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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정부 심의 시 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정부 대표단의 모습 중 일부. ⓒUNWebtv 동영상 캡처
지난 글에선 튀니지, 앙골라, 토고 정부에 대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우려와 권고 내용을 살펴봤다. 이번엔 아르헨티나, 페루 등 남미 2개국과 조지아에 대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우려와 권고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겠다.
아르헨티나, 페루, 조지아에 대한 우려와 권고
아르헨티나에선 비기여적 장애연금(Non-Contributory Disability Pension)과 관련해, 장애인이 이 장애연금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 이 연금제도는 근로능력 없음에 기반하며, 연금 액수도 불충분한 점을 우려했다. 참고로 비기여적 장애연금 수급과 관련해 자산조사가 수반되며, 이 연금 액수는 월 최저 장애연금의 70%이다. 월 최저 장애연금 액수는 2019년 기준으로 11,528.40페소(44202.99원)이다.
그러니까 비기여적 장애연금 액수는 2019년 기준이라면, 약 30,942원을 한 달당 받는 거다. 이 정도 액수 가지고는 아르헨티나 시민단체에서도 지적하듯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 불충분한 금액이다. 우리나라 사람한테 이 정도 액수로 한 달을 살라고 하면 인간다운 삶 누리기엔 당연히 애당초 어림도 없다.
또한, 장애로 인한 추가적 비용을 보전할 만한 사회 보호 체계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아울러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정 하에 공공부채 관리 강화 및 재정적자 경감조치를 채택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조치로 인해 사회적 급여에 대한 장애인 접근이 제한되고 있음도 우려했다.
그래서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급여액을 적어도 최저생계비 정도로 증가시키고 다른 소득도 받을 수 있도록 의료적 모델에서 인권적 모델로 바꾸는 등 비기여적 장애연금 입법 개혁을 추진할 것, ▲아르헨티나 장애인의 적절한 생활 수준을 보장하고 장애 관련 추가비용을 보전할 것, ▲경제개혁정책 관련 차관협정이 장애인 권리와 이들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접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할 것, ▲장애연금에 대한 장애인 접근을 막는 장벽 철폐 등을 권고했다.
민상법전(the Civil and Commercial Code)과 관련해선 법적 능력의 제한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무능력과 후견의 개념뿐만 아니라 법적 능력의 제한을 허용하는 법령의 폐지를 포함해 장애인에게 인간으로서의 법 앞의 동등한 인정을 보장하도록 민상법전을 협약과 조화시킬 것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권고했단다.
이외에도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에 있어 장애인 접근성이 도시와 시골 간 격차가 남에 우려를 표하며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모든 지역에서 서비스 제공 격차를 줄일 수 있을 만한 예산과 법적 조치를 취하란 권고를 아르헨티나 정부에 내렸다.
정치적 위기 상황이라 온라인으로 심의를 받은 페루 정부단이 답변하는 모습 중 일부. ⓒUNWebtv 동영상 캡처
수많은 시위와 경찰의 탄압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어 온라인으로만 심의가 이뤄진 페루를 상대로는 평화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포함해 장애인, 특히 장애여성/소녀의 생활, 안전과 권리를 보장할 효과적 조치의 이행을 정부에게 권고했다.
페루는 또한 장애인의 법적 능력에 대해 권리협약과 일치하게 광범위하게 개혁했지만, 장애인에게 금치산선고가 내려졌고, 비공식적인 대체의사결정을 포함한 법적 능력의 제한이 여전하며, 법관과 공증인이 지원의사결정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친숙하지 않고, 이 의사결정체계를 증진하기 위해 사법부를 지원할 다학제 팀에 대한 투자가 충분치 않은 점 등이 우려로 지목됐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입법명령 1384의 적절성을 상기하며, ▲후견제도 하의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신속히 회복하기. ▲접근 가능한 대체의사소통을 통해 장애인의 선호와 의지, 지원 요구조건을 평가하고 지원할 사법부를 지원할 다학제 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 ▲법관, 공증인, 공무원, 민간부문, 장애인과 그 가족, 지역사회에 입법명령 1384상의 공공캠페인, 정보 보급과 훈련을 보장할 것 등을 권고했다.
조지아 정부에 대해선 장애 판정체계에 아직도 의료적 접근방식이 만연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래서 장애인단체가 장애판정체계 설계 시 관여하고, 정책과 프로그램이 돌봄, 치료, 보호를 벗어나 평등과 다양성이 전제된 포함을 막는 환경적·태도적 장벽의 제거로 전환됨은 물론, 지원받는 게 장애인 개인의 요구에 맞도록 장애판정체계에서 보장하라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권고했다.
국가 이행 및 모니터링 구조와 관련해선, 협약 이행을 위한 부처 간 조정위원회의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이 제한되고 독립적인 모니터링 메커니즘에 장애인 단체의 참여에 있어 아직까지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 지적됐다.
이 지적에 근거해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부처 간 조정위원회의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을 강화하고, 정부의 모든 부처와 단계에 장애인 권리를 주류화할 중점 역량을 구축하는 한편, 협약 이행 시 장애인의 권한을 강화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아울러 국선변호인 사무소(The office of Public Defender)의 모니터링 권한 개발을 위한 자원을 증대시키고, 이들의 업무에 대한 접근 가능한 정보·방식을 제공하는 건 물론 위험과 긴급상황 기간 동안, 그리고 회복 기간을 포함한 협약 이행 모니터링 과정에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효과적 참여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인권리위원회 심의 받은 조지아 정부 대표단 답변 모습 중 일부. ⓒUNWebtv 캡처
지금까지 장애인권리위원회 28차 세션에 심의를 받았던 아르헨티나, 페루, 조지아와 관련한 장애인 권리 현실에 대한 우려와 이에 관련된 권고사항을 살펴보았다. 장애인 권리 현실과 관련해 우리나라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나라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하거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장애인들이 처하는 어려움은 비슷한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페루의 경우, 법적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어 이 방면에서 우리나라보다는 진전돼 그나마 낫지만, 아직도 금치산선고가 내려지는 등 협약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이 있었던 게다. 이에 대해 위원회가 관련 권고를 내렸고, 이를 페루에 있는 법관, 공증인, 공무원 등이 훈련 수준으로 이행한다면, 우리나라보다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현실이 되는 그날이 빨리 올 것으로 생각하니, 본받고 싶으면서도 부럽단 생각이 든다.
아르헨티나와 관련해선 법적 능력 제한 가능성 유지 현실에 관해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도 ‘의사 무능력’, ‘행위무능력’이란 말이 제도로 법체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제한·부정하는 현실이다.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부정하고 보호자에 의한 대리의사 결정을 허용하는 법률·제도의 개선을 통해 법과 제도를 협약과 일치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시행하는 비기여적 장애연금에 관해서도 관심이 가게 됐다. 우리나라엔 비기여적 장애연금 성격으로 비슷한 게 장애인연금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에다 순전한 의료등급인 구 장애등급 1, 2급 및 중복 3급만 수급자격이 되고,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장애 특성이 있으나 미등록인 사람은 장애인연금을 받지 못하는 등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다. 심지어 이주장애인 등 아직도 장애인연금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존재한다.
올해 장애인연금 급여액. ⓒ보건복지부
장애인연금은 올해 최대 월 40만 원대 금액을 받으나 최저임금은 약 200만 원대라, 최저임금의 약 20%인 금액이니, 인간다운 삶을 누릴만한 금액이 아니기에 위원회에선 이 연금 액수가 불충분함을 우려했다.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은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15만 2600원이지만, 장애인연금에 나온 추가비용의 경우 기껏해야 8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이 노인이 되면 기초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 연금을 받은 만큼 기초생활 생계급여가 깎이는 문제까지 있다. 그래서 위원회에선 장애인의 사회적 보호 및 빈곤경감 계획 강화는 물론 장애수당 액수를 검토하고, 부양의무자 요건의 완전폐지를 통해 장애인연금 수급자격 확대와 장애인연금을 모든 장애인들이 받도록 보장할 것 등의 권고를 내렸다.
모든 장애인들이 장애인연금 받도록 하는 건 장애인이 장애인연금에 대한 접근성을 막는 장벽 철폐와 연결될 터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사회적 보호 및 빈곤경감계획 강화 경우엔 장애연금 급여액을 최저생계비 정도로 상승시키고, 장애 관련 추가비용 보전하라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대한 권고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의 장애인연금과 아르헨티나의 비기여적 장애연금이 수급 자격 등 제도 운영형태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장애인의 서비스 접근성에 있어 도시와 지역 간 격차가 난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우리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선 매년 전국 시·도별 장애인복지·교육 부문을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하는데, 작년엔 장애인 복지서비스 지원 및 정보영역 등에선 지역 간 격차가 감소했다. 하지만 장애인 소득 및 경제활동 지원 영역에선 큰 폭으로 격차가 늘어났기에, 지자체 개선 노력과 함께, 격차 난 부분을 줄이려는 정부 예산지원이 더욱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이 연금제도가 근로 능력 없음에 기반한다면 그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비기여적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될 터이니 능력주의를 통한 장애인차별(Ableism)과 연관될 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기초생활 수급에 있어 근로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라, 이 또한 능력주의를 통한 장애인차별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에 상관없이 장애인의 적절한 생활 수준을 보장할 대안의 고민이 필요하다 본다.
마지막으로 조지아 정부와 관련해 장애 판정체계에 아직도 의료적 접근방식이 만연해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와 흡사하기까지 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장애 인정 기준을 부분적으로 확대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 판정체계는 순전히 의료적 기준이고 서비스를 판정하는 체계 중 하나인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에서도 기능 제한 문항이 많아 장애의 의료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기에 장애와 서비스 판정체계를 장애인 개인의 요구, 선호, 의지를 중시하고 장애인의 생활 어려움 등을 반영하는 인권적 모델로 바꿔야 함은 당연하다.
‘장애인 눈물 외면하는 장애등록 절차 개선하라’ 피켓을 든 모습. ⓒ에이블뉴스DB
더군다나 장애인 정책프로그램이 돌봄, 치료, 보호를 벗어나 평등과 다양성이 전제된 포함을 막는 환경적·태도적 장벽의 제거로 전환하라고 조지아에 내린 권고는 지적·자폐성 장애 정책에 관련돼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해선 돌봄 요구가 큰 장애인의 돌봄 정책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이들이 권리 주체가 되기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높여 결혼할 권리도 주체적으로 행사하는 등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의 당당하고 동등한 시민 구성원으로,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장애 패러다임을 인권적 모델로 변환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남미 2개국과 조지아에 대한 우려와 권고 내용의 일부를 살펴봤다. 이들 3개국도 지난번에 말했던 아프리카 3개국과 마찬가지로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 만연한 사회라는 게 느껴져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페루에서 권리협약과 일치하게 법적 능력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지난 10여 년 동안 한 건 상당히 고무적이라 이 부분은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아르헨티나의 경우엔 비기여적 장애연금, 도시와 지역 간 장애인 서비스 접근성 격차가 나는 현실 등을 통해 지자체도 지원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은 더더욱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조지아의 경우엔 장애 판정체계를 인권적 모델에 맞게 바꾸고 평등을 증진하는 정책을 세울 것을 권고했는데, 권고에 맞게 법률을 개혁하고 예산을 지원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페루의 경우도 장애인의 지원의사결정을 지원할 다학제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예산투자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장애의 인권적 모델로 가기 위해선 그에 맞는 법률 개혁과 함께 예산지원 등이 필요함을 세 나라를 통해 다시금 느끼고 확인하고 배우게 된다. 법률이 개혁되어도 예산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법상의 권리는 그림의 떡인 건 삼척동자도 알 터이다. 그래서 법률 개혁, 예산지원 등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을 터이다.
지금은 29차 세션 심의 기간이다. 몽골 심의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오스트리아와 독일 심의에선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갈지 궁금하다. 9월 8일이면 독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8개 정부에 권고가 날텐데, 이들 권고를 통해 우리나라도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할지 시사점을 얻고 이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의 의료적 모델로 가고자 하는 핑계는 더는 갖지 않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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