이
종교개혁 이후에도 교회내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평신도들의 성경접근이 제한되면서
성경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성경해석의 권위를 가지고
그 권력을 독점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성경이 보급되었지만
평신도의 성경지식은 오늘날까지도 상대적 열세에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평신도에게 성경을 되돌려주는 작업입니다.
성경교사는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이 직접 개인교사가 되어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평신도 분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큐티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죠.
진정한 종교개혁은
평신도가 성경지식에 있어서
목사와 버금가는 수준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교회내 성도 모두가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이 향상되면
목사는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개혁은 평신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평신도가 깨어나는데 달려 있습니다.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크게 정리가 됐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훈련과 다르게 교역자기도를 인도할 때, 그리고 주일 예배시 장로가 대표 기도할 때 은근히 담임목사를 구약의 선지자처럼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날샘을 보면 오정현목사를 다윗처럼 만드는 유도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루터와 칼빈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성경책은 주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넷이 오늘날 루터와 칼빈입니다!
우리 모두 주의 종입니다.. 주권이 오직 하나님,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이 세상의 거류민이요 나그네입니다. 성도를 가르치며 본을 보여야 할 선생인 목사가 거짓말을 계속하고 말씀을 왜곡해서 되겠습니까? 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성도의 잘못을 깨우쳐 주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조장하면 안되지요.
전 서초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할 때 정말 그 말을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분들에게 성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엔 없어지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내 자신이 교회요 성전이라고 했었지요. 건물의 의미로서 교회라면 모를까 마치 그 건물이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만 있는 듯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단지 건물일 뿐인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째서 그렇게 우매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요즘에도 간혹 부목사님들이 그런 표현할 때마다 이분들이 개념없게 그 표현을 쓰는 것인지 일부러 성도들의 눈을 가리려고 하시는 것인지
그렇습니다. 성전은 주께서 우리를 칭하시면서 모든 하나님을 아는 인류가 참여하는 것이 권리이고 축복된 자리임을 알아야됩니다. 건축은 예배당일 뿐이지요.
성전이라고 얘기해야 돈이 잘 걷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성전이라 부름은 그나마 훌륭하지요
sgmc라는데 기함 할 일이니까요
거긴 church 가 아닌 center가 정식명칭입니다
그래서 오목사 이후 제자훈련을 통해 성경적 깊은 지식 대신 구약적 맹신을 강조해 온거겠죠,
옥 목사님 소천 이후에 설교는 구약에 치우쳐 오 목사 스스로 제사장 .선지자.왕 이되었습니다
그것도 본인의 지식도 아닌걸로요
오정현목사는 자신을 기름부은자로 착각하며, 평신도를 자신을 섬기는 자로 이용하고, 제자훈련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며 지난 10년간 사랑의교회를 변질시켰습니다.
오목사는 사임해야합니다.
저는 식용유도 부어준적 없습니다 ㅠㅜ
오정현 목사이하 몇몇 부교역자들과 몇몇장로들은 이번기회에 진정한회개와 자복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때입니다. 오목사는 탤런트로 나가면 딱 맞습니다. 그 연기력을 보니 참 가관입니다.
얼굴이 커서 화면에는 맞지않고, 연극 무대나 마당극 같은데 어울릴 것 같읍니다.
집사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는 섬기는 사랍입니다. 섬기는 일을 엉터리로 하다 보니 양들이 목자를 이끌게 된 형국...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