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는 시간
젊고 우울한 시 - 박참새 / On the Nature of Daylight - Max Richter
공간이 있게 하라 ・ 2024. 4. 26. 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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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your name? My name is Nobody. Excuse me? Well...., I'm Nobody.
On the Nature of Daylight - Max Richter
젊고 우울한 시
샤워하던 노년의 니체가 소리쳤다
아,
나의 젊음!
이미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노라
지껄이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허비했는지
뿌옇게 비좁은 거울 그 사이로
자신의 얼굴 뼈 빠지게 바라보다가
이것이 그가 말년에 미친 이유다
그 말을 들은 사르트르의 고양이*가 말했다
Youth is nothing
My name is Nothing
샤워하다 니체와 눈 마주쳤다
그가 원하는 것을 다 가졌는데도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어
나의 동물에게 말했다
니체는 샤워를 좋아해
청춘의 비겁한 말들이 늘어진 살들 사이로 힘없이 떠내려간다 수직으로
깔끔하게
흐르면서 잊혀진다 책임을 전가한다
그렇게 씻고 나면 씻겨져 나가는
시간과의 불화
화해한 우리는 습습한 욕실 사이좋은 정사각형
(아름답게 포개어짐)
니체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자신의 탁월함에 대해 말한다
나는 어쩜 이렇게 훌륭한
애늙은이인지!
말하니 기분이 좋았다
좋은 내가 샤워를 하고 있다
* 사르트르는 'Nothing'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웠다.
박참새 시인의 시를 읽는다. 가볍게 몇 편을 읽은 게 고작이지만, 처음 시를 펼쳤을 때 밀려오는 냄새랄지, 시어며 행간에서 밀려오는 독특한 냄새라니! 그게 어찌나 강렬한지, 김언을 비롯한 몇몇 시인을 제외하면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과 언어라는 불가항력적인 관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오갔을 고뇌와 사유들, 유희와 강박으로서의 언어, 그 언어가 드러내고 숨기는 일체의 의미들이 갖는 폭력성과 잔인성! 그것이 언어의 본질일 수밖에 없는 인류의 역사와, 하여 그 모든 신경증적 망상과 섬망들을 해체하고 찢어버리고 침을 뱉고 급기야 시궁창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비로소 태어나는 시, 그것이 시라면, 사유를 해체할 때까지 밀고가려는 욕망이 시인이 존재하는 지점이라면, 나는 시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얼마나 정신나가고 미친 짓인가! 자신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갔던 니체도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이 있다. 그건 의지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숭고하고 때로는 안타깝다. 멀쩡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용기,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을 향해 욕설을 참을 수 없는 참담한 순수, 날것의 거칠고 무례한 하나의 세계. 나는 시인에게서 그런 세계를 보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고양이 이름이 'Notning'이라니, 과연 사르트르 답다고 하겠다. 짐 자무시가 감독한 영화 'dead man'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아직도 그렇게 멋진 이름을 본 적이 없다.
영화의 대사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Nobody.
Nobody. I'm Nobody.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 노바디를 만나는 것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