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밀성 손씨 고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왔건만 내 마음에선 따뜻함을 찾기가 힘들다. 온통 “어렵다”는 말뿐이고 지독한 불황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잠시 비우고 맘을 놓아둘 탈출구로 어디가 좋을까를 한참 고민하다 경남 밀양으로 눈을 돌렸다. 한적한 밀성(密城) 손씨 고택에 들러 잠시 마음의 위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수성IC에서 대구~부산고속도로를 달려 30분도 안돼 통행료 4천500원을 내고 도착할 수 있었다.
◆밀성 손씨 집성촌
밀양IC에서 빠져 밀양시청 방향으로 우회전하자마자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밀성 손씨 집성촌에 이르렀다. 쭉쭉 뻗은 아파트나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밀양 시내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 백년 전의 예스러움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성촌은 현재 20채가량의 한옥이 남아 있다. 돌담길에 에워싸인 99칸의 화려한 한옥 구조를 자랑하는 종갓집이 볼거리로는 단연 최고다. 이곳엔 ‘열두대문’라는 고급 한식당 푯말이 걸려있다. 다름아닌 밀성 손씨 11대손인 손중배(58)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이곳으로 와 2년 전부터 음식점을 운영 중인데, 열두대문이란 말은 과거 이 집 문의 수(12개)에서 따왔다고 한다.
손씨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안내를 자청했다. 대문을 들어서자 범상치 않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손씨는 “7세 때까지 여기 살았는데 당시 마굿간이어서 말도 기르고 인력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저 멀리 안채 옆으로 우뚝 솟은 회나무가 눈길을 끈다. 100년도 훨씬 넘게 하늘을 이고 있다고 한다.
큰 사랑채는 근대 한옥집의 묘한 매력을 그대로 풍긴다. 마루 전체에 창호문을 둘러 만든 겹방 구조나 구석구석 배치된 개화기 때의 가구 등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당시 생활상을 보여준다. “1900년대 초 미국과 일본 등 5개국 건축 기술자들이 모여 지었기 때문에 이색적인 구조가 많이 가미됐다”는 게 손씨의 설명이다. 문도 모두 3중으로 겹겹이다. 우풍을 없애 난방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조상들의 슬기가 엿보인다.
안채에 들어서자 어른 크기만한 ‘그레이트 피레네’ 종의 개들이 무섭게 짖어댄다. 도둑들이 현판이나 여러가지 값어치 있는 물건들을 훔쳐가다보니 개를 키우게 됐단다. 손씨는 계단으로 이어진 지하실을 보여준다. 지금은 빈 공간이지만 때가 되면 술이나 김치 등을 이곳에서 숙성한다. 한여름에도 16℃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이만한 저장소가 없다.
또 다른 고택 대문엔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봄을 알리는 글귀가 붙어 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오자 행복이 오고 계절따라 경사가 많다). 돌담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밀양 향교를 만날 수 있다. 향교에 올라 내려다보면 집성촌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선비의 풍류를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젖은 뒤 다시 발길을 돌렸다.
◆밀양시립박물관
집성촌을 나와 가까이에 넓은 주차장을 갖춘 밀양시립박물관이 보인다. 별 기대 없이 들렀는데 뜻밖이었다.
1974년 지어진 밀양군립박물관을 이전, 증축해 지난해 6월 개관했다. 밀양시는 박물관 건립에 총 239억원의 예산을 쏟아부면서 상당히 공을 들였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최근 개관한 박물관답게 실내가 깔끔하면서도 잘 정리된 듯한 느낌이다.
박물관 내엔 밀양독립운동기념관과 밀양화석전시관이 함께 있다. 먼저 1층에 자리한 독립운동기념관을 들어가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밀양의 3`1 독립만세운동을 형상화한 축소모형. 당시 밀양 시내를 재현한 것인데 곳곳에 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또 조선의용대가 사용하던 총이나 의상, 문서 등 각종 자료들이 충실하게 전시돼 있다. 1, 2층으로 나눠진 전시장엔 밀양의 축제와 민속놀이, 문화유산 등을 총망라한 전시품과 유물, 자료들이 즐비하다. 특히 2층엔 무료 목판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화석전시관이다. 1, 2층으로 이어진 전시관엔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나 플라티벨로돈 등 생소한 공룡 골격은 물론, 고생대와 중생대 등 시대별 화석 244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석 발굴현장을 재현한 공간도 있다. 얼핏 멀리서 보면 마네킹들이 진짜 사람처럼 여겨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관람료는 어른 1천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이며 매주 월요일엔 휴관한다. 055)359-5589.
◆만어사
다음 코스가 바위들이 널려 있는 만어사(萬魚寺). 밀양 시내에서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이곳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자의적이었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 ‘그해 여름’의 아련한 여운을 다시 한번 밟아보기 위해서다. 영화배우 이병헌과 수애가 주연한 이 영화는 흥행엔 실패했지만 두 남녀 주인공의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조약돌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다시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는 주 무대가 바로 만어사 앞의 ‘바위숲’이다.
만어사로 가기 위해선 시내에서 밀양IC로 올라 고속도로를 타고 삼랑진IC에서 내려 10㎞ 정도 더 달려야 한다. 마지막 2㎞ 정도는 비포장 오르막길이라 다소 편치 않은 여정이지만 산비탈을 오르면서 군데군데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해발 674m의 만어산 8부 능선에 자리한 만어사는 가락국 수로왕이 창건했다는 삼국유사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 사찰이지만 정작 절 자체보단 신비한 현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밀양의 3대 신비로 불리는 만어사 앞 바위숲이 그것이다. 이곳 바위의 3분의 2가량은 종소리나 쇳소리, 옥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 새벽녘 운해(雲海)는 신비감을 더해 준다. 하지만 기자 눈엔 이런 현상보다 ‘지천으로 수없이 널려있는 바위들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055)359-5641, 밀양시관광안내소 055)359-5582.
[시내 한눈에 보이는 대표 관광지]
#쉬고 싶다면-영남루
이곳은 밀양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보물 제147호로 지정돼 있다. 주변은 가족이나 연인끼리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밀양교 아래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면 불편을 덜 수 있다. 오리보트를 타고 밀양강을 둘러볼 수도 있다. 2인승과 4인승이 있으며 30분에 1만2천원이다. 밀양강을 사이에 두고 양남루 맞은편의 잘 꾸며놓은 둔치공원에서 어른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또 영남루에 오르면 밀양강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즐기고 싶다면-꽃새미마을
꽃새미마을은 2003년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돼 다양한 농촌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족 여행지로는 필수 코스다. 산나물 채취나 고구마, 옥수수 수확, 알밤줍기 등 계절별로 농촌체험은 물론 허브나 된장, 장아찌 등 전통 먹을거리를 활용한 체험과 사물놀이나 짚풀공예, 천연염색 등 민속놀이 체험도 할 수 있다. 또 1만6천여㎡에 이르는 참샘허브농장에서 로즈마리, 파인애플 세이지 등의 허브를 직접 만져보고 먹어볼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하다. 농장 내 레일바이크는 특히 아이들에겐 인기 만점이다. 일정에 따라 황토 집에서 민박을 할 수도 있는데 숙박요금은 평수에 따라 5만~10만원 선이다. 011-846-3642, http://kkotsaemi.go2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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