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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이야기
영혼을 실어 나르는 태양새, 까마귀
울산 태화강변 생태공원 건너편의 삼호대숲과 그 뒤쪽 산야 일대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만, 수십만 마리의 떼까마귀 보금자리로 변신한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이 대숲은 겨울철새인 떼까마귀와 백로의 전국 최대 서식처다. 까마귀들은 이곳에서 잠을 자기 전에 서녘하늘의 붉은 노을이 다 사라질 때까지 한두 시간 동안 군무(群舞)를 추며 노는데, 이때면 울산 태화강변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 떼까마귀들은 KBS 『환경스페셜』에 소개된 바도 있지만 까마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하다. 게다가 최근 울산시의 고가도로 건설계획까지 나와 떼까마귀 서식처마저 훼손될 지경이어서 한반도의 떼까마귀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떼까마귀는 울산을 상징하는 태화강의 생태지표종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 역사문화적 가치에 있어서도 재고가 필요한 조류다.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가 서정록 선생에게 울산 떼까마귀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 편집자
흉조로 알려진 까마귀가 밤마다 태화강변을 뒤덮는 것은 불길한 징조 아닌가?
까마귀들이 태화강변을 뒤덮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보는 것은 까마귀가 흉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서해안의 천수만이나 순천만에 출몰하는 수많은 철새떼에 대해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지는 않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몰려가지 않는가. 그러나 까마귀가 흉조라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까마귀는 국조(國鳥), 즉 나라새였다. 고구려벽화를 보라.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왕실은 물론, 백제와 고대일본 왕실의 상징이었다. 삼족오뿐만 아니다. 흥미롭게도 고구려벽화 씨름총에는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곰과 호랑이가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신단수에 까마귀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신단수가 단군신화에 나오는 그 신단수임을 생각한다면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까마귀를 얼마나 신성시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신라 역시 까마귀를 숭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관직에 큰까마귀(大烏), 작은까마귀(小烏)의 벼슬이 있었는가 하면, 포항 일대에서 전해지는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전설에서도 까마귀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또 신라시대의 『균여전』에 의하면, 균여대사는 아기 때 버려졌는데 까마귀가 보호하므로 다시 주워다 길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까마귀가 흉조라는 관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까마귀를 흉조라 여기는 민족은 중국 밖에 없다. 거의 모든 민족이 까마귀를 신성한 새로 여기고 숭상한다. 그에 반해 까치를 신성한 새로 여기는 민족은 거의 없다. 중국과 일부 북미원주민 부족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중국이 그처럼 까마귀를 흉조라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늘 북방 초원의 유목민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쳐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북방 초원의 유목민들은 하나같이 까마귀를 신성시했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까마귀 하면 북방의 초원민족들을 떠올렸고, 그래서 까마귀하면 재앙을 몰고오는 흉조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까치를 ‘희작(喜鵲)’이라 하여 기쁨을 전하는 새로 여겼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다. 조선에서는 유교를 국교로 하면서 명나라를 사대했다. 자연히 명나라를 따라 조선의 선비들은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하여 멸시했으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관념을 따라 차츰 까마귀는 흉조, 까치는 길조라 여기게 됐다. 우리는 까마귀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기도 하다.
북방 유목민족들이 까마귀를 숭상한 이유는?
유라시아 초원의 동쪽 끝(만주평원)에서부터 몽골, 카자흐스탄, 헝가리 평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초원지대에는 까마귀들이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살고 있다. 초원에서는 늘 사냥이 이루어진다. 인간에 의한 것이든, 맹수들에 의한 것이든. 그래서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삶과 죽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등등.
늘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초원의 사체를 해결하는 까마귀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왜냐하면 죽은 동물들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데려가 줌으로써 그 동물의 영혼이 다시 이 세상에 올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동물을 사냥하는 만큼 계속해서 새로운 동물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까마귀들이 죽은 동물들의 영혼을 하늘나라에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동물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는가.
물론 독수리들도 초원의 사체를 해결한다. 그러나 까마귀의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그 역할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생태적으로도 초원의 청소부 노릇을 하는 것이 까마귀다.
까마귀를 태양새라고 하는 이유는?
까마귀를 태양새로 여기는 것은 북방민족들에게 두루 공통된 것이다. 고구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잠시 삼족오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왜 하필 ‘세 발 달린’ 까마귀일까? 현실에서 그런 새는 없다. 그러므로 삼족오의 신화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방민족들은 이 우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계와 신들이 사는 천상계, 죽은 조상들이 돌아가는 지하계(또는 수중계)의 삼계(三界)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태양은 아침에 떠서 이 세상을 비추고, 낮에 천공으로 올라가 천상을 여행하며 이 지상을 비추며, 저녁에는 서쪽으로 지며 지하계를 비춘다. 이렇게 태양은 우리가 사는 현실계와 천상계, 그리고 지하계를 순환하며 모두 비춘다. 그래서 태양의 정(精)인 까마귀는 ‘삼계를 두루 관장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그려지게 된 것이다.
또 까마귀들의 습성을 살펴보면 왜 까마귀를 태양새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침이면 해가 잘 비치는 골짜기나 들판, 또는 전깃줄 같은 데 모여 햇볕을 쬐며 서로 까불고 지치며 논다. 마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 듯이. 그런가 하면 저녁에는 다시 높은 산정이나 언덕 주변에 모인다. 울산 태화강변의 대숲에 몰려드는 떼까마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새도 일몰 때 석양을 배경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군무를 추며 하늘을 나는 새는 없다. 이렇게 까마귀는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까마귀는 까치와 나는 모습이 다른 것 같다. 매나 독수리처럼 나는데 왜 그런가?
까마귀는 잡식성이어서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와는 구별된다. 부리도 매나 독수리처럼 날카롭지 않다. 하지만 매나 독수리와 같은 날개를 갖고 있어서 바람을 타고 활공하며 수직낙하도 가능하다. 종종 까마귀가 하늘 높이서 날개를 편 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견주면 까치는 날개가 작다. 활공이 불가능하고 겨우 날개짓하는 만큼만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행능력에 있어서 까치는 비교가 안 된다.
까마귀는 영리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까마귀는 새들 중에서 가장 진화한 새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새 중에서 가장 영리한 새기도 하다. 실제로 의사소통의 언어가 다양하며 확인된 까마귀 울음소리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솝이야기에는 목마른 까마귀가 주전자의 물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이 가득 든 주전자를 발견했지만 넘어뜨리기에는 주전자가 너무 무겁다는 것을 깨닫자 까마귀는 주전자 주둥이에 조약돌을 물어다 넣어 물이 주둥이에 차오르게 한 다음 그 물을 마셨다고 한다. 까마귀가 얼마나 영특한지 알려주는 좋은 일화다.
한편 일본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까마귀들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청소당국이 쓰레기봉투의 색깔을 바꾸어 까마귀를 속이려 해도 며칠만 지나면 까마귀들이 모두 다 알아버리기 때문에 번번이 헛수고로 끝난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까마귀가 도로 위에서 껍질이 단단한 호두를 까먹는 모습을 보고 그 영특함에 놀란 적이 있다. 까마귀가 호두를 입에 물고 횡단보도 앞 신호등 위에 올라가 파란 신호등이 붉은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신호등이 바뀌어 차들이 멈춰서면 호두를 도로 위에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신호가 바뀌어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나면 재빨리 도로에 내려와 자동차 바퀴에 으깨진 호두의 속을 꺼내먹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까마귀는 호기심이 많다. 사람들이 버리는 병뚜껑이나 유리조각 등을 모으는 까마귀들도 있으며, 무엇이든 처음 보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병적인 탐구를 한다. 원숭이나 침팬지보다 머리가 뛰어나다는 보고들도 있다.
까마귀는 사람을 피하는 것 같다. 사람을 무서워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으면 사람들 곁에 가까이 와서 산다. 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사람들이 까마귀를 미워하여 내쫓기 전까지 마을의 당산나무에는 으레 까마귀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낳으며 살았다. 까마귀는 병이 들거나 올빼미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면 60년까지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들 중에서 장수하는 새들이 주로 독수리, 매와 같은 맹금류인데, 이런 새들의 수명이 20년에서 40년인 점에 비하면 까마귀의 수명은 대단히 긴 것이다. 대체로 40년에서 60년인 까마귀의 수명은 옛날 사람들의 수명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마을의 당산나무에 사는 까마귀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알았다고 한다. 한평생을 같은 공간에 사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 누군가 들판에 나갔다 뱀에 물리거나 다치거나 하면 하늘을 날던 까마귀가 그 사람의 집 근처에 와서 ‘깍-깍-깍-’ 울어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까마귀가 신성시되었을 건 말할 것도 없다.
까마귀는 본래 무리지어 사나?
그렇다. 까마귀는 철새인 떼까마귀건, 텃새인 큰까마귀건 모두 무리지어 산다. 작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수천 마리에 이른다. 철새 떼까마귀의 경우는 수백, 수천 마리의 무리가 기본으로 초원에서 살며 철따라 이동할 때는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움직인다. 겨울철에 울산에 모이는 떼까마귀는 철새로 여름철에는 몽골,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 지내고 10월 경 남하해서 울산 주변과 일본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텃새의 경우에는 철새처럼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 산다. 우리나라의 거제도, 제주도 한라산, 남해 금산 보리암 주변, 태백산 등지에서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산다. 몽골이나 만주, 시베리아에도 텃새 큰까마귀들이 많이 있다. 까마귀는 조직사회다. 뛰어난 대장까마귀가 나타나면 인근의 까마귀들이 모두 그의 휘하로 모여들어 수천의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까마귀는 조직의 이로움을 잘 아는 새다. 그래서 매나 독수리도 까마귀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까마귀를 잘못 사냥했다가는 까마귀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매나 독수리를 혼쭐내기 때문이다. 또 먹이를 발견하면 반드시 먼저 동료들을 부른 다음 같이 먹는다. 이런 것 역시 까마귀가 대단히 조직적이고 협동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 속의 까마귀는 어떻게 나타나나?
날개뿐 아니라 온몸이, 심지어 눈동자까지 검어 까마귀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여러 신화에는 본래 ‘흰새’였다고 전한다. 그런가 하면 까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는 깃털이 ‘오색찬란한 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먹을 게 없어 썩은 고기만 먹으면서 깃털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까마귀 깃털을 보면 검다기보다는 흑청색에 가까우며 겉에 무지개빛이 흐르는 것이 아주 특별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까마귀가 본래 흰새, 또는 오색찬란한 깃털의 새였다는 것은 이러한 무지개빛의 여운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까마귀는 예언의 신인 아폴로와 아테나의 신성한 새로 알려져 있다. 또 페르시아의 미트라 신화에 의하면 까마귀는 ‘태양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시베리아 동부지역에 사는 코리악족, 축치족, 그리고 알래스카에 사는 에스키모나 알콘킨계 부족들 사이에서는 큰까마귀를 가리켜 데미우르고스, 즉 ‘창조자’라 부른다. 태초에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큰까마귀를 시켜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큰까마귀를 대단히 신성시한다. 그렇지만 큰까마귀는 동시에 트릭스터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어둠 속에서 빛이 없어 고생하는 인류를 위해 큰까마귀가 신의 집에 숨어들어가 태양을 훔쳐왔다는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한 역할을 큰까마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베리아의 고아시아족들 사이에서는 까마귀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조상들에게 데려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축치족 등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들판에 시신을 갖다 놓고 배를 가른 다음 그 주위에 모여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까마귀춤을 춘다. 그러면 까마귀들이 피 냄새를 맡고 날아와 시신을 쪼아 먹는다. 이는 티벳이나 이란지방에서 행해지는 ‘조장(鳥葬)’과 유사한 풍습이다. 만주족의 경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면 반드시 나무기둥 위의 제단에 고기를 올려놓는다. 이 고기를 까마귀가 와 먹고 가면 조상들이 다녀갔다고 여긴다. 만일 고기를 까마귀들이 와서 물고 가지 않으면 조상님들이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주민들은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젯상을 차리고 조상을 모신다.
까마귀는 말도 한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큰까마귀는 말을 가르치면 말도 할 줄 안다. 그래서 큰까마귀는 일명 ‘말하는 새’로 불리기도 한다. 흔히 말을 할 줄 아는 새라면 앵무새나 구관조를 꼽지만 큰까마귀는 앵무새나 구관조보다 훨씬 더 말을 잘 배운다. 단순히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말을 할 줄 안다.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면 부모를 먹인다는 ‘반포지교(反哺之敎)’라는 말은 사실인가?
그렇다. 러시아 출신의 동물생태학자인 콘라트 로렌츠가 까마귀 새끼를 정성으로 키운 적이 있는데, 마침내 커서 날 수 있게 되자 툭하면 벌레를 물어와서는 콘라트의 입에 넣어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콘라트가 얼른 입을 다물면 눈에, 다시 눈을 가리면 귓구멍에 그 벌레를 넣어주려고 난리를 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까마귀는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잊지 않는다. 물론 까마귀들은 다 크면 어미의 둥지를 떠나기 때문에 모든 까마귀들이 어미를 돌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미와 함께 사는 까마귀들은 늙은 어미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마귀는 무얼 먹나?
까마귀는 먹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다. 주로 사체의 고기를 먹거나 벌레 등을 잡아먹는다. 직접 동물을 사냥하진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먹다 남긴 고기나 맹수들이 먹다 남긴 고기를 주로 먹는다. 그러나 남부 농경지대에서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벌레나 낙곡, 야생의 견과류 등을 주로 먹는다. 아마도 새 중에 가장 튼튼한 위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해온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새끼를 키울 때만은 반드시 고기나 살점, 벌레 등만을 물어다 먹인다.
요즈음 까치가 과수원에 피해를 줘 말썽인데 까마귀는 어떤가?
까마귀는 영리한 새다. 까마귀는 사람들이 싫어하면 스스로 떠난다. 결코 까치들처럼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도 과수원에 날아들어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유럽에서는 떼까마귀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종종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것은 도시가 점점 커지고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까마귀들의 먹잇감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의 떼까마귀는 울산 주변의 경주, 양산, 밀양 등지의 들판에서 주로 낙곡을 주워 먹거나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먹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화강변의 대숲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이게 되면 그 영향은?
최근 울산시는 시내교통망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떼까마귀 서식지인 태화강변 대숲의 중간을 가로지는 고가대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왕복 6차선의 이 다리는 올해 말 착공해 2011년 완공 예정이다. 이 다리가 건설되면 기존의 태화강변의 대숲은 다리를 중심으로 서쪽의 생태공원과 동쪽의 삼호대숲으로 크게 양분된다. 이 오산대교가 들어섬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단순한 공간 분리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시민 휴식공간으로서의 태화강 생태공원이 크게 위축됨은 물론 삼호대숲의 철새들과 떼까마귀 서식지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생태공원은 공원대로, 또 삼호대숲의 철새와 떼까마귀 서식지는 서식지대로 절름발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낙동강 하류에 다리가 놓이면서 을숙도 등의 생태환경이 악화되고 철새들이 급격히 줄어든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태화강변의 까마귀떼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까마귀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서식지에 가까이 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다 주변에 자동차들이 많이 다닌다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야생의 새다. 야생동물들은 모두 소음을 싫어한다. 게다가 다리가 놓이면 휘황찬란한 가로등 때문에도 까마귀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까마귀들은 그곳을 떠나고 말 것이다.
일본에도 까마귀가 많던데, 그쪽은 까마귀에 대한 태도가 어떤가?
일본인들은 까마귀를 신들의 사자(使者)라고 하여 신성한 새로 여긴다. 그들은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까마귀를 숭상하고 있으며 일본 천황가나 신사(神社) 등에 가면 삼족오로 장식된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동경의 우에노 공원 등에 가면 큰 까마귀들이 공원의 나무에 떼로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 머리 위로 수시로 지나간다. 또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면 얼른 내려와 받아먹기도 한다. 공원이 아니더라도 동경 시내 나무가 있는 곳이면 거의 어디서나 까마귀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은 사람과 까마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이다.
* 내용출처 : 에코뷰(서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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