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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漢詩 모음-3
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 윤기(尹愭)
인일에 입춘이 들었기에〔人日立春〕
인일에 날씨 맑게 개어 / 人日天開朗
아침 햇살 창살에 비추네 / 朝暉射竹窓
흙소는 누가 한 마리 만들었나 / 土牛誰出一
얼음 오리는 짝이 없구나 / 氷鴨不成雙
벼루 얼어 춘첩자의 글씨 거칠고 / 硯冷疎書帖
꽃이 더디 피니 술항아리에 부끄럽다 / 花遲愧酒缸
산골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은 / 峽村吾所愛
따뜻한 봄날 맑은 강 거슬러 오르는 일 / 春暖溯淸江
[주-D001] 흙소는 …… 만들었나 :
57세 봄에 지은 작품이다. 입춘이 되면 흙으로 소를 만들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선농관이 이 소를 때리면서 농부가 밭갈이 하는 시늉을 보인다. 《몽화록(夢華錄)》에 “입춘 5일 전에 흙으로 소와 농부와 쟁기 등의 농기구를 일체 만들어 사대문 밖에 세워둔다. 입춘일 여명에 유사가 단을 만들어 제사 지내고, 선농관의 관리가 각각 비단 채찍을 들고 둘러서서 소를 세 차례 채찍질한다. 이는 농경을 권장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立春前五日 並造土牛耕夫犁具於大門之外 是日黎明 有司爲壇以祭 先農官吏 各具綵仗 環擊牛者三 所以示勸耕之意〕”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卷6 立春》
[주-D002] 꽃이 …… 부끄럽다 :
꽃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부질없이 술동이만 비워서 얼굴만 괜히 붉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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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4책 / 시(詩) / 윤기(尹愭)
복날 홍 판윤이 초대하였기에〔伏日洪判尹邀與拈韻同賦〕 같은 운으로 함께 읊다.
어른께서 한 마을에서 벗으로 대해주시어 / 丈人同巷許襟期
좋은 날에 초대하여 후의를 베푸시네 / 佳節招邀厚意垂
덕공은 허탄하게 개를 잡아 재앙 막았고 / 荒誕德公禳磔後
동방삭은 해학하며 고기 베어 돌아갔지 / 詼諧方朔割歸時
찜통더위는 사흘 아침의 비에 문득 식었고 / 蒸炎頓失三朝雨
늙은 병은 한 판의 바둑에 말끔히 사라졌네 / 老病渾消一局棊
취하여 돌아오려 하자 산에 해 저무니 / 乘醉欲還山日暮
오솔길에 막대 짚고 더디 가도 좋으리 / 穿林筇屐不嫌遲
[주-D001] 복날 …… 초대하였기에 :
59세에 지은 작품이다. 평성 지(支) 운을 압운한 평기식 칠언율시이다. 복날 홍주만의 집에 초대받아 온종일 놀다가 술이 취해 저녁에 돌아와 지은 시이다.
[주-D002] 덕공(德公)은 …… 막았고 :
진(秦)나라 덕공(德公) 2년, 초복날에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해(蟲害)를 막았다고 한다. 《史記 卷5 秦本紀, 卷28 封禪書》 복날 개를 잡아먹는 풍습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D003] 동방삭(東方朔)은 …… 돌아갔지 :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사람으로 해학(諧謔)을 잘하기로 이름났다. 한번은 복일(伏日)에 황제가 종관(從官)들에게 고기를 하사했는데 태관 승(太官丞)이 날이 저물도록 오지 않아 고기를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동방삭이 검으로 자기 몫의 고기를 자르고 동료 관원들에게 “복날에는 일찍 돌아가야 하니 하사한 고기를 가지고 가겠소.” 하고는 고기를 가지고 가버렸다. 태관(太官)이 이 사실을 상주(上奏)하여 황제가 동방삭에게 자책하게 하니, 동방삭이 “검으로 고기를 베었으니, 그 얼마나 씩씩한가. 벤 고기가 많지 않으니, 또 얼마나 청렴한가. 돌아가 아내에게 주었으니, 또 얼마나 어진가.〔拔劍割肉 壹何壯也 割之不多 又何廉也 歸遺細君 又何仁也〕”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이 고사를 인용하여 두보(杜甫)는 〈사일양편(社日兩篇)〉에서 “생각하노니 옛날 동방삭은, 해학하며 고기를 잘라 가지고 돌아갔지.〔尙想東方朔 詼諧割肉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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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2권 / 시(詩) 196수 / 김수항(金壽恒)
입춘일에
독서당에 하사하신 감귤에 대해 장경이 쓴 시를 차운하다〔立春日 賜柑湖堂 次長卿韻〕
문원에 하사한 진품 가장 빛난 영광인데 / 分珍詞苑最恩光
좋은 절기에 누런 비단이 궁에서 나왔네 / 佳節黃羅出建章
소갈증 해소하는데 선인장 이슬 필요 없고 / 澆渴不須金掌露
포장 열어보니 여태 동정의 서리 남았구려 / 拆包猶帶洞庭霜
남해 건너온 공물임을 멀리서 알겠으며 / 遙知貢篚來炎海
포장에 스민 궁중 향기 다시금 감격하네 / 更感題封襲御香
자리만 차지하고 보답치 못해 부끄럽지만 / 素食自慙無所報
임금님 성은만은 마음 속 깊이 새기리라 / 只應銘鏤在中腸
[주-D001] 장경(長卿)이 쓴 시 :
장경은 동리(東里) 이은상(李殷相)의 자이다. 이은상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이정귀(李廷龜)의 손자이자 이소한(李昭漢)의 아들이다. 이은상의 원시는 《동리집(東里集)》 권1의 〈입춘일 감귤을 하사한 것은 실로 문원의 성대한 일이다. 감격하여 시를 짓고 이어 여러 벗들에게 보이고 질정을 바란다〔立春日賜柑 實詞苑之盛事也 感而有作 仍示諸益求正〕〉이다.
[주-D002] 누런 …… 나왔네 :
원문의 ‘황라(黃羅)’는 황색 비단 보자기로, 나첩(羅帖)이라고도 한다. 옛날 군주가 가까운 신하에게 황색 비단 보자기에 싼 황감(黃柑)을 하사하였다. 원문의 ‘건장(建章)’은 한나라 장안(長安)의 궁전인 건장궁으로, 여기서는 궁궐의 범칭으로 쓰였다.
[주-D003] 선인장 이슬 :
원문의 ‘금장(金掌)’은 한 무제(漢武帝)가 장생(長生)하기 위해 감로(甘露)를 받아 건장궁에 세웠다는 구리기둥으로 만든 선인장(仙人掌)을 가리킨다.
[주-D004] 동정(洞庭)의 서리 :
동정산(洞庭山)의 감귤은 가장 빨리 익고 특히 껍질이 섬세하고 맛이 좋기로도 유명하였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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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2권 / 시(詩) 196수 / 김수항(金壽恒)
춘첩〔春帖〕
골목이 궁벽해 도성인 줄 잊고 / 巷僻忘城市
관직 한가해 출퇴근 자유로워라 / 官閒謝卯申
문 앞에는 내대객이 없고 / 門無褦襶客
술잔에는 청주와 탁주 있구나 / 樽有聖賢人
둘째 수〔其二〕
공명이 분수에 넘쳤으니 몸 물러나 하고 / 功名踰分身宜退
세상사에 마음 놀랐으니 입 다물어야지 / 世事驚心舌欲捫
얼씨구나 푸른 봄날 옛 언덕으로 돌아가 / 好趁靑春歸舊壟
평생토록 노래하며 성은에 감격하리라 / 百年歌詠感君恩
[주-D001] 내대객(褦襶客) :
내대(褦襶)는 여름철에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쓰는 삿갓인데, 더위를 무릅쓰고 염치없이 남의 집에 손으로 가는 사람을 뜻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정효(程曉)의 〈무더위에 찾아온 손님을 조소하는 시〔嘲熱客詩〕〉에 “지금 삿갓 쓴 이가, 더위 무릅쓰고 남의 집을 찾아왔네. 주인이 손님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맛살을 찡그리지만 이를 어찌하리오.〔只今褦襶子, 觸熱到人家. 主人聞客來, 嚬蹙奈此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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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4권 / 시(詩) 146수 / 김수항(金壽恒)
춘첩〔春帖〕
백옥과 청사가 한양 궁궐과 멀어도 / 白玉靑絲隔漢宮
남쪽 고을 소반의 나물 또한 봄바람 덕이라 / 楚鄕盤菜亦春風
풍년에 태평성대 정녕 축원하노니 / 年豐道泰丁寧祝
한가로이 춘첩자 쓴 주자를 배우노라 / 閒寫桃符學晦翁
둘째 수〔其二〕
눈 덮인 집 매화 떨기 봄기운 전하는데 / 雪屋叢梅漏洩春
지창에 돋는 햇살 한 점 먼지 없어라 / 紙窓初旭淨無塵
마음에 사심 없는 밝은 경계 있다 하니 / 靈臺自有虛明界
정일을 공부해서 일신 증험해 보리라 / 靜裏工夫驗日新
[주-D001] 백옥(白玉)과 …… 덕이라 :
백옥은 과일을, 청사는 푸른 채소를 가리키고, 봄바람은 임금의 은택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우니,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귀한 댁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주-D002] 춘첩자 …… 배우노라 :
원문의 ‘도부(桃符)’는 중국에서 원단(元旦)에 마귀를 쫓기 위하여 문짝에 붙이는 복숭아나무 조각을 가리킨다. 주자가 도부에 “임금 사랑하는지라 태평의 도를 희망하고, 나라 근심하는지라 풍년 들기 원하노라.〔愛君希道泰, 憂國願年豐.〕”라는 구절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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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5권 / 시(詩) 156수 / 김수항(金壽恒)
춘첩 경신년(1680, 숙종6) 〔春帖 庚申〕
사방 변경에 급보 없고 / 四境邊無警
농사철 지나면 가을걷이하리라 / 三農穀有秋
숭고산에서 만세 부르며 축수했고 / 嵩高萬歲壽
주 왕실에 많은 아들 아름다웠지 / 周室百男休
둘째 수〔其二〕
얼음은 온갖 이치 따라 풀리고 / 氷隨萬理釋
봄은 사단과 더불어 싹트리니 / 春與四端萌
궁해도 덕과 지혜 더욱 진보하고 / 德慧窮逾進
늙어도 정신 다시 밝아야지 / 神精老更明
셋째 수〔其三〕
눈 녹는 삼부연 폭포여 / 雪消三釜瀑
꽃 따뜻한 백운산이여 / 花暖白雲山
하늘이 덤으로 준 삶 있으니 / 天放殘生在
이 몸 한가로이 한 골짝 독차지하리 / 身專一壑閒
넷째 수〔其四〕
아들 딸 모두 슬하에 있어 / 子女齊扶膝
손자 증손에게 연신 머리 끄덕거리네 / 孫曾倦點頭
시서를 세업으로 전하니 / 詩書傳世業
하늘이 내린 복록에 감사드리네 / 福祿荷天庥
[주-D001] 숭고산(嵩高山) :
한 무제(漢武帝)가 이 산에 올랐을 때, 관리와 백성들이 산에서 만세(萬歲) 소리가 세 번 나는 것을 들었다. 《漢書 卷6 武帝紀》
[주-D002] 많은 아들 :
《시경》 〈문왕(文王)〉에 “태임(太任)은 문왕의 어머니시니……태사(太姒)가 아름다움을 이어 곧 백 명의 아들을 두겠도다.”라고 하였다.
[주-D003] 사단(四端) :
사람이 나면서부터 마음속에 갖고 있는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 네 가지 단서(端緖)의 총칭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4] 삼부연(三釜淵) 폭포 :
강원도 철원의 명성산에 있는 폭포로, 높은 절벽 사이로 물이 떨어지는 곳에 가마 같은 세 개의 바위가 있어 삼부폭포라고 한다.
[주-D005] 백운산(白雲山) :
경기도 영평현의 백운산을 가리키는데, 김수항의 큰형 김수증(金壽增)이 이곳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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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제3권 / 잡저(雜著) / 유희춘(柳希春)
입춘날 옷을 벗고 밭갈이 하는 일을 의론하다〔立春裸耕議〕
일이 멀리 변방의 비루(鄙陋)한 풍속에서 나와 백성들에게 고통(苦痛)이 되니 식자(識者)는 놀라고 보통 사람들은 편안히 여긴다.
옛날에 태원(太原)의 백성들은 개자추(介子推)로 인하여 중춘(仲春 음력 2월) 한 달을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명령하였는데, 초거(焦擧)가 병주 목사(幷州牧使)가 되어 백성을 깨우쳐 이 풍속을 고쳤다.
위나라 업(鄴)에 사는 사람들은 귀신을 좋아하여 해마다 하백(河伯 물을 맡은 신)에게 아내를 맞도록 빌므로, 서문표(西門豹)가 수령(守令)이 되어 강력히 그 풍속을 고쳤다. 이것은 모두 마음이 어진 군자가 우리에게 인의(仁義)의 마음을 채워주고, 세상 모든 사람의 어둡고 나약함을 구제한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도 왕도(王都)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사리(事理)에 어둡고 귀신과 괴상한 것에 현혹되는 것은 오히려 괜찮지만 그 가장 말할 것도 없이 해로운 것은 새해에 옷을 벗고 밭갈이 하는 것이다.
매년 입춘(立春) 날 아침에 도할사(都轄司)의 토관(土官)이 관청(官廳)의 문 노상(路上)에서 사람을 시켜 나무로 만든 소를 몰아 밭 갈고 씨앗을 뿌리며 농사를 짓는 형상을 짓게 하여 한해의 농사를 점치는 데에 사용하고, 풍작 되기를 비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런데 반드시 밭 갈고 씨 뿌린 사람에게 나체로 추위를 무릅쓰게 하니, 이것이 무슨 뜻인가?
옛날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추위를 견디는 씩씩함을 보여주고, 그 해 따뜻한 상서로움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지의 조화를 아이들의 장난으로 빼앗을 수 있겠는가. 사막의 얼고 추운 곳에서 손발을 한번 드러내면 금방 손발이 얼어 터지는데, 더구나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길거리에 서 있음에 오죽하겠는가. 바람과 서리가 뼈를 쑤시고 몸이 벌벌 떨려서 기침과 고질적인 냉병을 백에 하나도 면하지 못하니, 이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과 다르겠는가. 인자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이것을 본다면, 어찌 섬뜩하게 두려워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관원에게 물으면, “백성들의 풍속이다.”라고 하고, 백성에게 물으면, “관원이 시켜서 한다.”라고 한다. 대개 이것은 처음부터 사리를 깨닫지 못한 데에서 생기어 마침내 편안히 여겨 이루진 풍속이 되었다.
육진(六鎭)이 설치된 지 백여 년 이래로 마음이 어진 문관과 무관이 백성의 부모가 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 괴이(怪異)함을 알지 못하여 초거(焦擧)와 서문표(西門豹)처럼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아, 한탄스럽다. 또 더욱이 궁벽하고 추운 땅에 인구가 늘어나지 못하고 겨울에는 풍상(風霜)에 넘어지고 여름에는 강을 건너다 떨어지며 상한병(傷寒病)과 전염병이 또 좇아 병사(病死)하는지라 인가(人家)의 적막함이 새벽별처럼 드문드문하니 그 다행히 남아서 죽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어루만져 살게 하기를 어린아이 돌보듯이 해야 할 것인데, 또한 어찌 그들을 차마 몰아서 고황(膏肓)과 폐질(廢疾)의 땅으로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목민관(牧民官)들이 허수아비를 짓는 자의 큰 잘못을 깨닫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하루아침에 깨닫는다면,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그들이 옷 벗는 것을 금할 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대가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아야 하고, 시골에서 유배 생활하는 도리나 확실히 지켜야 할 일인데, 지금 이러한 일을 논하여 장차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하니, 이것은 평일에 한가히 지내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마땅히 간섭하지 않아야 할 것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정치요, 차마 묵과(默過)하지 못할 것은 무지한 백성들의 풍속이니, 이것이 같지 않습니다.”
하였다.
주-D001] 개자추(介子推) :
춘추 시대의 은인(隱人)이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공자(公子)일 때 19년 동안 함께 망명 생활을 하며 고생하였으나, 문공이 귀국하여 왕이 된 후 자신을 멀리하자 면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가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고 한다.
[주-D002] 도할사(都轄司)의 토관(土官) :
조선 시대 때 도할사(都轄司)의 종6품(從六品) 토관(土官) 벼슬이다.
[주-D003] 서문표(西門豹) :
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이다. 성질이 급하여 항상 가죽을 차고 다니며 누그러뜨렸다. 업의 수령이 되었을 때 업인들은 무속을 좋아해 해마다 돈을 거두어 백성들 고통이 날로 심하였다. 이에 서문표가 무당을 하수에 던져버려 그 풍속을 고쳤다. 도랑을 파서 백성의 논에 물을 대어 후세에까지도 그 이익을 보게 하였다.
[주-D004] 어린아이 돌보듯이 :
《서경(書經)》 〈강고〉에 “어린아이 돌보듯 하면 백성들이 편안할 것이다.〔若保赤子 惟民其康〕”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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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3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 구봉령(具鳳齡)
대전 춘첩자〔大殿春帖字〕
온갖 조화 일신 운화로 말미암으니 / 萬化由身運
거문고로 해온 노래를 부르네 / 瑤徽解慍歌
겨울 다해 섣달 추위 사라지고 / 窮陰消臘凍
맑은 햇살에 봄 날씨 따뜻하네 / 霽景煦春和
산하에 두루 봄기운 들고 / 氣入山河遍
초목은 모두 광채를 띄었네 / 光浮草樹多
양명에 진실로 형상이 있으니 / 陽明眞有象
생명의 뜻 왕성함이 어떠하겠나 / 生意藹如何
[주-D001] 해온(解慍) 노래 :
순 임금이 지었다고 전하는 남풍가(南風歌)로,《공자가어(孔子家語)》〈변악해(辨樂解)〉에 이르기를, “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뜯으면서 남풍(南風)의 노래를 지었는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남풍이 훈훈하게 붊이여, 우리 백성들의 울분을 풀 수 있겠도다. 남풍이 때맞추어 붊이여, 우리 백성들의 재산을 늘릴 수 있겠도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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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구봉령(具鳳齡)
입춘 날 우연히 쓰다〔立春日偶書〕
제실에 재가 날아 기운이 순일하게 돌아오니 / 灰飛緹室氣回醇
산의 반석에 오신을 차려 눈에 가득하네 / 滿目山盤縷五辛
비늘 기와에 미미하게 눈이 막 그치고 / 鱗瓦微微初罷雪
구리 병에 방울방울 봄기운이 생겨나네 / 銅壺滴滴暗生春
천시는 잠시 따사로운 양의 기운을 따르고 / 天時暫逐陽和暖
인사는 다시 흰 머리털 새로 돋아나네 / 人事還隨鬂髮新
병으로 학문 이루지 못해 총애가 외람되고 / 病學未成叨寵渥
작은 은혜도 갚을 길 없어 매우 부끄럽네 / 深慙無路效涓塵
[주-D001] 제실(緹室)에 재가 날아 :
제실은 비단천을 바른 밀폐된 방을 말하며, 재가 난다는 말은 갈대 줄기 속의 얇은 막을 태운 재가 날아오른다는 말이다. 고대에 기후와 절기를 관찰할 때 가회(葭灰)를 12율관(律管) 안에 채우고 비단천을 발라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에 놓아두고 절기를 점쳤는데, 동지절이 돌아오면 그에 상응하는 황종(黃鍾) 율관 안의 가회가 날아서 움직인다고 한다. 《漢書 卷21上 律曆志上》
[주-D002] 오신(五辛) :
파ㆍ마늘ㆍ생강ㆍ겨자ㆍ후추의 다섯 가지 매운 맛 나는 채소로 이른바 오신채(五辛菜)이다. 이를 오신반(五辛盤)이라는 소반에 담아서 새해를 축하하며 오장(五臟)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먹던 풍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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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5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 구봉령(具鳳齡)
동짓날 밤에 느낌이 있어서〔冬至夜有感〕
해 저문 동짓달에 북륙이 닫히니 / 窮陰閉北陸
서북쪽에서 찬바람 불어오네 / 不周來寒風
천지가 응결되어 어두워지고 / 天地入凝晦
산천은 얼음과 눈에 덮혔네 / 江山氷雪矇
위대하도다, 조화의 오묘함이여 / 大哉元化妙
한 이치가 일을 멈추지 않네 / 一理無停功
동지가 홀연히 다다르니 / 亞歲忽云曁
겨울은 황궁을 조율하네 / 玄律調黃宮
하늘의 뜻이 저절로 운행되니 / 天心自然運
땅의 기운은 고요히 통하네 / 地氣乃靜通
미양이 언뜻 징조를 보이니 / 微陽乍兆眹
얼어붙은 추위 가만히 녹이네 / 沍凍潛消融
꺼진 불이 다시 타오르는 것 같아 / 如火熄復燃
길게 이어져 따뜻한 기운 생기고 / 延延生煖烘
멈췄던 물이 다시 흐르는 것 같아 / 若水止還流
방울방울 작은 여울 이루네 / 滴滴成微潨
상서로움은 실가닥처럼 이어지니 / 端緖正綿綿
처음을 삼간다면 어찌 무너지랴 / 謹始那可訌
예전 성인의 마음은 / 故昔聖人心
경외하여 느슨하지 않았네 / 敬畏不弛衷
제계하며 온갖 일 멈추고 / 齋居輟百爲
문 닫은 채 번잡한 일 쉬며 / 掩關息紛悤
양기가 맑게 자라나게 하여 / 要使陽淑長
음기가 해치지 못하게 해야지 / 不敎陰沴攻
마음의 근원은 한 번 막히면 / 心源一蔽塞
온갖 욕심이 다투어 에워싸네 / 衆欲爭罩籠
싹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니 / 非無萌孼生
우산에 비와 이슬이 적셔주네 / 牛山雨露濛
아침과 낮에 없어지지 않게 해야만 / 莫使旦晝亡
밤기운에 자라나 맑고 깊게 된다네 / 夜氣長澄瀜
게다가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 / 矧惟世昏亂
음란한 싹 모두 올라오게 되면 / 陰孼咸登崇
어진 이들이 모두 배척당하여 / 群賢儘屛斥
요상한 기운 세상에 넘친다네 / 亘天橫妖虹
반드시 모두 도려내어야만 / 唯須剔抉盡
밝은 해 빛나 어슴푸레 동이 트네 / 白日光曈曨
지극하구나, 위대한 《역》의 상은 / 至矣大易象
분명히 헛된 말이 아니라네 / 的的非架空
양기를 부지하고 음기를 누른 뜻이 / 扶陽抑陰意
천고에 눈귀 먼 사람을 깨우치네 / 千古開盲聾
바라건대 길이 가슴 속에 간직하고 / 願言永佩服
관천옹에게 자세히 물어보리라 / 細質觀天翁
[주-D001] 북륙(北陸) :
겨울의 추위를 뜻한다. 북륙은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허수(虛宿)를 가리킨다. 《한서(漢書)》 권21하 〈율력지 하(律曆志下)〉에서는 “해가 북륙에 가면 겨울이라 하고 서륙(西陸)에 가면 봄이라 하고 남륙(南陸)에 가면 여름이라 하고 동륙(東陸)에 가면 가을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주-D002] 서북쪽에서 찬바람 불어오네 :
부주풍은 여덟 방향의 바람 중에서 입동 때 북서쪽에서 부는 바람이다. 동은 명서풍(明庶風), 동남은 청명풍(淸明風), 남은 경풍(景風), 서남은 양풍(涼風), 서는 창합풍(閶闔風), 서북은 부주풍(不周風), 북은 광막풍(廣莫風), 동북은 융풍(融風)이라고 한다. 《緯略》
[주-D003] 황궁(黃宮) :
황종(黃鐘)의 궁으로, 십이율의 하나이다. 십이율은 12개의 달을 대표하는데 황궁은 중동(仲冬) 즉 11월을 대표한다.
[주-D004] 미양(微陽) :
양기(陽氣)가 처음 생겨 미약한 때, 즉 동지를 말한다.
[주-D005] 온갖 …… 된다네 :
사람의 성품이 본래 선하지만 물욕에 침해당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대국(大國)의 교외(郊外)이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로 매일 나무를 베어 가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밤낮으로 자라나는 바와 우로(雨露)가 적셔 주는 바에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건마는,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되므로 이 때문에 저와 같이 탁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탁탁한 것만을 보고는 일찍이 훌륭한 재목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주-D006] 지극하구나 …… 상은 :
《주역》〈계사 상전(繫辭上傳)〉에 “위대하다 《역》이여, 이에 그 지극하도다.〔大哉易也, 斯其至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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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2권 / 시(詩)○어정(御定) / 채제공(蔡濟恭)
영은록(榮恩錄)
삼가 〈어정범례(御定凡例)〉에 따라 유고의 각 편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수합하여 이 〈영은록〉을 만들었다.
동짓날 대궐에 들어가 내각의 후반에 참석하였다. 상께서 동조에 문안하고 오는 길에 각반을 지나다가 여를 멈추라고 명한 뒤 천신을 불러 접견하고 하교하기를 “오늘 이후 경은 여든 살이 된 것이오.” 하였는데, 용안에 희색을 띠어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자제하지 못하고 물러 나와 시로써 이 일을 기록한다〔冬至日赴闕 參內閣候班 上問安東朝 路經閣班 命駐輿 召接賤臣 敎曰 今日以後 卿爲八十矣 天顔帶喜 有若相賀者 賤忱自不禁感淚 退以詩記之〕
내 생애 늘그막에 태평 시대 만나서 / 吾生吾老屬昌期
중추부 한가하니 요양하기 좋고말고 / 樞府官閒養病宜
천지 운행 또다시 동지절 되었는데 / 天地又爲陽至節
산하가 더군다나 둥근달을 만나다니 / 山河況値月圓時
서청의 물시계가 시각을 알려 주고 / 西淸玉漏如相報
상원의 수탉들이 때 아니 늦추어서 / 上苑仙雞故不遲
견마 나이 어쩌다 팔십이 되었거늘 / 犬馬偶能延八十
옥음이 어인 일로 못난 몸 축하했나 / 玉音何事賀庸姿
[주-D001] 동짓날 …… 기록한다 :
채제공이 지중추부사로 있던 무오년(1798, 정조22) 11월 15일의 작품이다. 내각의 후반(候班)은 동짓날 임금에게 문안하기 위해 규장각 관원들이 모인 자리라는 뜻이다. 동조(東朝)는 한(漢)나라 때 태후가 거처하던 장락궁(長樂宮)이 황제의 거처인 미앙궁(未央宮) 동쪽에 있었던 데서 태후의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정순왕후 김씨와 혜경궁 홍씨를 가리킨다. 각반(閣班)은 규장각 관원들이 모여 있는 규장각이란 뜻이다. 《日省錄 正祖 22年 11月 15日》
[주-D002] 서청(西淸)의 …… 늦추어서 :
조정에서 오랫동안 벼슬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세월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청은 일반적으로 홍문관이나 예문관의 별칭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궁궐이란 뜻으로 쓰였다. 상원(上苑)은 궁궐의 후원으로, 금원(禁苑), 비원(秘苑), 내원(內苑)이라고도 한다.
[주-D003] 견마(犬馬) :
주인이 있는 개와 말이란 뜻으로, 임금을 섬기는 신하가 자신에 대한 겸칭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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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3권 / 시(詩)○단구록 상(丹丘錄上) 채제공(蔡濟恭)
청명날
밤 꿈에서 처종숙 오성회 창운 형제 및 외사촌 동생 이용시를 만났다. 이때 회시(會試)가 막 지난 뒤였는데, 나를 위해 과거에 응시했던 일을 매우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淸明夜 夢遇吳從聖會 昌運 昆季及李弟龍施 時禮闈才過 爲余說赴擧事頗詳〕
이별한 뒤 봄이 장차 저물려는데 / 離別春將老
정신은 꿈속에서 통하였어라 / 精神夜遂通
지난날과 다름없이 서로 만나서 / 相逢似疇昔
회시 본 일 자세하게 말해 주었네 / 歷歷話南宮
[주-C001] 단구록(丹丘錄) :
1743년(영조19) 번암이 대과에 급제한 뒤 단성 현감(丹城縣監)으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 내려간 때부터 1747년 8월 익릉 별검(翼陵別檢)으로 제수되기 전까지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번암은 가끔씩 한양을 오갔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단성에서 보냈고, 1746년에는 한양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9월 무렵 일기청 낭청으로 차출되어 대궐에 입직하였다. 원래 단구(丹丘)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지명으로, 번암은 단성(丹城)의 ‘단’ 자가 단구의 ‘단’ 자와 같은 것에 착안하여 단성을 단구라고 불렀다.
[주-D001] 오성회(吳聖會) :
오창운(吳昌運, 1716~1756)이다. 오상겸(吳尙謙)의 아들이자 오경운(吳經運, 1723~1754)의 형으로, 번암의 처 동복 오씨(同福吳氏)에게 삼종숙(三從叔)이 된다. 오경운은 숙부 오상홍(吳尙弘)의 후사가 되었다. 다만 동복 오씨 족보에는 오창운의 자(字)가 흥조(興祖)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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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3권 / 시(詩)○단구록 상(丹丘錄上) / 채제공(蔡濟恭)
동짓날〔至日〕
찬 고개의 나무에는 총총한 별들 / 嶺寒星矗樹
흰 강의 하늘에는 날리는 눈발 / 江白雪黏天
이곳에서 동짓날을 다시 맞으니 / 復此逢至日
마음이 작년처럼 즐겁진 않네 / 歡娛非往年
남쪽 배는 병으로 매인 날 많고 / 南船多病繫
북쪽 서찰 전해 주는 사람 적구나 / 北札少人傳
쓸쓸하게 관아의 한 모퉁이에서 / 蕭瑟城頭角
홀로 밤을 보내며 잠 못 이루네 / 難爲獨夜眠
[주-C001] 단구록(丹丘錄) :
1743년(영조19) 번암이 대과에 급제한 뒤 단성 현감(丹城縣監)으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 내려간 때부터 1747년 8월 익릉 별검(翼陵別檢)으로 제수되기 전까지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번암은 가끔씩 한양을 오갔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단성에서 보냈고, 1746년에는 한양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9월 무렵 일기청 낭청으로 차출되어 대궐에 입직하였다. 원래 단구(丹丘)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지명으로, 번암은 단성(丹城)의 ‘단’ 자가 단구의 ‘단’ 자와 같은 것에 착안하여 단성을 단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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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5권 / 시(詩) / 채제공(蔡濟恭)
동지에 익릉 제사에 참여하다〔冬至參陵祀〕
축문(祝文)에 금왕의 어휘(御諱) 있기에 / 祝有今王諱
하늘이 동짓날을 개게 했어라 / 天爲至日晴
선왕(先王)께서 사전을 엄히 했으니 / 聖朝嚴祀典
영령의 마음 더욱 숙연하시리 / 靈意肅寒更
편백나무 위의 달은 능을 비추고 / 檜月籠仙寢
먹 향기는 기둥을 감돌고 있네 / 龍香匝繡楹
구의산이 선침의 왼편에 있어 / 九疑山在左
바람결에 여창 소리 서로 들리네 / 風處答臚聲
[주-D001] 구의산(九疑山) :
순(舜) 임금을 장사 지낸 곳으로, 여기서는 숙종(肅宗)의 능묘인 명릉(明陵)을 가리킨다.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閔氏)의 능이 쌍릉(雙陵)으로, 인원왕후 김씨(金氏)의 능이 오른편 언덕에 단릉(單陵)으로 조성된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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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1권 / 시(詩)○정원록(貞元錄) / 채제공(蔡濟恭)
동짓날에 제군과 함께 운자를 뽑다〔至日同諸君拈韻〕
그윽한 관물헌에 세월이 더딘데 / 觀物軒深日月遲
음양의 변화에서 천기를 은연중에 볼 수 있네 / 玄機暗賾耦兼奇
천세를 넘기시라 화봉이 임금을 축원하고 / 華封祝聖輕千歲
백성을 아끼는 고관들이 정오마다 회합하네 / 繡衮親民坐午時
상원의 숲 상서로운 빛은 구름 속에서 얻고 / 苑樹祥輝雲裏得
창가의 매화 기쁜 빛은 베개 가에서 알겠네 / 窓梅喜色枕邊知
하늘의 마음이 시인의 일과 흡사하니 / 天心酷似詩家事
정원이 순환하여 시기를 잘 맞추네 / 回斡貞元好趁期
우리 시사(詩社)의 시 짓는 규칙을 ‘동(東)’ 자 운에서 시작하여 ‘함(咸)’ 자 운에서 끝냈다가, 또 ‘함’ 자 운에서 시작하여 ‘동’ 자 운에서 마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구에서 말한 것이다.
[주-D001] 화봉(華封)이 임금을 축원하고 :
옛날 중국의 요(堯)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 만에 세상이 과연 잘 다스려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여러 지방을 순시하다가 화 땅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국경을 지키는 봉인(封人)이 요 임금에게 장수하고 부유하고 아들이 많기를 축원하였다. 그 말 가운데 “천년 뒤에 세상이 싫어지거든 신선이 되어 올라가서 저 흰 구름을 타고 상제의 고을에 이르소서.”라는 내용이 있다. 《莊子 天地》
[주-D002] 정원(貞元)이 …… 맞추네 :
사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정원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준말로, 《주역》 〈건괘(乾卦)〉에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乾, 元亨利貞.]”라고 한 데서 나왔는데, 원은 만물이 처음 생겨나는 것으로 춘(春), 인(仁)에 해당하고,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것으로 하(夏), 예(禮)에 해당하며, 이는 만물이 결실을 맺는 것으로 추(秋), 의(義)에 해당하고,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것으로 동(冬), 지(智)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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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 채제공(蔡濟恭)
동짓달 16일 밤에 모이다〔仲冬哉生魄夜集〕
도성 씻어 주는 눈발이 절반은 바람 / 雪灑嚴城半雜風
고인은 약속에 맞춰서 이경 중반에 / 故人如約二更中
한 해의 색은 사람을 늙도록 다그친다마는 / 已判歲色催人老
매화 향기가 술잔에 풍김은 역시 기쁜 일 / 且喜梅香與酒通
밑동 보임이 싫어서 촛불 자주 바꾸는데 / 孤燭屢更嫌跋見
대머리 부끄럽게 모자는 자꾸만 기우뚱 / 危冠頻側愧頭童
멋진 용모는 미인의 투기를 받기 십상이니 / 容華易被嬋姸妒
예쁜 기녀 함부로 집에다 들이지 마시도록 / 莫把蛾眉浪入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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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 채제공(蔡濟恭)
소한의 저녁에
공회와 맹영이 왔다. 근지는 나중에 왔다〔小寒夕公會孟英至謹之後至〕
진창길 미끄러워 나막신 걸음 어렵고 / 泥滑難爲屐
거리가 길어 통금에 걸리기 쉬운 밤 / 街長易犯鍾
고즈넉이 문 닫고 앉아 있나니 / 蕭然閉門坐
오직 우리 벗님들 만나 보려고 / 惟有故人逢
병풍 둘러 주위가 더욱 아늑한데 / 屛幄圍還靜
시서는 늙어 갈수록 게을러지니 원 / 詩書老轉慵
매화여 그대는 성품이 어떠하기에 / 梅花爾何性
얼굴을 아예 다듬지 않는 것이냐 / 曾不冶顔容
[주-D001] 맹영(孟英) :
권영(權偀, 1741~?)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맹영이다. 목만중(睦萬中)과 친하게 지냈다. 《여와집(餘窩集)》에 권영을 위해 지은 〈시암기(始菴記)〉와 시 몇 편이 실려 있다.
[주-D002] 근지(謹之) :
한덕후(韓德厚, 1735~?)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근지, 호는 호암(湖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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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7권 / 시(詩)○임단록(臨湍錄) / 채제공(蔡濟恭)
동지에 대궐을 연모하며〔冬至戀闕〕
동지로 말하자면 한 해가 시작되는 때 / 冬至曰爲歲
새벽에 달려가서 일제히 문안드렸는데 / 晨趨齊問安
반열 선두에 수상이 무릎을 꿇고 있으면 / 班頭跪上相
합문 밖에 중관이 와서 분부를 전했었지 / 閤外降中官
상서로운 눈에 조복이 환히 비치고 / 瑞雪朝衣晃
새벽 알리는 대궐 닭 소리 청랭할 텐데 / 仙鷄曉唱寒
매년 성대한 의식에 참석했던 몸이 / 每年叨盛禮
무슨 일로 장단 땅에 누워 있는지 / 何事卧長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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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7권 / 시(詩)○임단록(臨湍錄) / 채제공(蔡濟恭)
동지 밤에〔至夜〕
향 피우며 말없이 앉아 천시를 증험하노니 / 燒香默坐驗天時
천도의 순환 왕복이 역시 지체되지 않누나 / 回復貞元也不遲
일양이 미세하고 연약하다 말하지 말라 / 莫道一陽微且弱
울긋불긋 온갖 꽃들이 여기에서 싹트나니 / 千紅萬紫兆於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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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7권 / 시(詩)○임단록(臨湍錄) / 채제공(蔡濟恭)
동지에 또 쓰다〔至日又書〕
하늘이 우레 소리 다시 울리게 하였으니 / 天遣雷聲復
겨울 귀신이 어떻게 감히 소란을 피우리오 / 玄冥那敢譁
동헌의 매화가 일양의 기운을 먼저 얻고 / 閤梅先得氣
창문의 햇살이 광채를 더하려 하는도다 / 牕旭欲增華
분수 안에서 기거하는 한적한 생활이여 / 分內興居適
인간 세상의 일 그동안 많이도 겪었어라 / 人間閱歷多
대궐 뜰을 밤마다 꿈속에 찾아가나니 / 彤墀夜夜夢
미인이 멀리 계신 것이 믿기지 않노라 / 不信美人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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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8권 / 시(詩)○희년록 중(稀年錄中) / 채제공(蔡濟恭)
매선당의 입춘 첩자〔每善堂春帖〕
겨울 석 달 오두막에서 봄이 늦다고 원망했는데 / 三冬白屋怨春遲
막상 봄을 맞고 보니 갈수록 쇠해짐을 느끼겠네 / 及到逢春轉覺衰
하늘은 응당 곤곤히 사계절을 운행하고 / 滚滚天應成四運
나는 혼자서 희희낙락 맑은 시대 즐긴다오 / 熙熙吾自樂淸時
꽃은 향긋한 바람으로 동산의 기녀를 유인하고 / 香風花引東山妓
꾀꼬리는 독락의 바둑판에 긴 날 음악을 들려주네 / 長日鶯聽獨樂棋
명을 받들고 화공이 와서 내 얼굴 살펴보는데 / 承命畫師來審視
귀밑머리 완전히 실같이 희어져 부끄럽기만 / 鬢毛慙愧十分絲
또〔又〕
시 짓고는 잠깐 자고 잠을 깨면 시를 짓고 / 詩罷乍眠眠罷詩
노부가 이것 말고 할 일이 또 뭐 있을까 / 老夫此外更何爲
일 많은 오사에게 자꾸 소식 전하나니 / 五沙多事煩相報
운대에 꽃이 피어 조망하기 참 좋다고 / 花發雲臺眺望宜
[주-D001] 매선당(每善堂) :
보은동(報恩洞)에 있던 번암의 거실 이름이다. 보은동은 서울 남대문 근처 광통방(廣通坊)에 속한 동네 이름으로,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고도 하는데, 《번암집》 권34에 〈매선당기(每善堂記)〉가 실려 있다.
[주-D002] 꽃은 …… 유인하고 :
동진(東晉)의 태부(太傅) 사안(謝安)이 회계(會稽)의 동산(東山)에 은거하며 한가로이 노닐 당시에 가무에 능한 기녀(妓女)를 항상 대동하고 풍류를 즐겼던 고사를 인용하여 번암 자신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世說新語 排調》
[주-D003] 꾀꼬리는 …… 들려주네 :
송나라의 명재상 사마광(司馬光)이 벼슬을 그만둔 뒤에 낙양(洛陽) 남쪽 교외에 독락원(獨樂園)이라는 자그마한 정원을 짓고 즐긴 일화를 인용하여 번암 자신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사마광이 지은 〈독락원기(獨樂園記)〉가 당시에 회자(膾炙)되었는데, 소식(蘇軾)이 이 기문을 읽고 지은 〈사마군실독락원(司馬君實獨樂園)〉 시에 “한잔 술로 남아 있는 봄날을 즐기고, 바둑판 대하며 긴 여름을 소일하네.[樽酒樂餘春, 棋局消長夏.]”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蘇東坡詩集 卷15》 군실(君實)은 사마광의 자이다.
[주-D004] 오사(五沙) :
이정운(李鼎運, 1743~1800)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회(公會), 호는 오사,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번암의 문하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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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 (蔡濟恭)
경칩에 우스개로 짓다〔驚蟄日戲吟〕
만물을 기르느라 하늘은 잠시도 쉬지 못하는데 / 育物乾元不暫閑
근본 요체는 실로 묘하게 순환시킴에 있느니라 / 樞緘亶在妙循環
다만 유감은 온갖 벌레 족속을 들쑤셔 일으켜서 / 所嗟挑起群蟲族
웽웽거리며 어지럽게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것 / 穰穰紛紛閙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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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 채제공(蔡濟恭)
처서일고열행〔處暑日苦熱行〕
절기에 처서가 있다고 달력에 쓰여 있나니 / 節有處暑書曆日
인간 세상 더위를 처단해 보내기 위함이라 / 所以斷送人間熱
올해는 처서 절기가 바로 오늘인데 / 今年處暑卽今辰
화염의 기세가 조금도 꺾이려는 조짐 없이 / 熇勢不肯絲毫折
태양이 이글거리며 하늘 거리 내달려서 / 火輪爀爀當天衢
초목은 술 취한 듯하고 새도 날아가지 않나니 / 草木如醉翔鳥絶
내가 도망칠 생각을 해도 도망칠 수가 없어 / 我思逃遁遁不得
몸에 걸친 홑적삼도 찢어 내던지고파 / 單衫挂體狂欲裂
사계절 공평히 분배함은 천제의 권한이니 / 四序平分帝之權
나오고 물러남에 뉘 감히 술수를 부리랴만 / 進退疇敢逞其術
혹시 더위 귀신의 위세가 지금 일단 섰는지라 / 無乃炎神勢威立
하늘을 무시해 무리 모아 반역을 꾀함은 아닐는지 / 視天藐藐恣屯結
하지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천제의 원칙 / 一張一翕是帝則
풍사와 우백이 모두 삼엄히 줄지어 서 있을 터 / 風師雨伯皆森列
손에 든 백우선을 우선 슬슬 부치면서 / 且搖手中白羽扇
《주역》을 낭랑히 읽노라니 심신이 편해지네 / 朗讀羲易心神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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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 채제공(蔡濟恭)
입추〔立秋〕
내가 늙어 찌는 더위에 시달리면서 / 吾老困炎熱
가을 기운 이르기만 날로 기다렸으니 / 日待秋氣至
입추를 맞아 어찌 기쁘지 않으랴만 / 秋至豈不喜
쉽게 가는 세월은 또 어떻게 하나 / 將奈徂歲易
금년은 비가 전혀 오지 않다가 / 今年雨極無
유월에야 비로소 주룩주룩 쏟아져서 / 六月始霈然
농사짓는 집은 모두 애처롭게도 / 田家儘可矜
웃자란 모를 가까스로 옮겨 심었으니 / 老秧權宜遷
억조창생이 그나마 바라는 것은 / 億兆所倖望
단지 서리가 뒤늦게 내리는 것 / 只在霜候退
내가 어찌 나의 몸뚱이만 생각하여 / 吾何爲吾身
늦더위를 참지 못할 것처럼 여기는가 / 晩暑如不耐
내 몸뚱이는 작고 민천은 크니 / 身小民天大
나의 욕심이 그동안 잘못되었도다 / 吾願向來錯
정말 벼농사가 제대로 되기만 한다면 / 誠使禾稼成
더위에 쪄 죽는다 해도 나는 만족하리라 / 熱死吾亦足
[주-D001] 민천(民天) :
백성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양식(糧食)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의 “제왕은 인민을 하늘로 삼고, 인민은 양식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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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 이관명(李觀命)
입춘〔立春〕
눈 쌓이는 게 오늘 아침 끝났으니 / 積雪今朝罷
처사의 집에 봄이 돌아왔구려 / 春歸處士家
몸 한가해서 일 하나가 없으니 / 身閑無一事
뜰에 가득 꽃이나 새로 심어야지 / 新種滿庭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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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 이관명(李觀命)
입추 후에 우연히 읊다〔立秋後偶吟〕
언제나 여름날이 몹시 더딘 걸 시름하다가 / 常愁畏日苦遲遲
아침 그늘 한 자쯤 옮겨 가는 걸 비로소 느꼈지 / 始覺朝陰尺度移
듣건대 금신이 이제 막 순행하였다 하니 / 聞道金神初按節
축융이 멋대로 설칠 날 어찌 많이 남았으랴 / 祝融肆虐豈多時
[주-D001] 여름날 :
외일(畏日)은 여름날을 가리킨다. 《춘추좌씨전》 문공(文公) 7년에 “조최(趙衰)는 겨울 날씨이고 조돈(趙盾)은 여름 날씨이다.”라고 하였고, 주(注)에 “겨울 날씨는 사랑스럽고 여름 날씨는 두렵다.”라고 하였다.
[주-D002] 금신(金神) :
고대 전설 속에 나오는 서방(西方)의 신(神) 욕수(蓐收)를 가리키는데, 가을을 주관한다. 《禮記 月令》
[주-D003] 축융(祝融) :
고대 전설 속에 나오는 화신(火神)으로, 남방(南方)과 여름철을 맡는다고 한다. 《禮記 月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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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 이관명(李觀命)
대전의 춘첩자〔大殿春帖子〕 일등을 차지해 활을 하사받았다.
태사가 동교에서 봄맞이 아뢰니 / 太史東郊報迓春
궁궐의 상서로운 빛이 새벽부터 새롭도다 / 金宮瑞色曉來新
삼양이 떨치는 곳에 여러 음 위축되자 / 三陽奮處群陰縮
만물이 싹트는 시절에 한 기운으로 고르도다 / 萬化萌時一氣均
하늘의 조화는 만물을 새겨내는 것 아닌데 / 天造不須雕刻物
성은이 도리어 사람들을 절로 적시누나 / 聖恩還自染濡人
보시게 산동에 조서가 내려지던 날 / 試看詔下山東日
지팡이 짚고 다투어 한 문제 어질다 탄식한 일 / 扶杖爭嘆漢帝仁
둘째 수〔其二〕
궁궐에 의장이 빽빽하고 / 掖垣仙仗簇
물시계 똑똑똑 소리 울리네 / 玉漏響丁東
까치는 잔설 위에 머물고 / 鳷鵲留殘雪
봉래에 맑은 바람 부누나 / 蓬萊轉淑風
봄빛이 세상에 펼쳐지고 / 韶光隨世界
은택이 강토에 두루 미쳐 / 惠澤遍封中
만물이 골고루 기뻐하나니 / 萬物均欣悅
하늘과 사람이 하나의 이치로다 / 天人一理同
[주-D001] 태사(太史)가 …… 아뢰니 :
《예기》 〈월령(月令)〉에 “태사가 봄을 알리면 동가(動駕)를 명하여 동교(東郊)에 나아가 봄을 맞이한다.”라고 하였다.
[주-D002] 삼양(三陽)이 떨치는 곳 :
삼양은 봄 혹은 1월을 뜻한다. 음력 11월에 하나의 양효(陽爻)가 처음으로 생겨났다가, 1월이 되면 세 개의 양효가 하괘(下卦)에 자리하고, 세 개의 음효가 상괘에 자리하는 태괘(泰卦)를 이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 산동(山東)에 …… 일 :
한 문제(漢文帝)가 백성들에게 지극한 인덕(仁德)을 베풀면서, 노인들에게 솜과 비단과 고기를 달마다 내려 주도록 조칙을 반포하였다. 《漢書 卷4 文帝紀》
[주-D004] 까치 :
지작(鳷鵲)은 후한(後漢) 장제(章帝) 때 조지국(條支國)에서 공물로 바쳤다는 새이다. 나라가 태평하면 무리를 지어 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후대에 와서는 보통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拾遺記 後漢》
[주-D005] 봉래(蓬萊) :
본래는 선인(仙人)이 산다는 섬 이름인데, 여기서는 임금이 계신 도성의 대궐을 가리킨다.
[주-D006] 하나의 이치 :
일리(一理)는 일리만수(一理萬殊)에서 나온 표현이다. 우주의 근원은 유일(唯一)의 이치인데, 그것이 천만 가지 현상으로 분리되어 각각 다른 물건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수많은 사물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그 생성의 원리는 동일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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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立春)
오두막집에 또 한 해의 봄이 찾아를 오니 / 茆齋又是一年春
계절 경물이 명백하게 눈에 산뜻 들어오네 / 節物班班入眼新
대궐에서 하사한 번승엔 채화가 따라오고 / 北闕賜幡隨彩勝
이웃에서 보낸 채반엔 오신이 섞이었구나 / 西鄰送菜錯盤辛
얼른 춘첩자 써놓고는 새해 경사 맞이하고 / 旋題門帖迎新慶
막걸리 동이 열고는 친구와 함께 마셔대네 / 爲發盆醪對故人
병골은 갈수록 쇠해 거울 보기 부끄러워라 / 病骨侵尋羞對鏡
명절을 만날 적마다 은근히 맘이 상하누나 / 每逢佳節暗傷神
[주-D001] 대궐에서 …… 따라오고 :
번승(幡勝)은 채승(彩勝)과 같은 것으로, 입춘일(立春日)에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는 채색(彩色) 조화(造花)를 말하는데, 옛날 풍속에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 이웃에서 …… 섞이었구나 :
오신(五辛)은 매운 맛이 나는 다섯 가지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말하는데, 옛날 풍속에 입춘일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이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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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立春)
금년에 또 입춘 절기가 돌아왔으니 / 今年又立春
세상일이 그 얼마나 새로워졌던고 / 世故幾番新
오신반 자주 보기가 싫증이 나서 / 厭見辛盤數
백주만 늘 불러서 서로 친하노라 / 頻呼柏酒親
뜻을 이루지 못한 건 세상일이요 / 蹉跎世上事
변하는 건 거울에 비친 몰골이라 / 變幻鏡中人
아 시세가 이렇게 실망스러운데 / 時勢嗟如此
가려 살 만한 산림도 흔찮네그려 / 山林少卜鄰
[주-D001] 오신반(五辛盤) :
오신(五辛)은 매운맛이 나는 다섯 가지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말하는데, 옛날 풍속에, 입춘일(立春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이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주-D002] 백주(柏酒) :
측백나무 잎을 담가서 빚은 술을 말하는데, 옛날 풍속에 의하면, 신년(新年) 원단(元旦)에 온 가족이 이 술을 함께 마시어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長壽)를 축원(祝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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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춘첩자(春帖子)
소반은 파래라 야채를 캐왔고 / 盤靑挑野菜
화분은 희어라 매화가 피었네 / 盆白綻園梅
한 방 안에는 서책만 고요한데 / 一室圖書靜
봄바람이 주흥을 돋우는구나 / 春風侑酒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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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추(立秋)
해와 달 두 바퀴가 나는 듯 빨라라 / 雙環跳日月
한 잎새 오동이 벌써 떨어지누나 / 一葉墮梧桐
더위는 성긴 발 같은 비에 물러가고 / 暑退疎簾雨
서늘함은 대자리 바람에서 나오네 / 涼生半簟風
돌아가고픈 맘은 제비를 따라가고 / 歸心隨去燕
그윽한 꿈은 귀뚜라미에 괴로워라 / 幽夢惱寒蛩
시름의 많고 적음을 알고 싶거든 / 欲識愁多少
시단의 거울 속 백발이 그것일세 / 詩班曉鏡中
[주-D001] 한 …… 떨어지누나 :
입추(立秋)가 되면 오동(梧桐)의 한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 하여, 옛말에 “오동의 한 잎새가 떨어지면, 천하 사람이 다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가을이 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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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8권 / 시류(詩類)신사년(1461, 세조 7) / 서거정(徐居正)
입춘(立春)
봄은 한 해의 첫머리가 되는지라 / 春爲歲之首
하늘의 일이 사람에 가까워졌네 / 天事近於人
이치는 절로 끝없이 순환하거니와 / 理自終還始
도는 응당 굽히면 반드시 펴지도다 / 道應屈必伸
육갑의 촉급함은 은밀히 알겠고 / 潛知六甲促
오신반 잦은 것은 보기가 놀랍네 / 驚見五辛頻
만물이 모두 생기가 넘치는지라 / 萬物皆生意
나는 지금 새해 맞음을 기뻐하노라 / 吾今喜得新
[주-D001] 하늘의 …… 가까워졌네 :
여기서 말한 사람이란 곧 인(仁)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인하다는 뜻에서, 《중용장구》 제 23 장에는 “인은 사람의 몸이다.〔仁者人也〕”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는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仁人心也〕”라고 하였으며, 진심(盡心)에는 “인이란 사람이라는 뜻이다.〔仁也者人也〕”라고 하였다.
[주-D002] 오신반(五辛盤) :
오신은 매운 맛이 나는 다섯 가지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말하는데, 옛날 풍속에 입춘일(立春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이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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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9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지(冬至)
한밤중 자시에 일양이 생겨나니 / 一陽夜半子
천하의 만물이 모두가 봄이로다 / 萬物天下春
가지 위의 매화가 굼틀대는지라 / 梅花枝上易
서로 마주해 새로이 한번 웃노라 / 相對一笑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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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1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지일(冬至日) 저녁에 작은 바람이 불다.
아세에 태양은 남쪽에 이르고 / 亞歲日南至
중동에 바람은 북에서 오는데 / 仲冬風北來
애오라지 작은 시구를 초하다가 / 小詩聊作草
《주역》으로 관매점을 치려고 하네 / 大易欲觀梅
흰 귀밑털은 창밖의 눈과 나뉘고 / 鬢雪分窓雪
마음의 재는 갈대의 재와 달라라 / 心灰異管灰
어느덧 해는 점차로 길어가는데 / 不知添一線
늙음을 재촉함만 깨달을 뿐이네 / 只覺老相催
[주-D001] 아세(亞歲)에 …… 이르고 :
아세는 동지의 별칭이다.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것은, 하지 이후로는 태양의 궤도가 북으로부터 남으로 가고, 동지 이후로는 또 남으로부터 북으로 가기 때문에 동지일 또한 일남지(日南至)라 칭하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주역으로 …… 하네 :
관매(觀梅)는 송(宋) 나라 때 소옹(邵雍)이 지었다는 서법(筮法) 즉 매화수(梅花數)를 가리킨다. 그 법칙은 임의대로 한 글자의 획수(畫數)를 취하여 8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괘(卦)를 얻고, 또 한 글자의 획수를 취하여 6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효(爻)를 얻은 다음, 역리(易理)에 의거하여 그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것인데, 이 점은 특히 기묘하게 잘 맞았다고 한다.
[주-D003] 마음의 …… 달라라 :
마음의 재란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의하면,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앉아서 하늘을 우러러 숨을 길게 내쉬자 그 멍한 모양이 마치 짝을 잃은 것 같았으므로, 안성자유(顔成子游)가 그를 모시고 있다가 묻기를, “형체는 진실로 마른 나무와 같이 할 수 있고, 마음은 진실로 식은 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인가?〔形固可使如枯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마음이 외물(外物)로 인하여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갈대의 재란 후기법(候氣法)에 의하면, 동지가 되면 황종률관(黃鐘律管)에 넣어둔 갈대의 재〔葭灰〕가 날아 움직인다는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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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0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제야(除夜)의 입춘에
섣달 그믐날 밤이 입춘을 겸했어라 / 除夕兼春立
유유한 세시의 변천이 느꺼워지네 / 悠悠感歲時
한 해는 장차 다해가는 마당이요 / 一年將盡處
삼경 밤은 곧 다가오는 때이로다 / 三夜欲來時
은승은 머리에 꽂아 묵직하건만 / 銀勝簪頭重
도소주는 차례 기다리기 더디구나 / 屠蘇到手遲
어리석음은 그 어드메에 팔 건고 / 有癡何處賣
괜히 낭선처럼 시제만 지내노라 / 空祭浪仙詩
[주-D001] 은승(銀勝)은 …… 묵직하건만 :
은승은 은박지(銀箔紙)를 오려서 만든 채화(彩花)를 말하는데, 옛날 입춘일에 이것을 백관들에게 하사하면, 백관들이 이것을 머리에 꽂고 봄맞이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도소주(屠蘇酒)는 …… 더디구나 :
도소주는 길경(桔梗), 방풍(防風), 육계(肉桂) 등의 약재(藥材)로 빚은 술을 가리키는데, 옛날 풍속에 이 술을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 하여 정월 초하룻날 이 술을 마셨던바, 이 술은 반드시 온 가족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차례로 마셔 신년(新年)을 축복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제야야숙상주성외(除夜野宿常州城外) 시에 “궁한 시름으로 늙은이 건강과 바꿀 뿐이니, 최후에 도소주 마시는 건 사양하지 않노라.〔但把窮愁博長健 不辭最後飮屠蘇〕”고 하였다.
[주-D003] 어리석음은 …… 건고 :
중국 오중(吳中)의 민속에 의하면, 매년 섣달 그믐날 밤이면 어린아이들이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너의 어리석음을 팔거라, 너의 멍청함을 팔거라.〔賣汝癡 賣汝獃〕”고 외쳤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괜히 …… 지내노라 :
낭선(浪仙)은 당(唐)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의 자이고, 시제(詩祭)는 가도가 매년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당년(當年)에 지은 자기의 시(詩)들을 몽땅 모아 놓고 주포(酒脯)로 제(祭)를 지내면서 스스로를 면려(勉勵)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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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0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청명일(淸明日)에 이가성(李可成) 예(芮) 이 내방(來訪)하다 2수
한식과 청명은 사흘 사이에 정해진 일이요 / 寒食淸明三日事
병든 몸 시름겨운 백발은 한 해의 봄이로다 / 病身愁鬢一年春
닭싸움 시키고 말 달림은 내 일이 아니거니 / 鬪鷄走馬非吾事
친구 마주해 향기로운 술이나 마셔야겠네 / 聊復淸樽對故人
불씨 바꾸고 불 금함은 새해의 일이거니와 / 改火禁煙新歲事
꽃 버들을 구경하여라 옛 동산은 봄이로세 / 尋花問柳故園春
당부하노니 그대는 전원 흥취 말하지 마소 / 憑君莫說田家興
지금까지도 가지 못한 사람이 여기 있으니 / 亦有當時未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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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1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추(立秋)
눈에 스친 건 공처럼 빠른 태양이요 / 過眼跳丸日
맘을 놀래킨 건 낙엽 지는 가을일세 / 驚心落葉秋
집은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거니와 / 家貧猶足樂
벼슬은 높아도 궁한 시름이 있는걸 / 官盛亦窮愁
이미 벼슬살이 올가미에 걸린 건 / 已坐簪纓累
이게 도시 호구지책 때문이었네 / 都緣口腹謀
전원이 내 흥취를 혼란스럽게 하니 / 田園祗攪興
천지가 머리 긁는 속에 들오는구나 / 天地入搔頭
[주-D001] 천지(天地)가 …… 들오는구나 :
머리를 긁는다는 것은 곧 골똘히 생각하는 바가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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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짓날에 홀로 앉아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차공(次公)에게 부치다 2수
벽수와 교문이 학궁을 에워싸고 있는데 / 璧水橋門擁學宮
그대와 함께 조용히 함장된 게 기뻐라 / 從容函丈喜君同
나의 옅은 식견은 밝아질 날이 없겠지만 / 皮膚淺見明無日
골육 같은 사문은 고풍 이을 이가 있구려 / 骨肉斯文繼有風
배운 것이 어찌 보람을 취할 수가 있으랴 / 所學何曾能取效
작은 걸로 큰 걸 대하기 부끄러울 뿐이네 / 以纖知復愧臨洪
한때의 장관 부장관은 모두가 호걸이라 / 一時長貳皆豪傑
즐거운 일이 영재를 교육하는 데 있구려 / 樂在英材敎育中
이불 쓰고 앉았다가 또 좋은 시절 만나서 / 擁衾扶坐又良晨
약간 취하여 시를 쓰니 글자가 안 고르네 / 半醉題詩字未均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 와 첫 눈을 날리고 / 風自北來見新雪
해는 남지에 당하여 소춘이 돌아왔구려 / 日當南至回小春
질동이의 팥죽일랑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 瓦盆豆粥渾家樂
자기 사발의 나물들은 손 접대의 진미로다 / 磁梡芹虀與客珍
여기저기 눈에 가득한 계절 경치 놀라워라 / 滿眼斑斑驚節物
노쇠한 몸은 오랜 병치레를 감당 못하겠네 / 不堪衰暮病纏身
[주-D001] 벽수(璧水)와 …… 있는데 :
벽수는 성균관(成均館)의 동서문(東西門) 남쪽에 빙 둘러 있는 못 물을 가리킨다. 교문(橋門)은 태학(太學) 주위의 사문(四門)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태학을 의미한다. 《후한서》 권79 유림열전(儒林列傳)에 “향사례(饗射禮)를 마친 다음, 황제는 정좌하여 스스로 강을 하고, 여러 유생들은 경서를 갖고 앞에서 어려운 것을 질문할 적에 관디를 갖춘 선비와 벼슬아치들로 교문을 빙 둘러 서서 관청(觀聽)한 이가 억만(億萬)으로 헤아릴 만했다.” 하였다.
[주-D002] 함장(函丈) :
《예기》 곡례(曲禮)에 “만일 음식 대접이나 하려고 청한 손이 아니거든, 자리를 펼 때에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 한 데서 온 말로, 서로 묻고 배우는 사생(師生)의 사이를 말하는데, 전하여 스승의 별칭으로 흔히 쓰인다.
[주-D003] 해는 …… 돌아왔구려 :
남지(南至)는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뜻으로, 동지의 별칭이다.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것은 곧 하지 이후로는 태양의 궤도가 북에서 남으로 가고, 동지 이후로는 또 남에서 북으로 가기 때문에 동지일(冬至日)을 일남지(日南至)라 칭하는 데서 온 말이다. 소춘(小春)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천기가 화창하고 다스워서 마치 봄 같다 하여 음력 10월의 별칭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동지에 양 하나가 처음 생긴다.〔冬至一陽始生〕’는 뜻에서 동지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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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지에 홍 남양(洪南陽)의 운에 차하다
바다가 평온함은 천재일우거니와 / 海晏千年一
숭산의 외침은 만세가 세 번이로다 / 嵩呼萬歲三
해치관은 자격에 걸맞지 않거니와 / 豸冠才不用
조정 반열은 병으로 참여도 못하네 / 鵷列病難參
늙으매 절로 술이나 마실 뿐이지만 / 老自復杯酒
가난해도 약은 상자에 가득 쌓였지 / 貧猶儲藥函
양 하나가 또 남쪽에 이르렀는지라 / 一陽又南至
뜨락에는 눈이 하얗게 내렸네그려 / 庭雪白毿毿
[주-D001] 바다가 …… 천재일우(千載一遇)거니와 :
바다가 평온하다는 것은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섭정하던 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통하여 와서 주공에게 꿩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의 나라의 노인들이 말하기를, ‘하늘이 오래도록 거센 비바람을 내리지 않고 바다에도 파도가 일지 않은 지 지금 3년이 되었으니, 아마도 중국에 성인이 있는 듯한데 왜 가서 조회하지 않느냐.’ 하므로 왔습니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천하가 태평함을 의미한다. 《韓詩外傳》
[주-D002] 숭산(嵩山)의 …… 세 번이로다 :
한 무제(漢武帝) 원봉(元封) 원년에 무제가 태산(泰山)에 올라가 봉선(封禪)을 했는데, 이때 제사에 종사한 이졸(吏卒)들이 모두 어디선가 소리 높이 만세(萬歲)를 세 번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는 데서 온 말로, 이 역시 천하가 태평함을 의미한다. 《漢書 卷6 武帝紀》
[주-D003] 해치관(獬豸冠) :
해치는 뿔이 하나인 신수(神獸)의 이름인데, 이 짐승은 성질이 충직하여 곡직을 잘 분변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그중에 사악하고 부정한 자를 뿔로 받아 버린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예로부터 어사 등 집법관들은 반드시 해치의 모양으로 장식한 관을 썼는데, 이를 해치관 또는 치관(豸冠)이라고도 한다.
[주-D004] 양(陽) …… 이르렀는지라 :
동지(冬至) 절기를 가리킨다. 남지(南至)는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뜻으로, 동지의 별칭이다.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것은 곧 하지 이후로는 태양의 궤도가 북에서 남으로 가고, 동지 이후로는 또 남에서 북으로 가기 때문에 동지일(冬至日)을 일남지(日南至)라 칭하는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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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立春) 2수
새벽에 거울 보니 백발은 한층 더했는데 / 淸曉臨銅白髮新
조그마한 종이 오려서 의춘을 붙이노라 / 裁成小紙貼宜春
머리 가득 번승은 되레 부끄럽기만 하고 / 滿頭幡勝還羞澁
소반 속의 오색 신채는 정말 보기도 싫네 / 厭見盤中五色辛
앉아서 내처와 마주해 한 번 껄껄 웃고 / 坐對萊妻一笑新
조용히 술잔 따라 새 봄을 경축하여라 / 穩斟杯酒慶新春
인생은 절로 백 년의 낙이 있는 법이니 / 人生自有百年樂
가난 때문에 고생된다 말할 것 없고말고 / 不爲家貧說苦辛
[주-D001] 조그마한 …… 붙이노라 :
의춘(宜春)은 옛날 입춘일(立春日)에 조그마한 종이를 오려서 이 두 글자의 모양을 만들거나 글씨로 쓰기도 하여 창호(窓戶), 기물(器物), 채승(彩勝) 등에 붙여서 봄맞이〔迎春〕를 표시한 데서 온 말이다. 《天中記》 당(唐)나라 최융(崔融)의 춘규(春閨) 시에 “의춘 글자를 오려 만들려고 하니, 봄 추위가 가위 속에 들어오누나.〔欲剪宜春字 春寒入剪刀〕” 하였다.
[주-D002] 번승(幡勝) :
채승(彩勝)과 같은 뜻으로, 일명 인승(人勝)이라고도 한다. 정월 초이레 인일에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았던 채색 조화(造花)를 이르는데, 옛날 풍속에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荆楚歲時記》]
[주-D003] 소반 …… 싫네 :
오색은 곧 다섯 가지 종류를 이른다. 옛날 풍속에 입춘(立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매운 맛이 나는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 등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오니 백옥이 왕래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 하였다.
[주-D004] 내처(萊妻) :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로 명성이 높았던 노래자(老萊子)의 아내를 가리킨다. 그녀는 일찍이 노래자에게 출사(出仕)하지 말 것을 간절히 권하여 부부가 함께 강남에 은거했으므로, 전하여 현처(賢妻)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 《古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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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9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복일(伏日)
한낮의 삼복더위에 북창은 서늘하여라 / 日高三伏北窓凉
이미 도류와 더불어 취향에 도달하였네 / 已與陶劉到醉鄕
자고 일어나 박박주를 소리 높여 노래하니 / 睡起高謌薄薄酒
옆 사람이 손뼉 치며 미친 나를 비웃는구나 / 傍人拍手笑吾狂
[주-D001] 북창(北窓)은 서늘하여라 :
도잠(陶潛)이 어느 여름날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창 밑에 누워서 ‘희황 이상 시대 사람〔羲皇上人〕’이라고 자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도류(陶劉) :
진(晉)나라 때 처사(處士)로 술을 매우 즐겨 마셨던 도잠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역시 술을 매우 즐겨 마셨던 유령(劉伶)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3] 박박주(薄薄酒) :
맛이 진하지 않고 싱거운 술을 이른 말로, 소식(蘇軾)의 박박주(薄薄酒) 시에 “묽고 싱거운 술도 차 마시기보다는 낫고, 굵고 거친 베라도 치마 없는 것보다는 낫고, 못생긴 아내 사나운 첩도 독숙공방보다는 낫다.〔薄薄酒勝茶湯 麤麤布勝無裳 醜妻惡妾勝空房〕”고 하였는데, 저자 또한 일찍이 소식의 박박주를 모방하여 후박박주(後薄薄酒)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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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9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추 하루 전에
쉴 새 없어라 세월은 마냥 급하고 / 袞袞流光急
조그만 정원은 하 깊고 그윽한데 / 深深小院幽
연꽃은 혹독한 더위를 물리치고 / 荷花消酷暑
오동잎은 새 가을을 재촉하누나 / 桐葉欲新秋
오늘은 하랑처럼 파리하거니와 / 今日何郞瘦
해마다 송옥의 시름을 겪는구나 / 頻年宋玉愁
강호를 그리는 생각 끊임이 없어 / 江湖思不盡
홀로 누각 기대어 술잔을 드노라 / 擧酒獨憑樓
[주-D001] 오동잎은 …… 재촉하누나 :
입추가 되면 오동의 한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 하여, 옛말에 “오동의 한 잎새가 떨어지면, 천하 사람이 다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오늘은 하랑(何郞)처럼 파리하거니와 :
하랑은 본디 양(梁)나라 때 시인 하손(何遜)을 가리키는데, 하손이 파리했다는 고사는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소식(蘇軾)의 차운왕공안부동범주(次韻王鞏顔復同泛舟) 시에 심약(沈約)을 일러 “심랑은 청수하여 옷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변로는 똥똥한 배에 허리띠가 십 위였다네.〔沈郞淸瘦不勝衣 邊老便便帶十圍〕”라고 한 시구가 있다.
[주-D003] 송옥(宋玉)의 시름 :
송옥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문인으로, 그가 일찍이 가을을 슬퍼하는 뜻으로 구변(九辯)을 노래한 데서 온 말이다. 구변의 대략에 “슬프다, 가을의 기후 됨이여. 쓸쓸하여라, 초목은 낙엽이 져서 쇠하였도다. 구슬퍼라, 흡사 타향에 있는 듯하도다. 산에 올라 물을 굽어봄이여, 돌아갈 사람을 보내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 憭慄兮 若在遠行 登山臨水兮 送將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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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9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19일 입추에
한 오동잎이 날아서 우물 동쪽에 떨어져라 / 一葉閑飛墮井東
장협 노래 두어 소리에 또 가을바람이로세 / 數聲長鋏又秋風
금년엔 순채 농어의 계획을 잘 이뤄보련다 / 今年好作蓴鱸計
열 폭의 부들 돛 펼친 게 두 눈에 선하구려 / 十幅蒲帆在眼中
[주-D001] 장협(長鋏) 노래 :
전국 시대 제나라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었을 때, 좌우로부터 천시를 받아 보잘것없는 음식을 제공받자 기둥에 기대어 손으로 검(劍)을 치면서 노래하기를 “장협아, 돌아가야겠다. 먹자 해도 고기가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하니, 맹상군이 좌우에게 명하여 음식 제공을 잘하도록 했다. 뒤에 그가 또 검을 치면서 노래하기를 “장협아, 돌아가야겠다.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구나.〔長鋏歸來乎 無以爲家〕” 하니, 맹상군이 또 사람을 시켜 그의 노모를 봉양해 주도록 했다고 한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D002] 순채 농어의 계획 :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채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거늘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하여 명작(名爵)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수레를 명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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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0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지일(冬至日) 뒤에 마을 사람이 노란 게〔黃蟹〕를 준 이가 있었다
눈 가득한 강 언덕엔 얼음이 안 녹았으니 / 雪滿江皐凍未消
이때의 노란 게장은 값이 더욱 높고말고 / 此時黃蟹價增高
손으로 게장 쪼개 들고 술잔을 잡고 보니 / 贈來手劈持杯看
풍미가 필탁의 집게 다리보다 훨씬 낫네 / 風味全勝畢卓螯
[주-D001] 손으로 …… 낫네 :
필탁(畢卓)은 진(晉)나라 때 주호(酒豪)이다. 그가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을 때 한번은 그 이웃집에 술이 익은 것을 알고는 밤중에 그 항아리 곁으로 가서 술을 실컷 훔쳐 마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마침내 술 관장하는 사람에게 붙들려서 꽁꽁 묶여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야 풀려난 일이 있기까지 했다. 그가 또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술을 수백 곡의 배에 가득 싣고, 사철의 맛 좋은 음식들을 배의 양쪽 머리에 쌓아 두고,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게의 집게 다리를 들고서 술 실은 배에 둥둥 떠서 노닌다면 일생을 마치기에 넉넉할 것이다.〔得酒滿數百斛船 四時甘味置兩頭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拍浮酒船中 便足了一生矣〕”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畢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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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1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 하루 전날 밤에 읊다
홀로 앉아 긴 밤 내내 슬퍼하여라 / 獨坐悲長夜
세월은 사람을 몹시도 침범하네 / 流光苦逼人
자시 전까지는 아직 섣달이지만 / 子前猶是臘
닭이 운 뒤에는 바로 봄이 되겠지 / 雞後卽爲春
백발은 귀인을 봐주지 않는다지만 / 白髮不饒貴
등불이야 왜 가난한 자를 저버리랴 / 靑燈那負貧
늙은 아내가 술을 자주 권하니 / 老妻頻勸酒
술잔 가득 진정이 넘치는구나 / 滿酌見情眞
[주-D001] 백발은……않는다지만 :
두목(杜牧)의 〈송은자(送隱者)〉 시에 “세간의 공평한 도리는 오직 백발뿐이라, 귀인의 두상에도 일찍이 봐준 적이 없었네.〔公道世間惟白髮 貴人頭上不曾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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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1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
나는 일생 백년 이내에 / 我於百年內
쉰아홉 번째 봄을 만났는데 / 五十九逢春
해와 달은 재빨리 나는 두 새 같고 / 日月雙飛鳥
천지 사이에는 한 병든 몸이로세 / 乾坤一病身
연한 채소엔 푸른빛이 싱싱하고 / 靑歸盤菜細
진한 막걸리는 하얗게 발효되누나 / 白潑甕醪醇
계절의 사물에 눈이 참 놀라워라 / 節物堪驚眼
인정은 새것 얻는 걸 기뻐하고말고 / 人情喜得新
[주-D001] 연한……싱싱하고 :
옛날 풍속에 입춘일(立春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훈채(葷菜), 즉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나물로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의 〈입춘〉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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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1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청명(淸明)
서글퍼라 청명이 봄 경치를 관장하니 / 怊悵淸明管物華
봄 일의 삼분에 이분이 벌써 지났건만 / 三分春事二分過
동군은 꽃피울 권리를 잘못 배웠기에 / 東君誤學花權柄
이월이 다 가도록 꽃을 못 피우는구나 / 二月終旬未放花
[주-D001] 동군(東君) :
봄을 관장하는 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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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1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청명(淸明)
서글퍼라 청명이 봄 경치를 관장하니 / 怊悵淸明管物華
봄 일의 삼분에 이분이 벌써 지났건만 / 三分春事二分過
동군은 꽃피울 권리를 잘못 배웠기에 / 東君誤學花權柄
이월이 다 가도록 꽃을 못 피우는구나 / 二月終旬未放花
[주-D001] 동군(東君) :
봄을 관장하는 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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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4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 오전 춘첩자(五殿春帖字) 응제(應製). 상(上)이 운(韻)을 명하다.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장락궁 초위에 상서로운 해 길기도 해라 / 長樂椒圍瑞日長
좋은 시절 지금 다시 삼양을 만났네그려 / 令辰今復値三陽
황금빛은 대궐 버드나무에 처음 입혀지고 / 金回御柳初添色
옥 같은 궁전 매화는 은은한 향기를 풍기네 / 玉拆宮梅細送香
화창한 기운은 뜨락 위아래에 왕성하고 / 和氣絪縕庭上下
상서로운 놀은 궁전의 중앙을 감쌌도다 / 祥煙繚繞殿中央
성손께서 삼조에 효도를 극진히 하시니 / 聖孫能盡三朝孝
모덕이 존림하사 만수 무강을 누리시리 / 母德尊臨享壽康
인수왕대비전(仁粹王大妃殿)
대롱의 갈대 재 날려 날 처음 다스워지고 / 葭管灰飛暖始回
구중의 후비궁에 상서론 구름이 열리더니 / 九重椒掖慶雲開
인간에 또 삼양의 통태한 운을 만났으니 / 人間又見三陽泰
천상에선 응당 오만 복이 내려오리로다 / 天上知應萬福來
옥잔은 봄의 상서로운 빛을 흠뻑 담았고 / 玉斝浮春涵瑞色
금번은 해에 비쳐라 새 모양이 공교롭네 / 金幡映日巧新裁
지금 세상에 다행히 여중 요순 만났으니 / 女中今幸逢堯舜
선도 중 가장 첫째 덩이로 축수드리옵니다 / 壽獻仙桃第一枚
왕대비전(王大妃殿)
삼양이 처음 동하여 해는 점점 길어가고 / 三陽初動日舒遲
오색 찬란한 구름은 옥 섬돌을 둘러싸네 / 五色雲光繞玉墀
천지는 봄이 있어 만물을 한창 발육하거니 / 天地有春方發育
궁중엔 무슨 복인들 적시에 오지 않을쏜가 / 宮闈何福不來宜
조고의 훌륭한 덕은 국인이 다 알거니와 / 曹高盛德邦人識
임사의 훌륭한 명성은 국사에 실리리로다 / 任姒徽音國史知
천세토록 장락궁의 경복을 받으시고말고 / 千歲光膺長樂慶
하늘이 수를 응당 수미산과 같게 내리리 / 天敎壽算等須彌
대전(大殿)
대전은 하늘 같아 지극히 밝음 우러르는데 / 大殿如天仰至明
봄이 돌아오니 만물이 다시 생성하리로다 / 春回萬物更生成
영광의 은승 반사하니 명절임을 알겠고 / 榮頒銀勝知佳節
술은 옥 잔에 넘쳐라 태평을 하례하누나 / 酒瀲瑤觴賀大平
해는 오운을 안아서 높은 상서를 바치고 / 日抱五雲呈上瑞
바람은 육설을 녹여 화창한 날을 알리네 / 風消六雪報新晴
원기를 본받은 성주의 인후하신 덕화로 / 體元聖主敦仁化
아름다운 기운이 도성 가득 성대하구려 / 佳氣蔥蘢藹鳳城
중궁(中宮)
곤원이 덕을 같이하여 중궁에 임어하시어 / 坤元協德御中闈
어머니 의범으로 진작 삼궁의 명성 이었네 / 母範三宮早嗣徽
인지의 상서 입어 한창 복을 누리거니와 / 麟趾禎祥方有慶
닭이 운다는 경계 또한 어김이 없고말고 / 雞鳴警戒更無違
마등과 광채 같이함은 이제 처음 보거니와 / 同光馬鄧今初見
임신과 훌륭함 짝하긴 예전에도 드물었네 / 儷美任莘古亦稀
더구나 삼양을 만나 태평한 운세가 열려 / 況値三陽開泰運
하늘에서 모든 복이 다 절로 내려오누나 / 自天諸福畢呈禨
[주-D001] 장락궁(長樂宮) …… 해라 :
장락궁은 한(漢)나라 초기의 궁전(宮殿) 이름이다. 고제(高帝)가 처음 거처하였는데 뒤에는 태후가 항상 거처했던 데서, 전하여 태후의 처소를 가리킨다. 초위(椒圍)는 옛날 후비의 궁전에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으로 산초(山椒) 열매를 섞어서 벽에 발랐던 데서, 전하여 후비의 궁전을 가리킨다.
[주-D002] 좋은 …… 만났네그려 :
《주역(周易)》에 의하면 11월 복괘(復卦)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고, 12월 임괘(臨卦)에 이양(二陽)이 생기고, 1월 태괘(泰卦)에 삼양(三陽)이 생기므로 삼양은 곧 1월, 또는 입춘(立春) 절기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3] 성손(聖孫)께서 …… 하시니 :
여기서 성손은 곧 조선(朝鮮) 성종(成宗)을 가리키고, 삼조(三朝)는 바로 그 당시 대왕대비(大王大妃),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 왕대비(王大妃)를 가리킨다.
[주-D004] 대롱의 …… 다스워지고 :
율관(律管)의 갈대 재가 날린다는 것은 황종(黃鐘), 태주(大簇),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無射), 대려(大呂), 협종(夾鐘), 중려(仲呂), 임종(林鐘), 남려(南呂), 응종(應鐘)의 십이율려(十二律呂)가 1년 12월에 짝하는 것이다. 즉 황종은 11월 동지(冬至), 태주는 정월(正月), 고선은 3월, 유빈은 5월, 이칙은 7월, 무역은 9월, 대려는 12월, 협종은 2월, 중려는 4월, 임종은 6월, 남려는 8월, 응종은 10월에 각각 배속된다. 후기(候氣)의 법칙에 의하면, 방 하나를 삼중(三重)으로 밀폐하고 방 안에 나무 탁자 12개를 각각 방위에 따라 안쪽은 낮고 바깥쪽은 높게 비치한 다음, 이상 12개의 율관을 12개의 탁자 위에 각각 안치하고 갈대 재〔葭灰〕를 각 율관의 내단(內端)에 채워 놓고 절기를 기다려 살피면 매양 한 절기가 이를 때마다 해당 율관의 재가 날아 움직이게 된다. 예컨대 11월 동지에는 황종율관의 재가 움직이고, 12월에는 태주율관의 재가 움직이게 되는 법칙에서 온 말이다. 《律呂新書》
[주-D005] 금번(金幡)은 …… 공교롭네 :
금번은 금박(金箔)을 입혀서 제작한 번승(幡勝)을 가리킨다. 번승이란 곧 입춘일(立春日)에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았던 채색 조화(造花)로, 옛날 풍속에 입춘 때마다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주-D006] 지금 …… 만났으니 :
여중 요순(女中堯舜)은 곧 현성(賢聖)한 부녀를 일컫는 말이다. 송 영종(宋英宗)의 고 황후(高皇后)가 매우 청렴하고 어질어서 사람들이 그녀를 여중 요순이라고 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卷242 英宗宣仁聖烈高后傳》
[주-D007] 선도(仙桃) …… 축수드리옵니다 :
선도는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일찍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선도를 바쳤다는 데서 온 말로, 제왕(帝王)의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뜻으로 쓰인다.
[주-D008] 오색(五色) …… 둘러싸네 :
오색구름이란 본디 신선이 머무는 곳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제왕(帝王)의 처소를 미화하여 선경(仙境)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9] 조고(曹高)의 …… 알거니와 :
조고는 송(宋)나라 인종(仁宗)의 두 번째 후비인 조 황후(曹皇后)와 영종(英宗)의 후비인 고 황후(高皇后)이다. 이들은 모두 근검하고 현덕(賢德)이 있어 명성이 자자 하였다.
[주-D010] 임사(任姒)의 …… 실리리로다 :
임사는 문왕(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과 무왕(武王)의 어머니인 태사(太姒)이다. 《시경》 대아 사제(思齊)에 “공경하신 태임이 문왕의 어머니신데, 시모인 주강께 사랑을 받으사, 경실의 며느리가 되셨더니, 태사가 그 아름다운 명성 이으시어 백인의 아들을 두셨도다.〔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太姒嗣徽音 則百斯男〕”라고 하였다.
[주-D011] 천세(千歲)토록 …… 받으시고말고 :
장락궁은 한(漢)나라 초기의 궁전(宮殿) 이름이다. 고제(高帝)가 처음 거처하였는데 뒤에는 태후가 항상 거처했던 데서, 전하여 태후의 처소를 가리킨다.
[주-D012] 하늘이 …… 내리리 :
수미산(須彌山)은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이른바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다는 산 이름인데, 이 산 주위에는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높이는 8만 4000 유순(由旬)이라고 한다.
[주-D013] 영광의 …… 알겠고 :
은승(銀勝)은 은박지를 오려서 만든 채화(彩花)로, 옛날 입춘일(立春日)에 이것을 백관들에게 하사하면 백관들이 이것을 머리에 꽂고 봄맞이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4] 해는 …… 바치고 :
오운(五雲)은 본디 신선이 머무는 곳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제왕(帝王)의 처소를 미화하여 선경(仙境)에 비유한 것이다.
[주-D015] 바람은 …… 알리네 :
육설(六雪)은 곧 눈을 말한다. 눈이 육각(六角)으로 생겼다 하여 눈의 별칭을 육출화(六出花)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6] 곤원(坤元)이 …… 임어하시어 :
곤원은 대지(大地)가 만물을 자생(資生)하는 덕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왕비(王妃)를 가리킨다.
[주-D017] 어머니 …… 이었네 :
여기서의 삼궁(三宮)은 곧 대왕대비, 인수왕대비, 왕대비를 가리킨다.
[주-D018] 인지(麟趾)의 …… 누리거니와 :
인지는 기린의 발이다. 기린은 본디 인후(仁厚)한 짐승이어서 산 풀도 밟지 않고 산 벌레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시경》 주남(周南) 인지지(麟之趾)에서 주 문왕(周文王)과 후비(后妃)의 인후한 성덕(聖德)에 의해 수많은 자손종족들 또한 모두 인후한 것을 기린에 비유하여 “기린의 발이여, 인후한 공자로소니, 아, 이들이 바로 기린이로다.〔麟之趾 振振公子 于嗟麟兮〕”라고 하였다.
[주-D019] 닭이 …… 없고말고 :
《시경》 제풍(齊風) 계명(雞鳴)에 “닭이 이미 울었는지라, 조정에 이미 신하들이 가득하리라 하더니, 닭이 운 것이 아니라, 쉬파리 소리였도다.〔雞旣鳴矣 朝旣盈矣 匪雞則鳴 蒼蠅之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시는 곧 옛날 어진 왕비가 임금이 행여 조회에 늦을까 염려하여 새벽마다 임금께 일찍 일어나 조회에 나가도록 고한 것을 보고, 시인이 그 일을 아름답게 여겨 노래한 것이라 한다.
[주-D020] 마등(馬鄧)과 …… 보거니와 :
마등은 후한(後漢)의 명장인 복파 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의 딸로 명제(明帝)의 후비(后妃)가 된 마 황후(馬皇后)와, 역시 후한의 명신인 등우(鄧禹)의 손녀로 화제(和帝)의 후비가 된 등 황후(鄧皇后)인데, 모두 현덕(賢德)으로 명성이 높았다.
[주-D021] 임신(任莘)과 …… 드물었네 :
임신은 주 문왕(周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과 문왕의 후비(后妃)이며 무왕(武王)의 어머니로 신(莘)나라에서 시집온 태사(太姒)인데, 모두 성덕(聖德)으로 명성이 높았다. 《시경》 대아 사제(思齊)에 “공경하신 태임이 문왕의 어머니신데, 시모인 주강께 사랑을 받으사, 경실의 며느리가 되셨더니, 태사가 그 아름다운 명성 이으시어 백인의 아들을 두셨도다.〔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太姒嗣徽音 則百斯男〕”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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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4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청명
또 일백육 일 만의 청명 시절을 만나서 / 又値淸明百六日
다시 십천의 좋은 술을 거나히 마시고 / 更傾美酒十千杯
굽은 난간 서쪽으로 발을 걷고 내다보니 / 曲闌西畔鉤簾看
진달래꽃 반쯤 핀 산에 비가 내리는구나 / 躑躅半開山雨來
[주-D001] 또 …… 만나서 :
동지(冬至) 후 105일이 한식(寒食)이고 106일이 청명(淸明)인데, 청명과 한식은 가끔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주-D002] 다시 …… 마시고 :
십천은 곧 만전(萬錢)의 돈을 가리킨 것으로, 왕유(王維)의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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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5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추(立秋)
때는 가을이라 비가 막 개고 나니 / 時秋雨新霽
뜨락에 오동 한 잎새가 떨어지누나 / 一葉落庭梧
얼굴의 야윔은 자못 깨닫겠거니와 / 頗覺容顔減
세월의 흐름은 슬퍼함 직하다마다 / 堪悲歲月徂
덧없는 이름에 벼슬은 이제 싫고 / 浮名厭簪紱
돌아갈 흥취만 강호에 가득하네 / 歸興滿江湖
석양의 뜨락은 조용하기만 한데 / 落日庭除靜
지팡이 의지해 한가히 거니노라 / 閑行信杖扶
[주-D001] 뜨락에 …… 떨어지누나 :
오동나무의 낙엽이 가장 일찍 떨어지기 때문에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시작된 걸 천하가 다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는 고어(古語)에서 온 말로, 즉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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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6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동지(冬至)
중동 달에 일남지를 만났는지라 / 仲冬日南至
갑자삭 야반에 일양이 생기었네 / 子半生一陽
항아리에는 막걸리가 다 익었고 / 瓦甕白醪熟
동이에는 팥죽이 향기로워라 / 砂盆豆粥香
한 송이 매화는 봄소식을 전하고 / 一梅傳小信
세 차례의 눈은 상서를 알리었네 / 三雪報佳祥
아내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며 / 坐對細君語
아이 불러 축수를 올리게 하네 / 呼兒獻壽觴
[주-D001] 중동(仲冬) …… 생기었네 :
일남지(日南至)는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뜻으로, 즉 동지의 별칭이다. 하지 이후로는 태양의 궤도가 북에서 남으로 가고, 동지 이후로는 또 남에서 북으로 가기 때문에 동지일을 일남지라 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삭 야반(甲子朔夜半)이란 책력을 만든 사람이 상고(上古) 시대 11월 갑자삭 한밤중에 동지가 든 날〔十一月甲子朔夜半冬至〕을 역원(曆元)으로 삼았던 데서 온 말이다. 일양(一陽)이 생겼다는 것은 곧 음력 10월에 음기가 다하고 11월 동지가 되면 양기가 처음으로 생기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복괘(復卦) 소(疏)에 의하면 “동지에 양 하나가 생기니, 이는 양은 움직여서 용사하고 음은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冬至一陽生 是陽動用而陰復於靜也〕”라고 하였다.
[주-D002] 세 …… 알리었네 :
동지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지내는 제사를 납제(臘祭)라 하는데, 농가어(農家語)에 의하면 이 납제를 지내기 전까지 세 차례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것을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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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0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입춘일(立春日)에
이옥여(李玉如)의 운에 차하고 겸해서 봄나물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새해엔 병이 많아 귀밑털이 흰 실 같은데 / 新年多病鬢如絲
봄기운은 사람 깔보고 대울을 넘어오네 / 春色欺人過竹籬
소반 가운데 보드라운 생채가 보기 좋아라 / 喜見盤中細生菜
봄의 풍미를 소릉이 나보다 먼저 알았었네 / 少陵風味我先知
오신반의 생채는 실보다 더 가늘고말고 / 五辛盤縷細於絲
반 이랑 새 채소가 울타리 너머에 있네 / 半畝新蔬隔短籬
급히 계집종 불러 백주 가져다 따르노니 / 急喚女奴斟柏酒
한 봄의 이 정취를 그 누구에게 알리랴 / 一春情興許誰知
채승 속의 금화엔 비단실이 한데 모였고 / 勝裏金花簇錦絲
날아온 채연은 동쪽 울타리로 들어오네 / 飛來綵燕入東籬
반쯤 거나하여 의춘 두 글자를 쓰고 나니 / 半酣爲寫宜春帖
새해의 길상은 점치지 않고도 알 만하네 / 新歲佳祥不卜知
[주-D001] 소반……알았었네 :
소릉(少陵)은 두보(杜甫)의 호이다. 옛날 풍속에 입춘일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훈채(葷菜) 즉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나물로 만들어 먹으면서 이것을 오신채(五辛菜) 또는 오신반(五辛盤)이라 일컬었고, 또 이 나물을 소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다. 두보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봄 소반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8》
[주-D002] 채승(彩勝)……모였고 :
채승은 곧 번승(幡勝)과 같은 것으로, 옛 풍속에 입춘일이면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았던 채색한 조화(造花)를 말하는데, 입춘 때마다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금화(金花)는 역시 금실의 조화를 가리킨다.
[주-D003] 날아온……들어오네 :
채연(綵燕)은 채색 종이를 오려서 만든 제비를 말하는데, 옛 풍속에 입춘일이면 이것을 머리 위에 꽂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의춘(宜春) :
옛날 입춘일이면 조그마한 종이를 오려서 이 두 글자의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글씨로 쓰기도 하여 창호, 기물, 채승 등의 위에 붙여서 봄맞이〔迎春〕를 표시한 데서 온 말이다. 당나라 최융(崔融)의 〈춘규(春閨)〉 시에 “의춘 글자를 오려 만들려고 하니, 봄추위가 가위 속에 들어오누나.〔欲剪宜春字 春寒入剪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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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보유 제2권 / 시류(詩類) 습유(拾遺)한 시 / 서거정(徐居正)
입춘(立春)
나는 일생 백년 동안에 / 我於百年內
쉰아홉 번의 봄을 만나고 보니 / 五十九逢春
일월은 한 쌍의 나는 새처럼 빠르고 / 日月雙飛鳥
나는 천지간에 한 병신이로다 / 乾坤一病身
파란빛은 소반의 보드란 채소요 / 靑歸盤菜細
하얀 것은 동이에 괸 막걸리로다 / 白潑甕醪醇
계절의 물건 보기에 참 놀라워라 / 節物堪驚眼
인정은 새로운 것 얻음을 기뻐하네 / 人情喜得新
[주-D001] 파란빛은 …… 채소요 :
옛날 풍속에 입춘일(立春日)이면 봄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훈채(葷菜), 즉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나물로 만들어 먹으면서 이것을 오신채(五辛菜), 또는 오신반(五辛盤)이라 일컬었고, 또 이 나물을 소반에 담아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인데,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봄 소반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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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 제2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 정도전(鄭道傳)
입춘날 도은의 시에 차운하다[立春日次陶隱詩韻]
동녘 들엔 잔설이 남아 있는데 / 東郊猶臘雪
바로 또 한 해의 처음이로세 / 又是一年初
나물은 새것을 맛보게 되고 / 菜得甞新味
부적은 묵은 글을 바꿔 붙이네 / 符將換舊書
장한 마음 날을 따라 줄어만 가고 / 壯心隨日减
미친 태도 세상과 성글 수밖에 / 狂態與時疎
애오라지 시구를 지어 쓰노니 / 聊用題詩句
숨긴 회포 그대에게 풀어 보자고 / 幽懷向子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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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탄집 제4권 / 시(詩) / 이승소(李承召)
입추일〔立秋日〕
만리 아득 높은 하늘 푸른빛은 끝없는데 / 天高萬里碧迢迢
우물가의 외론 오동 한 잎새가 떨어지네 / 金井孤梧一葉彫
맑은 시내 해 비치어 빛의 물결 일렁이고 / 日射淸溪光灩灩
성긴 대숲 바람이 쳐 나는 소리 쓸쓸하네 / 風敲疎竹響蕭蕭
타향에서 보낸 세월 사람 늙게 하는 데다 / 他鄕歲月令人老
고향 땅의 관산 모습 꿈에서도 아득 머네 / 故國關山入夢遙
도처마다 아전 와서 서명하여 달라 하니 / 到處吏求書紙尾
나그네 길 가을 흥은 무료하기 그지없네 / 客中秋興正無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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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탄집 제9권 / 시(詩) / 이승소(李承召)
춘첩자〔春帖字〕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황금전 위에 뜬 해 처음으로 길어지니 / 黃金殿上日初長
만물 모두 기뻐하며 태양 있는 쪽 향하네 / 萬物欣欣向太陽
요지에서 잔치할 때 자하액을 마셨으며 / 每宴瑤池紫霞液
앞다투어 왕모 먹던 벽도 향기 과시했네 / 爭誇王母碧桃香
오랫동안 수성 떠서 남극에서 빛나더니 / 壽星久出明南極
춘색 먼저 돌아와서 미앙궁에 들어갔네 / 春色先回入未央
삼조 두루 보우하여 깊은 은택 많았거니 / 歷祐三朝多厚澤
춘추 다시 강녕하게 누리기를 축원하네 / 千秋更祝享强康
왕대비전(王大妃殿)
동조에 봄 돌아와서 하얀 해가 더디 가니 / 春入東朝白日遲
피어나는 상서 안개 단지 주위 에워쌌네 / 祥煙郁郁擁丹墀
성군께서 마음 다해 삼조 봉양 잘하거니 / 聖君心盡三朝養
문모 은혜 깊거니와 백복 받음 마땅하네 / 文母恩深百祿宜
장락궁의 높은 풍모 지금 다시 보거니와 / 長樂高風今更覩
〈관저〉 시의 정숙한 덕 세상이 다 알고 있네 / 關雎淑德世曾知
사람마다 천년의 수 누리기를 축원하니 / 人人共祝千年壽
천교 도와 왕이 정사 잘 마치게 할 것이리 / 純祐天敎俾爾彌
인수왕대비전(仁粹王大妃殿)
넘실대는 고운 봄빛 대궐 안에 돌아오니 / 韶光艶艶禁中回
궁전 가의 상서 구름 오색 빛을 띠었구나 / 殿角祥雲五色開
함께 봄빛 맞이함이 오늘부터 시작되니 / 共迓春光今日始
크나큰 복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를 알라 / 須知景福自天來
천추토록 영광스러운 봉양 비길 데 없거니 / 千秋榮養無能擬
만백성들 기쁜 마음 가누기가 쉽지 않네 / 萬姓歡心未易裁
삼수로다 벗 삼은 걸 누가 송축 바치는가 / 三壽作朋誰獻頌
금규에서 대조하는 추매 있어 송축하네 / 金閨待詔有鄒枚
대전(大殿)
중천 보니 상서로운 해가 밝게 비추이고 / 快覩中天瑞日明
봄이 와서 만물들이 생성되는 은택 입네 / 春來萬物荷生成
하늘과 땅 교태하여 원기가 잘 흐르거니 / 乾坤交泰流元氣
요사 거듭 빛이 나서 태평 시대 이루었네 / 姚姒重華致太平
이미 토우 보냈거니 농사짓기 좋을 건데 / 已遣土牛宜稼穡
누가 석연 가지고서 맑고 흐림 점치려나 / 誰將石燕卜陰晴
온 사방이 무사하여 풍진 잠자 고요하니 / 四方無事風塵靜
오직 고운 봄빛만이 금성 주위 가득하네 / 唯有韶光滿禁城
중궁(中宮)
고운 모습 내전 안에 존귀하게 거처하며 / 儷體尊居自禁闈
삼전에게 귀염 받아 아름다운 덕 이었네 / 承歡三殿嗣音徽
엄숙하고 화락한 덕 사람들 다 우러르며 / 肅雍有德人皆仰
서로 간에 잘 경계해 절로 어기지를 않네 / 儆戒相成自不違
태액지에 바람 고와 봄빛이 막 동하거니 / 太液風和春色動
깊은 궁전 낮은 길어 누각소리 더디구나 / 深宮晝永漏聲稀
누가 능히 다시금 또 〈초화송〉을 올리려나 / 誰能更進椒花頌
아들 많아 만세 기틀 이루기를 축원하네 / 共祝多男萬世機
[주-D001] 춘첩자(春帖字) :
입춘일(立春日)에 대궐 안에 있는 전각의 기둥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인데, 제술관에게 명하여 하례하는 시를 지어 올리게 하고 꽃무늬가 있는 종이에 써서 붙였다.
[주-D002] 요지(瑤池)에서 …… 마셨으며 :
요지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하는 선경(仙境)이고, 자하액(紫霞液)은 신선들이 마신다고 하는 음료인데, 여기서는 대궐의 술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3] 앞 …… 과시했네 :
왕모(王母)는 곤륜산에 사는 전설 속의 여자 신선 서왕모(西王母)로 불로장생하였다고 하며 벽도(碧桃)는 반도(蟠桃)로,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인데, 삼천 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漢武帝故事》
[주-D004] 수성(壽星) :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로, 노인성(老人星)이라고도 한다.
[주-D005] 미앙궁(未央宮) :
한나라 고조(高祖) 때 지은 궁전으로, 신하들의 조회(朝會)를 받던 곳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을 뜻한다.
[주-D006] 단지(丹墀) :
붉은 칠을 한 궁전의 지대(址臺)를 말한다.
[주-D007] 삼조 봉양(三朝奉養) :
어버이에게 하루에 세 차례를 조현(朝見)하는 것으로, 《예기》 〈문왕세자(文王世子)〉에 이르기를 “문왕이 세자로 있을 적에는 왕계(王季)에게 매일 세 번씩 조현하였다.” 하였다.
[주-D008] 문모(文母) :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로 황모(皇母)와 같은 말이다.
[주-D009] 관저(關雎) 시 :
《시경》 〈관저〉 시로, 후비(后妃)의 덕이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시인데, 그 시에 이르기를 “구욱구욱 물수리 강가 모래섬에서 우니, 아름다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다.〔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하였다.
[주-D010] 천교(天敎) :
하늘의 가르침을 말한다.
[주-D011] 삼수(三壽)로다 …… 걸 :
삼수는 장수한 삼경(三卿)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비궁(閟宮)〉에 이르기를 “삼수로 벗을 삼아, 뫼처럼 능처럼 견고히 하소서.〔三壽作朋 如岡如陵〕” 하였는데, 이는 임금과 신하가 경사를 함께하는 것을 축하하는 말이다.
[주-D012] 금규(金閨)에서 …… 송축하네 :
금규는 한나라 때의 궁궐 문인 금마문(金馬門)으로, 본디 학사(學士)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이었는데, 전하여 조정을 가리킨다. 추매(鄒枚)는 서한(西漢) 양 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었던 추양(鄒陽)과 매승(枚乘)의 병칭으로, 보통 시종하는 문신(文臣)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13] 요사(姚姒) :
요(姚)는 우순(虞舜)의 성(姓)이고 사(姒)는 하우(夏禹)의 성으로, 순 임금과 우 임금 같은 성군(聖君)을 가리킨다.
[주-D014] 토우(土牛) :
흙으로 만든 소인데, 옛날에 입춘일에 이를 만들어서 찬 기운을 보내고 농사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민속이 있었다.
[주-D015] 석연(石燕) :
중국 영릉산(靈陵山)에 있는, 모양이 마치 제비처럼 생긴 돌로, 뇌풍(雷風)을 만나면 제비처럼 날아오르는데, 이는 큰비가 내릴 조짐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석연〉에 이르기를 “제비처럼 생겼고 무늬가 있는데 둥글고 큰 것이 수놈이고, 길고 작은 것이 암놈이다.” 하였으며, 허혼(許渾)의 〈금릉회고(金陵懷古)〉 시에 이르기를 “돌 제비가 구름 털면 개인 날도 비가 오고, 강 돼지가 물 뿜으면 밤 되어 바람 불지.〔石燕拂雲晴亦雨 江豚吹浪夜還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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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8권 / 시(詩)○칠언고시(七言古詩) 25수 / 신흠(申欽)
지일행(至日行)
거년 동짓날에는 금릉촌에 있으면서 / 去年至日金陵村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평온한 가운데 / 一家百口皆溫存
잘 끓인 팥죽이 우유보다 감미로와 우리 나라 풍속에 동짓날이면 팥죽을 끓여 먹는 고사가 있다. / 爛烹豆粥甘於乳
처자들 남쪽 창 아래 앉아 서로 권했지 / 妻孥相勸當南軒
금년 동짓날에는 노강 가에 있다보니 / 今年至日鷺江渚
외로이 부친 한 몸뚱이 누구와 짝을 할꼬 / 一身孤寄誰與侶
여관의 푸른 등불은 벽을 반쯤 비추는데 / 旅燈靑熒照半壁
강은 만 길이나 얼고 바람도 매서워라 / 江氷萬丈風如怒
덧없는 인생 본디 달린 곳이 없거니와 / 浮生本自無根蔕
영해에 떠돌아 정한 주인도 없는데 / 嶺海飄飄靡定主
옛 친구는 각기 먼 곳에 쳐박혀있고 / 舊遊零落各天涯
신진들은 다 우뚝이 높은 자리에 올랐네 / 新貴崢嶸盡當路
묻건대 원로 대신이 누가 남았는고 / 元臣故老問孰遺
입으로는 말 못하고 마음으로만 말하노라 / 口不敢陳心自語
아 이 노래여 노래 이미 슬퍼라 / 嗚呼此歌歌已悲
명년 동짓날에는 어느 곳에 있을는지 / 明年至日知何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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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9권 / 시(詩)○오언율시(五言律詩) 1백 23수 / 신흠(申欽)
동지에 눈온 것을 보고
영외의 여러 친구들을 생각하다[至日見雪 億嶺外諸友]
동짓날에 또 눈을 만나니 / 至日又逢雪
궁벽한 집 더욱 적막하구려 / 幽居增寂寥
험난한 세상길엔 온갖 근심 모이고 / 危途百憂集
머나먼 객지엔 친구도 멀어라 / 絶域故人遙
책력을 펼치매 해 바뀐 게 놀랍고 / 檢曆驚年換
거울 대하매 귀밑털 센 것이 애석하네 / 臨銅惜鬢凋
그러나 호해의 뜻만은 남아 있어 / 惟餘湖海意
늙어가도 완전히 사라지질 않는다오 / 老去未全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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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9권 / 시(詩)○오언율시(五言律詩) 1백 23수 / 신흠(申欽)
동지에 병으로 자리에 누워서[至日病臥]
병이 오래가매 의원이 짝이 되고 / 病久醫爲伴
한가하매 자는 것이 버릇되었네 / 閑來睡作鄕
또 동짓날을 만나서 / 又逢南至日
새로 북극성에 기도를 하노니 / 新試北辰方
향로엔 향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고 / 小鴨香煙細
개인 창엔 아침 햇살 빛나도다 / 晴窓曉旭光
영주를 스스로 아껴 보호해야지 / 靈珠須自媚
땅속엔 미세한 양기가 움직이나니 / 地底動微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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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3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10수 / 신흠(申欽)
동지를 축하하며[賀至]
깊고 깊은 대궐 안에 뻗은 연로 넓은데 / 鳳幄深深輦路寬
금중의 종소리에 새벽빛이 차가워라 / 禁鐘聲裏曉光寒
소소의 곡 한 가락 어우러져 퍼지고 / 簫韶一曲音初合
원로의 일천 관원 그림자 원만하구나 / 鵷鷺千官影正團
열어놓은 옥의에 둥근달이 비추이고 / 璧月正臨開玉扆
활짝 트인 금란전에 붉은 구름 에워쌌네 / 絳雲高拱敞金鑾
사랑 은혜 봄기운 함께 베푸는 게 제격이라 / 仁恩要與陽和布
성주께선 오늘날 일년의 시작 중시해 / 聖主如今重履端
[주-D001] 연로 :
왕의 수레가 항상 경유하는 길로, 곧 대궐의 길을 가리킨다.
[주-D002] 소소 :
순임금이 만든 음악의 이름으로, 궁중의 음악을 뜻한다.
[주-D003] 원로 :
원추새와 백로인데, 이 두 새의 의용(儀容)이 한아하여 조정에 늘어선 백관의 질서 정연함에 비유한다. 곧 조정의 관원을 가리킨다.
[주-D004] 옥의 :
옥으로 장식한 궁중의 호화로운 병풍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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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3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10수 / 신흠(申欽)
동짓날 지봉에게 부치다[至日寄芝峯] 2수
처마에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 들릴락말락 / 簷溜泠響欲殘
소춘의 하늘 기운 아직 차지 않는데 / 小春天氣未全寒
수압에서 피어나는 용연 향기 맴돌고 / 香添睡鴨龍涎逗
풍로에 끊는 차 거품 해안이 둥글둥글 / 茗潑風爐蠏眼團
이 생애를 세속사에 이끌리게 하지 말자 / 休遣此生牽俗累
뜬세상에 맑은 기쁨 적음을 항상 시름해 / 每愁浮世少淸歡
남쪽 향한 매화 가지 꽃소식이 있을 텐데 / 南枝定有花消息
세밑에 어느 누가 나와 함께 구경할꼬 / 歲暮何人共我看
이(二)
금방금방 날짜 지나 거울 속엔 하얀머리 / 鏡中華髮日翩翩
대약 먹어 해상 신선 이루기가 어렵다네 / 大藥難成海上仙
일이 없어 서수의 술 들이킴도 무방하고 / 無事豈妨犀首飮
마음 있어 이따금 자운 태현경 초하네 / 有心時草子雲玄
사람 대해 말이 없어 졸렬하기 짝이없고 / 對人不語聊依拙
궤에 기대 기심 잊어 흡사 참선하는 듯 / 隱几忘機太類禪
창밖 몇몇 산봉우리 수려한 빛이 많은데 / 窓外數峯多秀色
풍설 가득한 저 하늘 그야말로 아득하네 / 滿天風雪正蒼然
[주-D001] 소춘 :
음력 10월로 소양춘(小陽春)이라고도 한다. 10월은 아직 추워지지 않아 초봄과 같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2] 수압 :
조는 오리 모양의 향로. 속이 비어 있어 그 안에 향을 피우면 연기가 입으로 피어나오므로 청한(淸閑)을 즐기는 사람의 애용물이다.
[주-D003] 용연 :
향유고래의 분비물의 일종인데 다른 종류의 향물(香物)과 배합하면 향의 농도가 진해져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진귀한 향료로 취급된다. 범수(汎水)ㆍ삼사(滲沙)ㆍ어식(魚食) 등 별칭이 있다.
[주-D004] 해안 :
게 눈알로, 물이 막 끓기 시작할 때의 작은 거품을 형용한 것이다.
[주-D005] 대약 :
도가에서 불로장생의 약으로 쓰인다는 금단(金丹)이다.
[주-D006] 일이 …… 무방하고 :
서수는 호아장군(虎牙將軍)과 유사한 상고 때의 벼슬 이름인데, 전국시대 위(魏) 나라 공손연(公孫衍)이 그 벼슬을 하였다 하여 그를 가리킨다. 당시의 유세가(遊說家) 진진(陳軫)이 공손연을 연(燕)ㆍ조(趙)ㆍ제(齊) 세 나라의 재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계책을 말해주기 위해 그를 만났을 때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까?” 하자, 대답하기를 “할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70 陳軫傳》
[주-D007] 마음 …… 초하네 :
자운은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고 태현경은 그가 《주역》을 모방하여 지은 책이다. 부귀와 빈천(貧賤)에 전혀 무관심하고 깊이 사색하기를 좋아한 양웅이 천지 음양의 이치를 말하는 《태현경》을 초했던 것처럼 상촌 또한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주-D008] 궤에 …… 잊어 :
기심은 이해와 득실을 따지는 간교한 마음. 기심을 잊는다는 것은 맑고 담박한 것을 즐기고 세상사에 관심이 없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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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6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05수 / 신흠(申欽)
청명절을 만나 감회를 쓰다[逢淸明節感懷]
숲비둘기 벗을 찾고 제비 진흙 풀렸는데 / 林鳩相喚燕泥融
객중에 청명절을 몇 번이나 만났는고 / 客裡淸明幾度逢
한차례 더 온 산중비 꽃송이가 탐스럽고 / 山雨乍添花朶膩
시내 안개 일어나자 버들 그늘 짙어지네 / 溪煙初起柳陰濃
탁자 머리 주렴 걷자 향구름이 피어나고 / 床頭簾捲香雲皺
뜨락가에 인적 없어 돌이끼가 덮였구나 / 庭畔人稀石髮封
세월아 나그네 한을 재촉하지 말아 다오 / 休遣年華催旅恨
쓸쓸한 절반 인생 실의에 빠졌거니 / 半生蕭瑟坐龍鍾
[주-D001] 제비 진흙 풀렸는데 :
제비가 물어다가 집을 지을 진흙이 추위에 얼었다가 풀렸다는 것으로, 땅이 녹은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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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8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46수 / 신흠(申欽)
입춘(立春)
백엽주에 도부로 한 해가 또 시작인데 / 柏葉桃符歲事新
늙어가니 가절이라도 자꾸만 망설여지네 / 暮年佳節重逡巡
오늘 아침엔 억지로라도 의춘이라 써 붙이리 / 今朝强帖宜春字
꽃과 새는 원래가 사람 속이지 않으니까 / 花鳥元來不負人
[주-D001] 도부(桃符) :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 정월 초하룻날 잡귀를 막는 뜻으로 그것을 문짝에다 붙여두는 풍습이 있었음.《本草 桃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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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8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46수 / 신흠(申欽)
입춘 후에 비가 내리다[立春後小雨]
가랑비가 슬그머니 따스한 기후 재촉터니 / 小雨暗催天氣暖
버드나무 눈썹에는 어느 새 봄이 왔네 / 韶華偏着柳眉頻
해마다 풍월이나 한가롭게 맡아 보지 / 年年管領閒風月
인간사 어쩌고 저쩌고 따져 묻지 않는다네 / 莫問人間事事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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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9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75수 / 신흠(申欽)
대설(大雪)
골짝 메우고 산을 묻고 눈 닿는 덴 다 똑같아 / 塡壑埋山極目同
온 세계는 구슬이요 집들은 수정일레 / 瓊瑤世界水晶宮
인간에 화사가 수도 없이 있지마는 / 人間畵史知無數
음양의 조화만은 그리기가 어렵다네 / 難寫陰陽變化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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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9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75수 / 신흠(申欽)
기유년 춘첩[己酉春帖]
.이 늙은이 명성은 돈으로 값 칠게 못 되고 / 此老聲名不直錢
덩그렇게 누워서 단잠을 잘 즐긴다네 / 唯宜高枕事酣眠
아이 불러 겨우겨우 입춘첩을 쓰이면서 / 呼兒强寫宜春帖
병 없고 걱정 없이 백년을 지나자 했네 / 無病無憂過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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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20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66수 / 신흠(申欽)
큰 눈[大雪]
오두막이 높이높이 반공에 걸려 있어 / 小屋迢迢掛半空
내려다보면 평야가 끝도 없이 질펀한데 / 俯臨平野勢無窮
센 바람이 일천 비탈의 눈을 모두 몰아다가 / 長風吹捲千厓雪
산천들을 똑같은 모양으로 바꿔놓았네 / 變盡山川一氣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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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20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66수 / 신흠(申欽)
입춘일에 짓다[立春日作]
병을 한참 앓았더니 뼈마저 오그라졌나봐 / 臥病經時骨骼低
사립문도 쓸쓸맞게 남계를 막고 있고 / 柴扉蕭瑟掩南谿
봄이 와도 다시는 전과 같은 흥이 안나 / 春來不復當年興
문 위에다 입춘첩을 써 붙일 맘이 없네 / 帖子無心向戶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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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20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66수 / 신흠(申欽)
대설(大雪)
만리를 뻗은 구름 울퉁불퉁 험상궂고 / 長雲萬里正崔嵬
겨울 기운 천 겹으로 산골짝에 밀어닥치네 / 絶峽千重朔氣催
어젯밤 소양강에 눈이 많이 내렸던지 / 昨夜昭陽江上雪
아침에 봉황대가 보이지 않네 그려 / 朝來不見鳳凰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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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1권 / 시(詩)○북정록(北征錄) / 박세당(朴世堂)
병오년(1666, 현종7) 겨울부터 정미년(1667) 봄까지 ○ 북도 병마평사(北道兵馬評事)로 부임할 때 지은 것이다.
동지(冬至)
세상 끝자락 벼슬살이에도 일양은 생겨나건만 / 羈宦天涯生一陽
생사로 갈렸으니 한만 괜스레 길구나 / 死生隔別恨空長
나그네 신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들 / 客身縱使還家得
팥죽이나마 누가 한번 먹어 보라 권해 주랴 / 豆粥何人勸一嘗
[주-D001] 일양(一陽)은 생겨나건만 :
《주역(周易)》 복괘(復卦)는 음(陰)이 극성한 중에 다시 밑에서 일양이 생겨나는 상인데, 이것이 동지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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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박세당(朴世堂)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춘첩(春帖) 3장(章)
신년에 신년이 되었음을 기뻐하고 / 新年喜新年
기쁜 일 자주 생김을 기뻐하네 / 喜事喜頻頻
곡식은 풍년 들고 전원엔 과실 익어 / 田穀豐登園果好
태평 시절에 한가한 사람 되었으면 / 太平時節作閑人
신년에 신년이 되었음을 좋아하고 / 新年好新年
좋은 일 자랑할 만함을 좋아하네 / 好事好堪誇
남쪽 마을 사람 노래 북쪽 마을 이어지고 / 南里人歌賡北里
동쪽 집 늙은이 서쪽 집과 부유함을 자랑했으면 / 東家翁富鬪西家
신년에 신년이 되었음을 즐거워하고 / 新年樂新年
즐거운 일 다시 흡족함을 즐거워하네 / 樂事樂更愜
집집마다 찧은 곡식 창고에 넘쳐나고 / 家家舂粟溢囷倉
사람마다 지은 옷 상자에 가득했으면 / 人人製衣盈箱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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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 박세당(朴世堂)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춘첩(春帖)
청산도 빛깔을 바꾸지 않고 / 靑山不改色
유수도 소리를 바꾸지 않네 / 流水不改聲
오직 바라건대 주인옹도 / 唯願主人翁
은거의 뜻을 바꾸지 말기를 / 不改幽棲情
둘
꽃 필 때 바람 불지 말고 / 花時無風
잎 질 때 서리 내리지 말길 / 葉時無霜
시골 사람 별 탈 없이 / 野人無疾
한 해 내내 유유자적하길 / 終歲倘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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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 박세당(朴世堂)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동짓날 밤에 우레 소리를 듣다
봄은 언제 이르는가 / 春却何時到
오늘 한밤중에 돌아오리라 / 應從半夜回
벌써 동면하는 벌레 깨어나도록 재촉하려고 / 已催群蟄起
우레 한 소리 먼저 보내는구나 / 先送一聲雷
[주-D001] 동짓날 …… 듣다 :
동짓날은 《주역》으로는, 양효(陽爻)가 다 사라져 순음(純陰)의 상태인 곤괘(坤卦)에서 양효가 아래에 다시 하나 생긴 지뢰(地雷) 복괘(復卦)에 해당하는데, 이는 땅 아래에서 우레가 일어나는 형상으로, 폐쇄되었던 기운이 열리어 만물의 활동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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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 이민서(李敏敍)
동짓날 옥당의 동료에게 부쳐 보이다 2수〔至日 寄示玉堂僚友 二首〕
〈박〉과 〈복〉은 서로 옮겨 가고 / 剝復互推移
음과 양은 본래 처음 없으니 / 陰陽本無初
이로부터 알겠네 돌아가 굽혔다가 / 從知反而屈
다시 성대하게 불어오는 것을 / 轉作盎然噓
뜻있는 선비는 시절의 변화 보고 / 志士觀時化
사물에 감응해 탄식하나니 / 感物爲欷歔
치란은 언제나 있지만 / 治亂雖常數
성인은 헛되이 살지 않는다네 / 聖人生不虛
자신을 새롭게 하고 백성 새롭게 하는 일 / 自新與新民
이를 행하면 여유가 있으리니 / 爲之則有餘
바라건대 자네들은 계옥 힘써 / 願子勤啓沃
조정에 훌륭한 말 올리시게 / 昌言獻玉除
2
강이 돌아오는 절기에는 / 時當剛反節
불원복의 뜻 취하니 / 義取不遠復
새로 알았으면 반성할 수 있고 / 新知可抽省
옛 허물은 마땅히 고쳐야 하네 / 舊過當按伏
단서 구함은 한 생각에서 시작되고 / 求端一念始
지극함에 이르면 온갖 선 충족되나니 / 造極萬善足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 天下何思慮
사람에겐 절로 욕심 있다네 / 人心自有欲
극기복례를 / 克己而復禮
선현들은 힘썼으니 / 前脩以爲勖
번거롭게 한다고 그대들은 혐의하지 말게 / 願子勿嫌瀆
《시경》의 뜻에서 자주 경계했다네 / 詩義頻戒告
[주-D001] 박(剝)과 …… 가고 :
〈박〉과 〈복〉은 《주역》의 괘(卦) 이름이다. 〈박괘〉는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다하는 괘인데, 다시 〈복괘〉로 순환된다. 〈복〉은 음이 극성(極盛)한 중에 다시 밑에서 일양(一陽)이 나는 괘인데, 이것은 동지(冬至)에 해당되는 것이다.
[주-D002] 음과 …… 없으니 :
음과 양이 계속 순환함을 말한 것이다. 《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太極圖》
[주-D003] 계옥(啓沃) :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을 인도하고 보좌한다는 뜻이다. 《서경》 〈열명(說命)〉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셔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하였다.
[주-D004] 강(剛)이 돌아오는 절기 :
동지(冬至)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주역》 〈복괘(復卦) 단(彖)〉에 “복(復)이 형통함은 강이 돌아오기 때문이다.[復亨, 剛反.]”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5] 불원복(不遠復)의 뜻 취하니 :
멀리 가지 않고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잘못을 깨닫고서 금세 바른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주역》 〈복괘 초구(初九)〉에 “멀리 가지 않고서 되돌아오니,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요, 크게 좋을 것이다.[不遠復, 无祗悔, 元吉.]” 하였는데, 정이(程頤)의 전(傳)에 “복은 양(陽)이 돌아와서 회복함이니, 양은 군자(君子)의 도(道)이므로 복은 선(善)으로 돌아오는 뜻이 된다. 초(初)는 양강(陽剛)이 와서 회복하여 괘의 초(初)에 처하였으니, 돌아오기를 가장 먼저 한 자이니, 이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주-D006]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보이는 말로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7] 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고 천리(天理)를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論語 顔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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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 이민서(李敏敍)
동지 다음 날 춘방에서 직숙하면서 회포를 적다〔至後一日直春坊書懷〕
중동에 해가 남쪽 끝에 이르니 / 仲冬日南至
낮은 짧고 밤은 어찌 그리 긴지 / 晝短夜何長
하나의 양이 막 생겨났으나 / 一陽纔萌達
궁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 窮陰尙未央
맑은 새벽 대궐에 앉았노라니 / 省闈坐淸曉
모든 문에 밝은 달빛 비추네 / 千門明月光
미천한 재주로 성상의 은혜 입어 / 微才叨主恩
보잘것없는 몸 춘방에 올랐지만 / 薄軀登春坊
부끄럽게도 두루 살피지 못하고 / 周省愧無有
걸핏하면 진퇴에 방해받았지 / 進退動見妨
곁에서 모신 것은 잠깐이요 / 延接旣少時
또한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으니 / 輔翼亦違方
소찬은 나의 뜻 아니어라 / 素餐匪我志
돌이켜봄에 스스로 상심한다오 / 顧已謾自傷
내 듣건대 낙양생이 / 吾聞洛陽生
상소하여 흥망을 논할 제 / 上書論興亡
보부의 직책 간절히 아뢰고 / 丁寧保傅職
주왕, 진왕에 감동하고 탄식했다지 / 感歎周秦王
세상엔 눈물 흘리는 자 없어 / 世無流涕者
이 훌륭한 말 뉘 알아주리 / 孰知斯言良
청요직에 어찌 헛되이 얽매이랴 / 淸班豈虛拘
심히 자책하매 감당키 어렵구나 / 厚責誠難當
[주-D001] 해가 …… 이르니 :
원문의 ‘남지(南至)’는 동지의 별칭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 기사에 “태양이 남쪽에 이르렀다.[日南至]”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다.[冬至之日, 日南極.]” 하였다.
[주-D002] 하나의 …… 않았는데 :
‘궁음(窮陰)’은 음(陰)이 꽉 찬 상태로 음력 10월을 뜻한다. 10월은 순음(純陰)인 《주역》의 〈곤괘(坤卦)〉에 해당하고, 동지가 되면 양효(陽爻) 하나가 아래에서 생겨나 11월의 〈복괘(復卦)〉가 된다.
[주-D003] 소찬(素餐) :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준말로,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차지하고서 국록을 축낸다는 뜻인데, 흔히 겸사로 쓰인다.
[주-D004] 낙양생(洛陽生)이 …… 제 :
한 문제(漢文帝) 때 낙양(洛陽) 사람인 가의(賈誼)가, 당시 흉노(匈奴)가 변경을 침략하고 국가는 건국 초기여서 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후들의 잇따른 역모가 발생하자, 이러한 국가적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상소를 올린 것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05] 보부(保傅)의 …… 아뢰고 :
태자(太子)를 교도(敎導)하는 태보(太保)와 태부(太傅)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가의가 올린 상소 가운데 “하(夏)ㆍ은(殷)ㆍ주(周)는 천자 노릇 한 것이 모두 수십 대(代)였고, 진(秦)나라는 천자가 된 지 2대 만에 망하였으니, 사람의 성품이 크게 서로 다르지 않은데, 어찌하여 삼대(三代)의 군주는 도(道)가 있어 장구하였고 진나라는 무도하여 갑자기 망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왕자(王者)는 태자가 태어나면 예(禮)로써 거행하여 유사(有司)가 재계하고 엄숙히 하며 현단복(玄端服)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서 남쪽 교외에서 하늘을 뵙게 하였으며, 대궐을 지나가면 수레에서 내리고 사당을 지나면 종종걸음으로 걷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갓난아이 때부터 가르침이 진실로 이미 행해졌으며, 두세 살이 되어 지식이 있으면 삼공(三公)과 삼소(三少)가 효(孝)ㆍ인(仁)ㆍ예(禮)ㆍ의(義)를 밝혀서 인도하여 익히게 하고, 간사한 사람을 쫓아 버려 태자로 하여금 악행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천하의 단정한 선비로서 효도하고 공경하고 문견이 넓으며 도학(道學)이 있는 자를 모두 뽑아서 태자를 호위하고 보익(輔翼)하게 하여 태자와 함께 거처하고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태자가 비로소 태어나면 올바른 일을 보고 올바른 말을 듣고 올바른 도를 행하여 좌우와 전후가 모두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삼대 시대가 장구했던 까닭은 그 태자를 보익함에 이러한 갖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이민서가 세자시강원에 있었으므로 태보의 역할을 언급한 것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06] 주왕(周王) …… 탄식했다지 :
하ㆍ은ㆍ주 삼대의 선정(善政)과 진(秦)나라의 악정(惡政)을 역설하며 탄식하였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07] 세상엔 …… 없어 :
국가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원문의 ‘유체(流涕)’는 가의가 올린 상소에서 “신(臣)이 지금의 사세(事勢)를 삼가 생각해 보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이고, 눈물을 흘릴 만한[流涕] 것이 두 가지입니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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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집 제3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 이민서(李敏敍)
대전의 춘첩 2수〔大殿春帖子 二首〕
대궐에 봄빛이 들어오니 / 紫禁春光入
섬돌의 명 이파리 비로소 돋아납니다 / 階蓂葉始生
희생양으로 하정의 초하루를 반포하노니 / 餼羊頒夏朔
돌아가는 기러기는 이미 봄 울음소리를 냅니다 / 歸雁已春聲
풀 누우니 바람 움직임을 보고 / 草偃看風動
인재들 등용되어 도 형통함을 즐깁니다 / 茅征樂道亨
소신이 또 눈을 닦고 보니 / 小臣還拭目
국운이 태평성대에 이르렀습니다 / 邦命際昇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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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에 봄이 먼저 찾아오니 / 上苑春先得
천문에 상서로운 빛이 새롭습니다 / 天門瑞色新
양기는 삼 획의 태괘로부터 오고 / 陽從三畫泰
교화는 사방의 백성에게 미칩니다 / 化及四方民
하늘의 덕은 만물을 낳아 주기에 크고 / 天德生爲大
왕의 마음은 사랑을 베푸니 인이라고 합니다 / 王心愛曰仁
천년토록 태평성대 누릴 사업이 / 太平千歲業
바라보니 올봄부터 시작됩니다 / 翹首自今春
[주-D001] 섬돌의 …… 돋아납니다 :
새해가 되었다는 말이다. 원문의 ‘명(蓂)’은 상상의 풀이다. 요(堯) 임금의 뜰에 ‘명’이라는 식물이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생기고 보름이 지난 후 그믐까지는 하루에 한 잎씩 져서 일력(日曆)의 역할을 했다 한다.
[주-D002] 희생양으로 …… 반포하노니 :
주(周)나라 때 해마다 새해가 돌아오면 열두 달의 달력을 만들어 제후들에게 반포해 주고 제후들은 매달 초하루에 희생양을 준비해서 종묘에 고유(告由)하고 행정을 하였으니, 이는 제후왕이 천자와 조상에게 모든 정사를 여쭈어 행하는 뜻이 담겼다.
[주-D003] 풀 누우니 …… 보고 :
훌륭한 정치 덕에 백성들이 교화되었다는 말이다.
[주-D004] 인재들 …… 즐깁니다 :
원문의 ‘모정(茅征)’은 선류(善類)가 많이 등용되었음을 뜻한다. 《주역》의 태괘(泰卦)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사귀는 형상인데, 그 초구(初九) 효사(爻辭)에 “띠풀을 뽑음이라, 그 무리로써 가는 것이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征, 吉.]” 하여, 군자(君子)가 벗들과 함께 나아감을 말하였다.
[주-D005] 양기는 …… 오고 :
새해가 되었다는 말이다. 주역의 태괘(泰卦)는 아래가 건괘이고 위가 곤괘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짓달부터 아래에서 양효(陽爻)가 하나씩 늘어 정월이 되면 태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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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3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 권필(權韠)
청명일(淸明日)에 짓다
따스한 기운이 꽃소식 재촉하니 / 淑氣催花信
연노랑 빛이 버들가지에 붙는구나 / 輕黃着柳絲
한식 뒤에 밥 짓는 연기 오르고 / 人烟寒食後
맑은 날 저녁에 새들은 지저귄다 / 鳥語晩晴時
늙어 가매 도리어 일이 많아서 / 老去還多事
봄이 와도 시를 읊지 못했어라 / 春來不賦詩
경성을 그리워한 십 년의 꿈을 / 京華十年夢
서글프게 단지 마음으로 알 뿐 / 惆悵只心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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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 권필(權韠)
청명(淸明)
햇살도 고운 봄날에 동풍이 따스하게 부니 / 東風吹暖艶陽天
병든 뒤 봄을 만나매 도리어 자신이 가련해라 / 病後逢春却自憐
제비가 처마에 들어오니 옛날에 살던 집이요 / 燕子入簷仍舊壘
가동이 불을 빌리니 새로 밥 짓는 연기로세 / 家僮乞火是新烟
꽃소식 재촉하는 가랑비에 가절임을 알겠고 / 催花小雨知佳節
풀싸움 한가한 놀이에 소년 시절 기억한다 - 국속(國俗)에 아이들이 풀싸움을 하는 놀이가 있는데 중국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 / 鬪草閑遊記少年
경물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람은 늙었으니 / 景物不殊人已老
다시 건강해져 술동이 놓고 마실 수 있을까 / 更能聞健向尊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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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권필(權韠)
청명일(淸明日)에 홍 수재(洪秀才) 보(靌) 에게 부쳐 술을 요구하다
무성한 방초가 시름을 불러일으키니 / 萋萋芳草喚愁生
늙어가며 봄을 만나니 더욱 정회가 일어라 / 老去逢春更有情
하룻밤 빗소리에 꽃들이 모두 피어나니 / 一夜雨聲花盡發
술 없이 청명을 어이 지낼 수 있으랴 / 可堪無酒過淸明
고시(古詩)에 “꽃도 없고 술도 없이 청명을 지낸다.〔無花無酒過淸明〕”는 구절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1] 홍 수재(洪秀才) :
홍보(洪靌 : 1585~1643)는 자는 여시(汝時), 호는 월봉(月峯),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벼슬은 좌참찬에 이르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경헌(景軒)이다.
[주-D002] 무성한……불러일으키니 :
두보의 〈수(愁)〉에 “강풀은 날마다 시름을 불러일으키나니, 무협의 물은 맑게 흘러 세상의 정이 아니로다.〔江草日日喚愁生 巫峽泠泠非世情〕” 하였다. 이는 고향에 돌아가고픈 마음을 형용한 것으로, 그 의사(意思)가 한(漢)나라 회남(淮南) 소산(小山)의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이 떠나가 돌아오지 않음이여, 봄풀은 자라서 무성하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라고 한 것에서 왔다. 《杜詩澤風堂批解 卷17》
[주-D003] 고시(古詩)에……구절 :
송나라 왕우칭(王禹偁 : 954~1001)의 〈청명감사(淸明感事)〉에 “꽃도 없고 술도 없이 청명을 지내니, 흥미 쓸쓸하기가 야승과 같아라. 어제 이웃집이 새 불을 빌러 와, 새벽 창가 독서하는 등잔 나눠 주누나.〔無花無酒過淸明 興味蕭然似野僧 昨日隣家乞新火 曉窓分與讀書燈〕” 하였고, 위야(魏野 : 960~1019)의 〈청명(淸明)〉에 “꽃도 없고 술도 없이 청명을 지내니, 흥미가 도무지 야승과 같아라. 어제 이웃 노옹이 새 불을 빌러 와, 새벽 창가 독서하는 등잔 나눠 주누나.〔無花無酒過淸明 興味都來似野僧 昨日隣翁乞新火 曉窓分與讀書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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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권필(權韠)
청명(淸明)
청명일 울타리 너머 새 연기 피어오르니 / 淸明籬落起新煙
물색이 희미한 풍경은 지난해와 같아라 / 物色依俙似去年
깊은 거리에 칩거하니 종일 비가 내려 / 深巷閉門終日雨
두견화가 작은 창 앞에 피었어라 / 杜鵑花發小窓前
[주-D001] 청명일(淸明日)……피어오르니 :
당송(唐宋)의 풍속에 청명 하루 전인 한식(寒食)에 불을 피우지 않고 이튿날인 청명에 다시 새 불을 피워서 백관(百官)에게 나누어 주었다. 두보의 〈청명(淸明)〉에 “아침이 오매 새 불이 새 연기 일으키니, 호수 빛과 봄빛이 나그네 배에 맑아라.〔朝來新火起新煙 湖色春光淨客船〕”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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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별집 제1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 권필(權韠)
동짓날 밤 가야정사(伽倻精舍)에서 만나다
이날 밤에 자관(子寬)이 거문고를 연주했다.
서로 만난 것이 이미 다행인데 / 相逢旣云幸
게다가 속세 떠난 수운향이로세 / 況是水雲鄕
해가 솟으니 추운 강은 고요하고 / 日出寒江靜
산이 깊으니 고목은 푸르구나 / 山深古木蒼
천시는 일양이 움직이고 / 天時一陽動
인간 세상은 백년이 바쁘구나 / 人世百年忙
홀연 아양곡을 들으니 / 忽聽峨洋曲
평생의 우정이 더욱 느껴지누나 / 平生意更長
[주-D001] 천시(天時)는 일양(一陽)이 움직이고 :
《주역》에 순음(純陰)인 〈곤괘(坤卦)〉에서 양효(陽爻) 하나가 음효(陰爻) 다섯의 아래 새로 생기면 〈복괘(復卦)〉가 되는데, 이를 만물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며 절기로는 동지에 해당한다. 그래서 동짓달인 11월을 일양지월(一陽之月)이라 한다.
[주-D002] 아양곡(峨洋曲) :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연주하였다는 곡으로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 백아가 금(琴)을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자 종자기가 “높디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자 “넓디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지음(知音)의 벗을 뜻한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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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별집 제1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권필(權韠)
도중의 입춘(立春)
한양은 아득히 멀리 운산에 막혔는데 / 漢陽迢遞隔雲山
먼 길손 속절없이 외로운 그림자 끌고 돌아온다 / 遠客空携一影還
도리어 한스러워라 봄바람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 却恨春風不相待
새벽이 오매 나보다 먼저 고향으로 들어간 것이 / 曉來先我入鄕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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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전집 제1권 / 시(詩) / 이익(李瀷)
아이가 입춘(立春) 시를 지었기에 장난삼아 짓다
여덟 살 아이가 입춘 시를 읊고 / 八歲兒詩頌立春
아비는 마흔 살에 새해를 맞이한다 / 翁今四十老迎新
이 녀석 종이를 보니 글자도 제법이라 / 看渠紙面能成字
우리 집 모양새 맞춰 억지로 가난 말한다 / 效我門眉强說貧
생계에는 별 뜻이 없음을 진실로 아노니 / 計活固知無別意
축원해 봤자 도리어 자신에게 일만 보탤 뿐 / 祈禳還見有添身
이미 이 일을 상서로운 것으로 여기니 / 已將玆事爲祥慶
먹 갈고 붓 적시는 데 손이 절로 친숙해라 / 硏墨濡毫手自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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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전집 제2권 / 시(詩) / 이익(李瀷)
춘첩(春帖) 4수
세 들어 사는 집 손님 응접이 거의 없어 / 僦舍全稀應接時
입춘이 왔단 것도 사흘 뒤에야 들었노라 / 立春三日始聞之
북두성 자루 돌았으니 천시(天時)가 정해졌으리 / 斗杓已轉天應定
연수가 불어났으련만 알지 못하였어라 / 年數行添我未知
성품에 맞으니 술병이 더한들 무슨 상관이랴 / 適性肯妨增酒病
새해를 맞아서도 결코 서치를 팔지 않으리라 / 迎新斷不賣書癡
한 가닥 양화의 기운이 가슴 속에 들어오니 / 陽和一脈來方寸
이를 길러 상운 서일을 이루길 기약하노라 / 養與祥雲瑞日期
별이 돌고 달이 그믐 되는 것 더딜 수 없으니 / 星回月朓不容遲
한 해는 용사가 골짜기 달려가는 때를 만났어라 / 歲際龍蛇赴壑馳
하룻밤에 응당 새 일력을 재촉해야 했건만 / 一夜應催新曆日
닷새 동안 여전히 묵은 연시를 빌렸네 / 半旬猶貸舊年時
궁동에 싸락눈을 눈썹 찌푸리며 보내고 / 窮冬霰雪攢眉送
대지에 초목 번화하길 손꼽아 기다린다 / 大地繁華屈指期
일천 시름 일만 한을 다 이기고서 / 打疊千愁與萬恨
먼저 아이 시켜 새 춘첩시를 짓게 하노라 / 先敎稺子帖新詩
세약이 다하여 구망에 이르니 / 歲籥闌珊逼句芒
객지에서 춘축을 짓느라 고심하노라 / 客中春祝強搜腸
청편이 손에 있으니 나는 분수를 알고 / 靑編在手吾知分
백발이 머리에 가득해도 그대로 무방해라 / 白髮渾頭爾不妨
의리가 앞에 있으니 변별해야 하고 / 理義當前須辨別
공정은 매양 낮으니 경장해야 하리 / 功程每下合更張
심신에 절로 석 자의 부절이 있으니 / 身心自有符三字
구태여 높은 하늘에서 찾을 것은 없어라 / 未必煩求向彼蒼
머리는 둥글고 발은 네모나 상하로 나뉘니 / 首足圓方上下分
남아가 세상에 있으매 기개가 구름 잡는다 / 男兒在世氣拏雲
본디 눈썹 펴는 얘기 스스로 좋아하거니 / 生來自喜伸眉話
가는 곳마다 술잔 잡고 취함을 어찌 사양하리오 / 到處寧辭把酒醺
관자(冠者) 동자(童子)와 서로 즐기는 것 좋아하노니 / 好取冠童相與樂
날짐승 길짐승과는 함께 살지 않는단 걸 뉘 알리오 / 誰知鳥獸不同羣
곁엣 사람은 이내 심사를 묻지 마시라 / 傍人莫問余心事
일점의 영서라 그대 향해 그저 웃을 뿐 / 一點靈犀笑向君
[주-D001] 북두성……정해졌으리 :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이미 왔음을 뜻한다. 명나라 이동양(李東陽)의 〈입춘일거가예남교(立春日車駕詣南郊)〉에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형용하여 “북두성 묵은 자루는 해를 따라 돌고, 남쪽 교외의 아름다운 기운은 성 저편에서 온다.〔北斗舊杓依歲轉 南郊佳氣隔城來〕” 하였다.
[주-D002] 성품에 맞으니 :
진(晉)나라 장령(張酃)의 〈주부(酒賦)〉에 “근심을 버리고 걱정을 없애니, 성품에 맞고 감정에 순하여라.〔遺憂消患 適性順情〕” 하였고, 송나라 소철(蘇轍)의 〈한식유남호(寒食遊南湖)〉에 “성품에 맞게도 술동이를 만났고, 회포를 열며 벗에게 읍하노라.〔適性逢遵酒 開懷挹友生〕” 하였다.
[주-D003] 서치(書癡)를 팔지 않으리라 :
서치는 책만 열심히 읽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때 두위(竇威)는 대대로 훈신(勳臣)의 가문에서 자랐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무예를 숭상했는데 두위 혼자 문사(文史)를 탐독하니 형제들이 그를 비웃어 서치라 했다. 송나라 때 오중(吳中)의 민간 풍속에 제석(除夕)에 아이들이 거리를 다니며 “바보 사려! 멍청이 사려!” 하며 외치고 다녔다 한다. 송나라 범성대(范成大)의 〈납월촌전악부십수서(臘月村田樂府十首序)〉에 보인다.
[주-D004] 상운(祥雲) 서일(瑞日) :
상서로운 구름과 해로, 높고 고결한 인품을 비유한다. 주희(朱熹)의 〈명도선생찬(明道先生贊)〉에 정호(程顥)의 인품을 형용하여 “상서로운 해와 구름이요 온화한 바람 단비로다.〔瑞日祥雲 和風甘雨〕” 하였다.
[주-D005] 별이……것 :
음력 12월 그믐이 되어 한 해가 감을 뜻한다. 《예기》〈월령(月令)〉에 한 해의 마지막 달인 계동(季冬)을 말하면서 “별이 하늘에서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星回于天〕” 하였다.
[주-D006] 용사(龍蛇)가……때 :
제야(除夜)가 왔음을 뜻한다. 소식(蘇軾)이 제야에 지은 〈수세(守歲)〉에 “다해 가는 한 해를 알고 싶은가. 마치 골짜기로 달려가는 뱀과 같도다.〔欲知垂盡歲 有似赴壑蛇〕” 하였다.
[주-D007] 하룻밤에……빌렸네 :
첫째 수에서 “입춘이 왔단 것도 사흘 뒤에야 들었노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즉 하룻밤을 고비로 묵은해와 새해가 바뀌었지만 반순(半旬) 가까운 시일 동안은 입춘이 온지도 모르고 지난해인 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D008] 싸락눈을……보내고 :
눈 속에서 눈썹을 찌푸린 채 시구를 생각하는 것이다. 소식(蘇軾)의 〈정월일일설중과회알객회작(正月一日雪中過淮謁客回作) 2수〉 중 둘째 수에 “무슨 한이 있어 눈썹을 찌푸리는가. 맑은 시구를 얻어서 좋아라.〔攢眉有底恨 得句不妨淸〕” 하였다.
[주-D009] 세약(歲籥) :
한 해의 변천을 뜻한다. 약(籥)은 기절의 변화를 측정하는 갈대 대롱을 가리킨다.
[주-D010] 구망(句芒) :
고대 전설에 목(木)을 주관하는 벼슬, 또는 목신(木神)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예기》〈월령(月令)〉에서 맹춘(孟春)의 달에 대해 “그 제(帝)는 태호(太皥)이고 그 신(神)은 구망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맹춘을 뜻한다.
[주-D011] 청편(靑編)이……알고 :
청편은 서책이다. 즉 서책을 읽는 것이 자기의 분수임을 안다는 뜻이다.
[주-D012] 공정(功程)은……하리 :
공정은 공부이다. 즉 공부가 매양 낮아지니 힘을 내어 분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D013] 석 자의 부절 :
삼자부(三字符)라 한다. 주희(朱熹)의 초년 시절 스승인 병산(屛山) 유자휘(劉子翬)가 주희에게 “내가 《주역》에서 입덕(入德)의 문을 얻었으니, 이른바 ‘불원복(不遠復)’이란 것이 바로 나의 삼자부이다.” 하였다. 《心經 卷1》 여기서는 자신이 지키는 학문의 요결(要訣)을 뜻한다.
[주-D014] 머리는……나뉘니 :
사람이 머리는 둥글고 발은 모난 것을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난 것에 비겼다.
[주-D015] 기개가 구름 잡는다 :
당나라 승난(僧鸞)의 〈증이찬수재(贈李粲秀才)〉에 “건장하기 씩씩한 송골매와 수리 같아, 구름을 잡고 들판에 사냥하며 높은 하늘에 번득인다.〔駿如健鶻鶚與鵰 拏雲獵野翻重霄〕” 하였다.
[주-D016] 눈썹 펴는 얘기 :
근심 걱정을 벗어버리게 하는 얘기이다. 송나라 매요신(梅堯臣)의 〈취중유별영숙자리(醉中留別永叔子履)〉에 “머뭇거리던 진자도 과연 왔으니, 함께 작은 방에 앉아 애오라지 눈썹을 편다.〔逡巡陳子果亦至 共坐小室聊伸眉〕” 하였다.
[주-D017] 관자(冠者)……것 :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라는 공자의 명에 슬(瑟)을 울리다 말고,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관자는 관을 쓴 사람으로 어른을 뜻한다.
[주-D018] 날짐승……걸 :
세상을 피해서 살던 은자(隱者) 걸닉(桀溺)에 대해 공자가 “날짐승 길짐승과는 더불어서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사람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하였다. 《論語 微子》 성호 자신은 걸닉과 같은 은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D019] 일점(一點)의 영서(靈犀) :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무제(無題)〉에 “몸에 채색 봉황의 한 쌍 날개는 없지만, 마음에는 신령한 물소 뿔 한 점의 밝음이 있어라.〔身無彩鳳雙飛翼 心有靈犀一點明〕” 하였다. 물소의 뿔 위에는 무늬가 있어 양쪽 뿔이 서로 감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점영서(一點靈犀)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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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전집 제2권 / 시(詩) / 이익(李瀷)
동지(冬至)
창밖에 울부짖는 바람에 눈보라 세차니 / 囱外饕風雪意騰
양이 생길 제 도리어 추위가 매서움을 깨닫노라 / 生陽還覺激嚴凝
옷은 낡은 솜을 넣어 전혀 온기가 없고 / 衣留敗絮無全煗
벼루에 살짝 괸 물에선 얼음 조각이 나온다 / 硯滴微涔出片冰
즐거운 곳에 때로 와서 누가 나와 대작할꼬 / 樂地時來誰對酌
산재에 밤이 길 제 홀로 등잔을 밝히노라 / 山齋夜永獨懸燈
잘 알겠노라 일력이 돌아 새해가 오리니 / 定知周曆從新歲
장차 천시와 더불어 한 살이 더 많아질 것임을 / 行與天時齒筭增
[주-D001] 양(陽)이 생길 제 :
동지(冬至)를 가리킨다. 《주역》에 순음(純陰)인 곤괘(坤卦)에서 양효(陽爻) 하나가 음효(陰爻) 다섯의 아래 새로 생기면 복괘(復卦)가 되는데, 이를 만물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며 절기로는 동지에 해당한다. 그래서 동짓달인 11월을 일양지월(一陽之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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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전집 제3권 / 시(詩) / 이익(李瀷)
동지〔陽至〕
공평한 해의 궤도 남쪽으로 나아가니 / 平分日軌正南歸
이 이치 언제 한 번 어긋난 적 있었던가 / 此理何曾動靜違
옛 풍속엔 마을마다 팥죽 쑤어 나눠 먹고 / 古俗千邨行粥遍
황종관에 갈대 재가 날리는 날이라네 / 新陽一管撥灰飛
상서 위해 궁궐에선 책력(冊曆)을 나눠 주고 / 祥騰邃禁催頒曆
재실에선 재계하며 모두 옷깃 가다듬네 / 身掩淸齋合整衣
천지조화 함께하는 이런 모습 좋을씨고 / 嘉與乾坤同剝換
두고 보라 아침 해 이제 빛을 발하리니 / 請看朝日頓添輝
[주-D001] 해의 …… 나아가니 :
태양이 남회귀선(南回歸線) 위에 이른다는 뜻으로, 동지(冬至)를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동지를 남지(南至)라고도 한다.
[주-D002] 옛 …… 먹고 :
동지에는 찹쌀가루로 새알심〔鳥卵心〕을 만들어 팥죽에 넣어 끓인 다음 사당에 올려 제사 지내고 팥죽을 대문의 문짝에 발라 재앙을 없앴으며, 이웃에도 돌려 나눠 먹었는데, 이를 ‘동지팥죽’이라고 하였다. 《秋齋集 卷8 歲時記》 《海東竹枝 中 名節風俗》
[주-D003] 황종관(黃鍾管)에 …… 날이라네 :
황종관은 음률(音律) 십이율(十二律) 중에 양률(陽律)로 1년 12개월 가운데 11월에 해당한다. 옛날에는 가부(葭莩)라고 하는 갈대 속의 엷은 막(膜)을 태워 12개월을 상징하는 열두 개의 대나무 통인 율관(律管)에 넣어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에 놓아두고 절기(節氣)를 측정하였다. 동지 절기에 해당하는 11월이 되면 황종(黃鍾)의 율관 속에 들어 있는 가부의 재가 날아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동지가 되었음을 짐작하였다. 《後漢書 律曆志上》
[주-D004] 상서(祥瑞) …… 주고 :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짓날 책력을 만들어 황장력(黃粧曆)과 백장력(白粧曆) 등을 바치면 임금이 동문지보(同文之寶)를 찍어 백관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이를 ‘동지책력〔冬至曆〕’이라고 하였다. 《東國歲時記 11月 冬至》 《海東竹枝 中 名節風俗》
[주-D005] 재실(齋室)에선 …… 가다듬네 :
동지는 ‘작은 설〔亞歲〕’이라 하여 설과 같이 여겼으므로 아침에 재실에서 재계하고 사당에 팥죽을 올려 제사 지냈다. 그리고 관리들은 대궐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賀禮)를 올리고 문안하였으며 동지를 축하하는 동지하전(冬至賀箋)을 바치기도 하였다. 《이창희 등 역주, 조선대세시기(朝鮮大歲時記), 국립민속박물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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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전집 제48권 / 잠(箴) / 이익(李瀷)
입춘에 지은 세 편의 잠〔立春三箴〕
입춘 아침에 시절을 느끼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세 편의 잠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
사수(射手)는 네 개의 화살을 가지고서 / 射者挾乘
시선을 과녁에 집중하고 / 目注乃的
여행 떠난 나그네는 길 위에서도 / 行旅在途
고향집을 생각하나니 / 亦旣念宅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어야 / 志有定向
비로소 성공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 方期於得
사물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 覽察事物
무엇인들 일정한 법칙이 없으랴 / 孰無恒則
오직 우리 성인의 학문은 / 維玆聖學
자신이 힘쓰기에 달려 있으니 / 在己用力
마음을 주인으로 삼지 않는다면 / 心不作主
더듬어서 길을 찾는 소경과 같으리라 / 如瞽擿埴
진실로 뜻을 세우려 한다면 / 苟欲其立
모름지기 지식을 성취해야 하니 / 要致知識
시끄러움도 귀에 거슬릴 것이 없거니와 / 咻不聒耳
좋아하는 물건도 어찌 눈을 현혹시키랴 / 玩豈絢目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하여 / 載靜載安
크고 넓게 정도를 행하며 / 履道廓廓
모든 기미가 있을 때마다 / 凡厥有幾
반드시 신독을 실천해야 하니 / 必愼己獨
이에 이것으로 경계를 삼아 / 于以作戒
싫어함이 없기를 면려하노라 / 勉爾無射
이상은 입지(立志)이다.
저 평원과 습지를 보매 / 瞻彼原隰
수목이 울창하고 / 惟木暢茂
들짐승과 날짐승은 / 猗走與飛
털과 깃이 화려하니 / 斐然毛羽
타고난 형체를 제대로 구현하여 / 爾踐爾形
부여받은 천성을 어김이 없도다 / 無負爾賦
하물며 사람으로 말하자면 / 矧伊人斯
인의의 부고(府庫)로서 / 寔仁義府
귀와 눈과 코와 입과 / 耳目鼻口
사지를 함께 갖추었음에랴 / 四體與具
외물과 접하여 함부로 움직이면 / 物交妄動
하늘의 법도가 쉽게 무너져서 / 天則易斁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 或擠之淵
낭패를 당하기도 하여 / 或顚或倒
안정에 이르지 못하리니 / 脚不底定
어디에 그 몸을 세울 수 있겠나 / 其何能樹
사람으로서 위의가 없는 것을 / 人而無儀
군자는 두려워하나니 / 君子是懼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 維動維靜
창졸간에도 몸소 궁구하여 / 造次體究
털끝만큼도 소홀히 말아서 / 豪無放過
진실로 구차함을 면한다면 / 儘免於苟
외물이 자신을 흔들지 못하여 / 物莫撓己
변화에 응수함이 넓어질 것이며 / 應酬斯普
덕성이 온몸에 넘쳐흐를 것이며 / 面睟背盎
본원을 좌우 가까이에서 만날 것이니 / 原取左右
아름다운 명성과 드넓은 명예가 / 令聞廣譽
밝게 드러남을 보게 되리라 / 彰施可覩
이것을 자립이라고 하나니 / 是曰自立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리라 / 遹追聖武
이상은 입신(立身)이다.
하늘에 이 이치가 있어 / 天有斯理
백성에게 내려 주었으니 / 旣降與民
임금이 일이 있어서 / 如君有事
신하에게 분부를 하면 / 分付厥臣
신하는 그 뜻 받들어 / 臣奉其旨
힘써 온몸 바쳐야 하리 / 務殫乃身
어려움을 당하여 변절한다면 / 夷險或渝
천명이 여기서 무너질 거네 / 命於是淪
우리에게는 본성이 있나니 / 我有我性
하늘이 말하여 준 것은 아니지마는 / 非帝攸諄
제대로 보존하고 잘 길러서 / 存而養之
선비가 보배 갖듯이 해야만 하리 / 若佩儒珍
만약에 잠시라도 실추시키면 / 苟暫失墜
이 도가 곧바로 인멸이 되고 / 此道便湮
밝히기를 환히 한다면 / 明以赫然
사물의 본체가 되어 항상 순일하리니 / 體物恒純
그러한 일을 힘써 행하면 / 彼行之力
실제로 천명의 참됨을 알아 / 實知其眞
삶보다 하고픈 일 있을 것이니 / 欲甚於生
죽더라도 하고픈 일 할 수 있으리 / 死猶可伸
요컨대 내 몸에 도를 닦아서 / 要修在我
천명을 기다리길 공경히 하면 / 俟命維寅
수명(壽命)과 영욕(榮辱)과 / 殀壽榮落
길흉과 희로애락이 / 吉凶笑顰
나와 관계없는 일이 되어서 / 無干余事
남보다 뛰어남이 있을 것이니 / 有卓于人
이에 지극한 경지에 올라 / 於斯爲至
천하가 어진 이에게 돌아가리라 / 天下歸仁
이상은 입명(立命)이다.
[주-D001] 타고난 …… 구현하여 :
하늘로부터 받은 형체의 기능을 어김없이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누구나 하늘로부터 형색을 품부받고 태어나는데, 오직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타고난 형체를 구현할 수 있다.〔形色 天性也 惟聖人然後 可以踐形〕”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 덕성이 …… 것이며 :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네 가지 덕성이 몸에 성대하게 쌓여서 외면으로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에는 환하게 얼굴에 드러나고 등에 넘쳐흐르며 온몸에 퍼져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온몸이 저절로 그 뜻을 알고 움직인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 본원을 …… 것이니 :
자득(自得)을 통해 학문의 경지가 높아진 것을 말한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방도에 따라 학문에 깊이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얻고자 함이니, 스스로 얻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 처하는 것이 견고해지고, 처하는 것이 견고해지면 그것에 자뢰한 바가 깊어지고, 자뢰한 바가 깊어지면 몸의 좌우에서 찾아보아도 학문의 본원을 만날 수 있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 則居之安 居之安 則資之深 資之深 則取之左右逢其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 아름다운 …… 되리라 :
본성을 밝혀서 충족시키면 좋은 명성과 넓은 명예를 지니게 되어 세상에서 우러러보게 된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시(詩)》에 이르기를 ‘술로 이미 취하고 덕으로 이미 배부르네.’ 하였으니, 인의(仁義)에 충족함을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의 고량지미를 원하지 않는 것이며, 좋은 명성과 넓은 명예가 몸에 베풀어져 있다. 이 때문에 남의 문수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詩云 旣醉以酒 旣飽以德 言飽乎仁義也 所以不願人之膏粱之味也 令聞廣譽施於身 所以不願人之文繡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 선비가 …… 하리 :
항상 세상에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노(魯)나라 애공(哀公)을 모시고 앉아서 “선비는 자신의 자리 위에 진귀한 보배를 준비해 놓고서 초빙해 주기를 기다립니다.〔儒有席上之珍以待聘〕”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禮記 儒行》
[주-D006] 삶보다 …… 있으리 :
맹자가 삶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원하는 바가 삶보다 심한 것이 있으며,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현자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데, 현자는 이것을 잃지 않을 뿐이다.〔所欲有甚於生者 所惡有甚於死者 非獨賢者有是心也 人皆有之 賢者能勿喪耳〕”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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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漢詩 모음-3. 끝.
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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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별 漢詩 모음 자료 고맙습니다.
필요 부분만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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