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 UN평화기념관 (1)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 UN평화기념관 (2)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으시면 좀 의아하실 일이 많아요. 2020년 현재 기준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어마무시합니다. 보통 국가의 군사력은 100% 드러나는게 아니라 군사력 순위는 많이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군사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어요.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할 수 있다.
미국은 혜택받은 나라에요. 중국, 러시아가 영토가 넓다고 하지만 중국은 대부분이 사막, 산이며 러시아는 영구동토, 즉 항상 얼어붙은 나라라서 거주, 생산에 사용할 수 없죠.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대부분이 평야라서 농사짓고 공장짓고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전쟁의 필수요소가 보급이라면 그들은 보급을 확실히 갖춘 최강국가에 다름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국가가 북한군에게 밀렸느냐? 2차대전 때문입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종전당시 해외 주둔군 750만 명을 포함하여 1,200만여 명의 병력, 242개의 항공단과 100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유력인사들은 이제 군인들을 집으로 보내라며 압박합니다. 전쟁이 없는데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느라 젊은이들을 묶어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미군의 규모는 미군은 146만 명까지 급속히 줄었습니다.
문제는 북한편을 들던 소련의 병력은 175개 사단에 430만 명이었다는 거죠. 그러니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니 세계 각국에 참전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22개국에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하지요.
참전용사에게 편지를 쓰는 코너.
단풍국이라는 별명을 지닌 캐나다 군의 장비.
6.25 전쟁 시기 캐나다가 한반도에 파병한 병력은 UN군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인 세번째로 큰 규모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전공을 세웠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가평 전투로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13배가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버는 등 병력 규모에 비해 말도 안되는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평전선을 방어해내고 말죠. 이렇게 가평을 뚫지 못한 중공군은 반격을 포기하고 38선까지 후퇴할 것을 결심합니다. 캐나다는 47명 전사 99명 부상, 중공군은 4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런 전과 덕분에 UN에서 입지가 탄탄한 군대이기도 하죠.
터키군도 인상적일 수 밖에 없어요. 금양전투는 쿠르드 족이 얼마나 무서운 전사인지 중공군에게 뼈저리게 새긴 전투였거든요.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 판에 중공군까지 몰려오자 유엔군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워야했는데 이 전투는 그런 사기를 올리는데 충분히 기여했습니다.
터키군 17명 사망, 중공군 171명 사망 및 금양고지 철수. 압도적인 승리였죠.
하지만 터키군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 2010년에 한국에서 만든 코레 아일라(Ayla My Korean Daughter)라는 다큐멘터리일 겁니다. 6.25 전쟁에 참여해 군우리, 금양장리, 철원 등에서 싸웠던 슐레이만이란 터키 육군 대령이 전쟁중 자신이 딸처럼 돌봤던 아일라(가명)라는 고아 소녀를 되어 다시 찾는다는 내용이거든요. 네 실화입니다.
아, 저 전화기는 나 군대에서도 쓰던건데...
두 번째로 막강한 영국군의 자료.
타일랜드.
참전덕분에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타일랜드(태국)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59년 수교를 시작합니다. 이때 타일랜드가 얻은 게 참 많은데요 당시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을때 한국이 중재해줬고 덕분에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 타일랜드에 주둔하게 되었죠. 뜻밖의 억지력을 얻은 셈입니다.
참전 용사들의 유류품. 저 손전등은 작동한다네요.
방한용구가 눈에 띕니다. 가뜩이나 한국은 추운 나라 급에 들어가는데 북한의 10월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추운 지방이거든요.
지뢰탐지기.
전쟁때도 전쟁이지만 한반도에 지뢰가 살포된 시기는 매커시즘이 이념이 되어 미소갈등이 극에 달한 1960년대였습니다. 1962년 소련은 핵미사일을 미국 바로 코 앞인 쿠바에 배치하려고 했고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덩달아 북한의 도발도 활발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서로서로 지뢰를 뿌려댄거에요.
종전되어도 끝난게 아닙니다. 우선 이 지뢰부터 거둬야 사람이 들어가죠.
(문제는 좀처럼 그럴 분위기가 아니네요)
당시 참전국 병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들고 있던 지포라이터. 한국 표기가 들어간 기념 라이터가 전시되어 있군요.
원래 지포라이터는 그리 잘 팔리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때 배급품으로 공급되면서 명성을 떨쳤죠. 물에 빠져도 비를 맞아도 불이 켜졌거든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불을 붙이고 던져도 꺼지지 않는지라 여차하면 적의 폭발물에 집어던질 수도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판매량이 늘어나서 1960년에 이미 누적판매 1억개를 달성했으며, 2006년에 4억 2천 500만개를 돌파했습니다. 당연히 희소성은 없지만 저렇게 기념으로 만들어진 건 이야기가 다르죠. 무지막지하게 비싸진 않지만 정품이라면 세계 수집가들의 제안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AS가 필요없는 제품입니다. 이유인 즉 안 고장나서.
소총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네요.
위트컴 장군 기념전시관.
그는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부산 미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지역과 전쟁 고아들을 위해 수많은 선행을 했거든요. 부산역전 대화재 당시 군법을 어기고 미군 군수물자를 이재민 3만여 명에게 나눠주거나, 피난민들이 살 수 있는 도시 조성, 도로 조성을 기여했습니다. 1954년 전역한 이후에는 (군법을 어긴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역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미재단을 설립하고 병원-고아원 등을 계속 지원하다 1982년 서울 용산에서 별세했습니다.
여담으로 전쟁 후 사망한 사람 중에서 유엔평화공원에 묻힌 유일한 사람입니다.
제작연도를 알 수 없는 탱크 모형.
참전군들이 아이들을 위해 저런걸 만들어서 선물했다고 해요.
항공기 관련 자료.
저걸 보고 있자니 저 거즈는 진짜일까? 저 약품은 지금 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까지 참여해서 화제가 되었죠. 문대통령 취임 후 뉴질랜드 방문시 참전용사를 찾아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이념에서 참전했는데 이때 철천지 원수인 터키와 함께 참전하는 웃픈 이야기가 벌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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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 2019 세종도서 교양부문>
<일본졸업: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수상>