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도언 / 파란 / 2019.11.20
페이지 156
책소개
그레고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권태롭지 않았던 순간을 상상했다
김도언은 자기 자신을 ‘권태주의자’라고 명명한다. 한국문학사에서 ‘권태’를 미적 감각으로 창안한 이는 물론 이상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도언은 이상이 아니라 차라리 백석에 가깝다. 무슨 말인가? 김도언은 “실패는 나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이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이때 “실패”란 “숭고한 말들의 미래”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말들의 미래”는 결코 “닿지 않”으며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말들의 미래”가 “숭고”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언은 “실패할 테지만 그 말을 찾아 또 떠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김도언은 지극한 낭만주의자다.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곳”이자 “당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인 “저쪽” 또한 “지옥”이라고 속삭일 때도 김도언은 냉정하나 낭만주의자이며, “나는” “탕진되는 잉여의 시간을 애도하지 않았고 남은 생애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지도 않았다”라며 결연할 때도 그는 무참하나 낭만주의자다. 심지어 “농담은 낭만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는 더더욱 아니며 다만 이상하고 드문 비애일 뿐”이라고 토로할 때도 그는 지성적이나 낭만주의자다.
즉 그는 알고 있다, 이 세계는 온통 “지옥”이고 “저쪽” 또한 “지옥”이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지옥”을 절대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김도언은 “피 냄새를 풍기”는 “아일랜드식 농담”이나 “이 세상의 모든 오해 중에서 피아노가 제일 좋다는 것은 가능한 도덕입니까”와 같은 “이상한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도언은 “진실하지 않아서 진실한 것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진실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 하나의 ‘진실’을 누설한다. “말들의 미래”는 단연코 도래하지 않는다는 진실 말이다. 따라서 “실패”는 당연하며, “은밀”하고, 사적이며, 외설적일 수밖에 없다. 김도언의 말 그대로 그는 “최선을 다해 더러워져서 최후까지 감추려 했던 자부심의 노골적인 적막을 완성하기 위하여” 시를 쓴 셈이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백석을 뛰어넘는다. 김도언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한국시의 정언명제마저 “한없이 우습고 형편없”는 농담으로 만든다. 김도언이 시집 도처에 매설해 놓은 “농담”들은 결국 “숭고한 말들의 미래”라는 “신념”을 남김없이 폭파시켜 버린다. 요컨대 김도언은 지금 실재(Real)를 돌파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 시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다.
김도언 시인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2012년 [시인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 경장편소설 『미치지 않고서야』, 산문집 『불안의 황홀』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설가의 태도』, 인터뷰집 『세속 도시의 시인』 등을 썼다. 『권태주의자』는 김도언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
저자소개
김도언
시민권을 요구하는 북아일랜드 민간시위대에게 영국군이 발포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일어난 1972년 1월, 충청남도 내륙의 작은 소읍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구속을 싫어하는 물병좌, 숙명적인 혼돈의 AB형으로 태어났다.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아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를 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낙서와 몽상과 독서로 소일했고 대학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1998년과 1999년 각각 지방일간지(대전일보)와 중앙일간지(한국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애초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시로는 누설욕망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제대 직후 소설로 전향했다. 대학 졸업 후부터 출판사와 잡지사 등에서 밥벌이를 했고 소설을 틈틈이, 하지만 꾸준히 발표했다. 2012년 [시인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09년 8월부터 11월까지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국제창작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여하는 동안 한국문학의 국지성과 글로벌스탠더드의 폭력성을 함께 체감했다. 출판저널 수석기자, 샘터 편집팀장, 생각의나무 편집장을 거쳐 현재 열림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억압에 대한 반동기제가 작동하지 않아 오히려 소설이 써지지 않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시집을 즐겨 읽고 가끔 홍대와 합정역 인근의 술집에서 젊은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쓰지 못한 비겁을 자위하곤 한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악취미들』『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와 『꺼져라 비둘기』, 경장편소설 『미치지 않고서야』, 산문집 『불안의 황홀』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설가의 태도』, 인터뷰집 『세속 도시의 시인』, 시집 『권태주의자』 등을 썼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고해성사 - 13
불과하다 - 14
갈라파고스 - 16
어떤 방에 대한 기억 - 17
섹스보다 안녕 - 20
내가 오리고기를 구울 때 - 21
실존에 대하여 - 24
미지를 확인하는 기술에 대하여 - 26
그해 겨울은 훌륭했네 - 28
소설가 K의 하루 - 30
일인용 사막 - 32
당신 - 34
농담처럼 - 35
농담에 대한 고찰 - 36
낙타를 위하여 - 37
다큐멘터리, 봄날 - 38
레비스트로스의 청바지 - 40
삼인칭을 가장한 고백 - 42
문장 연습 1 - 43
구두론 - 44
2부
감자가 싹이 나서 - 49
속보 - 50
이상한 질문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 - 51
자원입대자의 노래 - 52
슬픈 산문시 - 54
용서 - 55
K의 장애 - 56
스티븐스의 아침 - 58
히키코모리의 고백 - 60
엉덩이에 대한 명상 - 62
코페르니쿠스적 가설 - 64
당신의 지옥은 저쪽입니다 - 66
의자 - 68
사계 - 69
소년 단원의 비눗방울 - 70
퇴역 대령의 토마토 사랑 - 72
불가능한 가능들 - 74
악몽,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76
제3부
마릴린 먼로 - 81
시인의 기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설 - 82
그리고 너는 - 83
당신이라는 고독 - 84
고립의 체위 - 86
시인 공화국 - 88
모멘트 - 90
환자의 책 - 91
참새의 반대말은 개구리 - 92
추일서정 - 94
전능한 ( ) - 96
장미꽃이 피고 있네 - 98
우울증 환자에게 - 100
아일랜드식 농담 - 102
희극의 기원 - 103
극사실주의 - 104
우아한 경솔함 - 10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107
제4부
그레고리 실종 사건 - 111
아, - 114
문장 연습 2 - 116
비밀의 목적 - 117
고양이를 위한 서사 - 118
타인은 지옥이다 - 120
불확실한 진실과 막무가내식 농담 - 121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 122
헤어진 다음 날 - 123
우리가 이와 같아서 - 124
부정사가 오늘의 날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 126
북쪽 도로를 내다보다 - 128
눈의 백일몽 - 130
알리바이 - 131
폴란드 사람의 섹스 - 132
권태주의자 - 134
겨울의 시 - 136
사촌의 농장 - 138
별사 - 140
마지막 밤 - 141
해설 정재훈 기록되지 않을, 시인의 뒷모습에 대하여 - 142
출판사 서평
그레고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권태롭지 않았던 순간을 상상했다
김도언은 자기 자신을 ‘권태주의자’라고 명명한다. 한국문학사에서 ‘권태’를 미적 감각으로 창안한 이는 물론 이상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도언은 이상이 아니라 차라리 백석에 가깝다. 무슨 말인가? 김도언은 “실패는 나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이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이때 “실패”란 “숭고한 말들의 미래”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말들의 미래”는 결코 “닿지 않”으며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말들의 미래”가 “숭고”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언은 “실패할 테지만 그 말을 찾아 또 떠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김도언은 지극한 낭만주의자다.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곳”이자 “당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인 “저쪽” 또한 “지옥”이라고 속삭일 때도 김도언은 냉정하나 낭만주의자이며, “나는” “탕진되는 잉여의 시간을 애도하지 않았고 남은 생애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지도 않았다”라며 결연할 때도 그는 무참하나 낭만주의자다. 심지어 “농담은 낭만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는 더더욱 아니며 다만 이상하고 드문 비애일 뿐”이라고 토로할 때도 그는 지성적이나 낭만주의자다. 즉 그는 알고 있다, 이 세계는 온통 “지옥”이고 “저쪽” 또한 “지옥”이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지옥”을 절대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김도언은 “피 냄새를 풍기”는 “아일랜드식 농담”이나 “이 세상의 모든 오해 중에서 피아노가 제일 좋다는 것은 가능한 도덕입니까”와 같은 “이상한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도언은 “진실하지 않아서 진실한 것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진실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 하나의 ‘진실’을 누설한다. “말들의 미래”는 단연코 도래하지 않는다는 진실 말이다. 따라서 “실패”는 당연하며, “은밀”하고, 사적이며, 외설적일 수밖에 없다. 김도언의 말 그대로 그는 “최선을 다해 더러워져서 최후까지 감추려 했던 자부심의 노골적인 적막을 완성하기 위하여” 시를 쓴 셈이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백석을 뛰어넘는다. 김도언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한국시의 정언명제마저 “한없이 우습고 형편없”는 농담으로 만든다. 김도언이 시집 도처에 매설해 놓은 “농담”들은 결국 “숭고한 말들의 미래”라는 “신념”을 남김없이 폭파시켜 버린다. 요컨대 김도언은 지금 실재(Real)를 돌파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 시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다.
김도언 시인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2012년 〈시인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 경장편소설 〈미치지 않고서야〉, 산문집 〈불안의 황홀〉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설가의 태도〉, 인터뷰집 〈세속 도시의 시인〉 등을 썼다. 〈권태주의자〉는 김도언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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