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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와 미사의 영성 (12) 전례 공간의 의미 : 감실(龕室)
성당에 처음 오신 예비 신자분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감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슨 금고 같기도 하고, 커다란 보석 상자처럼 생긴 저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러다 예비자 교리를 받고 성체성사에 대해 알게 된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감실이라 부르며, 그 안에 세상 그 어떤 보물과도 비할 수 없는 귀한 성체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감실은 이렇게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셔둔 작은 방, 또는 작은 함(函)을 말합니다. 이러한 감실 안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으며, 그 위에 성체를 담은 성합(聖盒)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성체를 따로 모셔둔 이유는 초기 교회 때 질병이나 혹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례하지 못한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세기경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병자성사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임종자를 위한 성체 규정이 정해지면서 성체 보관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었고, 4~5세기경 성당 안에 성체를 모시기 시작합니다. 이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는 성체의 안전을 위해 감실을 열쇠로 잠그도록 하였으며, 13세기경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실제적인 안전성을 고려한 벽면 감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견고한 금속으로 감실을 제작하고 적절한 장식을 통해 성체의 존엄성을 드러내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실의 위치와 관련하여 교회에서는 제대 위가 아닌 제단 안이나, 가능하면 성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315항 참조) 하지만 현실적으로 별도의 경당을 마련하기 어려울 경우 성당 안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시도록 권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잘 띄는’ 자리라고 해서 무조건 성당 중심에 모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가 현재화되는 제대가 성당의 가장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실은 제대의 중심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 고귀한 위치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실은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실은 미사가 거행되지 않는 시간에 신자들이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흠숭하고,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도록 이끄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聖幕, 탈출 26,1-14)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장소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삶의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감실은 주님의 현존과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도록 이끄는 길이 되어줍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8. 미사 : 우리의 행위로써 봉헌하는 제사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행위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기도를 위한 합장, 무릎을 꿇는 행위, 일어서는 행위, 인사를 하는 행위 등 우리가 미사에 익숙해져서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분명 전례 안에서 우리의 행위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행 보편교회에서 특별히 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동작과 자세”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전례헌장 30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
지난 시간에 미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부분을 설명드렸습니다. 표징으로서의 전례와 연결되는 부분이면서, “거룩한 표징” 가운데 하나로 “동작”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예식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의존하는 “동작과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작은 전례의 표징과 상징들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에 중요합니다. 특히 미사는 거룩한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의 행위와 은총을 표현하기에, 우리 입장에서 올리는 거룩한 표징인 우리들의 행위는 매우 중요한 화답이기도 합니다.
전례 안에서 동작은 인간의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행위를 배제하고는 미사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 역시, 집전자들의 동작과 말을 통하여, 생기를 돋우는 성령의 능력이 주어지고, 우리들의 행위로 인해서 능동적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가 참여하는 미사 안에서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는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더욱이 미사에서 동작과 자세의 일치는 예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하는 요소입니다.
“(미사 안에) 동작과 자세는 거행의 여러 부분들이 지닌 참되고 완전한 뜻을 밝혀 주고, 모든 이가 거행에 참여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다. 이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표현해 주고 길러 준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11) 전례 공간의 의미 : 성수대(성수반)
우리는 때때로 삶의 힘겨움과 상처로 인해 아파하곤 합니다. 그 힘겨움과 상처로 인해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어려움은 왜 마치도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자신의 힘만으로 어찌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성당은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 안에서 우리 영혼의 피난처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주님께 드리는 공간이 되고,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십니다.
이러한 성당에 들어서며 우리는 가장 먼저 성수대(성수반)에 있는 성수를 손으로 찍어 성호경을 하고 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성수대는 성수를 담아 두는 작은 성수 그릇을 말합니다. 주로 성당 문 입구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 성수대에 담아 둔 성수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제가 축복한 물을 말합니다. 특별히 성수는 물이 변하지 않도록 소금을 넣어 축복하게 됩니다. 전례에서는 주로 사람과 사물을 축복할 때, 성전 봉헌과 구마식 때 성수가 사용됩니다. 사제는 이 성수를 사용하여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성당에 들어가면서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집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이유는 더러운 것을 말끔히 씻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신이 성화되는데 방해되는 모든 죄스러운 모습과 악마를 쫓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호를 그으면서 ‘주님 이 성수로 저희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하고 기도를 바칩니다.
성수대에서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세례 때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세례 때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바로 이처럼 세례 때의 물로 씻기고,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물을 축복하는 성수 예식 안에서도 “이 물로 저희가 이미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새로 세례를 받은 형제들과 파스카의 기쁨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물 축복 예식 참조)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세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다시 깨닫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오직 하느님 앞에서 나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모습이든, 또 어떤 상황이든 그분은 나를 말없이 안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7. 미사 : 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제사
「표징」 여러분들께서는 이 단어를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표징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장미꽃 한 송이. 생일 때 케이크를 두고 축하해주는 모습. 이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징은 말과 그림, 동작, 그리고 그 밖의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들로 어떤 지시 또는 메시지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징은 우리 가톨릭에서 성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례헌장 59항에서는 성사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표징”에 대한 부분을 언급합니다.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사의 표징들을 쉽게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인 생활을 살찌우도록 제정된 이 성사들을 열심히 자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사와 전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부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식은 상징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전례 안에 드러나는 모든 표징은 장소, 말씀, 소리, 시간, 사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전례 안에 거룩한 표징은 은총을 구체화시켜주고, 비밀을 밝혀줍니다. 동시에 표징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인간은 전례 안에서 표징을 만들고 표징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전례 안에서 인간은 영혼이 깃든 육체와 자신을 표현하는 영혼으로,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기도하고 움직입니다. 이미 말씀 안에서 이러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말씀 안에서 내면성의 첫 육화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말하고 듣습니다. 모든 동작과 행위에서 이러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동작은 보이지 않는 내면성이 볼 수 있는 육화로 전개됩니다. 인간은 표현하고 이해합니다(로마노 과르디니).”
그러므로 미사는 거룩한 표징으로 이루어진 예식으로, 이 표징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와 은총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사에 대한 참된 의미를 되새기기를 원한다면, 전례 안에 담긴 거룩한 표징이 무엇인지 묻고 찾아야 합니다. 다음 편에는 “미사 - 우리의 행위로써 봉헌하는 제사”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10) 전례 시간의 의미 : 연중 시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전례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게 됩니다. 축복은 사전적 의미에서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참된 행복은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연중 시기는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신앙인 일상의 행복을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특별히 주님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숨 쉬게 하고 그 신비의 기쁨을 삶 속에 녹아들게 하는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연중 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체적으로 경축합니다.
이 시기는 1년 중 고유한 특성을 지닌 시기(가령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시기)를 제외한 33~34주간을 일컫습니다. 이 시기는 성탄 시기 후부터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까지, 그리고 부활 시기 다음부터 대림 시기 전까지 두 기간으로 나눠 이뤄집니다. 이렇게 연중 시기는 두 기간으로 나눠지는데, 실제 연중 시기 기간이 33주간인 경우 연중 시기를 항상 ‘연중 제34주’로 마치도록 하기 위해 사순 시기 이전에 끝난 연중 주간과 부활 시기 이후 시작되는 연중 주간 사이의 한 주간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가령 연중 기간이 33주간일 경우 사순 시기 전에 연중 7주로 마쳤다면 부활 시기가 끝난 다음에는 연중 8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해를 ‘연중 제34주’로 통일하기 위하여 연중 9주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연중 시기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가르침,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께 희망을 두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살아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중 시기를 나타내는 전례적인 상징색은 ‘녹색’인데 이는 생명, 평화와 희망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평화와 희망은 단지 인간적인 평화와 희망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안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 참된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누리는 평화와 희망을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의 일상은 ‘녹색’의 상징이 드러내는 것처럼 늘 생명의 푸르름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 미사 : 교회 안에서의 환호
미사 중 사제는 성찬 전례의 시작부분에서 “감사송”을 기도합니다. 이 감사송은 당일 전례력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다음과 같은 기도로 교회 공동체를 환호에로 초대합니다.
“저희도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찬미 노래를 부르며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신자분들은 이 기도문에 따라,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며 환호합니다. 그리고 이 환호는 거룩한 만찬에 참여한 모든 공동체원들이 능동적으로 환호하게 돕습니다. 가끔 이 부분에서 함께 노래하지 않거나, 성가대만의 임무라고 생각하며 침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과 목소리로 환호에 동참해야 하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자세로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천사와 성인들까지 다 함께 환호하는 축제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역시 목소리와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환호를 올려드림이 합당한 자세입니다. 교회 공동체원들의 환호는 미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많은 점을 일러줍니다. 미사가 환호라는 측면으로 이루어진다는 부분은 비단 “거룩하시도다”의 부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34항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미사가 “대화와 환호”의 차원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미사 거행은 그 본성상 ‘공동체 행위’라는 특성을 지니므로, 사제와 함께 모인 신자들 사이의 대화와 환호는 매우 중요하다. 이 대화와 환호는 미사가 공동체의 거행임을 밖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제와 교우들의 일치를 이루고 굳건하게 한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는 교회 공동체가 일치되어 하느님의 영광에 감사를 드리고, 환호로서 응답하는 축제입니다. 지난번 미사에 대해서 설명드리며 “만남”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이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친교로서 하나가 되기 위한 만남, 환호로서 하느님께 응답을 드리기 위한 만남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일치된다는 상징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환호로 미사를 구성할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미사에서 여러분들께서는 친히 자신의 목소리로 환호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계십니까?
[응답하라 ‘전례’] 전례에서의 성자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어려움, 의료진들의 희생적 헌신, 여행업의 몰락 등의 안타까운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무색하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만남을 제한받고 있는 상황이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물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발달하여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만남이 아니더라도 정보전달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인격적인 만남을 했을 때 더욱 성숙된 만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하느님과 어떻게 인격적이고 성숙한 만남을 할 수 있을까요?
“전례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이고, 그 만남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벨기에 전례학자 암브로스 베르홀 수사는 저서 ‘전례신학’에서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중개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함을 요한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14,6).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보게 해주는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분으로 계속 묘사됩니다. 요한복음에서 아버지를 이 세상에 알려주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그러므로 필립보가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을 때, 그는 즉시 책망을 듣습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8-9).
볼 수 없는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우리에게 오셨고 하느님의 자비를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습을 띤 하느님이시고 인간으로서 그분이 하시는 모든 것은 인간적 형태 안에서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이며, 육화의 한 형태로서 신적 활동이 인간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전례헌장, 7항)이라고 신학적 정의를 선언하면서 전례 개혁을 실행합니다. 이 정의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행위의 사제적 성격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적 성격과 관련해서 모든 전례 거행의 특징으로서 이중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시는 하행선과 인간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상행선입니다. 이것은 참된 신이며 참된 인간인 그리스도의 행위에서 먼저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행선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하늘 위에 계신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롭게 가까이 계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대사제(pontifex)가 되시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는 분”이십니다(pontifex는 원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립 2,6) 인간으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죄인인 인류를 구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상행선은 인간을 하느님께로 들어올려주는 신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아담으로서, 죄에 떨어진 인류를 위하여 인류의 머리요 지도자로서 성부께 가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성부께로 인도하기 위해 성부로부터 오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전폭적인 순종으로써 성부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삶이여, 성부께 영광과 찬미를 드림으로써 자신을 그분께 들어올리는 삶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사제적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육화의 신비로 하느님의 사랑이 이 땅에 내려오는 하행선을, 파스카신비로 인간을 구원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여 하늘로 오르게 하는 상행선을 구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두 가지 성격을 지닙니다. 첫째는 성부로부터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성부로부터 보내져서 온 분입니다. 둘째는 성부께 돌아가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맏이로서 그분은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전례를 봉헌하고 인류를 성부께로 인도하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성격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화해의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느님께 충만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전례헌장 5항). 전례의 목적이기도 한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일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의 파스카 신비”(전례 헌장 5항)를 통하여 성취하셨습니다.
전례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대사제이신 중개자인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接點)입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그분 안에서 또한 인간은 성부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인간의 접점인 예수 그리스도는 전례에서 어떻게 현존할까요? 교회는 다음과 같이 확언합니다. “이토록 큰일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전례 헌장 7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제직을 교회가 수행할 수 있도록 성령을 내려주시고 또한 본인 자신도 다양한 방식으로 현존하시어 함께 하십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에, 집전자의 인격에, 미사의 희생 제사에, 성사들에, 당신 말씀에, 교회 공동체에 현존하시어 당신의 구원사업을 계속하도록 합니다.
전례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행선인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을 받고 말씀을 들으며, 또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상행선의 움직임을 행합니다.
전례에 현존하시는 구원의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할 때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야고 5,13).
성주간 · 파스카 성삼일 주요 전례
코로나19로 전례 소홀… 성주간 맞아 주님 수난 · 부활 체험하자
교회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한 주간을 ‘성주간’으로 지내오고 있다. 이 거룩한 주간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가장 깊게 묵상하고 체험하는 시기이다. 특히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지낸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본의 아니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전례와 성사생활을 이번 성주간을 계기로 온전히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성주간 전례 예절을 소개한다. 한국 교회 모든 신자가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더욱 깊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체험할 수 있길 희망하며 거룩한 성주간 전례에 초대한다. 전례 예절 안내는 가톨릭전례학회가 엮은 「성지주일ㆍ파스카 성삼일 예절 준비와 해설」을 참고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교회는 이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실과 주님의 수난을 기념한다. 이날 주요 예식은 축복한 성지(聖枝)를 들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행렬과 수난 복음을 봉독하는 예식이다.
성지 행렬 예식의 중심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행렬을 통해 드러나는 구세주이시자 왕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행렬할 때 수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실 그리스도를 환영하며, 그분을 따라 선행의 열매를 맺고 영원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는 의지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마태 21,9)을 노래한다.
미사는 본기도부터 시작한다. 말씀 전례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독서는 주님 종의 셋째 노래(이사 50,47)와 그리스도의 겸손(필리 2,6-11)이 봉독되고, 수난 복음(다해: 루카 22,14─23,56)이 선포된다. 미사 감사송은 ‘주님 수난 감사송’으로 한다.
성주간 월ㆍ화ㆍ수요일
성주간 월ㆍ화ㆍ수요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분위기를 연장한다. 미사 독서는 주님 종의 첫째, 둘째, 셋째 노래(이사 42,1-7; 49,1-6; 50,4-9ㄱ)가 봉독된다. 또 복음은 주님의 수난을 예고하는 사건들로 ‘베타니아에서 향유를 부음’(요한 12,1-11),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할 것과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에 관한 예언’(요한 13,2ㄴ-33.36-38),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에 관한 계시’(마태 26,14-25)가 선포된다.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전례력으로 사순 시기는 성주간 목요일 아침에 거행되는 성유 축성 미사로 마친다. 이 미사는 주님께서 성목요일에 성품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한다. 교구장 주교는 교구 사제들과 공동으로 집전하는 이 날 미사에서 사제들의 서약을 갱신하고, 1년 동안 세례와 견진ㆍ병자ㆍ성품성사 때 사용할 성유를 축성한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된다. 파스카 성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의 파스카 구원의 신비 과정을 거행하는 연중 가장 절정에 달하는 날들이다. 성 목요일 저녁에 봉헌하는 주님 만찬 미사는 ‘성금요일 전야’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삼일의 시작을 알리는 예절이다. 따라서 파스카 성삼일은 정확히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주님 만찬 미사는 주님의 마지막 만찬과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한다. 이날 전례는 발씻김 예식, 성체 축성, 수난 감실로 성체를 옮겨 모심, 밤중 성체조배 순으로 거행된다. 미사 중 대영광송을 시작할 때에 모든 종을 친다. 이후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의 대영광송을 할 때까지 오르간과 종을 치지 않는다.
말씀 전례는 주님 만찬의 예형인 유다인의 파스카 만찬(탈출기 12,1-8.11-14)과 사도 시대 성찬례의 핵심을 전해 주는 만찬 내용(1코린 11,23-26)이 봉독된다. 또 복음은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요한 13,1-15)이 선포된다.
발씻김 예식은 주님께서 인류에 대해 끝없이 펼치신 사랑과 희생, 겸손과 봉사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예식이다. 한국 교회는 2016년 봄 정기총회에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따라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병자, 노인 등 모든 이가 공식적으로 이 예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발씻김 예식을 마치면 신앙고백 없이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이어간다.
영성체 예식 후 사제는 ‘수난 감실’로 성체를 옮겨 모신다. 주님의 수난 여정에 교회가 참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체가 수난 감실로 모셔지는 동안 신자들은 ‘성체 찬가’를 부르면서 성체를 따라 이동한 후 ‘밤중 성체 조배’를 한다. “한 시간만이라도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느냐”는 주님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성체가 수난 감실에 모셔진 뒤 사제는 침묵 중에 제대를 벗기고, 제대 십자가를 밖으로 치우거나 보라색 천으로 가린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날로 전례주년 가운데 가장 비통한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미사도 봉헌하지 않으며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제외한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주님 수난 예식은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어진다. 말씀 전례 때는 주님 종의 넷째 노래(이사 52,13―53,12)와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신 구세주이심(히브 4,14-16;5,7-9)이 봉독된다. 또 요한의 수난 복음(18,1―19,42)이 선포된다.
십자가 경배는 이날 주님 수난 예식의 중심이다. 십자가 경배를 통해 십자가가 지닌 주님의 수난과 죽음, 사랑에 감사드리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쳐 새사람이 될 결심을 하는 예식이다. 사제는 제대 앞에 서서 십자가를 가린 천을 머리, 오른팔, 몸 전체 순으로 벗기며 “보라 십자나무…”를 노래하면 교우들은 “모두 와서 경배하세”로 화답한다. 이 예절이 끝나면 신자들이 차례로 나와 십자가를 경배한다.
십자가 경배를 모두 마치면 수난 감실에서 모셔온 성체를 영한다. 영성체 예식 후 남은 성체는 원래 감실로 모신다.
성토요일
시간 전례 외에는 아무런 전례가 없는 날이다. 고해성사와 임종자의 노자 성체만 허용된다. 이날은 주님께서 무덤 안에서 쉬시는 때이며 저승에 내려가시고 천국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모든 이들과의 신비로운 만남(1베드 3,19-20)을 기억하는 날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파스카 성야는 어둠과 죽음에서 빛과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거룩한 밤이다. 파스카 성야 미사는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 성찬 전례로 구성돼 있다. 빛의 예식은 불과 부활초의 축복, 행렬, 부활 찬송으로 이루어진다. 사제는 부활초를 축복하면서 “주 그리스도님,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상처로 저희를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후 불을 붙인 후 성당 입구와 가운데, 제대 앞에서 부활초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노래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화답한다. 이어 사제는 부활초를 촛대에 꽂은 다음 부활 찬송을 노래한다. 이 노래는 파스카를 선포하는 감사의 기도이다.
말씀 전례는 구약 7개, 신약 2개 등 9개의 독서로 구성돼 있다. 독서의 내용은 구원에 관한 사건과 예언으로 이뤄져 있다. 구약 독서를 생략할 경우 최소 2~3개까지 할 수 있으나 제3독서(탈출기 14장)는 꼭 봉독해야 한다. 올해(다해) 복음은 루카 복음 24,1-12의 주님 부활 내용이 선포된다. 이후 세례 예식과 세례 서약 갱신 예절이 거행된다.
영성체 예식은 ‘주님 식탁에의 참여’라는 표지를 완전하게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이가 성체와 성혈을 영하는 양형 영성체를 하기를 전례서는 권고한다. 아울러 부활의 기쁨과 감사를 드러내기 위해 파견 끝에 ‘알렐루야’를 두 번 반복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대축일이다. 말씀 전례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사도 10,34. 37-43)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증언하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콜로 3,1-4)가 봉독된다. 또 복음은 빈 무덤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요한 복음(20,1-9)이 선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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